← 작품으로
마교가 엉망이라 직접 가르칩니다1화

마교가 엉망이라 직접 가르칩니다

마교가 엉망이라 직접 가르칩니다

1화: 천마의 첫 수업

석진호는 죽는 순간까지도 검을 놓지 않았다.

하늘을 덮은 신선들의 검광이 산맥을 쪼갰다. 그 틈으로 피 묻은 손이 하나씩 뻗어 왔다. 그들은 천마의 목 하나를 원했다.

석진호는 마지막 내력을 검 끝에 몰았다.

"고작 이 정도로 날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나."

검은 빛이 터졌다.

그 뒤로 기억은 끊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석진호의 귓가를 두드린 것은 천둥이 아니었다. 썩은 지붕을 뚫고 떨어진 빗물이었다.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뺨을 타고 턱으로 흘렀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멈췄다.

팔이 지나치게 가늘었다.

손등에는 굳은살이 얕게 남아 있었고 손가락 마디에는 오래된 상처가 겹쳐 있었다. 검을 오래 잡은 손이 아니었다.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포기한 손이었다.

석진호는 숨을 죽이고 손가락을 명치 아래에 댔다.

텅.

단전에서 돌아온 감각은 그것뿐이었다. 깊이를 가늠할 내력도 없었다. 미세한 기운조차 머물지 못하는 빈 그릇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옮겨 기맥을 더듬었다.

첫 번째 기맥은 매듭진 밧줄처럼 비틀려 있었다. 두 번째는 기운이 지나간 흔적조차 희미했다. 세 번째는 아예 바깥에서 눌러 막아 놓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둔재가 아니군."

석진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타고난 그릇이 작을 수는 있다. 심법을 잘못 익혀 기맥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 군데가 같은 방향으로 망가진 경우는 드물었다.

이건 누군가 손을 댄 몸이었다.

낯선 기억이 밀려들었다.

이 몸의 이름은 백운휘. 열여덟 살. 변방의 삼류 문파 철혈문 외문 제자. 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여섯 해가 지났지만 목검 하나를 똑바로 휘두르지 못해 만년 둔재라 불렸다.

밥을 늦게 먹으면 사형들이 먼저 반찬을 걷어 갔다. 연무장에서 넘어지면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백운휘는 그게 당연한 줄 알고 고개만 숙였다.

석진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전생의 그였다면 이런 문파 하나는 지도에서 지우는 데 반 식경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방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무릎에 힘을 주자 허벅지가 떨렸다. 발바닥이 바닥을 짚는 감각도 어색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문간에 선 노인은 낡은 갈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철혈문 산문을 지키는 장 노인이었다. 그는 백운휘가 침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누워 있느냐. 오늘은 산문에 빚쟁이까지 들이닥쳤다. 네 꼴까지 보이면 문주님 속만 뒤집힐 게다."

석진호는 노인을 올려다봤다.

장 노인은 잠깐 말을 멈췄다. 백운휘가 남의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빚쟁이?"

"문파에서 약값을 못 냈다더군. 황칠패라는 잡놈들이다. 뒤뜰에 있어라. 괜히 나가서 얻어맞지 말고."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석진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이 몸은 엉망이었다.

그러나 엉망인 것은 몸만이 아니었다.

산문 쪽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터졌다.

"철혈문 놈들아! 약값은 내놓고 죽어라!"

석진호는 맨발에 낡은 신을 끼워 넣었다.

"몸부터 고치려 했는데."

그가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수업 준비도 안 된 놈들이 먼저 찾아왔군."


폭우가 지나간 철혈문의 뜰은 진창이었다.

빗물에 젖은 팻말 아래로 외문 제자 여섯이 모여 있었다. 목검을 든 자도 있었지만 손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검끝은 사파들을 향하지 못하고 바닥만 긁었다.

뜰 한복판에는 누런 도포를 입은 사내 셋이 서 있었다.

앞에 선 황칠은 장 노인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삐죽 솟은 광대뼈 아래로 누런 수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의 곁에서 한쪽 눈에 흉터가 난 독안귀가 철혈문의 팻말을 칼등으로 툭툭 두드렸다.

"문주라는 놈은 어디 처박혔지?"

황칠이 장 노인을 흔들었다.

