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졸 진무강의 검시록

1화: 세 가지 검흔
축축하게 젖은 바닥에 차가운 핏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늦가을 해가 기울자 청하객잔 뒷골목의 좁은 담그늘 아래로 서늘한 습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돌바닥 위에는 짚적삼을 걸친 시신 다섯 구가 기괴하게 꺾인 자세로 널브러져 있었다.
"포두님, 현령 사또의 명이오! 도적 떼가 표국 수레를 노리고 저지른 살상이 명백하니 지체 없이 시신을 수거하여 화장터로 넘기라 하셨소."
관아 형방 이배가 비단 옷자락을 그러쥐고 코를 막은 채 소리쳤다. 비리비리한 이배의 목소리에는 악취에 대한 혐오와 사건을 서둘러 덮어 버리려는 조바심이 짙게 베여 있었다.
그 앞을 막아선 것은 청하현 포두 한도겸이었다. 넓은 어깨에 검붉은 쾌복을 입은 한도겸은 왼쪽 무릎을 약간 절며 쇠사슬 철척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직 검시도 마치지 않았소. 현장 확인 없이 시신부터 치우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도적이 휩쓸고 간 현장에서 무슨 검시를 한단 말이오! 날이 어두워지면 객잔 골목에 소문이 돌아 백성들이 동요할 것이오. 현령 사또의 엄명을 어길 셈이오?"
이배가 삿대질을 해 대자 한도겸의 억센 턱수무륵한 얼굴이 굳어졌다. 한도겸은 시신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마른 체격의 젊은 포졸을 돌아보았다.
햇볕에 그을린 마른 얼굴과 무덤덤한 눈빛을 한 사내. 청하현 삼방의 말단 포졸 진무강이었다.
무강은 시신의 찢어진 옷자락을 헤치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포두님, 향 한 자루 탈 시간만 주십시오."
이배가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쳤다.
"어이, 진 포졸! 네놈이 언제부터 검시관 노릇을 했다고 나서느냐? 그저 짚신발로 바닥이나 쓸어야 할 말단 주제에!"
한도겸이 이배의 앞을 육중한 몸으로 막아서며 쇠사슬을 철럭거렸다.
"향 한 자루다, 진무강. 그 안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면 내 손으로 시수레에 시신을 실을 것이다."
무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손 검지 마디에 새겨진 오래된 칼상흔을 만졌다. 그 상처는 십오 년 전 아버지가 피 흘리며 숨을 거두던 밤에 얻은 흔적이었다.
무강이 천천히 숨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진무강의 선천적 체질인 검시안이 깨어났다. 시신 피부에 남아 있던 서늘한 기운이 겹겹의 감각이 되어 무강의 손끝과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죽은 자의 몸에 남은 무공의 흔적과 내공의 잔향이 마치 피부 위로 흐르는 시검선처럼 또렷하게 떠올랐다.
사망 후 아직 열두 시진이 지나지 않았다. 잔향은 아직 상처 깊숙한 곳에 뚜렷이 맺혀 있었다.
무강은 첫 번째 시신의 흉부를 짚었다.
가슴팍에는 가로로 크게 찢어진 참혹한 도흔이 남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산적들이 흔히 쓰는 패도로 무지막지하게 베어 버린 상처였다.
그러나 무강의 손가락이 상처 안쪽의 부러진 갈비뼈 마디를 짚었을 때 감각이 달라졌다.
'거칠지 않다.'
겉면의 살점은 짓뭉개져 있었지만 뼈를 잘라낸 절단면은 둥근 달빛처럼 맑고 매끄러웠다. 도적들이 쓰는 묵직한 패도의 궤적이 아니었다. 지극히 예리하고 빠른 직검으로 가슴을 베어 들어간 뒤 살점이 찢어진 상처 위를 일부러 패도로 짓눌러 훼손한 흔적이었다.
"범인은 도적이 아니다."
무강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형방 이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상처 겉면은 굵은 칼로 베어 뭉갠 것처럼 보이지만 내공이 파고든 깊이는 직검의 궤적입니다. 살점이 파열된 방향과 뼈가 잘려 나간 각도가 전혀 다릅니다."
