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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1화

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

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

시놉시스

사랑을 얻기 위해 공작가를 살려 낸 아리아드네는 독약 한 잔과 누명으로 생을 마쳤다. 결혼 초기로 돌아온 그녀는 이번만큼은 남편의 인정보다 자신의 자유를 먼저 택한다.

1화: 이혼 서류를 받으시죠

은잔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맑은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힌 잔이 옆으로 굴렀다. 아리아드네는 목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까지 달콤했던 차가 혀끝에서 쇠 냄새로 변해 있었다.

독이었다.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손끝은 차가운 대리석을 긁었지만 몸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허둥대는 발소리가 들렸다.

"공작님께 말씀드렸느냐."

겨우 내뱉은 질문에 하녀가 울먹였다.

"전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는 손님을 맞고 계셔서……"

손님.

그 한마디가 독보다 늦게 심장을 파고들었다.

아리아드네는 눈을 감았다. 장부를 붙든 채 밤을 지새운 날들이 떠올랐다. 펠른 공작가의 빚을 막기 위해 친정에 고개를 숙였던 날도 떠올랐다. 카일론의 이름으로 계약을 따내고도 감사 한마디 듣지 못했던 시간까지.

그 모든 끝에 남은 것은 차가운 바닥과 빈 방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찻잔 가장자리에 묻은 옅은 붉은 얼룩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리아드네가 눈을 떴다.

천장에 그려진 은빛 덩굴무늬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익숙한 침실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기다리던 방의 어두운 천장이 아니었다.

창문 틈으로 겨울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부인?"

젊은 목소리에 아리아드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침대 곁에는 마리가 서 있었다. 전생에는 그녀가 죽기 몇 달 전 혼인을 이유로 저택을 떠났던 시녀였다. 아직 뺨에 솜털이 남은 얼굴이 걱정으로 굳어 있었다.

"악몽을 꾸셨어요? 새벽부터 계속 앓는 소리를 내셨어요."

아리아드네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가느다란 은빛 팔찌가 손목뼈 위에서 빛났다. 카일론이 결혼식 날 무표정하게 채워 준 물건이었다. 사랑의 증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차갑고 단정한 장신구.

그녀는 팔찌의 안쪽을 손톱으로 더듬었다. 새겨진 날짜가 손끝에 닿았다.

제국력 712년 12월 3일.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오늘이 며칠이라고 했지?"

"12월 3일이요. 아침 식사 전에 공작님께서 부인과 말씀을 나누겠다고 하셨습니다."

결혼한 지 석 달째 되는 겨울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세 해 전. 펠른 공작가의 금고가 아직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상인들에게 돌아갈 이자와 차입금의 원금은 열흘 뒤 한꺼번에 닥쳐온다.

전생의 그녀는 그때부터 밤낮으로 뛰었다. 자신의 지참금과 친정에서 끌어온 신용으로 구멍을 막았다. 카일론은 공작가의 위신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결과만 보았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리아드네가 이불을 걷어 냈다.

"서재 열쇠를 가져와. 그리고 오늘은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이지 마."

"공작님도요?"

마리의 눈이 커졌다.

"특히 공작님도."

마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아리아드네는 세면대의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여자는 아직 지쳐 있지 않았다. 눈가에 깊게 밴 그늘도 없었다. 하지만 붉은 자줏빛 눈동자만은 독이 몸을 태우던 밤의 공포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그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나를 버리지 않아."

낮게 속삭인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맹세도 아니었다.

서재는 침실보다 차가웠다. 아리아드네는 벽난로에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가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서류 묶음 사이로 결혼 계약서와 신전 인장이 찍힌 이혼 양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결혼 전 백작은 혹시 모를 분쟁을 대비한다며 이혼 양식을 넣어 두었다. 딸의 안전이 아니라 펠른 공작가와의 거래가 틀어졌을 때를 대비한 일이었다.

그때의 아리아드네는 그 서류를 불길하다 여기며 덮어 두었다.

이제는 달랐다.

그녀는 계약서의 제칠 조항을 펼쳤다. 배우자가 혼인 전 고지하지 않은 채무를 상대의 지참금으로 변제할 수 없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지는 조항에는 한쪽의 개인 명의 수익과 혼인 전 보유 자산은 이혼 때 각자에게 귀속된다고 적혀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종이를 새로 꺼냈다.

위자료는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헤스티아 백작가가 지급한 지참금과 자신이 개인 명의로 운용한 수익은 모두 돌려받는다. 펠른 공작가의 차입금과 보증채무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고요한 서재에 울렸다.

아리아드네 헤스티아.

오래 잊고 있던 성을 적자 가슴 어딘가가 시원하게 열렸다. 공작부인이라는 호칭은 그녀에게 왕관이 아니라 목줄이었다. 그것을 벗는 일에 카일론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았다.

"부인."

문가에서 마리가 조심스레 불렀다.

"정말로 이 서류를 내실 건가요?"

아리아드네는 마주 보지 않은 채 잉크를 말렸다.

"그래."

"공작님께서 화를 내실 거예요."

"그분의 화는 늘 내 몫이었지. 오늘부터는 아니야."

