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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환승 연애가 안 됩니다5화

우리는 환승 연애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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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첫 선택은 마음보다 빨랐다

거실 스피커에서 짧은 종소리가 울렸다.

유나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손에 쥔 휴대폰을 확인했다. 새 문자는 없었다.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화면을 켰는지 세는 건 포기한 지 오래였다.

“다들 거실로 모여 주세요. 첫 데이트 선택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도윤 PD의 목소리가 집 안에 퍼졌다.

출연자들이 하나둘 거실로 모였다. 현욱은 마지막에 들어왔다. 머리는 대충 말린 것처럼 보였지만 셔츠 소매는 정확히 두 번 접혀 있었다. 유나는 그걸 보자마자 시선을 돌렸다.

그가 긴장할 때 하던 버릇이었다.

“오늘은 첫 데이트 상대를 공개하겠습니다.”

도윤 PD 뒤의 모니터에 네 사람의 이름이 차례로 떠올랐다.

정유나.

강현욱.

미태준.

서지아.

유나는 손끝을 무릎 위에 얹었다. 현욱이 자신을 골랐을 가능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문자에 대해서는 지아에게 보냈다고 말했지만 선택까지 같은 방식으로 숨겼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선택받은 두 사람을 기준으로 데이트를 진행합니다.”

모니터에 첫 번째 화살표가 나타났다.

강현욱 → 서지아.

지아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진짜요?”

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택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유나는 그 담담함이 싫었다. 마치 밤의 통로에서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들렸다.

“두 번째 선택입니다.”

모니터가 한 번 깜빡였다.

미태준 → 정유나.

태준이 유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괜찮으시면 저랑 가 주실래요?”

질문은 조심스러웠다.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유나는 잠시 현욱을 보았다. 그는 지아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아의 손에 들린 선택 카드를 보고 있었다. 유나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돌아보지 않는 얼굴이었다.

“네. 좋아요.”

유나는 태준에게 웃었다.

그 웃음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나와서 본인도 놀랐다.

“잘 부탁드려요.”

태준이 미소를 보였다.

“저도요.”

지아가 현욱의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

“우리 데이트 기대해도 되죠?”

“선택했으니까요.”

현욱이 대답했다.

“그건 기대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기대는 자유니까요.”

“그럼 현욱 씨는 기대 안 해요?”

현욱은 대답 대신 모니터를 보았다. 유나와 태준의 이름이 나란히 떠 있었다.

유나는 현욱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 동안 손목시계를 만지는지 살폈다.


주방에는 데이트 준비용 간식이 길게 놓여 있었다. 샌드위치와 과일 그리고 작은 보온병이 바구니마다 담겨 있었다. 유나는 제작진이 놓아둔 물품을 하나씩 확인하다가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이거 커피네요.”

“아침엔 커피가 좋죠.”

태준이 옆에서 말했다.

“저는 빈속에는 잘 안 마셔요.”

“그럼 주스 드세요. 자몽 말고 사과로 바꿔 달라고 할게요.”

태준은 바로 스태프에게 손을 들었다. 유나는 그를 바라봤다.

“자몽 싫어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어제 마시지 않으셨잖아요. 싫어하는 사람의 표정이었어요.”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상대가 불편한 건 빨리 알아차리는 편입니다.”

태준은 웃으며 보온병을 바구니 밖으로 밀어 두었다.

그 말은 현욱과 정반대였다. 현욱은 유나가 불편해하는 걸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지만 그다음에는 늘 자기 방식으로 처리했다. 물을 건네고 약을 챙기고 문을 닫았다. 왜 그러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유나 씨는 저랑 차 타면 멀미 안 하죠?”

지아가 복도 쪽에서 물었다.

그 옆에는 현욱이 서 있었다. 지아는 데이트용 가방을 들고 있었고 현욱은 그 가방의 지퍼를 확인하고 있었다.

“멀미는 안 해요.”

유나가 대답했다.

“다행이다. 저는 차 안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요.”

“현욱 씨도 말이 많던데요.”

지아가 현욱을 보며 말했다.

현욱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요?”

“어제는 꽤 많이 하셨잖아요.”

“그랬나 봅니다.”

“오늘은 더 많이 해 주세요. 제가 선택받았다는 기분이 들게.”

지아의 말에 현욱은 잠깐 멈췄다. 유나는 손에 쥔 사과 주스 병을 내려놓았다.

“선택받은 사람은 보통 확인받으려고 하지 않던데요.”

유나가 말했다.

지아는 웃었지만 현욱의 시선은 유나에게로 움직였다.

“사람마다 다르죠.”

“그렇죠. 어떤 사람은 선택해 놓고도 계속 다른 사람 반응을 확인하고.”

주방의 공기가 얇게 굳었다.

태준이 바구니 안에서 과자를 꺼냈다.

“이건 유나 씨가 먹기 괜찮겠어요. 너무 달지 않네요.”

유나는 과자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천천히 드세요. 데이트는 오래 할 테니까.”

현욱이 보온병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몽 주스가 담긴 작은 병 하나가 바구니 안쪽에 남아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건 지아 씨 거예요?”

유나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선택한 사람 취향도 모르고 고른 거예요?”

현욱의 손가락이 병목을 눌렀다.

“알아가는 중입니다.”

“좋네요. 이번에는 처음부터 알아가서.”

유나는 그렇게 말하고 태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쪽에 앉아서 일정표 볼까요?”

“좋습니다.”

