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정원에서 요양하고 가세요!

5화: 깨어나는 물길
아침 햇빛이 무너진 중앙 분수대의 금 간 가장자리를 비췄다.
한지환은 돌그릇 앞에 쪼그려 앉아 손바닥을 바닥에 댔다.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돌 밑에서 올라왔다. 물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검은 흙 아래에서만 웅크리고 있었다.
수레 바퀴 소리가 철문 쪽에서 멈췄다.
아카데미 문양이 찍힌 상자들이 차례로 내려왔다. 정화 토양과 굵은 자갈, 새 배수관 그리고 손잡이가 짧은 삽이 담긴 상자였다. 유스티아는 멀찍이 서서 분수대를 바라봤고 셀렌은 인부 둘의 장갑과 마스크부터 확인했다.
“분수대 바닥을 깨면 빠르겠습니다.”
젊은 인부가 망치를 들어 보였다.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깨지 않습니다. 물은 아래에 있지만 막힌 곳은 따로 있어요.”
“이 정도로 굳었으면 안쪽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쪽이 아니라 옆을 먼저 봐야 합니다.”
그는 분수대 동쪽 돌난간 아래로 걸어갔다. 흙 표면은 말라 보였지만 돌과 돌 사이에는 가는 습기가 이어져 있었다. 지환은 모종삽 끝으로 그 선을 따라 세 번 눌렀다. 마지막 자리에서 흙이 아주 조금 꺼졌다.
“여기입니다. 옛 배수구가 이쪽으로 돌아갔어요.”
셀렌이 보호 주문진을 꺼내 들었다.
“마력식물학부 기록에는 중앙 분수대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동쪽 화단과 서쪽 수림의 순환을 이어 주던 결절이었답니다.”
유스티아가 지환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서 물길이 막힌 뒤부터 정원이 한 구역씩 말라 갔지. 하지만 여기까지 정확히 찾아올 줄은 몰랐네.”
“물이 가고 싶은 쪽은 흔적을 남깁니다.”
지환은 낮은 흙더미를 가리켰다.
“오늘은 여기서 분수대까지 한 줄만 엽니다. 다른 곳은 건드리지 마세요. 물이 탁하면 동쪽 화단으로도 흘릴 수 없습니다.”
인부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빠르게 끝내려던 기색이 사라졌다. 셀렌은 주문진을 접고 대신 밧줄을 받아 들었다.
“작업선 밖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지환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머니 속 리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물소리 더 커.”
“들어가 있어. 아직은 네 차례 아니야.”
“알았어.”
리리는 입을 삐죽였지만 곧 주머니 안으로 몸을 숨겼다.
지환은 분수대 쪽이 아니라 동쪽 바깥부터 얕은 도랑을 팠다. 혹시 탁한 물이 터져도 새 산책로와 로즈마리 군락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굵은 자갈을 바닥에 깔고 도랑의 끝을 오래된 담장 바깥의 빈 흙터로 향하게 했다.
“이제 돌을 들어 올리겠습니다.”
두 인부가 쇠지렛대를 틈에 밀어 넣었다. 지환은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한 번에 들지 말고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만.”
돌이 끼익 소리를 내며 들렸다.
틈에서 검은 물이 먼저 배어 나왔다. 물은 진흙보다 느리게 흘렀고 표면에는 회색 막이 떠 있었다. 그 막이 공기에 닿자 가느다란 먼지가 피어올랐다.
“모두 뒤로.”
지환은 분무기를 잡아 먼지 아래쪽에 안개를 뿌렸다. 셀렌이 반사적으로 주문진을 펼치려 하자 그가 짧게 말했다.
“바람 막지 마세요. 가라앉을 길도 막힙니다.”
셀렌은 이를 악물고 손을 내렸다. 인부 둘은 도랑 바깥으로 물러섰다.
[수로 침전물]
- 상태: 장기 정체로 인한 탁한 마력과 건조 포자 혼합.
- 주의: 흐름을 한꺼번에 열면 오염수가 화단으로 퍼질 수 있음.
