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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돌아왔더니 아기 헌터? (부제: 성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입니다)1화

지구로 돌아왔더니 아기 헌터? ― 성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입니다

지구로 돌아왔더니 아기 헌터?

1화: 귀환했는데 갓난아기?

시놉시스

아르카디아의 마지막 군주를 쓰러뜨린 강무진은 1,000년 만에 지구로 돌아갈 기회를 붙잡는다. 그러나 차원의 틈은 그에게 전혀 다른 몸을 내놓는다.


마왕성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검붉은 불꽃이 쏟아지는 폐허 한가운데서 강무진은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손바닥의 살은 오래전에 터졌고 갑옷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래도 검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앞에 선 마지막 군주가 피 묻은 이를 드러냈다.

“인간 주제에 여기까지 왔구나.”

“천 년이나 걸렸지.”

무진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천 년.

처음 아르카디아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그는 귀환할 방법부터 찾았다. 하지만 마을 하나가 불타고 동료 하나가 쓰러질 때마다 돌아갈 길은 뒤로 밀렸다.

살아남기 위해 검을 들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마법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전쟁을 끝낼 사람도 자신뿐이었다.

마왕의 손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검은 번개가 쏟아지며 무진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통증이 팔을 타고 번졌다.

무진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끝내자.”

그가 검을 바닥에 박았다.

아홉 겹의 마법진이 무너진 성 바닥을 따라 번졌다. 불과 바람, 대지와 번개의 잔향이 한 점으로 모였다. 남은 마력 전부를 태우는 주문이었다.

마왕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네놈도 죽는다!”

“그 전에 네가 먼저 죽어.”

무진이 검을 뽑았다.

빛이 지나갔다.

거대한 몸이 두 동강 나며 마왕성 전체가 울었다. 군주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어둠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진은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검은 재가 바람에 흩어졌다.

마침내 전장이 조용해졌다.

무진은 무너진 왕좌를 한참 바라봤다. 기뻐할 힘도 없었다. 다만 귀에 익은 파도 소리와 지겨울 만큼 익숙한 도시의 불빛이 떠올랐다.

서울.

고향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뜨거운 국밥부터 먹을 생각이었다. 고기 듬뿍 든 것으로. 아무 경보도 없는 창가에서 그릇을 비우고 싶었다.

무진은 피 묻은 손으로 낡은 목걸이를 꺼냈다. 지구의 좌표를 새긴 귀환석이었다. 수백 번 실패한 연구 끝에 겨우 완성한 단 한 번짜리 물건.

“마력은 바닥이고 몸도 성한 데가 없지만.”

그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지.”

귀환석이 푸른 빛을 토해 냈다.

하지만 빛이 문을 만들기도 전에 마왕의 재 속에서 검은 손이 뻗어 나왔다.

무진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손은 사라졌으나 귀환진 가장자리에 검은 금이 갔다.

차원의 틈이 그의 몸을 삼켰다.


차갑다.

그것이 강무진의 첫 생각이었다.

아르카디아의 겨울보다 훨씬 차가운 바닥이 등을 눌렀다. 축축한 흙 냄새와 피비린내, 낯선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진은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위로 깨진 콘크리트 천장이 보였다. 천장 틈에는 보랏빛 안개가 피어올랐다. 어딘가에서 경보음이 짧게 울렸다.

여긴 지구다.

마력의 결이 달랐다. 얕고 거칠지만 분명히 지구의 공기였다.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진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손에 힘을 줬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손이 움직이기는 했다. 그의 시야 끝에서 조그만 주먹 하나가 파들파들 떨렸다. 손가락은 짧고 통통했다. 검자루를 쥐기는커녕 숟가락도 제대로 잡지 못할 모양이었다.

무진은 한동안 그 손을 노려봤다.

설마.

다리를 움직여 보려 했으나 담요도 아닌 얇은 천에 싸인 몸은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목은 가누어지지 않았고 배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절박한 소리가 났다.

꼬르륵.

그는 전생에 굶주린 병사들을 수도 없이 봤다. 하지만 자신의 위장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명령을 내리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으, 응….”

입에서 나온 소리를 들은 무진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혀를 굴려도 주문은커녕 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아….”

그 다음에는 더 참담한 소리가 터졌다.

“응애!”

침묵한 폐허에 아기 울음이 울렸다.

강무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마왕을 베고 돌아왔더니 갓난아기라니. 이건 저주였다. 아주 치졸한 종류의 저주.

그때였다.

사각.

돌 조각을 밟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무진의 감각이 즉시 깨어났다. 비록 몸은 종잇장 같아도 전장에서 살아남은 본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보랏빛 안개 너머에서 짐승의 숨소리가 들렸다.

낮고 거친 울음.

균열 늑대였다.

무진은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벽, 깨진 마정석 등불, 멀리 보이는 철문. 철문 위에는 익숙하지 않은 글자가 번쩍였다.

[E급 게이트 임시 통제 구역]

게이트.