"약재를 외상으로 가져갈 때는 큰소리치더니 이제 와서 배 째라고? 그럼 제자 하나씩 데려가 팔아야지."

장 노인이 기침을 했다.

"사흘만 기다리게. 문주님이 읍내에 가셨으니……."

"사흘은 어제도 들었다."

황칠의 손등이 올라갔다.

철혈문 제자 하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하나는 목검을 놓쳤다.

석진호는 그 광경보다 제자들의 발을 먼저 봤다.

모두 뒤꿈치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싸울 생각이 없는 발이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앞으로 나서면 황칠패 같은 삼류는 물러날 터였다. 그런데 이들은 숫자가 두 배인데도 벽을 등지고 있었다.

한심했다.

석진호는 천천히 뜰로 걸어 나갔다.

장 노인이 그를 발견하고 얼굴을 굳혔다.

"운휘야, 왜 나왔느냐! 방으로 돌아가라."

황칠도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백운휘를 위아래로 훑더니 실소를 터뜨렸다.

"이게 그 유명한 둔재냐? 잘됐네. 철혈문은 사람 머릿수로 빚을 갚는다지 않았느냐. 이놈부터 데려가자."

사내 하나가 백운휘에게 다가왔다.

석진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황칠의 발이 젖은 흙 위에 박힌 모양을 봤다. 보폭은 넓었고 오른발 뒤꿈치가 조금 들려 있었다. 힘을 줄 때마다 허리가 먼저 흔들렸다.

독안귀는 칼을 잡은 손보다 왼쪽 어깨가 먼저 들썩였다. 칼집을 앞으로 내밀며 으스대는 마지막 사내는 체중이 발가락에만 쏠려 있었다.

삼류도 아까운 놈들이다.

"빚문서나 보여 줘."

석진호가 말했다.

황칠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글은 읽을 줄 아느냐?"

"글은 모르겠고."

석진호는 황칠의 손을 바라봤다.

"네 손목이 너무 느리다는 건 보이네."

황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그가 손을 뻗었다.


석진호는 손목이 잡히기 직전에 반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황칠의 팔꿈치가 들렸다. 그 찰나 석진호의 두 손가락이 엄지와 검지 사이의 여린 살을 눌렀다.

"으악!"

황칠의 손가락이 저절로 풀렸다.

석진호는 잡힌 멱살을 빼내려는 장 노인의 장대를 발끝으로 건드렸다. 장대 끝이 솟구쳐 황칠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퍽!

황칠은 진창에 무릎을 박았다. 흙탕물이 누런 도포 위로 튀었다.

뜰이 조용해졌다.

독안귀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칼이 칼집에서 반쯤 빠져나왔다.

석진호는 달려들지 않았다. 몸을 낮추지도 않았다. 들린 왼쪽 어깨가 내려오는 순간만 기다렸다.

독안귀가 칼을 휘둘렀다.

석진호는 고개 하나가 들어갈 만큼만 옆으로 비켰다. 칼날은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 기둥에 박혔다.

"팔부터 들지 말랬지."

석진호가 혀를 찼다.

그는 칼집을 걷어차 독안귀의 발목 앞에 밀어 넣었다. 사내가 칼을 빼려 몸을 당기는 순간 발목이 걸렸다. 독안귀는 기둥에서 칼을 놓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지막 사내가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의 눈이 백운휘의 목을 향했다. 그러나 무릎은 벌써 앞으로 쏠려 있었다.

석진호는 비수 대신 발뒤꿈치를 찼다.

사내의 중심이 무너졌다. 그는 앞으로 엎어지며 독안귀의 등에 처박혔다. 두 사내가 비명과 함께 진창을 굴렀다.

세 번이었다.

손가락 하나, 장대 하나, 발끝 하나.

석진호는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갈비뼈 안쪽이 타들어 갔다. 비틀린 기맥이 움직임의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욱신거렸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는 티 내지 않고 발끝에 힘을 줬다.

전생의 몸이었다면 이런 놈들은 눈꺼풀을 들기도 전에 바닥에 박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 비킨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웠다.

그래도 상대에게 보여 줄 약점은 아니었다.

황칠이 진창에서 일어나려다 석진호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지고 당황이 떠올랐다.

