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공학과 조교의 졸업 논문

1화: 멈춘 포대의 불협화음
아르켐 왕립 아카데미 서쪽 폐기장의 공기는 언제나 서늘한 쇳가루와 오래된 마정석 차가운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지붕 절반이 무너져 내린 실습동 중앙에는 7년 전 북부 국경전에서 퇴역한 군용 마도기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성벽 파쇄기'라는 거창한 명칭이 무색하게, 세 겹으로 덧대어진 청동 장갑판은 붉은 녹으로 점칠되어 있었고 포신을 받친 버팀목은 습기에 부식되어 검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조교님, 진짜 이걸 손으로 뜯으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붉은 곱슬머리 위로 커다란 작업용 고글을 올려 쓴 리아 펠른이 놋쇠 렌치를 손가락 끝으로 팽팽 돌리며 물었다. 기름때가 교복 소매까지 튀어 있는 1학년생의 눈에는 아카데미 실습에 대한 기대감보다 지루함과 불만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학과 공식 수강 신청서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실습 기재 해체 과목의 첫 번째 과제예요."
에른 바일은 잉크가 검게 착색된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양피지 장부의 반입 인장을 짚었다. 그의 음성은 나직하고 무미건조했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회색 눈동자에는 만성적인 피로와 옅은 체념이 깔려 있었다.
여섯 번이나 심사위원회에서 논문이 반려된 25세의 조교. 마법공학과 연구동 어디를 가나 그를 따라다니는 명칭은 '실습실 잡무 담당' 혹은 '만년 졸업 유예생'이었다.
"동력이 완전히 유입 차단된 상태라고 적혀 있긴 하지만 제어 룬 회로에는 항상 잔류 압력이 맺힐 수 있습니다. 일단 재보죠."
에른은 낡은 가죽 가방에서 놋쇠 감지판과 끝이 날카롭게 벼려진 계측용 철제 긁개를 꺼냈다.
그의 곁에서는 성실한 장학생 토메 르윈이 굳은살투성이인 두꺼운 손으로 성벽 파쇄기의 보조 구동 축을 유심히 건드리고 있었다. 재료 분석과 분석학에 뛰어난 토메의 시선은 장비 외피의 미세한 금속 피로 균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상하네요. 7년 동안 북부 국경 폐허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보조 구동 축의 주조선이 너무 깨끗합니다. 지지대 결합 볼트에도 3주 이내에 고급 마도유를 칠한 흔적이 남아 있어요."
토메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주철 피복 표면의 기름막을 문질렀다.
"관리가 철저했던 거겠죠. 군용 관인 장비라고 해서 전부 부식되는 것은 아닙니다."
은빛 단발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긴 세라 디 오르벨이 먼지 하나 없는 제복 차림으로 서류판을 들며 차갑게 잘라 말했다. 안전 인장국 견습관 자격을 겸하고 있는 학과 수석생답게 그녀의 태도는 절제되어 있었고 눈빛은 완고했다.
"학과 행정실에서 세 차례의 안전 검사를 거쳐 반입 허가를 내린 실습 기재입니다. 비인가 구조 변경이나 필요 이상의 임의 해체는 안전 점수 감점 사유가 됩니다."
세라의 공손한 존댓말 뒤에는 규정과 인장국의 절차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절차와 서류가 실시간 장치 상태를 100퍼센트 보증하지는 못합니다."
에른은 놋쇠 감지판을 성벽 파쇄기 측면의 룬 회로 접속부에 천천히 가져다 대었다. 감지판 중앙에 박힌 세 알의 미세한 마정석 결정이 옅은 빛을 발하며 떨렸다.
"출력 수치 0.02. 외부 마력 유입선 완전 차단 확인. 측정상으로는 이상 없습니다."
리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렌치를 탕 소리가 나게 작업대에 내려놓았다.
"거봐요. 그냥 텅 빈 청동 껍데기라니까요. 조교님은 매사에 너무 조심성이 과하세요. 학과 아이들이 조교님을 늙은 쥐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네요. 이러니까 몇 년째 졸업 논문 통과를 못 하시죠."
직설적인 리아의 핀잔에 세라가 눈살을 찌푸렸고 토메는 난처한 듯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에른은 리아의 무례한 언사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아카데미 복도와 연구실에서 들어온 비아냥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른은 조용히 감지판을 집어넣고 성벽 파쇄기의 중앙 룬판 표면에 맨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에른 바일의 마력 보유량은 최하급 계측기로 측정해도 겨우 반응이 올 만큼 보잘것없었다. 타인처럼 화려한 원소 마법을 쓰거나 회로를 억지로 제어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대신 그에게는 연구원들 중 누구도 가지지 못한 유일한 저출력 감각이 있었다.