무강은 첫 번째 시신의 목덜미와 오른쪽 손목을 차례로 눌렀다.
피부 속에 뭉쳐 있던 핏덩이 사이에 검은 자줏빛 내공 잔향이 흩어져 있었다. 무강의 감각 속에서 살수들이 칼을 휘두르던 순간의 움직임이 뼈와 근육의 마모 상태로 그려졌다.
"이 상처는 위장되었습니다. 본래의 칼자국을 숨기기 위해 숨이 끊어진 시신 위로 거친 패도를 다시 휘둘렀습니다."
한도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무강의 곁으로 다가왔다.
"위장이라고? 그렇다면 살수들의 소행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리고 손길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강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신으로 몸을 옮겼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시신의 옷을 헤치고 가슴과 목, 허리의 검흔을 손끝으로 일일이 대조했다. 다섯 구의 시신 모두 청하표국의 무사들이었다. 표국의 무사들은 무기를 제대로 뽑아 보지도 못한 채 좁은 골목 안에서 한순간에 당했다.
무강의 눈빛이 서늘하게 침착해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신을 벤 자는 오른쪽 어깨가 낮습니다. 검을 사선으로 내리칠 때 손목을 바깥쪽으로 비틀어 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갈비뼈 세 번째 마디의 절단 각도가 십 오 도 가량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벼락맞을 소리! 뼈가 기울어 잘린 것까지 포졸 따위가 무슨 수로 안단 말이냐!"
"들어 보십시오."
무강은 세 번째 시신의 흉추 부분을 가리켰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시신을 죽인 자는 습관이 전혀 다릅니다. 이 자는 내공이 과도하게 강해 손가락 악력이 보통 사람의 두 배에 달합니다. 검을 베어 넣는 순간 검자루를 죄어 잡아 척추 마디를 부숴 버렸습니다. 어깨를 비틀지 않고 직선으로 뚫고 들어갔습니다."
한도겸이 직접 시신의 상처 가까이 허리를 굽혔다.
무강이 짚어 주는 부위를 보자 과연 세 번째 시신의 뼈 마디는 잘린 것이 아니라 강한 압력으로 쇄골과 함께 뭉개져 있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시신……."
무강은 골목 안쪽 구석에 쓰러져 있는 막내 표사의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막내 표사는 겨우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무사였다. 그 시신의 목줄기에는 아주 가느다란 검선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무강이 그 목 상처에 손을 얹자 서늘하고 맑은 기운의 잔향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다섯 번째 표사를 베인 자는 내공의 잔향에 서늘한 향기가 섞여 있습니다. 검을 거두는 동작이 지극히 정갈하고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상처의 깊이도 딱 후두를 끊을 만큼만 파고들었습니다."
무강이 서서히 일어서며 한도겸을 바라보았다.
"세 가지입니다. 세 명의 서로 다른 살수가 이 다섯 명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한 기본 검로와 내공의 배출 방식은 하나의 도법, 하나의 검결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한도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하나의 검법을 익힌 세 명의 살수가 도적 떼로 위장해 표사들을 몰살했다는 뜻이냐?"
"예. 같은 문파나 같은 조직에서 훈련받은 자들입니다. 서로 손습관과 체격은 다르지만 검을 뻗는 궤적과 내공의 유출점이 동일합니다."
형방 이배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단순 산적의 습격으로 처리하고 상부에 보고하려던 계획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이배는 떨리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 이놈이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포졸 하나가 뼈마디를 만져 보고 문파를 논해? 현령 사또를 능멸하려는 셈이냐!"
"이배 나리."
무강의 목소리가 낮고 또렷해졌다.
"죽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시신을 서둘러 태워 버리려는 산 사람뿐입니다."
무강의 곧은 눈빛에 이배는 순간 찔린 듯 흠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한도겸이 철척을 움켜쥐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을 얹었다.
"이배 나리, 내 부하의 말이 맞소. 상처의 형태가 분명히 인위적으로 훼손되었고 절단면의 차이가 정교하오. 이대로 시신을 화장하면 관아의 수사 태만이 아니라 사건 은폐 혐의를 쓰게 될 것이오."
"포, 포두! 지금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소?"
