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세상에서 움직이는 무적 캠핑카

1화: 시동이 걸리는 밤
전시장 안에 갇힌 지 열세 분째였다.
윤도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계기판 아래를 다시 열었다. 바깥에서는 유리벽을 긁는 소리와 이마를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모닝스타의 실내등이 깜빡였다.
“배터리 전압은 살아 있어.”
도하는 멀티미터의 붉은 침을 보조 배터리 단자에 댔다. 11.8볼트. 시동을 걸 수는 있지만 전시장 안의 모든 감염자를 깨울 것이다.
계기판 중앙에 청색 점 하나가 떠올랐다.
[운전자 생체 인증을 시작합니다.]
“시작하지 마. 내가 확인할 때까지 대기.”
[외부 압력 상승. 예상 유리 파손까지 04분 12초.]
“예상은 됐고.”
도하는 보닛을 열었다. 냉각수는 절반 아래였고 연료 게이지는 네 칸 중 한 칸 반이었다. 생수는 주방 아래에 1.5리터짜리 두 병이 전부였다.
정문은 내려온 셔터와 철제 전시 구조물에 걸려 있었다. 후문 쪽에는 캠핑카 운송 트레일러가 옆으로 넘어져 있었고 바퀴와 안내판이 출입구를 엉켜 막았다.
출구는 있으나 길은 없었다.
도하는 정비용 외부 해치로 몸을 밀어 넣었다. 차체 하부의 배선과 연료 라인을 손으로 확인했다. 새는 곳은 없었다. 왼쪽 뒤 바퀴의 긁힘도 주행에는 버틸 만했다.
[차량 외벽 손상도 7%. 기본 방탄 기능의 설계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얼마나 부족한데?”
[현재 설계 포인트 3. 폐금속 환산 시 5까지 확보 가능합니다. 최소 방탄 셔터 해금에는 8이 필요합니다.]
도하는 부서진 전시용 난간을 바라보았다. 철제였다. 다만 밖으로 나가 분리하려면 감염자들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후문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감염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잠시 뒤 다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야!”
도하는 외부 카메라를 켰다. 콘크리트 기둥 뒤에 여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단발머리는 피와 먼지로 엉겨 붙었고 왼팔은 천 조각으로 감겨 있었다. 등에는 구급 배낭이 매달려 있었다.
도하는 잠금장치에 손을 댔다가 멈췄다. 문을 열면 여자가 들어온다. 감염자도 따라온다.
[외부 체온은 측정할 수 없습니다. 움직임은 인간형이며 출혈량은 중간 수준입니다.]
“그걸로 충분해.”
도하는 운전석으로 돌아가 시동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운전자 등록 시 제한적 차량 제어가 가능합니다.]
“네가 마음대로 움직이진 않겠지?”
[운전자 승인 없는 이동은 불가합니다. 센서 확인 범위를 벗어난 판단은 운전자에게 남습니다.]
도하는 눈을 감았다. 동생에게 마지막 구조 신호가 왔던 날에도 그는 차 안에서 망설였다. 남쪽에서 온 신호를 따라가면 구조 차량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는 차량을 선택했고 그 뒤로 신호는 오지 않았다.
“윤도하. 등록해.”
[임시 운전자 등록 완료. 모닝스타의 루멘 코어가 기동합니다.]
청색 점이 계기판 안쪽에서 커졌다. 도하는 후문을 가리키는 화면을 띄웠다.
“난간을 수집할 수 있어?”
[직접 진단된 금속 부품만 가능합니다. 운전자가 분리해야 합니다.]
“문을 열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8초.]
도하는 방탄 조끼를 걸치고 후문을 10센티미터 열었다. 여자가 몸을 밀어 넣자 손목을 잡아 안으로 끌었다. 곧바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감염자의 손가락이 문틈을 파고들었지만 금속문이 그것을 꺾으며 닫혔다.
여자가 배낭을 끌어안았다.
“저 안에 약이 있어요.”
“물린 건 아닙니까?”
“철근에 긁힌 겁니다.”
“이름.”
“서나래. 응급구조사예요.”
나래는 배낭에서 식염수와 거즈 그리고 작은 라디오를 꺼냈다.
“이것부터 드릴게요. 대신 차를 움직일 수 있어요?”
“움직이는 건 됩니다. 멈추는 건 장담 못 합니다.”
“그럼 거래됐네요.”
나래가 식염수 한 팩을 내밀었다. 바깥에서 철문이 휘는 소리가 났다.
“후문은 오래 못 버팁니다.”
“차가 먼저 나가야겠군요.”
나래가 라디오를 켰다. 잡음 사이로 낮은 호출음이 튀어나왔다.
“…남쪽… 수신하는 차량은… 모닝… 스타….”
도하의 손가락이 굳었다. 다음 말은 잡음에 묻혔다.
“확실하지 않아요.” 나래가 말했다. “주파수가 겹쳤어요.”
루멘 코어의 청색 점이 깜빡였다.
[폐금속 5. 설계 포인트 3. 외벽 응력 분산 장치의 임시 제작이 가능합니다.]
