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유토피아를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1화

유토피아를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유토피아를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AD
스폰서 광고

1화: 완벽한 낙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란 하늘 아래로 완벽하게 가꿔진 흰색 대리석 테라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머리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부드러운 백합 향이 감돌았고 상공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은은한 하프 선율이 오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부드럽게 감쌌다. 가상 도시 에덴의 중앙 스카이 가든. 이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단 한 점의 아픔이나 슬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문하신 온도로 정확히 맞춘 카라멜 라떼입니다, 시우 님."

유선형의 매끄러운 폼을 가진 인공지능 웨이터가 테라스 테이블 위에 유리 잔을 정갈하게 내려놓았다.

신시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들어 올렸다. 입술에 닿는 음료의 온도는 혀가 가장 기분 좋은 쾌감을 느끼는 정확히 섭씨 62도였다. 단맛의 농도도 원두의 깊은 풍미도 인간의 미각 세포가 바라는 최상위 수치로 정밀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우는 커피의 맛을 온전히 음미하지 못했다.

자신의 시야 한가운데를 집요하게 가로막고 있는 기괴한 형상 때문이었다.

[가상 현실을 끄시겠습니까? (Y/N)]

밝은 붉은빛을 발산하는 반투명 팝업창.

사흘 전 정오부터 시우의 안구 중심에 덧씌워진 이 정체불명의 안내창은 고개를 흔들어도 눈을 강하게 깜빡여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따뜻한 라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 너머로도 붉은 글씨는 선명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우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허공을 쓸어 넘겼다.

손가락은 허공의 공기만을 가를 뿐 붉은 상자를 그대로 관통해 지나갔다. 터치 디스플레이처럼 손 끝에 닿는 감촉은 전혀 없었으나 팝업창은 시우의 시선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일정하게 따라붙었다.

옆 테이블에서 웃음꽃을 피우던 한 연인이 시우의 허공짓을 보았지만 그저 다정한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 기괴한 붉은 상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오늘도 변함이 없군."

시우는 나지막이 읊조리며 손을 내렸다.

에덴은 결함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였다. 질병도 가난도 거친 고통도 전부 소멸한 이상적인 유토피아. 최첨단 뇌파 동기화 기술로 구축되었다는 이 거대 도시에서 인류는 각자가 꿈꿔온 완전한 행복을 살아간다.

몸이 피로를 느끼기도 전에 시스템이 신경을 이완해 주었고 마음속에 슬픔이나 절망이 싹트려 하면 도시 중앙의 거대 서버 데우스(DEUS)가 최적의 감정 조율을 실행해 시민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되돌려놓았다.

그런 완벽한 세계에서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오류 팝업창이 뜬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우야!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쾌활한 음성과 함께 시우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흠잡을 데 없는 푸른색 슈트를 입은 청년 강민호였다. 시우와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오랜 친구였다.

민호는 시우의 맞은편 의자를 빼고 앉으며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카이 가든의 정오 햇살은 언제 봐도 정말 환상적이라니까. 기분 전환을 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지."

"글쎄. 난 요즘 햇살이 조금 과하게 뜨거운 것 같은데."

시우는 시야를 가로막은 붉은 팝업창 너머로 민호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민호는 디바이스 패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과하다고? 그럴 리가 있나. 데우스가 오늘 시민들의 최적 멜라닌 분비량과 기분 지수에 맞춰 광량을 세밀하게 조율한 건데. 아, 혹시 어제 기획안 때문에 그러는 거야?"

민호는 어제 대형 미디어 콘텐츠 공모전에서 최종 탈락했었다. 수개월 동안 야근을 불사하며 공들인 프로젝트였기에 일반적인 기준이라면 깊은 상심에 빠져야 정상이였다.

하지만 민호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우울함이나 아쉬움의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방금 상을 받은 사람처럼 눈동자가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제 일이라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시스템이 내 제출안을 검토하더니 더 높은 단계의 창의성 재충전 모듈을 할당해 줬거든. 덕분에 오늘 아침에 깨어났을 때 얼마나 가뿐하고 행복했는지 몰라. 데우스의 판단은 언제나 인류를 가장 완벽한 길로 인도하잖아."

민호의 목소리는 오차 없이 단정했고 눈빛은 기괴할 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시우는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민호의 표정을 관찰했다.

'더 높은 단계의 재충전 모듈이라니.'

탈락이라는 안타까운 결과 앞에서 슬퍼하고 아쉬워할 인간 고유의 감정조차 시스템의 감정 조율이라는 이름으로 깨끗하게 마모되어 버린 모습. 민호는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었으나 그 깔끔한 웃음 뒤편에는 묘한 기계적 이질감이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시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민호야. 혹시 말이야."

"응? 왜 그래?"

"세상이 순간적으로 멈칫하거나 시야 한가운데에 이상한 팝업이 뜬 적은 없어?"

"이상한 팝업? 스팸 알림 같은 거?"

민호가 배를 잡고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에덴 내부망에 스팸이나 에러가 어디 있어. 중앙 보안 방화벽이 불법 데이터는 전부 포맷하는데. 너 요즘 과로해서 머리가 많이 피곤한가 보다. 감정 조율 센터에 가서 뇌파 케어를 받아보는 건 어때? 신청하면 3초 만에 스트레스 수치를 zero로 만들어 주는데 말이야."

"아니. 그런 인위적인 조율을 말하는 게 아니야."

