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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그래프로 갓물주1화

미래 그래프로 갓물주

미래 그래프로 갓물주

프롤로그

빚 독촉 전화는 꼭 밥 먹을 때 울렸다.

한도준은 컵라면 뚜껑 위에 올려 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휴게실 테이블 맞은편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였다. 세제 냄새와 젖은 작업복 냄새가 섞인 좁은 공간에 휴대폰 진동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도준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도준 씨 본인 맞으십니까?”

기계처럼 차분한 여자 목소리였다.

“네.”

“대출 이자 납부 예정일이 삼일 남았습니다. 미납 시 연체 이자가 발생할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도준은 손등에 묻은 먼지를 엄지로 문질렀다.

“알고 있습니다.”

“당일 오후 세 시 전까지 납부 부탁드립니다.”

통화가 끊기자 컵라면에서 김이 빠져나왔다. 국물 표면에 기름막만 남았다.

오늘은 원래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꼭 하루에 하나씩만 사람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도준아. 밥 다 먹었으면 사무실로 와 봐.”

휴게실 문가에 선 조장이 말했다. 도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서류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재계약 미진행 통지서였다.

“이번 분기 물량이 줄었어. 본사에서 인원부터 줄이라고 하네.”

조장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다음 사람의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저 다음 주까지만 하면 되는 겁니까?”

“응. 네가 일을 못해서가 아니야.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

도준은 서류 아래에 적힌 날짜를 봤다. 다음 주 금요일. 대출 납부일보다 이틀 뒤였다.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서 더 빡치네.’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물량을 줄인 본사일까. 사람을 계약직으로만 뽑아 돌리는 회사일까. 아니면 몇 달 전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카드부터 긁어 댄 자신일까.

그는 통지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잔업 남는 사람 없습니까?”

조장이 그를 봤다.

“너 또 할 거야? 어제도 했잖아.”

“할 수 있을 때 해 둬야죠.”

도준은 웃었다. 웃음이 입술에만 걸렸다.

그날 밤, 그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세 시간 더 상자를 옮겼다. 종아리가 굳고 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보낼 병원비만큼은 늦출 수 없었다.

퇴근할 때 확인한 계좌 잔액은 십팔만 이천 원이었다.

그 돈으로 사흘을 버티고 이자도 내고 어머니에게도 보내야 했다.

도준은 빗물이 튀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비닐 우산 아래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액정 한쪽에 금이 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휴대폰은 밝기를 최대로 올려도 화면이 어두웠다.

문득 예전에 개설해 둔 증권 앱이 생각났다. 취업 준비생 때 친구가 만 원짜리 주식이라도 사 보라며 알려 준 뒤로는 한 번도 열지 않은 앱이었다.

잔액은 당연히 0원이었다.

도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여기다 돈 넣을 바엔 라면을 더 사지.”

그가 앱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화면 위에 가느다란 푸른 선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금 간 액정이 번진 줄 알았다. 도준은 휴대폰을 기울였다. 선은 빗물도 손가락도 무시한 채 화면 한가운데에 남아 있었다.

푸른 선은 낯선 종목 이름 아래에서 낮게 기어갔다. 그러더니 어느 지점부터 칼날처럼 솟구쳤다.

세림모션.

가격 그래프 옆에 뜬 날짜는 오늘이었다. 푸른 선의 끝에는 정확히 일 년 뒤의 날짜가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도준은 숨을 멈췄다.

버스가 도착하며 헤드라이트가 빗물을 하얗게 갈랐다. 사람들은 하나둘 버스에 올랐지만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종목을 넘기자 푸른 선도 바뀌었다.

‘태림식품’은 완만하게 내려갔다. ‘성진건설’은 중간에 크게 튀었다가 바닥을 향해 꺾였다. 이름조차 처음 듣는 회사마다 서로 다른 선이 겹쳐졌다.

이유를 알려 주는 문장은 없었다. 매수 버튼도 매도 버튼도 평소와 같았다.

오직 일 년짜리 미래의 움직임만 보였다.

도준은 막차를 놓쳤다.

반지하 원룸으로 돌아온 그는 젖은 양말도 벗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은 뒤 종목 목록을 한참 넘겼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자 눈이 따갑게 아팠다.

그래프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종목 하나를 열면 오늘부터 1년 뒤까지만 보였다. 화면을 더 넘겨도 선은 늘 같은 날짜에서 끊겼다. 뉴스 탭으로 들어가면 그래프는 사라졌다. 차트 탭으로 돌아오면 다시 떠올랐다.

‘환각이면 너무 성실한데.’

도준은 마른세수를 했다.

세림모션은 이름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물류센터에서 납품받던 전동 카트 바퀴에 붙은 광고 스티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작은 모터 부품 회사라는 정도만 기억났다.

미래 그래프에서 세림모션은 내일 오전에 한 번 급하게 치솟았다. 그 뒤에는 한동안 출렁이다가 다시 아래로 밀렸다.

그는 종이에 시간을 적었다. 오전 열 시 전후. 급등 폭은 대략 십 퍼센트 이상.