"내 포두직을 걸겠소. 시신을 지금 당장 관아 검시소로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혜민당으로 보내 임시 보존 조치를 취할 것이오."
한도겸이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자 이배는 이를 갈며 소매를 털었다.
"좋소! 사또께 그대로 보고할 테니 나중에 사달이 나도 날 원망하지 마시오!"
이배가 관원들을 끌고 골목 밖으로 사라지자, 골목 안에는 서늘한 가을바람과 피비린내만 남았다.
한도겸은 무강의 어깨를 뚝퍽 소리가 나도록 턱 잡았다.
"무강이 너, 정말로 자신이 있는 거냐? 백가장이나 관아 상부에서 이 사건을 산적 소행으로 덮으려 한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검시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마지막 말을 장부에 옮겨 적는 일이라고요."
한도겸은 무강의 아버님이였던 진도현의 이름을 들은 순간 눈빛을 어둡게 떨었다. 한도겸의 가슴속 깊이 숨겨진 죄책감이 살짝 들먹였으나 그는 곧 입을 다물고 시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좋다. 시수레가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더 살펴볼 것은 없느냐?"
무강은 다시 구석에 쓰러진 막내 표사의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막내 표사는 죽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그러쥐려 했던 듯 오른손 주먹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사후경직으로 딱딱하게 굳어 버린 손가락이었다.
무강은 손가락 마디의 혈도를 조심스럽게 눌러 경직을 풀어내며 손바닥을 벌렸다.
그러자 막내 표사의 억센 손톱 밑에 무언가 이물질이 꽉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피와 흙먼지에 엉겨 붙어 있었지만 붉은빛을 띠는 미세한 가루였다. 막내 표사가 살수의 옷자락이나 소매를 할퀴면서 긁어낸 흔적이었다.
무강은 품에서 작은 종이 꼬리표와 대나무 숟가락을 꺼냈다. 손톱 밑의 붉은 가루를 신중하게 긁어 모아 종이에 싸서 봉했다.
가루를 코 끝에 가까이 대자 피비린내 사이로 은은하고 기묘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보통 도적이 들고 다닐 만한 흙이나 가루가 아니었다.
"이것은……."
무강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희생자의 손톱 밑에 남은 붉은 가루. 그것은 범인들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물증이었다.
달이 떠오른 밤, 청하현 혜민당 약방 안은 은은한 약재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등잔불 아래에서 한 사내가 약재 판석 위에 종이에 싸인 붉은 가루를 펼쳐 놓았다.
그 앞에는 흰 장갑을 끼고 단정한 남장 차림을 한 의원 서윤설이 서 있었다. 서윤설은 회색 눈동자를 깊게 빛내며 은침 끝으로 붉은 가루를 살짝 찍어 촛불 위에 올려놓았다.
치익- 하는 소기와 함께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약방 안에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번져 나갔다.
윤설이 은침의 색이 변하는 것을 가만히 관찰하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약재가 아니에요, 진 포졸님."
"무엇입니까?"
무강이 묻자, 윤설은 장갑을 벗어 탁자 위에 놓으며 무강을 직시했다.
"하북 명문 백가장에서 상류층 인사들에게만 판매하는 특제 향유 '홍매향'을 굳혀 만든 약제 결정이에요. 일반 산적이나 도적들은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죠."
백가장(白家莊).
하북성 청하현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으며 관아의 현령마저 뇌물로 주무르는 거대 명문 세가였다.
윤설은 촛불을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
"살수 중 최소한 한 명은 사건 직전에 백가장의 향유를 몸에 바르고 있었거나 백가장의 내부자와 직접 접촉했다는 뜻이에요."
무강은 품속에 간직된 부친의 반쪽 옥패를 덧없이 만지작거렸다. 서늘한 옥패의 감촉이 손가락을 자극했다.
도적으로 위장된 다섯 명의 참혹한 죽음. 그 상처 뒤에 숨겨진 세 가지 검흔과 명문 세가 백가장의 향유 단서.
관아는 사건을 덮으려 하고 세가는 그 뒤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죽은 이들이 남긴 마지막 검흔을 따라 말단 포졸 진무강의 첫 번째 검시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