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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6화

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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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영웅의 갑옷을 벗기다

브란트 경의 흉갑은 시신의 가슴에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진은 억지로 잡아당기지 않았다. 갑옷은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죽은 뒤에 그것을 찢어내는 방식으로 벗긴다면 망자가 마지막까지 붙잡은 명예까지 함께 뜯겨 나갈 수 있었다.

케일런 경은 검을 뽑은 채 돌다이 옆에 섰다.

“시간은 두 시간 사십 분 남았다.”

“충분합니다.”

하진은 따뜻한 허브 오일을 삶은 천에 적셨다. 먼저 투구 아래의 가죽끈을 적시고 굳은 매듭을 손톱 끝으로 조금씩 풀었다. 마수 독소가 검은 진액처럼 흘러나와 손등을 덮었지만 푸른 안식 성력이 얇은 막처럼 번져 독을 밀어냈다.

바스토가 낮게 욕을 삼켰다.

“저걸 맨손으로 만져도 되는 건가?”

“맨손이 아닙니다. 성력으로 먼저 막고 있습니다. 로만 씨, 독소가 떨어지는 곳마다 참숯 가루를 얇게 뿌려 주십시오.”

로만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매듭이 풀리자 투구가 아주 조금 들렸다. 그 순간 브란트 경의 턱이 덜컥 움직였다. 기사단원의 칼끝이 일제히 앞으로 뻗었다.

하진이 손바닥을 들었다.

“반응은 있습니다. 공격 의지는 아닙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케일런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하진은 브란트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검게 변한 손가락은 허공이 아니라 가슴 갑옷의 푸른 사자 문양을 긁고 있었다. 손끝의 갈고리 같은 손톱은 죽은 뒤에도 그 문양을 놓지 못했다.

“이분은 아직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와 싸우는 게 아니라 마지막 명령과 싸우는 겁니다.”

케일런의 눈꺼풀이 떨렸다.

하진은 두 번째 매듭을 풀고 투구를 천천히 벗겼다. 투구 안에서 썩은 피와 검은 증기가 흘러나왔다. 얼굴 절반은 마수 독니의 저주로 무너져 있었고 다른 절반은 이를 악문 표정 그대로 굳어 있었다.

기사단원 하나가 작게 신음을 냈다.

“브란트 경…….”

하진은 투구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깨끗한 천을 펴게 한 뒤 그 위에 투구를 올렸다.

“전장에서 돌아온 분의 투구입니다. 바닥에 놓지 마십시오.”

처리사 하나가 황급히 새 천을 받쳐 들었다. 케일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흉갑의 잠금쇠는 독소와 피가 굳어 돌처럼 단단했다. 하진은 칼을 쓰지 않고 따뜻한 오일을 스며들게 했다. 참숯 가루가 검은 진액을 먹어 들이자 갑옷 틈에서 작은 기포가 올라왔다.

로만이 측정석을 들여다보았다.

“오염 수치가 조금 내려갑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내려가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바스토 씨, 물은 끓인 것으로만 바꿔 주십시오. 한 번 쓴 천은 다시 쓰지 않습니다.”

“알았다.”

바스토는 더 묻지 않고 움직였다.

흉갑이 열리는 데에만 반 시각이 걸렸다. 안쪽은 훨씬 심각했다. 심장 왼쪽에 마수의 독니 파편이 박혀 있었다. 성당의 정화 자국이 그 주변을 흰 딱지처럼 덮고 있었고 그 아래 검은 독소가 부풀어 올랐다.

케일런이 이를 갈았다.

“사제들이 정화했다고 했는데.”

“겉만 눌렀습니다. 독소가 빠져나갈 길을 잃고 안으로 파고든 겁니다.”

하진은 허브 오일에 참숯 가루를 섞고 묘역에 있던 끈적한 보존 젤을 조금 덜었다. 원래는 부패를 늦추기 위해 쓰는 싸구려 젤이었다. 하지만 허브 룬을 얇게 새긴 뒤 안식 성력을 불어넣자 젤은 맑은 푸른빛을 머금었다.

“이걸 파편 주변에 바릅니다. 독소를 먼저 붙잡아 두고 천천히 빼겠습니다.”

“새로운 마법인가?”

“시신 보존제입니다. 다만 이곳에 맞게 바꿨습니다.”

하진은 젤을 독니 파편 주변에 고르게 발랐다. 검은 독소가 젤에 닿자 거칠게 끓었다. 처리실 벽의 촛불이 푸른빛으로 흔들렸다.

브란트의 손이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쿵.

돌다이가 내려앉을 듯 울렸다. 기사단원들이 다시 검을 들었다. 이번에는 케일런도 칼끝을 하진의 목 가까이 겨누었다.

“더 움직이면 벤다.”

“움직인 건 손뿐입니다.”

하진은 브란트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 사이에는 깨진 검 손잡이와 함께 작은 은패가 끼어 있었다. 은패에는 제3기사단 보병 대대의 이름들이 아주 작게 새겨져 있었다.

“이분은 부하들의 이름을 쥐고 계셨군요.”

케일런의 얼굴이 굳었다.

“그 은패는 브란트 경이 직접 만든 것이다. 후방으로 빼낸 대대의 이름을 새겨 두셨지.”

“그들은 살았습니까?”

케일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살았다. 대대의 절반 이상이 황녀 전하의 진영까지 도착했다. 브란트 경이 길을 막지 않았다면 한 명도 못 돌아왔을 것이다.”