적고 나서도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전 재산을 넣으면 어떨까.

생각은 빠르고 달콤했다. 열여덟만 원이 이십만 원이 되고 이십만 원이 이백만 원이 되는 상상은 공짜였다.

그러나 도준은 통장 앱을 열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서 찍어 보낸 창밖 사진이 대화창 위에 남아 있었다. ‘비 온다. 너도 우산 챙겨.’라는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그는 팔만 원을 송금했다.

메모에는 짧게 ‘생활비’라고 적었다.

남은 돈 중 십만 원만 증권 계좌로 옮겼다. 수수료를 빼고 세림모션 한 주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진짜면 한 주도 많다.”

혼잣말은 자신을 말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다음 날, 도준은 출근 대신 원룸에서 장 시작을 기다렸다.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고 일을 그만둘 형편은 아니었지만 오전에는 병원에 갈 핑계를 댔다. 눈앞의 선이 거짓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상자 하나도 제대로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아홉 시, 세림모션이 열렸다.

시초가는 전날보다 낮았다.

도준의 계좌는 바로 파란색이 됐다. 손실률 마이너스 1.8퍼센트. 그래프 속 푸른 선은 열 시를 향해 올라가는데 현실의 숫자는 반대로 미끄러졌다.

그는 입안이 바싹 말랐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매도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팔면 천 원 남짓 잃는다. 밥 한 끼 값이었다.

하지만 그래프의 선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시각이 지나갈수록 선 위로 작은 빛이 움직였다.

현실의 가격이 푸른 선을 따라잡고 있었다.

아홉 시 사십 분, 손실은 더 커졌다. 도준은 창문도 없는 방에서 땀이 나는 걸 느꼈다. 고작 한 주였다. 그런데 그 한 주에 자신의 남은 선택지가 매달린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아홉 시 오십오 분.

갑자기 호가창의 매도 물량이 빠졌다.

“뭐야?”

거래량 숫자가 미친 듯이 바뀌었다. 누군가가 한꺼번에 매수 주문을 집어넣은 듯 가격이 한 칸씩 튀었다. 손실률이 0이 됐다. 이어서 플러스 2퍼센트, 4퍼센트.

도준은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차트 속 푸른 선은 열 시 십오 분 부근에서 꼭짓점을 만들고 있었다.

열 시가 지나자 세림모션은 더 가파르게 올랐다. 커뮤니티에는 무슨 계약 공시가 나온다는 소문이 올라왔다. 도준은 글을 읽지 않았다. 그래프는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도 이유에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

열 시 십이 분.

푸른 선의 기울기가 아주 조금 눕기 시작했다.

현실의 호가창에서는 빨간 숫자가 더 높이 뛰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지금 팔면 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수익이 더 날 수도 있었다.

욕심이 목소리를 냈다.

‘한 번만 더.’

도준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믿는 것은 뉴스도 감도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선이었다.

그는 매도 버튼을 눌렀다.

주문이 체결된 직후 가격은 두 칸 더 올랐다.

도준은 본능적으로 욕설을 삼켰다. 하지만 1분 뒤 커다란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주가가 꺾였다. 파란 촛대가 길게 내려왔다.

그는 한참 뒤에야 숨을 내쉬었다.

수익금은 만 원이 조금 넘었다. 부자가 되기에는 우스운 돈이었다. 연체 이자를 막기에도 모자랐다.

그러나 그 만 원은 어젯밤의 푸른 선이 현실이라는 증거였다.

도준은 거래 내역을 캡처했다. 손가락 끝이 아직도 떨렸다.

“진짜였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바로 종목 목록을 열었다. 눈앞에는 수백 개의 이름과 수백 개의 미래가 있었다. 완만하게 가라앉는 선, 잠깐 솟았다가 부서지는 선, 바닥을 오래 기다가 조금씩 올라가는 선.

그중 하나에서 손이 멈췄다.

아진전자.

누구나 아는 대형 전자기업이었다. 도준도 편의점 진열대의 충전기와 집주인 거실의 텔레비전에서 그 이름을 봤다. 지금 차트는 지루할 정도로 평평했다.

하지만 미래 그래프는 달랐다.

한 달 뒤, 낮은 선 하나가 갑자기 수직으로 치솟았다.

그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일 년 뒤의 끝점은 세림모션의 고점보다 훨씬 높았다. 도준은 화면을 확대했다가 다시 축소했다. 몇 번을 해도 선의 모양은 같았다.

그는 계산기를 켰다. 현재 가격으로 주식을 한 주 사는 데도 며칠치 일당이 필요했다. 십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수량은 미래가 아무리 올라도 인생을 바꿀 만큼 많지 않았다.

대출 납부일까지는 사흘.

아진전자의 그래프가 꺾이기 시작하는 날까지는 한 달.

도준은 두 날짜를 번갈아 보았다.

어제까지 그에게 미래란 카드 결제일 다음에 오는 독촉 문자뿐이었다.

이제는 달랐다.

한도준은 아진전자의 수직 상승선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 기회를 살 돈을 만들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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