- 처방: 우회 배수로 확보 후 침전층을 얇게 분리.
지환은 삽날을 깊이 넣지 않았다. 침전물이 붙은 가장자리만 얇게 떠서 도랑으로 밀어 냈다. 검은 물은 자갈 틈을 지나 빈 흙터로 스며들었다. 한 번 퍼 올릴 때마다 그는 물빛을 확인했다.
세 번째 삽질 뒤에 돌 아래가 움찔했다.
퍽.
검은 막이 터지며 물안개가 얼굴 높이까지 솟았다.
“지환!”
리리가 주머니에서 뛰쳐나오려 했다. 지환은 한 손으로 주머니 입구를 막고 다른 손으로 분무기를 올렸다. 은빛 물안개가 검은 안개를 누르듯 덮었다.
“지금은 아니야.”
검은 먼지가 축축해져 흙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배수구 가장자리에 남은 막은 계속 부풀었다. 지환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리리. 이쪽만.”
리리가 손을 내밀었다. 연분홍 요정 가루가 검은 막의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가루가 닿은 곳에서 탁한 빛이 잠시 멎었다. 지환은 그 틈에 전지가위 끝을 넣어 죽은 뿌리와 침전층만 끊어 냈다.
쪼르르.
검은 물이 도랑으로 빠져나갔다.
리리는 금세 지환의 주머니 안으로 돌아가 웅크렸다.
“나 잘했어?”
“잘했어. 이제 쉬어.”
“조금 어지러워.”
지환은 주머니 위로 손을 얹었다.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해.”
한참 뒤 배수구에서 나오는 물빛이 흙빛으로 옅어졌다. 지환은 인부들에게 작은 바가지로 물을 떠 보게 했다. 바닥에 가라앉는 모래는 아직 검었지만 물 자체는 더 이상 먼지를 뿜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열겠습니다.”
인부 하나가 분수대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물이 저쪽으로 안 갑니다.”
지환도 빈 돌그릇을 바라봤다. 배수구는 살아났지만 흐름은 분수대의 반대편으로 빠지고 있었다.
그는 젖은 흙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물소리는 왼쪽에서 났다. 돌난간 아래로 돌아가던 물은 중간에서 갑자기 약해졌다.
“버드나무 쪽입니다.”
분수대 뒤에는 잎을 잃은 늙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마른 가지는 하늘을 향해 벌어졌지만 뿌리 쪽 흙은 이상할 만큼 단단했다.
지환은 나무 밑을 조심스럽게 파기 시작했다. 겉의 마른 뿌리 아래에서 굵은 뿌리들이 수로를 감싸고 있었다. 검은 덩어리 하나가 그 사이에 끼어 물길을 막았다.
“이걸 자르면 되겠네요.”
인부가 전지가위를 들었다.
“아니요.”
지환은 그의 손목을 막았다.
“살아 있는 뿌리입니다. 이걸 자르면 나무가 물을 받을 길도 사라져요.”
그는 검은 덩어리를 손끝으로 눌러 봤다. 겉은 돌처럼 굳어 있었지만 안쪽에는 오래된 죽은 뿌리와 찌꺼기가 엉켜 있었다. 물은 그 앞에서 얇은 실처럼 새다 멈추고 있었다.
“나무 뿌리를 살려 둔 채 길을 옆으로 빼겠습니다.”
지환은 버드나무 뿌리 바깥에 반달 모양의 얕은 홈을 냈다. 새 자갈을 한 층 깔고 정화 토양을 그 위에 얹었다. 물이 바로 뿌리에 부딪히지 않고 천천히 스며들 자리였다.
“돌을 더 가져오세요. 둥근 것만.”
셀렌이 물었다.
“왜 둥근 돌입니까?”
“모난 돌은 물을 잘게 찢습니다. 지금은 흐름이 너무 약해요. 한 번에 달리게 하는 것보다 오래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유스티아는 지환의 손길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가 새 자갈층을 손으로 고르게 다진 뒤에야 노학자가 입을 열었다.