도하는 후문으로 나갔다. 감염자들이 전시장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는 난간의 용접 부위를 절단기로 끊었다. 불꽃이 튀자 주차장 끝의 그림자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빨리!”
나래가 운전석에서 외쳤다.
“절단은 원래 천천히 해야 안 다칩니다.”
“지금은 다칠 시간이 없어요!”
도하는 마지막 용접 부위를 걷어찼다. 난간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차체 옆 수집 포트에 밀어 넣었다.
[직접 진단 확인. 최소 방탄 셔터를 해금할 수 있습니다. 전력 12%와 외벽 일부의 가동 범위를 소모합니다.]
“해금.”
[명령 확인.]
왼쪽 외벽에서 금속판이 겹쳐지는 소리가 났다. 차체 전체가 단단해진 것은 아니었다. 운전석과 후문 사이에만 두꺼운 셔터가 덧대어졌다.
도하는 운전석으로 뛰어들었다.
“브레이크 밟을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어요.”
“브레이크만 준비해요. 후진 각도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나래가 페달 위에 발을 올렸다.
도하는 기어를 후진에 놓았다. 코어가 바닥에 빛으로 선을 그었다.
[센서 확인 범위 내 후진 경로입니다. 트레일러 충돌 확률 31%. 좌측 1.4미터, 우측 0.8미터.]
“확률 말고 거리만.”
모닝스타가 낮게 떨며 움직였다. 트레일러의 철제 축이 차체를 긁었다.
“왼쪽!”
나래가 핸들 방향을 외쳤다. 도하는 반 바퀴 돌리고 엑셀을 조금 밟았다. 감염자 하나가 앞유리에 부딪쳐 미끄러졌다.
“브레이크!”
나래가 페달을 밟자 차가 멈췄다. 거울에 트레일러와 차체 사이에 끼인 손가락이 보였다. 방탄 셔터는 휘었지만 찢어지지 않았다.
“이제 전진합니다.”
도하는 기어를 바꾸고 가속했다. 모닝스타의 앞부분이 안내판을 밀어냈다. 감염자들이 엔진 소리를 따라 모여들었다.
전시장 셔터가 반쯤 올라간 틈으로 차량이 비집고 나갔다. 지붕이 철제 틀에 부딪혔다. 금속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안쪽 조명이 꺼졌다.
도하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폐쇄된 진입로까지 달렸다. 뒤에서 감염자들이 몰려나왔지만 거리는 벌어졌다.
[연료 잔량 18%. 외벽 좌측 가동 범위 42% 감소.]
“살았다는 말은 안 하네.”
[생존 여부는 아직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게 너답지.”
도하는 진입로 옆 공터에 차를 세웠다. 전시장 불빛이 보이지 않았지만 도로는 조용하지 않았다. 멀리서 자동차 경적이 한 번 울리고 끊겼다.
나래가 팔의 천을 풀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피가 굳어 있었다.
“이제 제 팔을 봐도 돼요?”
“제가 먼저 씻겠습니다.”
“정비사가 상처를 씻어요?”
“물과 약품을 아끼는 쪽으로 씻습니다.”
도하는 식염수를 반만 사용해 상처를 닦았다. 나래는 남은 식염수와 라디오를 확인했다.
주방에는 작은 버너와 원두 봉투가 있었다. 원두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남아 있었다. 물은 한 병 반뿐이었다.
도하는 물을 데우고 원두를 갈았다. 좁은 실내에 커피 향이 퍼지며 피와 녹슨 금속 냄새를 잠시 밀어냈다.
“두 잔은 진하겠네요.” 나래가 말했다.
“오늘은 각자 한 잔입니다. 내일은 모릅니다.”
나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 차 이름이 모닝스타예요?”
“전시장에서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라디오에서 다시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윤… 도하… 남쪽… 학교 중계소….”
이번에는 이름의 두 음절과 목적지 하나가 분명했다. 발신 위치와 생존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모르겠습니다.”
“가 볼 건가요?”
“연료가 부족합니다. 함정일 수도 있어요.”
“그럼 안 가요?”
도하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누군가 문을 세 번 두드렸을 때 그는 문을 열었다. 물과 소음과 차체 손상을 대가로 치렀다. 그 대가가 아깝지는 않았다.
“아침까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해 뜨면 학교 중계소 방향을 확인하죠.”
“제가 같이 가도 됩니까?”
“응급 담당이 필요합니다. 물은 각자 관리하고 잠은 교대로 잡니다.”
나래가 작게 웃었다.
“허락이 아니라 조건이네요.”
“조건이 맞습니다.”
[남쪽 방향 미확인 신호를 차량 로그에 기록합니다.]
도하는 로그를 지우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마지막 문장이 흘러나왔다.
“…수신자는 응답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듣고 있습니다….”
잡음이 끊겼다.
멀리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움직였다. 차량인지 손전등인지 알 수 없었다.
도하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기어를 중립에 두었다.
모닝스타는 안전하지 않았다. 왼쪽 외벽은 찌그러졌고 연료는 바닥을 향해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차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고 라디오에는 다음 목적지가 남아 있었다.
“아침에 학교로 갑니다.”
나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처음으로 모닝스타의 엔진 소리가 두 사람의 숨소리와 같은 박자로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