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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그래프가 미래 뉴스로 보인다1화

주가 그래프가 미래 뉴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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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일 새벽의 한 줄

현관문 아래로 밀려 들어온 고지서는 세 장이었다.

도시가스 요금. 카드 결제 예정 안내. 병원 원무과에서 보낸 미납 문자.

한도윤은 세 장을 식탁 위에 펼쳐 놓고 휴대전화 계산기를 켰다. 통장 잔액은 184만 7천 원이었다. 월세와 이번 달 생활비를 빼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63만 원 남짓이었다.

그중 42만 원은 어머니의 다음 주 검사비로 이미 표시해 두었다.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저장하지 않은 번호가 떠 있었다.

“한도윤 씨 맞으시죠? 서린채권관리입니다. 오늘 안내드린 상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연락드렸습니다.”

“확인했습니다.”

“확인만 하시면 곤란합니다. 아르카디아에서 받으실 퇴직금은 아직 지급 전인 것으로 확인됐고요. 지급이 보류되면—”

도윤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몰라서 끊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원룸 안에는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책상 위 모니터 두 대 중 한 대는 꺼져 있었다. 다른 한 대에는 아르카디아 자산운용에서 보낸 해고 통지서가 열려 있었다.

‘운용 판단의 중대한 과실과 내부 통제 위반에 따른 계약 해지.’

도윤은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자신의 실수라면 인정할 수 있었다. 손실은 운용자의 몫이고 잘못된 판단은 기록으로 남는다. 하지만 마지막 거래는 그의 판단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 2시 17분. 세 개 계좌에서 같은 종목을 동시에 사들였다. 수량은 펀드 전체 위험 한도를 넘었고 주문 간격은 4초였다. 도윤의 운용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주문 기록을 확대했다. 계좌 번호의 끝 네 자리가 흐릿했다. 내부 기록을 내려받으려 했지만 해고 통지와 동시에 접근 권한이 막혔다.

도윤은 마우스를 놓고 손가락을 폈다. 손톱 아래에 하얀 자국이 생겨 있었다.

그날 회의실에서 민재호 부회장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시장에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네.”

옆자리의 강태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싼 시계만 손목 위에서 한 번 돌아갔다.

도윤은 그 침묵을 아직도 배신으로 기억했다. 누군가 한마디만 보탰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도윤의 이름만 회의록에 남았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병원 번호였다.

“한도윤 씨? 어머님 검사 일정이 다음 주 수요일로 잡혀 있습니다. 예약금 확인이 아직 안 돼서요.”

“내일 오전에 처리하겠습니다.”

“금액이 큰 편이라 예약을 유지하려면—”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대답을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도윤은 책상 아래에서 낡은 노트를 꺼냈다. 표지에는 펀드 이름과 월별 수익률이 적혀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노트는 자신의 통제력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이제는 빚과 해고를 증명하는 장부가 됐다.

밤 열 시 사십 분. 도윤은 잠을 포기하고 홈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국내 시장은 닫혀 있었고 미국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거래할 생각은 없었다. 숫자를 보고 있으면 다음 날을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심 종목 목록에는 아르카디아에서 자주 다뤘던 대형주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는 한 종목씩 차트를 열었다. 거래량과 이동평균선은 익숙한 모양으로 움직였다. 화면 안에는 아무것도 이상한 것이 없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불편했다.

도윤은 해고 당일의 주문 기록을 다시 떠올렸다. 숫자는 조작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정상적인 화면에 비정상적인 결정을 남긴 뒤 그 흔적을 그의 이름으로 묶었다.

그는 손을 뻗어 세움중공업을 선택했다.

화면이 잠깐 멈췄다.

일봉 차트 한가운데에 흰색 문장이 떠 있었다. 차트의 선과 봉은 그 아래에 그대로 보였다.

‘내일 새벽 세움중공업, 동남아 항만 장비 대형 수주 공시 예정.’

도윤은 의자에서 등을 뗐다.

문장은 종목명 아래에 붙은 분석 의견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사 제목과 첫 문장을 섞어 놓은 형태였다. 글자 주변에는 희미한 회색 선이 번졌고 끝부분은 안개처럼 흐려져 있었다.

도윤은 키보드의 아무 키나 눌렀다. 창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작업 관리자를 열어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메모리 사용량은 평소와 같았다. 다시 실행하자 로그인 창이 떴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세움중공업 차트를 열었다.

문장은 그대로였다.

‘내일 새벽 세움중공업, 동남아 항만 장비 대형 수주 공시 예정.’

도윤은 화면 밝기를 낮췄다. 눈이 피로해서 보이는 잔상일 수도 있었다. 해고 뒤 사흘 동안 제대로 자지 못했고 오늘은 커피를 네 잔 마셨다. 뇌가 차트의 빈 곳에 글자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종목을 눌렀다. 문장은 사라졌다. 다시 세움중공업으로 돌아오자 문장이 나타났다.

