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무적으로 세상을 씹어먹음

시놉시스
만년 F급 헌터 강한길. 남들처럼 화려한 마법도 압도적인 육체도 없는 그에게 맡겨지는 일은 늘 짐꾼이었다.
그러나 S급 레이드의 심층부에서 버려진 순간, 그의 눈앞에 단 하나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고유 특성: 절대 무적(EX)]
지속 시간은 단 1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피해와 법칙은 강한길에게 닿지 않는다.
1화: 버려진 짐꾼
강한길은 컨테이너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젖은 유리처럼 번들거리는 던전 바닥 위로 검은 마력이 뚝뚝 떨어졌다. 한 방울이 전술 장갑에 닿자 표면이 지글거리며 녹았다.
"야 F급. 뒤처지면 버리고 간다."
정상 길드 대원이 헬멧 너머로 웃었다.
한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끈을 한 번 더 조이고 컨테이너 무게를 등뼈 중심에 맞췄다. 안에는 S급 회복 포션 세 병, 마석 보관 케이스, 차성현 전용 촉매탄 여섯 발이 들어 있었다.
비싼 물건들.
그리고 그걸 든 한길은 그 물건들보다 싸게 취급됐다.
이번 계약서에는 "변동 던전 위험 동의"라는 항목이 있었다. 처음엔 C급 보조 운반 임무라고 했다. 막상 들어와 보니 던전은 A급 이상으로 뛰었고 정상 길드는 추가 수당 대신 침묵을 요구했다.
F급 짐꾼에게 거절권은 없었다. 거절하는 순간 다음 일감도 끊겼다.
앞쪽에서 붉은 머리의 사내가 손을 들었다.
국내 1위 길드 정상의 공격대장 차성현.
그의 손끝에서 일어난 화염 고리가 복도 끝의 마수 무리를 순식간에 녹였다. 검은 뼈가 바닥에 쏟아지기도 전에 다음 화염이 날아갔다.
"짐꾼은 후방 15미터 유지. 괜히 전투 구역 밟고 죽으면 보상금도 없다."
"알겠습니다."
한길은 짧게 답했다.
속으로는 다른 숫자를 세고 있었다.
화염 고리 형성까지 0.7초.
착탄까지 1.2초.
잔열이 사라지는 데 3.4초.
한길이 가진 것은 남들이 인정하는 스킬이 아니었다. 등급 측정기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마력량도 낮고 근력도 평범했다. 대신 그는 공격이 시작되는 미세한 순간을 읽었다.
마수가 발톱을 들기 전 어깨가 굳는 찰나.
함정이 열리기 전 바닥의 마력이 숨을 들이켜는 박자.
마법사가 주문을 끝내기 전 눈동자에 번지는 색.
그 감각 덕분에 F급으로도 죽지 않았다. 문제는 아무도 그것을 능력으로 쳐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길 씨였나?"
옆을 지나던 B급 딜러가 컨테이너를 툭 쳤다. 한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예."
"보스룸 들어가면 가방 내려놓고 벽에 붙어 있어. 괜히 살겠다고 뛰다가 방진 망치면 진짜 죽여 버린다."
"방진 밖에 있으면 더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벽에 붙으라고. 위험한 건 네 사정이고."
대원들이 웃었다.
한길은 그들의 웃음보다 천장의 진동을 들었다. 던전 깊은 곳에서 낮은 심장 박동 같은 소리가 울렸다.
둥.
2.8초 뒤 다시.
둥.
그는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늦췄다.
"속도 맞춰."
차성현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한길은 컨테이너를 끌어안고 다시 걸었다.
보스룸 문은 검은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문을 감싼 수정 기둥마다 실핏줄 같은 마력선이 번졌다. 정상 길드 대원들은 익숙하게 진형을 펼쳤다.
한길은 후방 벽면의 균열을 봤다. 출구까지 18미터. 오른쪽 기둥 뒤로 몸을 밀어 넣으면 충격파 한 번은 피할 수 있다. 단 화염계 광역기가 들어가면 산소가 먼저 날아간다.
"문 연다."
차성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거대한 문이 안쪽으로 밀렸다.
보스룸 중앙에는 마수가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처럼 무릎 꿇은 자세였지만 크기는 대형 버스보다 컸다. 등뼈 사이에 박힌 검은 핵이 천천히 맥동했다.
둥.
한길은 눈살을 찌푸렸다.
박동이 방금 전보다 가까웠다.
"끝내자."
차성현의 화염 창 여덟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주홍빛 창끝이 허공을 찢고 마수의 가슴에 꽂혔다.
마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꺾였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대원들은 환호했고 차성현은 이미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너무 쉬웠다.
S급 변동 던전의 보스가 이렇게 빨리 무너질 리 없었다. 한길의 시선은 마수의 상처가 아니라 등뼈의 핵에 붙었다.
마력이 흩어지지 않았다.
안쪽으로 접히고 있었다.
"공격 중지해야 합니다."
몇 명이 돌아봤다.
차성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뭐?"
"핵이 접히고 있습니다. 사망 반응이 아닙니다. 압축 반응입니다."
"F급이 작전 지휘하냐?"
"자폭 패턴일 가능성이 큽니다."
정적이 짧게 내려앉았다.
그 정적을 깨듯 마수의 배가 안쪽에서 부풀었다. 보스룸 벽에 박힌 수정들이 검게 물들었다.
둥.
박동 간격 2.1초.
둥.
1.4초.
한길은 컨테이너를 내려놓았다.
"자폭입니다!"
그제야 차성현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붉은 방벽을 펼치고 핵심 공격대원들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장비 버려! 생존자 우선이다!"
생존자.
