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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16화

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16화: 마력 스크롤의 가격

제국의 심장이라 불리는 아스테리아 황궁의 대리석 복도는 웅장했으나, 그 이면은 썩어가는 종이 뭉치와 낡은 관료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찬란한 마법 문명의 빛 아래, 제국은 방만한 예산 집행과 정체된 행정이라는 치명적인 암세포에 침식당하고 있었다.

마도 전쟁 스크롤의 재료인 가공 마력지의 독점 공급 상회가 가격을 3배로 올리겠다고 황실에 통보한 것은 그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이세계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겉모습 뒤에 웅크린 전근대적 행정의 모순은 강민우의 숙련된 기획자로서의 직업적 말초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귀족 관료들은 무의미한 보고서 결재판을 넘기며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조차 망각한 채 안일에 빠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리드미컬하게 회전하는 은빛 만년필은 제국의 부픈 재정 거품을 단숨에 터뜨려버릴 날카로운 바늘이자,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새로운 질서를 이식하는 정밀한 수술용 메스였다. 민우는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분주히 마차를 몰며 이동하는 사람들을 무심히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나직한 한숨을 뱉었다.

서울 본사 전략기획실 시절, 원가 절감을 위해 글로벌 소싱 업체를 쥐어짜던 구매팀과의 협상 기억이 떠올랐다. 단 1%의 마진을 두고 벌였던 진흙탕 싸움과 공급망 관리(SCM)의 생리가 이곳 이세계에서도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결국 수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 사회를 움직이는 인간의 권력과 행정 기제는 본질적으로 모두 동일할 뿐이지. 복잡하게 얽힌 자본의 흐름과 보급의 생명선을 움켜쥐고 통제하는 설계자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법이다."

민우는 차갑게 식어 가던 마력 홍차를 가볍게 한 모금 넘긴 후, 눈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집무실 주변을 감싼 조명 마법 램프의 조도를 최적의 상태로 신중하게 조절했다.

현재 민우가 정면에 맞닥뜨린 가장 거대하고도 시급한 핵심 행정 과제는 다름 아닌 가공 마력지 대체품으로 목재 종이에 마력을 안착시키는 기술 기획안을 실행하는 것 일이었다. 그는 오래된 참나무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가죽 문서철들의 두터운 먼지를 손등으로 가볍게 쓸어내고는,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찰나의 순간, 민우의 의식과 동화된 '오피스 워커의 눈(Office Worker's Eye)'이 활성화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 보조 장치가 아니라, 혼탁한 마력의 흐름 속에서 순수한 숫자의 뼈대만을 발라내어 현대적인 복식부기 스프레드시트로 재구성하는 전지적 기획자의 관점이었다.

[라피아 홀딩스 & 제국 국정 재정 정밀 모니터링 시스템]

숫자와 정교한 데이터는 언제나 인간의 편협한 감정이나 빛바랜 명예의 허세와는 다르게, 단 1센트의 오차도 없이 지극히 냉혹하고 정직하게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민우는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붉은색 노이즈로 짚어내는 결산 오류 지점들을 날카로운 만년필 촉으로 꾹 누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정밀한 구조조정 및 실행안 기획서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설계해 나갔다.

이윽고 기획실장실의 묵직한 오크나무 문이 조용히 열렸고, 발걸음마다 긴장감이 선연하게 묻어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석 공급 상단주가 긴 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민우는 아주 자연스럽고 예의 바른 태도로 손짓하며, 그를 테이블 맞은편에 마련된 고급 안락의자로 안내했다.

집무실 내부를 메운 공기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도화선처럼 팽팽하게 얼어붙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민우는 미리 복사 마법으로 정갈하게 편집해 둔 방대한 비교 분석 보고서 뭉치를 테이블 중앙에 툭 던져놓으며, 대화의 주도권을 단숨에 움켜잡았다.

"바쁘신 와중에 발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석 공급 상단주. 방금 올려 보내주신 기안서와 청구 장부들을 한 장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실사해 보았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제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 문서에 승인 결재 도장을 찍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세부 내역이 불명확한 예산 청구서와 비합리적인 계약 단가들이 가득하더군요. 이대로 승인하면 국고에 심각한 손실이 발생합니다."

마석 공급 상단주는 민우의 예리하고 차가운 지적에 순간 참을 수 없다는 듯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회의용 테이블을 가볍게 탁 내리쳤다.