“식물의 뿌리를 수로의 적으로 보지 않는군.”
“나무도 물이 필요하니까요. 수로가 나무를 밀어내면 오래 못 갑니다.”
지환은 죽은 뿌리 한 가닥을 집게로 잡아 천천히 빼냈다. 다음 가닥도 같은 방식으로 꺼냈다. 검은 덩어리는 한 번에 부수지 않고 조각조각 분리했다. 마지막 조각이 빠지자 수로 안쪽에서 맑은 물이 손등을 적셨다.
쪼르르.
이번 물소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물은 새 자갈층을 따라 버드나무 뿌리 옆을 돌아갔다. 흙이 물기를 머금으며 색을 바꿨다. 마른 나무껍질 사이에서 아주 작은 초록빛이 번졌다.
“살아 있어.”
리리의 목소리가 주머니에서 들렸다.
“응. 아직은.”
물길 끝에 놓인 작은 돌마개를 지환이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분수대 바닥의 금 하나에서 물방울이 맺혔다. 물방울은 두 번 떨더니 돌그릇 아래로 떨어졌다. 이어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솟아 중앙의 부서진 조각상을 타고 흘렀다.
졸졸.
분수대는 낮은 숨처럼 물을 뿜었다. 돌그릇을 채우기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물은 멈추지 않았다.
[정원 수로 일부 복구]
- 중앙 분수대와 동쪽 정화 구역이 연결됩니다.
- 정화 구역의 안정 범위가 확장됩니다.
- 물길이 이어진 구역의 식물 회복 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리리가 주머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연분홍 꽃잎 옷이 물빛을 받아 환하게 흔들렸다.
“물 깼어.”
“응. 그런데 아직 크게 깨우면 안 돼.”
지환은 분수대 주위로 넘치는 물이 없는지 확인했다. 물은 돌그릇에 얕게 고였다가 동쪽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세찬 분수는 아니었지만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유스티아가 지팡이를 짚고 물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물에 손을 담그지 않고 허리를 숙여 물결만 바라봤다.
“이 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아카데미에 알리면 요청이 밀려들겠군.”
셀렌이 곧장 대답했다.
“그 전에 서쪽 수림까지 조사단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안 됩니다.”
지환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두 사람이 그를 돌아봤다.
“오늘 막힌 곳 하나를 열었습니다. 이 물길이 흙에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자갈층이 가라앉기 전에는 물이 어디로 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버드나무 뿌리가 새 물을 견디는지도 봐야 하고요.”
유스티아가 물었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사흘입니다. 아침과 해 질 무렵에 물빛을 보고 흙을 만져 보겠습니다. 탁한 물이 다시 나오거나 뿌리 쪽이 물러지면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잠시 셀렌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유스티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방식대로 하게. 이번에도 내가 먼저 앞서갔군.”
지환은 분수대 가장자리에 둥근 돌 세 개를 놓았다.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낮은 자리였다. 동쪽 산책로에서 걸어온 사람이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만든 자리였다.
해가 기울 무렵 분수대 물은 처음보다 조금 맑아졌다. 버드나무 아래의 젖은 흙에서는 풋풋한 냄새가 났다.
그때 물그릇 위로 푸른 빛 한 줄기가 흘렀다.
지환은 손을 멈췄다.
빛은 분수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물길을 거슬러 서쪽 담장 너머에서 밀려온 빛이었다. 마른 버드나무 가지들이 바람도 없는데 한꺼번에 흔들렸다.
리리가 지환의 주머니 안에서 작게 몸을 떨었다.
“저기 물… 이상해.”
지환은 서쪽 수림을 바라봤다. 아직 손대지 않은 담장 너머에서 물은 다시 한 번 푸르게 번졌다.
“그러니까 사흘은 기다려야 해.”
그는 분수대의 가느다란 물줄기를 지켜봤다.
새로 깨어난 물길은 정원을 살릴 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물길이 무엇을 데려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