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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프로게이머가 너무 강함1화

회귀한 프로게이머가 너무 강함

회귀한 프로게이머가 너무 강함

프롤로그

강도현의 손목은 마지막까지 그를 배신했다.

손가락 한 마디를 움직일 때마다 저린 감각이 팔꿈치까지 기어올랐다. 키보드 위에서 가장 빨랐던 손은 이제 물병 뚜껑 하나를 여는 일에도 잠깐의 망설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은퇴라고 불렀다.

도현에게는 빼앗긴 시간에 가까웠다.

1화. 통증 없는 손가락

“이상으로 강도현 선수의 은퇴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플래시가 한 번 더 터졌다.

도현은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말은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팬들에게도, 팀원들에게도, 구단에도. 손목 상태가 더는 경기를 소화할 수 없다는 말 역시 입에 붙은 문장이었다.

문제는 그 문장이 사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손목이 망가진 건 맞았다.

하지만 처음 통증을 호소했을 때 쉬게 해 줬다면,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출전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결승을 앞두고 진통제 주사를 맞는 선수를 무대 위로 올려보내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현은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악수를 청하는 손들이 몇 번 더 다가왔지만 그는 왼손으로만 겨우 응했다.

오른손은 코트 주머니 속에 감췄다.

손목 보호대 아래가 뜨겁게 쑤셨다. 엄지와 검지 사이가 둔하게 당겼다. 어제 연습실에서 마지막으로 마우스를 잡았을 때는 클릭 하나가 늦을 때마다 상대의 스킬이 먼저 날아오는 기분이었다.

세계 정상의 미드라이너.

고스트 강도현.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우승 트로피와 결승전의 장면을 떠올렸다. 무너진 넥서스 앞에서 헤드셋을 벗던 모습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도현에게 가장 선명한 기억은 다른 것이었다.

월드 챔피언십 4강 마지막 세트.

상대 정글러가 시야 밖에서 사라졌고 바텀 쪽 웨이브는 두 줄이나 쌓여 있었다. 미드에서 한 번만 더 버티면 팀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도현은 이미 다음 교전의 모양을 봤다. 상대 미드의 점멸은 없었다. 왼쪽 강가 수풀에는 제어 와드가 박혀 있었다. 정글러가 돌아오는 길까지 계산했다.

문제는 손가락이었다.

피해야 할 스킬은 화면에 보였다. 눌러야 할 키도 알았다.

그런데 검지가 반 박자 늦게 내려갔다.

짧은 경직.

그 하나로 모든 계산이 무너졌다.

화면이 회색으로 바뀌고 팀원들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찢었다. 도현은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감각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경기를 볼 때마다 자신이 놓친 반 박자를 먼저 떠올렸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기사 알림이었다.

― 전설의 퇴장. 고스트 강도현, 손목 부상으로 현역 은퇴.

도현은 화면을 껐다.

전설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아직 끝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젖은 아스팔트가 주차장 조명을 흐릿하게 받아냈다. 그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기 전 손목 보호대를 풀었다.

붉게 부은 피부가 드러났다. 손목 안쪽을 누르자 전기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손바닥으로 번졌다. 도현은 입술을 깨물고 조수석 수납함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물도 없이 삼켰다.

“마지막 날까지 이 모양이네.”

혼잣말은 빗소리에 묻혔다.

차는 천천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와이퍼가 앞유리를 쓸어낼 때마다 검은 도로가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도현은 신호 앞에서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 아까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던 사람의 체온도 아직 손끝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더 이상 마우스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오늘 하루를 썼다.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에서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단 한 번만.

손목이 멀쩡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자신에게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전방의 불빛이 빗물 위에서 길게 번졌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잡으려 했다. 그 순간 손목이 비틀리며 날카로운 통증을 토해 냈다. 손끝의 힘이 빠졌다.

눈부신 빛이 시야를 덮쳤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천장이 낮았다.

도현은 눈을 뜬 채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낡은 형광등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천장 모서리에는 오래된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 냄새 대신 눅눅한 빨래 냄새와 컵라면 국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 냄새를 도현은 알고 있었다.

블레이즈 팀 숙소의 냄새였다.

“……뭐야.”

목소리가 이상했다.

쉰 기운이 없었다. 밤샘 연습 뒤에도 물 한 잔 마시면 금방 돌아오던 스물한 살의 목소리였다.

도현은 벌떡 일어났다.

몸이 가볍게 따라왔다.

손목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음에야 깨달았다. 그는 침대 위에서 멈췄다.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엄지.

검지.

중지.

굳어 있던 관절이 하나도 없었다.

도현은 바닥으로 내려와 책상 위 휴대폰을 집었다. 액정 한쪽이 금 간 오래된 기기였다. 화면을 켜자 알림이 줄지어 떠올랐다.