태준이 먼저 자리를 비켜 주었다.

유나가 식탁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현욱은 손에 든 자몽 주스를 내려놓지 못했다. 지아가 그 병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거 제가 마실까요?”

현욱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뇨. 다른 걸로 바꾸죠.”

지아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첫 데이트 전 인터뷰는 작은 방에서 진행됐다. 유나는 의자에 앉아 손가락으로 바지 솔기를 만졌다. 카메라가 켜지자 입꼬리를 올렸다.

“미태준 씨의 어떤 점이 기대되나요?”

도윤 PD가 물었다.

“말을 끊지 않는 점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저한테는요.”

유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상대가 말할 시간을 주는 사람은 자기 생각도 숨기지 않을 것 같아서요.”

도윤 PD의 펜이 멈췄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하는 말인가요?”

“첫 데이트 상대를 고르는 자리에서 전 사람을 비교하면 이상하잖아요.”

“전 사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다른 출연자와 비교해도요?”

유나는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현욱 씨 말씀인가요?”

도윤 PD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대답처럼 남았다.

“강현욱 씨는 어떤가요? 서지아 씨와 잘 맞을 것 같습니까?”

“두 분 다 솔직한 편이라 잘 맞을 것 같아요.”

유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현욱 씨가 솔직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인터뷰실 밖에서는 현욱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쪽에서 유나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벽에 기대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잠시 뒤 현욱이 의자에 앉았다.

“서지아 씨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화가 빠르고 분명합니다.”

“정유나 씨와는 어떤가요?”

질문이 너무 빨리 나왔다. 현욱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정유나 씨는 관찰력이 좋습니다.”

“좋은 점인가요?”

“상대에 따라 다르죠.”

“그럼 오늘 유나 씨가 태준 씨와 더 편해 보이면 어떨 것 같습니까?”

현욱은 손목시계를 만졌다.

그 작은 동작을 카메라가 잡았다.

“편해 보이면 좋은 거죠.”

“정말 아무렇지 않습니까?”

“첫 데이트입니다.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죠.”

말은 매끄러웠지만 대답 사이의 공백이 너무 길었다.

도윤 PD는 그 공백을 표시했다.

“선택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건요?”

“저를 선택한 이유를 나중에 물어볼 생각입니다.”

“지아 씨에게 직접요?”

“네.”

“그럼 유나 씨에게는 묻지 않습니까?”

현욱은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카메라의 빨간 불이 그의 얼굴을 오래 비췄다.

“정유나 씨는 저를 선택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처럼 들렸다.


주차장에는 두 대의 차량이 나란히 서 있었다. 차체에는 프로그램 로고가 붙어 있었고 촬영용 카메라는 현관과 차량 사이를 번갈아 비췄다.

지아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현욱에게 다가왔다.

“이거 같이 들고 가요. 제작진이 준비해 줬대요.”

현욱은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무겁네요.”

“벌써 불평하는 거예요?”

“사실을 말한 겁니다.”

“그럼 제가 들게요.”

지아가 꽃다발을 가져가려 하자 현욱은 손을 놓지 않았다.

“됐어요. 제가 들죠.”

지아는 그를 올려다봤다.

“현욱 씨는 생각보다 다정하네요.”

“그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

“그럼 오늘 제가 처음 해 준 말로 기억해 둬요.”

현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현관 쪽으로 향했다.

유나가 태준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태준은 유나의 가방을 받아 들었고 유나는 한 번 거절하다가 그대로 손을 놓았다.

그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욱은 자신도 모르게 꽃다발을 세게 쥐었다. 포장지가 바스락거렸다.

“괜찮아요?”

지아가 물었다.

“네.”

“꽃이 싫어요?”

“아뇨.”

“그럼 저쪽을 왜 그렇게 봐요?”

현욱의 시선이 지아에게 돌아왔다.

지아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유나 씨가 넘어질까 봐요.”

“가방은 태준 씨가 들고 있는데요.”

“바닥이 미끄러워 보여서.”

“현욱 씨.”

지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저를 선택한 사람처럼 굴어도 돼요. 대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굴지는 말고요.”

현욱은 입을 다물었다.

지아는 더 묻지 않고 차량 쪽으로 걸어갔다. 현욱은 꽃다발을 든 채 뒤따랐다.

반대편 차량 앞에서 태준이 유나에게 안전벨트를 건넸다.

“불편하면 바로 말해 주세요. 카메라가 있어도요.”

“그럴게요.”

“그리고 오늘은 현욱 씨 이야기를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제가 그 사람 이야기를 많이 했나요?”

“아직은 안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해요?”

태준은 대답 대신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안 하셔도 되는 이야기를 미리 막아 두는 편이라서요.”

유나는 그 말에 웃었다.

카메라가 그 웃음을 잡았다.

현욱은 자신의 차량에 오르려다 멈췄다. 멀리 설치된 모니터에는 출발 직전 찍힌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태준이 무언가 말하자 유나의 어깨가 풀렸다. 그녀는 카메라를 잊은 듯 웃었다.

“현욱 씨?”

지아가 차 안에서 불렀다.

현욱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차량에 올랐다.

“갑니다.”

차량이 동시에 출발했다.

유나의 차가 먼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현욱은 창밖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아가 그를 보고 있었다.

“오늘은 저를 봐 주세요.”

그 말에 현욱은 아주 늦게 웃었다.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하우스 모니터에는 유나의 웃음이 계속 남아 있었다.

현욱의 손이 손목시계 위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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