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2화

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

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

AD
스폰서 광고

2화. 버려진 포션의 맛

붉은 한 방울

배수로의 물은 생각보다 빨랐다.

현우는 바닥의 이끼에 몸을 붙인 채 깨진 유리병을 감싸고 있었다. 병목에 남은 붉은 액체는 손톱만 한 크기였다. 물이 한 번 세게 지나갈 때마다 그 한 방울의 가장자리가 옅어졌다.

[대상: 초급 회복 포션 잔여물]

[성분 분석 진행도: 1%]

‘먹었는데도 분석만 한다고?’

게임 속 포션은 마시면 체력 바가 오르는 소모품이었다. 하지만 현우에게는 입도 위장도 없었다. 붉은 액체는 표면으로 스며든 뒤 몸 전체에 따뜻한 막처럼 퍼졌고 그 뒤부터는 숫자만 느리게 움직였다.

[체력: 9/10]

한 방울로 올라간 체력은 거기까지였다.

유리 조각 하나가 몸 안쪽을 긁었다. 현우는 흠칫하며 몸을 두 겹으로 갈랐다. 깨진 병은 바깥쪽 막으로 밀어 내고 붉은 잔여물만 안쪽에 둥글게 가뒀다.

조금만 방심하면 조각이 중심을 건드릴 것 같았다. 돌틈을 통과할 때 느꼈던 단단한 알갱이. 그게 정말 핵이라면 유리 파편 하나에도 목숨을 걸 수 있었다.

밖에서 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션 하나가 없다고 했지?”

“응. 아까 넘어질 때 빠진 것 같아.”

아카네의 대답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초급 포션 하나라도 그녀에게는 퀘스트 보상 전까지 아껴야 하는 물건일 터였다.

현우는 병목을 더 단단히 감쌌다.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돌려줄 방법도 없었다. 자신이 병을 내밀면 도윤은 포션부터 챙기고 슬라임 퀘스트를 마저 채울 가능성이 컸다.

‘살아남고 나서 미안해하자.’

그는 붉은 잔여물이 든 막을 몸 중심 가까이 옮겼다. 물이 직접 닿지 않는 자리였다. 표면을 얇게 떨게 하자 포션의 마력이 물처럼 퍼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알갱이로 가라앉는 감각이 전해졌다.

[분석 조건이 안정화됩니다.]

[성분 분석 진행도: 2%]

숫자는 한 번 오른 뒤 멈췄다.

현우는 어둠 너머의 희미한 푸른 빛을 봤다. 물길 끝에 있던 빛은 조금 전보다 가까웠다. 병을 지킬 수 있는 곳까지 가면 분석도 더 진행될지 모른다.

그때 수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저 안에 반짝이는 거 없어?”

도윤이 배수로 입구에 쪼그려 앉았다.

목검과 유리 조각

현우는 즉시 몸을 납작하게 폈다. 돌바닥의 이끼 틈으로 푸른 몸을 밀어 넣었다. 병목을 감싼 막도 함께 눌렸다.

목검 끝이 물을 헤집었다.

철퍽.

흙탕물이 현우의 위로 떨어졌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목검이 조금만 더 들어오면 병을 감싼 막이 찢어질 수 있었다.

“거기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아?”

아카네가 말했다.

“퀘스트 한 마리만 더 잡으면 끝이야. 저기 슬라임이 있으면 나와야지.”

목검이 다시 내려왔다.

이번에는 현우가 숨은 돌 바로 옆을 찍었다. 충격이 물을 타고 전해졌다. 현우의 몸이 저도 모르게 크게 흔들렸다.

[체력: 9/10 → 8/10]

상처 자체는 작았다. 문제는 균열이었다. 표면이 갈라진 틈으로 차가운 물이 밀려들었다. 병목을 감싼 막까지 흔들렸다.

현우는 분석창과 균열을 번갈아 의식했다.

지금 포션을 지키면 분석은 이어진다. 대신 다음 충격이 오면 갈라진 틈이 더 깊어질 수 있다. 반대로 성분을 쓰면 살 확률은 높아지지만 오늘 얻을 수 있는 분석량도 줄어든다.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목검 그림자가 다시 들렸다.

현우는 붉은 막의 아주 얇은 일부를 균열 위로 보냈다.

따뜻한 감각이 퍼졌다. 찢어진 표면이 완전히 붙지는 않았지만 더 벌어지지는 않았다. 얇은 붉은 막은 상처를 덮은 뒤 곧 투명해졌다.