분봉으로 바꿨다. 문장이 사라졌다.

일봉으로 돌아오자 문장이 돌아왔다.

도윤은 메모장을 열었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세움중공업. 일봉에서만 확인.

그는 곧바로 문장을 지웠다. 아직 확인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이르렀다. 눈앞에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도윤은 세움중공업의 최근 공시 목록을 열었다. 지난달에는 베트남 항만 자동화 설비에 관한 계약 검토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확정 계약은 아니었다. 회사는 협의 중이라는 말만 남겼다.

동남아 항만 장비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일 새벽 공시가 예정됐다는 근거도 없었다.

그는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내려받았다. 항만 장비 부문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현금흐름은 좋지 않았다. 재고가 늘어난 탓에 매출이 증가해도 현금이 따라오지 않는 구조였다.

대형 계약 하나만 성사돼도 시장의 해석은 바뀔 수 있었다. 반대로 계약이 무산되면 방금 전 문장은 아무 가치도 없는 흰 글자에 불과했다.

“이건 분석이 아니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분석이라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출처와 가정과 반대 가능성이 있어야 했다. 화면 위의 문장에는 어느 것도 없었다.

도윤은 검색창에 세움중공업과 동남아 항만을 입력했다. 오래된 산업 기사와 항만 확장 계획이 나왔다. 확정되지 않은 발주 일정도 하나 보였다. 그 일정은 열흘 뒤였다.

내일 새벽이라는 문장과는 맞지 않았다.


그는 공개된 거래량을 날짜별로 나눠 보았다. 최근 사흘 동안 기관성 주문으로 보이는 거래가 조금 늘었다. 평소라면 수주 기대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거래대금은 도윤이 관리하던 펀드가 움직일 때보다 훨씬 작았다.

누군가 이미 알고 움직였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적어도 공개 자료 안에서 이상 징후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도윤은 원룸 창문을 열었다. 겨울 밤의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영등포의 불빛이 유리창에 반사됐다. 화면을 등지고 서자 머릿속이 조금 맑아졌다.

아르카디아에서 일할 때 도윤은 확률이 낮은 이야기를 거래 근거로 쓰지 않았다. 대형 수주가 임박했다는 소문만으로 매수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다. 소문은 가격이 오를 때는 정보가 됐고 떨어질 때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말이 됐다.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아 노트의 빈 페이지를 펼쳤다.

첫째. 차트 위 문장의 출처는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세움중공업은 실제로 동남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셋째. 최근 거래량에는 작은 변화가 있으나 단독 근거가 될 수 없다.

넷째. 현재 계좌에서 주문은 가능하지만 남은 현금은 63만 원뿐이다.

다섯째. 확인 전에는 주문하지 않는다.

마지막 줄을 쓰고 도윤은 펜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 63만 원을 두 배로 만들 방법을 찾고 있었다. 문장 하나가 나타난 뒤에는 오히려 돈을 움직이지 않겠다고 적고 있었다.

그것은 겁이 나서 세운 원칙이 아니었다. 겁이 나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 시계가 11시 18분을 가리켰다.

세움중공업 차트 위 문장의 마지막에 흐릿한 글자가 하나 더 생겨났다.

‘…계약 규모는 공개 자료—’

도윤은 숨을 멈췄다. 처음부터 있던 문장인지 새로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글자는 곧 번지더니 다시 사라졌다.

그는 손을 뻗어 마우스를 잡았다. 화면을 저장할까 생각했다. 손가락이 캡처 키 위에서 멈췄다.

저장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가짜라면 증거가 되지 않는다. 진짜라면 누구에게 보여 줄 수도 없다. 지금 그가 가진 것은 문장 하나뿐이고 그것을 설명할 사람도 없었다.

도윤은 캡처 키를 누르지 않았다.

대신 종이에 시간을 적었다.

월요일 23시 18분. 세움중공업 일봉. 내일 새벽 동남아 항만 장비 대형 수주 공시 예정.

그는 문장 아래에 작은 글씨로 ‘확정 아님’이라고 덧붙였다.

그다음 계좌 번호를 적고 주문 창을 열었다. 매수 수량 입력란은 비워 두었다. 주문 가능 금액과 예상 수수료만 확인했다. 63만 원 전부를 넣는다면 손실 한도를 정할 수조차 없었다.

도윤은 수량 입력란에 커서를 올렸다가 창을 닫았다.

“내일 확인한다.”

문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트 위에서 희미하게 빛날 뿐이었다.

병원비를 마련할 방법은 여전히 없었다. 해고가 잘못됐다는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주 오랜만에 내일이 숫자 하나가 아닌 사건으로 보였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문장은 선명해졌다.

도윤은 세움중공업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새벽이 오면 이 한 줄이 거짓말인지 현실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확인에는 남은 현금과 어머니의 검사비가 함께 걸려 있었다.

그 전에 누군가가 자신의 계좌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아직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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