한길은 그 단어에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그는 방벽 쪽으로 뛰었다. 발밑의 그림자가 갈라지고 뜨거운 마력이 발목을 감았다. 손을 뻗었을 때 방벽의 끝이 코앞에서 닫히고 있었다.
"차성현 씨!"
붉은 막 너머로 차성현이 잠깐 돌아봤다.
그 눈빛에는 미안함도 당황도 없었다. 귀찮은 계산을 끝낸 사람의 무표정만 있었다.
"계약서에 위험 동의했잖아."
방벽이 닫혔다.
곧바로 출구가 불길에 막혔다. 통신기는 잡음만 토했다. 정상 길드의 생체 신호가 하나씩 보스룸 밖으로 멀어졌다.
한길의 신호만 안쪽에 남았다.
분노는 늦게 왔다.
먼저 온 것은 숫자였다.
남은 박동 0.9초.
핵 팽창 한계까지 4.6초.
벽면 붕괴까지 대략 6초.
피할 곳은 없었다. 누울 곳도 없었다. 그를 보호해 줄 방어 스킬도 없었다.
그때 시야 한가운데 낯선 글자가 떠올랐다.
[각성 조건 충족]
[생존 불가능 판정이 누적되었습니다.]
[고유 특성: 절대 무적(EX)이 개방됩니다.]
한길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와서?"
[지속 시간: 1초]
[쿨타임: 10초]
[효과: 모든 물리적 피해, 마법적 피해, 상태 이상, 법칙 작용을 무효화합니다.]
마수의 핵이 찢어졌다.
검은 빛이 보스룸 전체를 밀어냈다. 바닥이 먼저 녹았다. 다음은 공기였다. 숨을 들이마실 틈도 없이 열과 압력이 한길의 얼굴까지 밀려왔다.
한길은 메시지를 읽는 동시에 발동 감각을 붙잡았다.
버튼도 주문도 없었다. 숨을 멈추는 것보다 짧고 눈을 감는 것보다 선명한 선택.
그는 폭발을 바라보며 말했다.
"발동."
폭발이 그를 삼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길은 피부 앞에서 사라졌다. 충격파는 가슴을 누르지 못했다. 녹아내린 바닥이 발목을 잡지 못했고 산소가 타 버린 공간에서도 폐는 망가지지 않았다.
천장이 무너졌다.
검은 파편이 눈앞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한길에게 닿는 순간 의미를 잃었다.
1초.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이었다.
동시에 한길이 평생 처음 얻은 완전한 안전지대였다.
효과가 끝나자 열기가 다시 폐를 찔렀다. 한길은 즉시 옆으로 몸을 던졌다. 무너진 기둥이 방금 서 있던 자리를 찢고 지나갔다.
왼쪽 팔이 바닥에 긁혔다. 통증이 올라왔다.
살아 있었다.
한길은 팔을 붙잡고 웃었다.
"진짜였네."
시야 한쪽에 보이지 않는 초침 같은 감각이 돌았다.
쿨타임 9.2초.
그는 숨이 아니라 시간을 셌다.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핵 안쪽의 검은 결정이 다시 부풀고 있었다. 마수의 시체는 죽은 뒤에도 박동했다.
둥.
다음 파동까지 8.0초.
쿨타임 7.6초.
간격이 맞지 않았다. 그대로 있으면 두 번째 폭발 전에 능력이 돌아오지 않는다.
한길은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에는 무너진 기둥이 만든 그림자가 있었다. 저곳까지 4미터. 파편 낙하 예상 1.3초. 바닥 열기로 버틸 수 있는 시간 2초 남짓.
그는 달렸다.
첫 발은 뜨거운 바닥에 붙을 뻔했다. 두 번째 발은 부서진 석판을 밟았다. 세 번째 발에서 뒤쪽 벽이 터졌다.
돌조각 하나가 그의 뺨을 스쳤다. 피가 흘렀다.
쿨타임 4.1초.
다음 파동까지 3.8초.
한길은 기둥 뒤로 몸을 밀어 넣었다. 충격파의 잔열이 등 뒤를 훑었다. 방금 전까지 신의 손처럼 느껴졌던 1초가 사라지자 던전은 다시 지옥이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선명했다.
무적은 영원이 아니었다.
그러니 맞출 수밖에 없었다.
프레임 하나만 틀려도 죽는다. 너무 빨리 켜도 죽고 너무 늦게 켜도 죽는다. 남들이 보기엔 애매한 1초였지만 한길에게는 처음부터 익숙한 싸움이었다.
그는 평생 그런 틈만 보며 살아남았다.
보스 핵까지 남은 거리 12미터.
중간의 녹은 바닥 3미터.
왼쪽 천장 붕괴까지 2.5초.
검은 결정은 핵 안쪽에서 더 밝게 빛났다. 마수의 시체가 그것을 지키듯 꿈틀댔다.
정상 길드는 저걸 버리고 도망쳤다. 자신까지 같이 버렸다.
한길의 입가가 차갑게 올라갔다.
"그럼 전리품도 버린 거지."
밖에서는 붉은 방벽이 멀어지고 있었다. 차성현은 아마 보고서를 정리할 것이다. F급 짐꾼 사망. 변동 던전 사고. 회수 불가능.
좋았다.
죽은 사람 몫으로 남은 보상을 산 사람이 가져가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쿨타임 1.8초.
다음 파동까지 1.6초.
한길은 기둥 밖으로 나왔다. 열기가 얼굴을 때렸다. 검은 핵이 다시 찢어지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폭발의 중심을 향해 한 걸음 더 들어갔다.
"10초라."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더럽게 길긴 하네."
쿨타임 0.3초.
검은 결정이 두 번째 자폭을 토해 내기 직전이었다.
한길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박동의 끝과 초침의 끝이 한 점에서 겹쳤다.
"그래도 1초면 됐지."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절대 무적(EX)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