마리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뒤 복도에서 단정한 구두 소리가 멈췄다.

노크는 없었다.

문이 열리며 카일론 펠른이 들어왔다. 검은 제복의 은장식이 아침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단정하게 넘긴 흑발과 흠잡을 곳 없는 얼굴. 사교계의 여자들이 그를 볼 때마다 숨을 삼킨다는 이유를 아리아드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카일론의 검은 눈은 언제나 닫힌 문이었다.

"침실에 없다기에 왔다."

그가 서류와 펜을 힐끗 보았다.

"몸이 좋지 않다 들었는데."

"이제 괜찮아요."

"그렇다면 오늘 저녁 로렌스 영애를 맞는 자리에 나와라. 사교계 예절을 익히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차가운 차 향이 코끝을 스쳤다.

아리아드네는 펜을 내려놓았다. 전생의 마지막 밤에도 카일론은 손님을 맞고 있었다. 누가 그 방에 있었는지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제가 왜 필요하죠?"

카일론이 미간을 좁혔다.

"공작부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 답은 너무도 당연해서 웃음이 날 뻔했다. 그녀가 해야 할 일. 카일론의 세계에서 아리아드네는 언제나 필요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책상 위의 서류를 들었다.

"그 전에 공작님께서 하실 일이 있어요."

카일론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서류를 그 손 위에 얹지 않았다. 한 걸음 다가가 그의 가슴 앞으로 종이를 던졌다.

얇은 종이가 검은 제복을 스치고 바닥에 흩어졌다.

"우리 이혼해요. 카일론 펠른."

마리의 숨이 멎는 소리가 들렸다.

카일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바닥의 서류에서 아리아드네에게로 천천히 올라왔다.

"방금 뭐라고 했지?"

"들으신 그대로예요. 신전에 제출할 이혼 서류입니다."

"열이 아직 남았나 보군."

"아니요. 오히려 이제야 제정신이에요."

카일론의 표정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원래도 차가운 남자였지만 그 순간의 얼굴은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이의 것이었다.

"네가 무엇을 버리겠다는 건지 알고는 있나? 펠른 공작부인이라는 자리는 아무나 얻지 못한다."

"그러니 돌려드리겠어요. 저에게는 너무 비싼 목줄이었으니까."

"아리아드네."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낮게 불렀다. 경고였다.

과거의 아리아드네라면 그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그의 눈빛에 사랑 비슷한 것이 담길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독은 사람을 죽이기만 하지 않았다. 때로는 오래 붙들고 있던 환상을 태워 버렸다.

"공작님은 제게 사랑을 준 적도 없고 존중을 준 적도 없어요. 그런데 왜 제 노동과 제 돈과 제 침묵만은 당연하게 여기시죠?"

카일론의 턱선이 굳었다.

"공작가를 위해 한 일이면 네가 할 일을 한 것뿐이다."

"맞아요. 그래서 이제는 제 일을 하려고요."

아리아드네가 바닥의 서류를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도장을 찍으세요."

카일론은 서류를 낚아채 마지막 장을 훑었다. 그의 손가락이 개인 수익 귀속 조항에서 멈췄다.

"위자료도 받지 않겠다면서 내 빚에서 빠지겠다고?"

"공작가의 빚은 제 빚이 아니니까요."

"공작부인이 그 정도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건가?"

"공작부인도 아니게 될 사람이 왜 책임을 지죠?"

카일론의 눈에 처음으로 당혹이 번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는 곧 서류를 두 손으로 잡았다.

찢으려는 동작이었다.

아리아드네는 망설이지 않았다.

"찢으세요."

카일론의 시선이 날카롭게 돌아왔다.

"대신 지하 금고에 있는 붉은 장부는 제가 신전에 제출하겠습니다."

손끝이 멈췄다.

마리는 붉은 장부가 무엇인지 몰랐다. 카일론 역시 그 장부를 직접 본 적이 없을 터였다. 그러나 공작가의 수석 회계사가 누구의 지시로 그 장부를 숨겼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그의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열흘 뒤가 상환일이에요. 북부 운송조합과 벨리온 은행에 갚아야 할 원금까지 합치면 삼만 골드가 넘죠.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공작님은 정말 모르시나요?"

카일론의 얼굴에서 오만이 한 겹 벗겨졌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아리아드네는 서류의 가장자리를 바로잡았다. 손끝은 더는 떨리지 않았다.

"내일 아침까지 선택하세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붉은 장부를 펼쳐 보거나."

"나를 협박하는 건가?"

"아니요. 공작님께서 지금까지 몰랐던 대가를 알려 드리는 거예요."

그녀는 마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을 보내 드려."

마리가 놀란 얼굴로 카일론을 보았다. 카일론의 검은 눈이 아리아드네에게 박혔다. 분노와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뒤엉킨 눈이었다.

그 시선은 더 이상 그녀를 붙들지 못했다.

아리아드네는 창가로 걸어가 겨울 정원을 내려다봤다. 얼어붙은 분수 위로 햇빛이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세 해 전의 오늘은 그녀가 공작가의 빚을 처음 대신 짊어진 날이었다.

이번에는 그 빚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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