"네놈…… 기맥이 다 막힌 백운휘가 맞아?"

석진호의 표정이 멈췄다.

황칠은 실수했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내 기맥을 누가 막았는지 아는 모양이군."

"무, 무슨 헛소리냐!"

황칠은 품에서 빚문서를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찢어진 종이 끝에 검은 뱀 문양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석진호는 그 인장을 눈에 새겼다. 전생에 본 적 없는 문양이었다. 적어도 백 년 전의 마교 인장은 아니었다.

"좋아."

그가 낮게 말했다.

"네 주인에게 전해라. 빚 받으러 다시 오라고. 이번에는 수업료까지 받아 내 줄 테니까."

황칠이 이를 악물었다.

"사람을 더 데려오겠다. 그때도 그 입이 살아 있을지 보자."

"데려와."

석진호는 바닥의 목검 하나를 발끝으로 들어 올려 손에 쥐었다.

"대신 다음에는 걸어서 돌아가지 못할 거다."

황칠패는 서로를 부축하며 산문 밖으로 달아났다. 독안귀가 흘린 칼은 진창에 반쯤 묻혔다.


한참 뒤에야 철혈문 제자들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렸다.

"백운휘가 황칠을 쓰러뜨렸어."

"운이 좋았겠지. 황칠이 미끄러졌잖아."

"그럼 독안귀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장 노인은 멱살이 찢어진 도포를 매만지며 석진호를 봤다. 의심과 안도가 한꺼번에 묻어난 눈이었다.

"운휘야. 대체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느냐?"

석진호는 곧장 답하지 않았다.

그는 연무장 쪽으로 걸었다. 세 걸음째에서 시야가 흔들렸다. 무릎이 꺾이려 했지만 목검을 짚어 버텼다.

텅 빈 단전이 조롱하듯 아렸다.

"어디서 배웠냐고?"

석진호가 혼잣말처럼 되물었다.

배운 적은 없다. 그는 만들었다. 수많은 마인들이 피를 흘리며 완성한 검리와 심법의 뼈대를 그가 세웠다.

그런데 지금 이 문파의 연무장에는 목검보다 굵은 잡초가 자라 있었다. 빗물에 젖은 흙 위에는 제자들의 발자국이 뒤엉켜 있었다. 기본 보법을 익힌 자라면 남길 수 없는 흔적이었다.

벽에 걸린 철혈문 검법의 그림도 엉망이었다. 허리는 굽었다. 앞발은 들렸고 검끝은 힘없이 흔들렸다.

석진호는 목검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저걸 가르치는 놈은 누구냐?"

제자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장 노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주님께서 직접……."

"그럼 문주부터 다시 배워야겠군."

순간 뜰이 얼어붙었다.

백운휘가 문주를 험담했다. 그것만으로도 믿기 어려운데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석진호는 목검 끝으로 진흙 바닥에 곧은 선을 하나 그었다.

"발은 여기서 시작한다. 검은 그다음이다."

그는 제자들을 돌아봤다.

"살고 싶으면 앞으로 나와. 죽고 싶으면 지금처럼 벽에 붙어 있어라."

누구도 곧장 움직이지 못했다.

석진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좋아. 그럼 오늘은 봐준다. 내일 새벽부터는 안 봐준다."

그는 장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연무장에 있는 목검을 전부 모아 둬. 돌멩이도 치우고."

"네가 정말 수련을 시키겠다는 게냐?"

"수련?"

석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건 기초가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거다. 저놈들은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워야 해."

말을 마친 뒤 그는 잡역방으로 향했다.

황칠이 남긴 뱀 문양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백운휘의 기맥을 아는 놈이 사파 무리 안에 있다. 단순한 빚 독촉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급할수록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이 몸을 고친다.

석진호는 문을 닫고 침상 앞에 앉았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한 호흡에 전생의 천마심법을 모두 되살릴 수는 없다. 잘못 밀어 넣으면 이미 상한 기맥이 완전히 끊어질 것이다.

그러니 가장 작은 길부터 연다.

그는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마셨다. 아랫배에 닿기도 전에 막힌 기맥이 바늘처럼 찔렀다.

석진호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

"좋아."

고통이 있다는 건 길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럼 첫 수업은 나부터지."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