[미확정 성분을 신체 보수에 사용합니다.]

[성분 분석 진행도: 2% → 1%]

‘1퍼센트가 날아갔어.’

아까까지는 숫자 하나에 불과했다. 이제는 목검 한 번을 피할 수 있는 막 한 겹이었다. 현우는 남은 포션을 끌어안았다. 강해지는 일도 결국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다.

목검이 빠져나갔다.

“없나 봐. 그냥 다른 데서 잡자.”

아카네가 안도한 듯 말했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돌틈에 걸린 유리 조각을 목검 끝으로 끌어냈다.

맑은 소리가 배수로에 울렸다.

현우의 몸이 굳었다.

“이거 포션병 같은데?”

아카네의 빛구슬이 입구에서 피어났다. 서툰 빛은 약했지만 어두운 수로 안에서는 충분히 밝았다. 흙투성이였던 현우의 몸이 푸르게 반사됐다.

도윤의 손이 돌틈 쪽으로 들어왔다.

“병이 여기 있으면 포션도 안쪽에 있을지 모르겠네.”

현우는 물길 반대편을 봤다. 녹슨 철망 하나가 돌벽에 박혀 있었다. 철망 너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관리용 공간의 것 같았다. 사람 손은 닿지 않을 거리였지만 자신이라면 틈을 통과할 수 있다.

문제는 철망을 고정한 고리였다.

버리는 길

현우는 고리 주변을 살폈다.

고리는 돌벽에 박힌 못과 철망을 함께 묶고 있었다. 힘으로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녹이 퍼져 있었지만 금속 자체는 아직 단단했다.

포션이 상처를 붙인 방식이 떠올랐다. 붉은 성분은 몸을 새것처럼 되돌리지 않았다. 갈라진 표면 사이에 들어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할 뿐이었다.

‘금속을 녹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래도 고리 아래에는 진흙이 뭉쳐 있었다. 물이 매일 닿는 자리라 녹과 흙이 층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현우는 남은 포션 성분을 아주 가는 실처럼 뽑아 그 틈에 눌러 넣었다.

[회복 성분 내 미량의 정화 반응을 감지했습니다.]

붉은빛은 번쩍이지 않았다. 진흙 표면이 물을 머금은 것처럼 조금 부풀었을 뿐이다. 현우는 그 변화를 기다렸다. 급하면 남은 포션만 날린다.

밖에서 도윤이 유리 조각을 뒤집었다.

“맞아. 네 포션병이네. 안에 남은 거 있나 봐야겠는데.”

아카네가 입구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내가 빛 비춰 볼게. 혹시 슬라임이 먹었으면 어떡하지?”

그 말에 현우는 멈칫했다.

아카네는 그저 포션을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빛구슬이 수로를 더 깊이 훑으면 자신은 병목과 함께 드러난다. 도윤은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목검을 휘두를 것이다.

현우는 물살이 가장 센 갈림길을 봤다. 거기에는 아까 밀어 낸 유리 조각 두 개가 아직 걸려 있었다.

그는 몸 끝을 길게 늘여 조각 하나를 물살 가운데로 밀었다. 조각은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현우는 남은 몸으로 돌을 짚고 한 번 더 밀었다.

딸각.

유리 조각이 빠져나가며 물살을 탔다. 곧장 철망 쪽으로 흐르지 않고 입구 왼편의 좁은 수로로 튀었다.

“어? 저쪽으로 갔네.”

도윤의 고개가 움직였다.

현우는 고리 아래의 흙을 다시 밀었다. 불어난 진흙이 조금씩 떨어져 나왔다. 그제야 철망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한 번에 빠질 리 없었다. 고리는 여전히 못에 걸려 있었다.

현우는 철망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액체인 몸을 넓게 펴서 철망을 안쪽에서 받쳤다. 이어서 물살이 밀려오는 순간에 맞춰 몸을 수축했다.

끼익.

철망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들렸다.

“도윤아. 조각 여기 또 있어.”

아카네가 말했다.

도윤의 발소리가 왼쪽 물길로 옮겨 갔다. 아카네의 빛도 따라 멀어졌다. 현우에게 남은 시간은 그들이 조각을 주워 드는 동안뿐이었다.

그는 몸을 더 넓게 펼쳤다. 철망의 날카로운 끝이 표면을 긁었다. 균열 위에 바른 회복 막이 다시 떨렸다.