지구에 던전이 생겼다는 말을 아르카디아의 차원 상인들에게 들은 적은 있었다. 설마 귀환하자마자 그 안에 떨어질 줄은 몰랐다.

늑대 한 마리가 안개를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갈비뼈가 드러난 검은 몸에 붉은 눈. 고작 하급 마수였다.

평소라면 손가락 하나로 태워 버릴 상대였다.

무진은 속으로 주문을 짰다.

불씨 하나면 충분하다. 아니, 바람 칼날 하나면 된다.

그는 심장 부근의 마력핵을 끌어올렸다.

텅.

아무것도 없었다.

귀환진이 남은 마력을 죄다 먹어 치운 모양이었다.

늑대가 이빨을 드러냈다.

무진은 울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울음이 나올 상황이라 더 싫었다.

그는 목에 힘을 줬다.

“응애애애!”

이번 울음은 분노에 가까웠다.

늑대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곧 낮게 포효하며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흰 빛이 늑대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콰앙!

짐승은 벽에 처박혀 구르더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여기야! 마력 반응은 약하지만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났어!”

여자의 목소리였다.

무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낯선 이를 만날 때는 먼저 기척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누운 채 눈꺼풀 하나밖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발걸음이 가까워졌다.

흰빛을 두른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짧게 묶은 머리와 피로에 젖은 얼굴. 손등에는 막 붕대를 감은 듯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무진을 보자마자 멈췄다.

“아기?”

뒤따라온 남자가 헛숨을 삼켰다.

“여기 왜 아기가 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여자는 주변을 훑었다. 늑대가 다시 일어서려 하자 그녀의 손끝에서 부드러운 빛이 퍼졌다. 빛은 무진이 아니라 늑대에게 달려들던 남자의 찢어진 팔부터 감쌌다.

“재민 씨. 팔 먼저 보여 줘요.”

“연희 씨가 더 다쳤잖아요.”

“난 괜찮아요. 아기부터.”

연희.

무진은 그 이름을 마음속에 새겼다.

연희는 망설이지 않고 무진을 들어 올렸다. 서투르지 않은 손이었다. 목을 받치고 등을 감싸며 차가운 바닥에서 완전히 떼어 냈다.

순간 온기가 밀려왔다.

무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누군가에게 안기는 일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는 언제나 앞에서 막는 쪽이었다.

그런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작은 손이 연희의 전투복을 잡으려다 허공만 긁었다.

연희가 그 손을 보고 조심스레 웃었다.

“괜찮아. 이제 발견했어.”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가슴에 남았다.

무진은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연희의 가슴께에서 들리는 빠른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 사람도 무섭다.

그런데도 자신을 두고 가지 않았다.


게이트 내부가 크게 흔들렸다. 천장 균열 사이로 보랏빛 먼지가 비처럼 떨어졌다.

“붕괴 전조입니다!”

통로 끝에서 길드원 하나가 외쳤다.

연희는 아기를 품은 팔을 더 단단히 감쌌다. 다른 손에는 짧은 지팡이를 들었다.

“출구까지 뛰어요. 재민 씨는 앞을 봐줘요.”

“아기는요?”

“내가 데려가요.”

“신원도 모르는데요.”

연희의 대답은 단호했다.

“신원은 나가서 찾으면 돼요. 지금 이 아이를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무진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떴다.

마왕성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했다. 누구를 살릴지, 어느 성문을 포기할지, 어떤 병사를 후퇴시킬지.

그 선택들에는 늘 계산이 있었다.

연희의 말에는 계산이 없었다.

그저 아기 하나를 두고 갈 수 없다는 마음뿐이었다.

천장이 갈라지며 돌덩이가 떨어졌다. 연희는 무진을 품에 감싼 채 몸을 틀었다. 돌은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진은 이를 악물었다.

지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은 작고 힘없는 꼼지락거림뿐이었다.

연희는 그 움직임을 느꼈는지 품 안을 내려다봤다.

“무서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강무진이다. 마왕을 베고 군주들을 끝장낸 자다.

그러나 배가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응… 애.”

연희의 눈가가 휘었다.

“배고프구나. 밖에 나가면 바로 먹여 줄게.”

그녀는 달렸다.

보랏빛 균열을 가르며 게이트 출구가 가까워졌다. 무진은 흔들리는 품 안에서 멀어지는 폐허를 보았다.

서울의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게이트 밖에는 낯선 고층 빌딩과 경광등이 있었다. 그 빛 사이로 연희는 한 번도 무진을 내려놓지 않았다.

“당분간은 우리 길드 숙소로 가자.”

그녀가 낮게 말했다.

“너 혼자 두지 않을게.”

무진은 겨우 움직이는 손으로 그녀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이건 항복이 아니다.

정확히는 임시 동맹이다.

그렇게 정리하자 조금 덜 억울했다.

연희가 미소 지었다.

“그래. 같이 가자, 아가.”

무진의 시야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별빛 하나가 켜졌다.

별빛은 한 번 깜빡인 뒤 낯선 글자 같은 모양으로 흩어졌다.

처음 보는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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