블레이즈 단체 채팅방.

박진성: 형 아직 자냐?

박진성: 오늘 오전 스크림 취소래. 솔랭 돌릴 사람?

도현의 시선이 상단 날짜에서 멈췄다.

6월 14일.

7년 전이었다.

휴대폰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책상 위 달력을 집어 들었다. 종이 위에도 같은 숫자가 찍혀 있었다. 창문에 비친 얼굴은 더 결정적이었다.

눈 밑에 옅은 그늘만 남은 젊은 얼굴.

매일 열두 시간씩 연습해도 손이 망가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때의 강도현.

“회귀했다고?”

입 밖으로 낸 말은 너무 가벼웠다.

도현은 거울 속 자신을 노려봤다.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어서 만들어 낸 환각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 손목도 곧 아파야 했다.

그는 오른손 손바닥을 책상에 짚었다. 천천히 체중을 실었다. 손목을 젖혔다.

과거의 통증이 되살아나는 각도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현은 숨을 멈췄다.

더 세게 손목을 꺾었다. 관절이 부드럽게 밀렸다. 저릿함도, 뜨거운 욱신거림도, 감각이 끊기는 불쾌한 공백도 없었다.

그는 서랍을 열었다. 안쪽에는 오래된 손목 보호대와 파스가 뒹굴고 있었다. 이 시절의 자신은 연습량을 늘리기 위해 가끔 보호대를 찼다. 아픈 건 아니었다. 그저 예방이라고 생각했다.

도현은 보호대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손끝이 차갑게 떨렸다.

기대하면 안 됐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모든 것이 나아졌다고 믿는 건 어리석었다. 그는 수없이 검사를 받고도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들을 믿은 대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확인해야 했다.

도현은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낡은 본체 팬이 거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모니터가 켜지고 익숙한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화면 구석에는 블레이즈의 불꽃 로고가 붙어 있었다.

이곳은 아직 약체 팀의 연습실이었다. 주전 다섯 명은 서로의 장점을 알지 못했다. 프런트는 결과보다 계약서를 먼저 챙겼다. 다음 시즌이 시작되면 그들은 리그 최하위 후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도현은 그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다.

누가 무너질지.

누가 등을 돌릴지.

누가 끝까지 남을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선택을 놓칠지까지.

키보드 앞에 손을 올렸다.

처음에는 한 글자씩 눌렀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갔다. 다음에는 짧은 문장을 빠르게 입력했다. 손끝이 키캡을 때리는 감각이 또렷했다.

도현은 채팅창에 아무 말이나 적었다 지웠다.

손가락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그는 손목을 돌리고 마우스를 쥐었다. 클릭. 클릭. 클릭.

원하는 지점에서 정확히 멈췄다.

마우스를 멀리 밀었다가 손목만으로 되돌렸다. 마지막 경기에서라면 찌르는 통증이 올라왔을 동작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현은 눈을 감았다.

수년 동안 자신을 따라다닌 통증이 사라진 자리가 너무 커서 오히려 무서웠다. 손 안에 빈 공간이 생긴 것 같았다.

그 빈 공간에 가장 먼저 밀려든 것은 기쁨이 아니었다.

억울함이었다.

‘내가 할 수 있었는데.’

사라진 시간 속에서 자신은 분명 더 할 수 있었다. 손목이 멀쩡했다면 더 많은 경기를 이겼을 것이다. 팀원들을 붙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마지막 세트에서 반 박자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현은 입술을 세게 다물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과거를 아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노에 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증명하는 것.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는 것.

그 뒤에야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도현아? 깼어?”

박진성의 목소리였다.

도현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문 너머의 진성은 아직 스무 살이었다. 큰 체격만 믿고 정글을 도는 법을 배웠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한 발 늦었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던 녀석이었다.

미래의 진성은 우승컵을 든 뒤에도 도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그러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형?”

도현은 모니터를 바라봤다. 게임 클라이언트가 천천히 실행되고 있었다. 상단에는 오늘 오전 스크림이 취소됐다는 일정 알림이 떠 있었다.

자유 연습 시간.

아무도 그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시간.

도현은 손목 보호대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가자.”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문을 열고 나온 그는 복도 끝 연습실을 향해 걸었다. 낡은 벽을 따라 붙은 팀 포스터 속 선수들은 모두 어렸다. 그중 누구도 자신들의 이름이 몇 년 뒤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도현만 알고 있었다.

연습실 문 앞에서 그는 잠깐 멈췄다.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은 놀랄 만큼 안정적이었다.

통증 없는 손가락이 천천히 힘을 주었다.

그리고 강도현은 다시 마우스를 잡기 위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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