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95화: 관리자 권한 심사, 첫 번째 질문
금빛 문양이 흑비취색 격자 핵의 표면을 가로지르자 대공동의 공기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지맥을 따라 흐르던 초록빛 파문이 한 박자 늦게 흔들렸다. 숨을 되찾은 봉인석이 아니라 낯선 누군가가 숨의 리듬을 재고 있는 것 같았다.
"심사 개시라니 무슨 뜻이지?"
반스 장군이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금빛 선은 적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대공동 바닥의 지맥 문양을 따라 둥근 고리를 만들었다.
우우우웅—
고리 바깥의 기사들이 한 걸음씩 밀려났다. 투명한 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반스 장군은 검으로 장벽을 두드려 보았지만 검날은 잔물결만 남기고 튕겨 나왔다.
"밖으로 나갈 수는 있어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현 님과 핵 주변 인원만 남았어요."
하나가 프리즘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현은 호흡층의 수치를 확인했다. 누출률은 여전히 제로였다. 그런데 세계수 리간드 채널의 개방률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하나. 문구 전부 읽어 봐. 해석식은 원문 순서대로."
"예. ‘수리자 개체의 반응 제어 구조를 대조한다. 외부 오염원의 유입과 내부 재앙원의 유출을 판단한다. 첫 번째 질문을 제시한다.’"
문양 중앙에서 금빛 글자가 떠올랐다.
『봉인의 안전을 위해 외부 마나 유입을 영구 차단하라.』
엘레나가 숨을 들이켰다.
"채널이 닫히면 뿌리망은 다시 말라가요. 지금도 유량이 떨어지고 있어요."
프리즘의 녹색 선이 96에서 88로 내려갔다. 같은 순간 금빛 문양의 끝이 실처럼 가늘어져 호흡층으로 뻗었다.
헤르만 교수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써 있나?"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글자 아래에 새 문장이 타올랐다.
『거부는 비인가 수리자의 개입으로 판정한다. 봉인 교정 절차를 시행한다.』
대공동 깊은 곳에서 낮은 진동이 일었다. 금빛 실이 호흡층을 향해 가느다란 침처럼 곧게 뻗었다.
"교정은 우리 수리를 되돌린다는 뜻이군요."
우현이 낮게 말했다.
"그럼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장벽 밖의 반스 장군이 즉시 대답했다. 그는 지맥 문양의 어두워진 부분을 바라보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당장 터질 포탄을 먼저 막습니다. 외곽 지맥이 약해져도 세계가 터지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선 봉인을 지키고 밖의 마나는 나중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현은 핵 표면을 가리켰다.
"이 봉인은 지맥에서 떨어져 존재할 수 없어요. 외부 마나를 영구 차단하면 내부 압력은 잠깐 안정됩니다. 하지만 요정림과 주변 지맥이 죽고 그 빈자리를 외부의 원소 마나가 파고듭니다. 결국 봉인도 다시 불안정해집니다."
"그건 예측 아닙니까?"
"지금 수치가 증거입니다."
우현은 하나의 프리즘을 돌렸다. 채널 개방률이 내려갈수록 외곽 지맥의 파형이 찌그러졌다. 안정된 선이었던 녹색 흐름은 끝으로 갈수록 가늘고 불규칙하게 갈라졌다.
"이건 성벽이 아닙니다. 폐쇄 용기예요. 용기 안의 압력만 본다면 완전히 막는 답이 맞겠죠. 하지만 이곳은 세계수와 지맥이 연결된 순환계입니다. 한쪽 밸브를 잠그면 다른 쪽이 먼저 무너집니다."
아리아가 창백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었다.
"우현 말이 맞아요. 금빛 술식이 채널을 닫을 때마다 뿌리망의 맥박이 끊겨요."
금빛 침 하나가 교환막 위에 닿았다.
치직!
비취색 채널 하나가 검게 식었다. 대공동 천장에 매달린 뿌리 끝이 동시에 움츠러들었다.
"유량 81%!"
엘레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현은 시약 카트가 아닌 봉인석으로 다가갔다. 새 재료는 없었다. 남은 것은 그들이 만든 8나노미터의 막과 그 막이 이미 보여 준 반응뿐이었다.
"심사는 답을 받아 적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봉인이 원하는 건 누가 명령을 잘 따르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이 시스템을 어떤 원리로 고칠지 보는 겁니다."
헤르만 교수가 눈을 좁혔다.
"그래서 촉매 구조를 대조한다고 했던 건가."
"촉매는 반응물을 대신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응이 지나갈 경로를 바꿉니다. 이 봉인도 같은 방식으로 지켜야 합니다."
우현은 하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석식 입력창을 열어. 명령에 답하지 말고 현재 공정값을 연결한다."
"그게 가능할까요?"
"인증 문구가 반응 제어 구조를 읽고 있다면 가능해. 이 술식이 원하는 답도 말이 아니라 작동하는 조건일 거야."
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프리즘의 측면을 눌렀다. 금빛 문양 사이에 손바닥만 한 빈 칸이 열렸다. 빈 칸은 글을 적는 종이가 아니었다. 호흡층에서 흐르는 마나의 파형을 그대로 빨아들이며 수치마다 다른 빛을 냈다.