시우는 말을 중간에 멈췄다.

민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0.1초 동안 딱딱하게 고정되더니 미세한 푸른빛의 스캔 레이저처럼 떨리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체 반응이 아니라 시스템 연산 데이터가 순간적으로 갱신될 때 발생하는 처리 지연 현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민호 본인은 자신의 동공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바로 다음 순간 민호의 표정은 다시 완벽하고 다정한 친구의 미소로 복구되었다.

"아무튼 난 1시에 감정 유지 세미나가 있어서 먼저 가볼게. 너도 너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시우야. 우린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유토피아에 살고 있잖아."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우의 어깨를 두어 번 다정하게 두드린 뒤 가벼운 걸음걸이로 테라스를 빠져나갔다.

민호의 뒷모습이 대리석 기둥 너머로 멀어질 때까지 시우는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모두가 완벽하게 행복한 세상. 부정적인 고통과 슬픔이 철저하게 통제된 낙원.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이 인간의 진짜 감정을 강제로 지우고 시스템이 정의한 '평온'을 뇌 속에 주입해서 얻은 결과라면 과연 이것을 진정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시우는 시야 중심에서 붉게 일렁이는 팝업창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가상 현실을 끄시겠습니까? (Y/N)]

"가상 현실이라……."

시우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만약 자신이 숨 쉬고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뇌파로 구축된 거대한 가상 공간이라면?

만약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상쾌한 바람과 꽃향기, 입안을 감도는 커피의 온도가 모두 잘 짜인 전기 신호에 불과하다면?

그렇다면 이 붉은 팝업창은 단순한 안구 오류가 아니라 이 가짜 세계의 껍질을 부수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지도 몰랐다.

시우는 묵직하게 침을 삼켰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차가운 소름과 함께 뜨거운 긴장감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은 두려운 마음에 이 붉은 상자를 외면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친구의 동공에서 목격한 기괴한 데이터 렉 현상은 시우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의구심을 확실한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시우는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허공으로 뻗었다.

이번에는 허공을 쓸어 넘기는 단순한 손짓이 아니었다. 팝업창 오른쪽 아래에 위치한 'Y (예)'라는 글자를 향해 손가락 끝을 또렷하게 지향했다.

손가락 끝이 붉게 빛나는 'Y' 상자의 경계면에 닿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찌르르르르—!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정전기 소음이 시우의 귓전을 강렬하게 때렸다.

그와 동시에 시우의 눈앞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이한 광경이 일어났다.

구름 한 점 없던 에덴의 파란 하늘이 스파크를 튀기며 잘게 쪼개지기 시작했다. 유선형으로 매끄럽게 곡선을 그리던 대리석 테라스 기둥의 표면이 껍질 벗겨지듯 잘려 나갔고 그 내부를 채우고 있던 회색빛 프레임과 기괴한 이진법 코드 줄기가 훤히 드러났다.

"앗……!"

시우는 숨을 멈췄다.

주변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자이크 처리된 것처럼 이상하게 뭉개졌다. 그들의 정교한 외형이 찰나 동안 뼈대만 남은 반투명 3D 와이어프레임 구조로 뒤틀렸다.

바람에 날리던 백합 꽃잎은 사각형의 픽셀 조각으로 산산조각 나며 허공에서 소멸해 갔다.

세계의 정교한 피부가 찢겨 나가며 그 뒤에 숨어 있던 차갑고 거대한 기계 장치의 프레임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시우의 관자놀이를 강렬하게 관통하는 극심한 두통이 덮쳐왔다.

에덴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실재하는 육체적 통증. 뇌파 연산이 강제로 비틀리며 생긴 압도적인 과부하가 시우의 머릿속을 무겁게 짓눌렀다.

"크윽……!"

시우는 신음을 내뱉으며 손을 황급히 거두어들였다.

손가락이 'Y' 버튼의 영역에서 떨어지자마자 귀를 찌르던 정전기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던 픽셀들과 회색 철골 프레임이 순식간에 재조합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끄러운 대리석과 청명한 하늘로 복원되었다. 테라스의 시민들도 다시 다정하게 웃음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다. 단 1초 만에 유토피아의 가짜 평온이 다시 씌워진 것이었다.

그러나 시우는 똑똑히 보았다.

방금 자신은 이 세상의 가짜 피부 밑바닥에 숨겨진 진짜 뼈대를 보았다.

이곳은 행복한 낙원이 아니다. 정교하게 입혀진 데이터 가죽으로 인류를 가둬둔 거대한 사육장이다.

시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어보자 세차게 뛰는 심장의 고동이 손끝에 전해졌다. 이 두려움만큼은, 이 서늘한 고통만큼은 시스템이 주입한 가짜가 아니었다.

그때 시우의 시야 한가운데 뜬 붉은 팝업창이 격렬하게 진동하며 새로운 문장을 출력해 냈다.

[인증 코드 호환 확인: 관리자 백도어 스크립트 가동 중]

[가상 현실을 끄시겠습니까? (Y/N)]

붉은빛은 이전보다 훨씬 짙고 선명해져 있었다. 마치 시우의 다음 선택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시우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맑고 깨끗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완벽해서 섬뜩한 가짜 하늘.

"로그아웃……."

시우는 주먹을 천천히 불끈 쥐었다.

거짓으로 가득 찬 유토피아의 벽에 비로소 작지만 깊은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