"강 실장! 그대가 이세계에서 온 이후 행정적으로 세운 공로와 시장 개혁의 위대함은 내 충분히 경의를 표하는 바일세! 그러나 이것은 수백 년 동안 우리 가문과 황실이 지켜온 신성한 규칙이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긍지의 영역이네! 어찌 천한 평민의 만년필 끝 하나로 우리가 수호해 온 역사적 가치관을 한순간에 부정하려 든단 말인가!"

민우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상대를 직시하며 만년필을 책상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귀하가 말하는 긍지나 역사적 명예는 장부의 거대한 적자 구멍을 메워주지 못합니다. 시장 경제와 숫자의 인과율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냉정하게 적용됩니다. 독점이 영원하리라 믿으셨습니까? 시장은 언제나 대체 기술을 찾아냅니다. 만약 제가 제시한 새로운 기획안과 구조조정 조건에 합의하지 않으신다면, 오늘부로 귀하의 부서와 관련된 모든 국가 재정 예산 유입 경로와 중앙은행 예금 계좌를 법률적 권한 하에 즉시 동결 및 강제 처분 조치하겠습니다. 저는 이 국가적인 낭비와 사리사욕을 묵과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결재판 위에 영혼 없는 반려 도장을 찍는 것 외에는 다른 타협안을 제시할 의향이 전혀 없습니다."

민우의 확고부동하고 엄격한 카리스마 앞에 마석 공급 상단주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어깨를 바르르 떨며 서명 서류를 쥔 채 길고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민우가 들이밀어 증명한 회계 장부의 증거들은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진실이었고, 만약 이 자리에서 기획실장의 요구를 거절하고 대립했을 때 귀하가 지키고자 하는 가문이나 세력이 입게 될 금융적 파탄의 결과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명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기획실장의 냉혹한 펜 끝이 독점 상회의 목줄을 죄자, 정체되었던 황실 자금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특권층의 주머니로 흘러들던 금화들이 마침내 제국의 말단 행정 조직까지 도달하는, 건국 이래 유례없는 대규모 자본의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보수파 귀족들의 반발은 실적에 근거한 투명한 인센티브 제도와 자산 가압류라는 경제적 단두대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고대의 역사 장부들은 영웅의 칼솜씨나 마법사의 천재적인 마법 주문만을 국가 수호의 공적으로 적어왔지만, 이제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문명의 동력원은 기사의 검이 아닌 한 직장인이 밤을 새워 기안한 엑셀식 기획서와 행정 규칙 가이드라인이었다. 피를 흘리는 정면충돌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수백 년의 전쟁과 반목이, 자본의 적재적소 재배치와 투명한 시장 유통 제어라는 행정 마법 앞에서 너무나 부드롭고 당연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화해와 평화의 구도로 정착되는 장관은 그 자체로 가장 위대한 기적과도 같았다.

마침내 길었던 하루의 모든 결재 업무가 종료되고 수백억 골드에 달하는 분기 결산 보고서 상단에 최종 승인을 뜻하는 기획실장의 전결 인장이 붉은 마력의 안착음과 함께 쾅 찍혔다. 강민우는 뻐근한 목덜미를 가볍게 주무르며 안락의자 깊숙이 지친 몸을 묻고 길게 모아두었던 숨을 밖으로 토해냈다.

창밖으로는 중앙은행이 닦아놓은 신식 마도 수송 도로망을 따라 대규모 상단들의 유통 마차가 꼬리를 물고 질서정연하게 내달리며 제국과 마계를 잇는 새로운 경제의 피를 활기차게 수송하고 있었다.

허공의 푸른빛 시스템 인터페이스 화면이 부드럽게 진동하며 기분 좋은 주파수 소리를 울려 퍼트렸다. 그의 기획과 실행 조치가 이세계 전체의 금융 인프라망에 완전히 성공적으로 동기화되어 한 단계 더 높은 안정화 등급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완료 메시지였다.

새로운 가공법 덕분에 스크롤 제작 비용이 5분의 1로 절감되며 독점 상회는 파산했다.

민우는 은빛 만년필을 양복 안주머니에 소중히 꽂아 넣으며 식어버린 커피 잔을 만지작거렸다.

"다음 분기 신규 사업 계획서 수립 및 이사회 주주총회 보고용 프레젠테이션 작성을 곧바로 착수해야겠군."

차원이 뒤틀리고 세상이 바뀌었어도 평범한 직장인이 짊어진 서류의 굴레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세상을 평화롭게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정의나 구호가 아닌, 매일 아침 성실하게 작성되는 서류와 차가운 숫자의 행정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획 대리로 소환된 그의 이세계 경영 일지는 대륙의 영원한 번영을 그리는 지도 위로 끊임없이 쓰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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