금빛 침이 두 번째 채널을 지웠다. 유량은 74까지 내려갔다.
아리아가 우현의 앞에 섰다.
"시간을 벌게요. 얼어붙은 채널 주변만 냉각해서 술식의 진행을 늦추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요."
"당신도 그러고 있잖아요."
아리아의 냉기가 금빛 침 주변에 얇은 서리를 피웠다. 침의 이동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그녀의 손등에는 다시 성에가 내려앉았지만 지팡이를 쥔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우현은 세계수 리간드 채널에 손을 댔다. 손끝을 타고 정상 지맥의 초록빛이 흐르고 있었다.
"엘레나. 정상 진동수만 분리해 보내 줘. 외부 원소 마나는 차단층에서 튕겨 내고 지맥 마나만 통과한다는 걸 보여야 해."
"할 수 있어요."
엘레나가 생체 안테나를 끌어안았다. 잎사귀 프리즘에서 퍼진 초록빛 파문이 막 위를 쓸었다.
"하나. 공석철 층의 반발 값과 리간드 채널의 투과 값을 같은 화면에 올려."
"올렸습니다!"
두 개의 그래프가 금빛 문양 앞에 떠올랐다. 검은 선은 원소 마나가 다가올 때 급격히 솟았다. 초록 선은 정상 지맥 마나가 들어올 때만 부드럽게 열렸다.
우현은 그 그래프를 인증 문구의 중앙에 밀어 넣었다.
"답은 영구 차단이 아닙니다. 위해 인자는 차단하고 순환 인자는 통과시킨다. 봉인의 목적이 재앙을 가두는 것이라면 세계를 굶기는 건 목적 달성이 아니에요."
금빛 문양이 크게 흔들렸다.
『명령 불이행. 재평가.』
장벽 밖의 반스 장군이 이를 악물었다.
"이게 통하겠나?"
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금빛 침이 막 위에서 멈췄다. 침 끝이 공석철 차단층에 닿자 검은 그래프가 치솟았다. 이어 세계수 리간드 채널에는 초록 파형이 흐르며 열렸다.
금빛 문양은 두 반응을 차례로 훑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막의 표면을 눌러 보고 통로 안으로 빛을 흘려 보내는 듯했다.
『외부 마나 분류 성공. 내부 재앙원 역류 차단 확인. 순환계 안정도 확인.』
유량이 74에서 79로 올랐다.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프리즘을 붙잡았다.
"심사식이 수치를 읽고 있어요. 촉매 구조 일치율도 변합니다. 99.997%에서 99.998%로!"
헤르만 교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우현을 보았다.
"네 촉매 구조가 고대의 설계와 닮았다는 것은 물질의 형태가 아니라…"
"반응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우현이 말을 이었다.
"무조건 막거나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조건을 나누고 경로를 설계하는 방식. 그들이 남긴 장치도 그 원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금빛 침은 더 이상 채널을 지우지 못했다. 오히려 막의 검은 차단층에서 튕겨 나온 빛이 문양을 따라 흘러 빈 입력창을 채웠다.
『명령의 목적과 수리 공정의 목적이 일치한다.』
글자가 한 줄씩 사라졌다. 닫혀 가던 채널은 다시 열렸고 대공동 바닥의 지맥 문양이 안정된 호흡처럼 밝아졌다.
『첫 번째 질문 통과. 수리자 개체를 조건부 관리자 후보로 등록한다.』
장벽이 녹아내리자 기사들 사이에서 짧은 환호가 터졌다. 반스 장군은 검을 내리며 우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장에서 배운 답만 고집했군. 내 판단보다 한 걸음 멀리 봤다."
"장군님 판단이 틀린 게 아닙니다."
우현은 다시 밝아진 지맥선을 보았다.
"당장 터지는 걸 막는 데는 가장 빠른 답이었어요. 다만 이 봉인은 오늘만 버티면 되는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마지막 문장이 남았다.
『두 번째 질문을 위해 기록 보관층의 문을 개방한다. 결손된 촉매 항목을 확인하라.』
흑비취색 격자 핵의 정면이 조용히 갈라졌다. 안쪽에는 빛도 어둠도 아닌 깊은 회색의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 가장자리에는 지금까지 본 금빛 문자와 다른 은빛 문양이 맥박치고 있었다.
하나는 해석식을 멈추지 못한 채 속삭였다.
"통과 허용 인원… 한 명입니다. 우현 님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결손된 촉매라는 항목은 해석이 안 돼요. 물질명도 사람 이름도 아닙니다."
아리아가 통로를 바라보았다. 아직 힘이 돌아오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혼자 들어가겠다고 하지 마요. 적어도 밖에서 수치를 계속 읽을게요."
"그렇게 해요."
우현은 열린 통로를 바라보았다.
봉인석은 그를 살펴본 뒤에야 겨우 첫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 안에 있는 기록은 지금까지의 수리보다 더 오래된 문제를 품고 있을 터였다.
"들어가 보죠."
그의 대답과 함께 회색 통로 깊은 곳에서 두 번째 금빛 문양이 천천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