‘지금 더 쓰면 분석은 끝이야.’

현우는 포션을 쓰지 않았다.

대신 물살이 밀려온 순간 몸을 납작하게 줄였다가 반대로 부풀렸다. 파도처럼 밀어낸 힘이 철망 아래쪽을 쳤다. 느슨해진 고리가 못에서 빠지며 철망 한쪽이 기울었다.

현우는 틈으로 몸을 흘려 넣었다.

마지막에 남은 몸 한 덩이가 걸렸다. 그는 병목을 먼저 안쪽으로 밀어 보내고 자기 몸을 잡아당겼다. 철망 끝이 표면을 스쳤지만 아까와 달리 깊게 찢기지는 않았다.

[환경 반응 기록을 획득했습니다.]

[성분 분석 진행도: 1% → 8%]

숫자가 크게 뛰었다.

포션을 먹은 양이 아니라 무엇과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분석에 남는 모양이었다. 현우는 철망 바깥으로 미끄러진 뒤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입구 쪽에서 도윤이 말했다.

“포션은 다 새었나 보네. 됐어. 퀘스트나 끝내자.”

발소리가 멀어졌다.

현우는 그제야 몸을 웅덩이 쪽으로 굴렸다.

포션의 맛

관리용 공간은 배수로보다 조금 넓었다.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 벽에는 오래된 목재 받침이 박혀 있었고 바닥에는 부러진 양동이와 젖은 천 조각이 널려 있었다.

현우는 구석의 얕은 웅덩이에 몸을 담갔다.

철망을 통과하며 생긴 긁힌 자국이 옆구리처럼 보이는 부분에 남아 있었다. 체력 수치는 여전히 8이었다. 아까 썼던 회복 성분은 상처가 더 갈라지는 것만 막았을 뿐이었다.

그는 병목 안쪽의 붉은 액체를 끝까지 긁어 모았다. 너무 많이 쓰면 분석이 멈출 수 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물기와 섞여 사라진다.

현우는 가장 얇은 막만 상처에 덮었다.

[회복 점액 재구성: 불완전]

[성분 분석 진행도: 8% → 12%]

붉은 기운이 푸른 몸 표면에 실처럼 번졌다. 갈라진 부분이 천천히 좁아졌다. 체력 바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바닥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던 따가움이 줄었다.

‘체력 바를 올리는 약이 아니라 몸을 붙이는 재료구나.’

결국 초급 포션 하나로 얻은 것은 회복 마법도 공격력도 아니었다. 다친 표면을 겨우 접합하는 얇은 점액. 전투 중에 쓸 수 있을 만큼 빠르지도 않았고 병 하나를 더 먹지 않으면 다시 만들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던 자신에게는 큰 차이였다.

현우는 웅덩이 밖으로 몸 일부를 내밀었다. 벽 틈에는 낡은 가죽 주머니가 끼어 있었다. 젖은 끈 아래로 희미한 푸른 빛이 새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다가갔다. 몸 끝을 가늘게 뻗어 끈을 건드리자 낡은 가죽이 돌가루와 함께 우수수 떨어졌다.

주머니는 틈 깊숙이 박혀 있었다. 억지로 잡아당기면 안에 든 것도 함께 쏟아질 것 같았다.

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방금 만든 회복 점액을 쓰려 했다.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면 주머니를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 안쪽의 붉은 기운은 이미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회복 점액 재구성 불가]

[동일 계열 재료 또는 분석 진행이 더 필요합니다.]

현우는 몸을 거뒀다.

아쉬웠지만 무작정 당기는 건 초보가 하는 실수였다. 가방 안에 포션보다 진한 마력이 든 물건이 있다면 깨뜨리지 않고 꺼낼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는 벽 아래의 물길을 살폈다. 관리용 공간은 막다른 곳이 아니었다. 가죽 주머니가 박힌 틈 아래로 손가락 하나 폭의 배수구가 더 이어지고 있었다.

입구 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근처에 숨은 몬스터가 있다던데?”

새로운 발소리가 여럿 겹쳤다.

현우는 가죽 주머니와 더 깊은 배수구를 번갈아 봤다.

포션 한 방울을 지키는 일도 이렇게 어려웠다. 저 주머니 안에 든 것이 무엇이든 먼저 먹을지 먼저 숨을지, 이제는 그 선택까지 자기 몫이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