하진은 고개를 숙여 브란트의 귀 가까이 다가갔다.

“브란트 폰 레온하르트 경. 들리십니까. 당신이 지킨 병사들은 돌아갔습니다. 이름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검은 손가락의 힘이 아주 조금 풀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진은 독니 파편을 집게로 잡았다. 바로 뽑지 않았다. 파편 주변을 젤과 참숯으로 한 번 더 감싸고 삶은 천으로 가슴을 받쳤다.

“지금 뽑습니다. 아무도 소리치지 마십시오.”

독니 파편이 빠져나오는 순간 검은 연기가 뱀처럼 솟구쳤다. 바스토가 참숯 가루를 던지듯 뿌렸고 로만이 측정석을 품에 안고 뒤로 물러났다.

하진은 손바닥으로 연기를 눌렀다. 푸른 성력이 손가락 사이에서 넓게 퍼졌다. 연기는 발버둥 치다 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리실에 있던 악취가 한 겹 벗겨졌다.

“수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로만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밝아졌다.

하지만 하진은 아직 웃지 않았다.

“이제 복원합니다.”

그는 브란트의 얼굴을 따뜻한 물로 닦았다. 무너진 피부를 억지로 새것처럼 만들지 않았다. 찢어진 부분은 제자리에 맞추고 깊은 상처는 깨끗한 붕대로 받쳤다. 허브 룬 보존 젤은 썩어 들어가던 가장자리를 붙잡아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했다.

케일런이 낮게 말했다.

“흉터를 남기는군.”

“이분의 삶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마수의 모욕은 지울 겁니다.”

하진은 부패 독소가 만든 검은 얼룩만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용맹했던 얼굴은 젊지도 완벽하지도 않았다. 깊은 주름과 오래된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더는 괴물의 얼굴이 아니었다.

기사단원들이 하나둘 검을 낮추었다.

브란트의 입술이 미세하게 열렸다.

“……후퇴는.”

그 목소리는 살아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돌 사이를 지나는 바람처럼 희미했다.

케일런의 무릎이 흔들렸다.

“완료했습니다. 경. 부하들은 살았습니다.”

하진은 브란트의 손에서 검을 억지로 빼내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하나씩 씻고 은패를 깨끗한 천으로 닦은 뒤 검 손잡이와 함께 가슴 위에 다시 놓았다.

“이 검은 당신의 명령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충분히 지키셨습니다. 이제 놓으셔도 됩니다.”

푸른빛이 시신의 가슴에서 번졌다.

검은 갑옷 아래 남아 있던 마수 독소가 마지막으로 꿈틀거렸다. 그것은 브란트의 그림자를 본떠 일어나려 했다. 뿔 달린 투구와 검은 날개 같은 환영이 처리실 천장까지 치솟았다.

하진은 물러나지 않았다.

“브란트 경. 당신은 괴물이 아니라 귀환한 기사입니다.”

빛이 환영을 갈랐다.

브란트의 혼백이 시신 위로 일어섰다. 은빛 갑옷을 입은 장대한 기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하진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피로와 안도가 함께 있었다.

“이름을 더럽히지 않아 주어 고맙다.”

하진은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편히 쉬십시오.”

브란트의 시선이 케일런에게 향했다.

“전하께 전해라. 방패는 끝까지 서 있었다고.”

케일런은 검을 내려놓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반드시 전하께 전하겠습니다.”

브란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검을 보았다. 깨진 손잡이에서 맑은 빛이 흘러나와 하진의 손목에 감겼다.

검술의 감각이 아니라 방패를 세우는 감각이었다. 적의 칼날 앞에서 한 걸음 버티는 법, 옆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깨와 호흡을 고정하는 법, 맹세한 이름을 등 뒤에 두고 무너지지 않는 법이 하진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낡은 검의 문양이 하진의 손등에 아주 희미하게 새겨졌다.

브란트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필요할 때 한 번은 내 검이 그대의 부름에 답할 것이다.”

그 말과 함께 혼백은 푸른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처리실의 한기가 사라졌다. 돌다이 위에는 깨끗한 수의와 붕대에 감긴 브란트 경의 유해가 누워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전장에서 돌아온 노기사의 얼굴 그대로 평온했다.

로만이 측정석을 확인하다가 입을 벌렸다.

“오염 수치가…… 거의 없습니다.”

바스토는 젖은 천을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케일런 경은 하진 앞에 다가와 천천히 검을 거꾸로 세웠다. 그것은 적의가 아니라 기사단의 예였다.

“하진. 나는 오늘 브란트 경을 불태우려 했다. 그 명령이 틀렸음을 네가 증명했다.”

“명령은 묘역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망자를 지키는 방법이 하나 더 있었을 뿐입니다.”

케일런은 고개를 저었다.

“그 하나가 제국에는 없었다.”

묘역 바깥에서 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문지기가 숨 가쁘게 뛰어 들어왔다.

“부단장님! 황녀 전하의 선발대입니다. 전하께서 직접 묘역으로 오고 계십니다!”

케일런의 시선이 깨끗하게 안치된 브란트 경에게 향했다.

“전하께서 보셔야 한다.”

하진은 브란트의 수의 끝을 한 번 더 정돈했다.

“그 전에 관을 준비하겠습니다. 영웅은 서서 싸웠지만 이제는 편히 누워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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