마력이 스쳐 지나간 금속과 룬 문자의 틈새에 남는 미세한 진동 파형을 읽어내는 능력.
학계에서는 무의미한 회로 소음이나 착각이라 치부하는 '잔향 감식'이었다.
차가운 청동판 위로 잉크 묻은 손가락을 얹은 순간, 에른의 회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외부 마력선이 잘려 나가 고요해야 할 거대 병기 내부에서 아주 얇고 이질적인 불협화음이 울리고 있었다.
'이 파동은 대체 뭐지?'
외부에서 마력이 주입될 때 발생하는 규칙적인 맥동이 아니었다. 마도기관 내부의 닫힌 고리 안에서 세 가지 요소가 서로의 주파수를 교차시키며 스스로 울림을 팽창시키는 진동이었다. 마력로 차단 밸브에서 시작된 미세한 파동이 중간 룬 회로를 통과해 구동부의 거대한 기어로 전달될 때마다 진동의 폭이 두 배씩 배가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 부품의 노후화나 유격이 만드는 소음이 아니었다.
에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차가운 기억이 솟구쳐 올랐다. 12년 전, 그의 고향 광산 마을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던 마도 난방로 붕괴 사고. 그 참혹한 밤, 붕괴 직전 벽면 배관을 따라 울려 퍼지던 섬뜩한 중첩 진동 파형과 지금 손끝에 닿는 울림이 완벽하게 겹쳐지고 있었다.
"모두 즉시 뒤로 물러서세요."
에른의 건조하던 목소리에 전에 없던 팽팽한 긴장감이 실렸다.
"네? 방금 계측기로 이상 없다면서요?"
리아가 렌치를 집어 들려다 말고 멈칫했다.
"마도기관 내부의 진동 주기가 겹치고 있습니다. 과부하 공명이 시작됐어요."
세라가 즉시 서류판을 쳐들며 수치를 대조했다.
"말도 안 됩니다. 마력 입력선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마정석 챔버의 압력 게이지도 0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입이 없는데 어떻게 공명이 일어납니까?"
"입력이 없어도 파형이 닫힌 회로 안에서 순환하며 외부 대기 마력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제어반의 룬판이 외부 신호 없이 진동을 증폭시키고 있어요!"
에른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순간, 성벽 파쇄기 하부 결합부에서 둔탁한 금속 비명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바닥을 고정하고 있던 부식된 목재 받침대가 비틀려 나가며 붉은 녹가루와 비산 먼지가 공중으로 폭발하듯 흩뿌려졌다. 동력이 차단되어 굳어 있던 세 겹의 청동 포신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스스로 위로 올려지기 시작했다.
"어, 어라? 이 기계 왜 이러죠?"
리아의 얼굴에서 짓궂은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벽 파쇄기의 내부 구동 기어가 톱니를 맞물리며 실습동 전체의 석조 바닥을 흔들었다. 차단 밸브가 고착된 제어반 룬 회로가 불길한 붉은색 잔향을 뿜어냈다. 외부에서 마정석을 주입하지 않았음에도 장치는 닫힌 회로의 진동을 통해 주변 마력을 흡수하며 폭발적인 출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비상 차단 밸브가 움직이지 않아요!"
토메가 레버를 잡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당겼지만 유압 관로가 잔류 압력으로 단단하게 부풀어 올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위험합니다! 포신 주철 축이 왼쪽으로 기웁니다!"
세라의 비명이 먼지 구름 속에서 터져 나왔다.
공명 진동의 가중을 견디지 못한 하부 지지대가 비틀려 부러지면서 수 톤 무게의 청동 포신 축이 좌측 실습대를 향해 괴물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는 당황한 리아와 토메가 서 있었다.
"피해!"
에른은 망설임 없이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그는 리아의 어깨를 강하게 낚아채 안전지대로 던지듯 밀쳐내고 동시에 토메의 제복 뒷덜미를 잡아채 바닥으로 함께 굴렀다. 두 학생이 몸을 굴려 포신의 하락 궤적에서 벗어난 직후, 거대한 청동 포대가 석조 바닥을 강타했다.
쿠우웅!
돌가루와 쇳가루가 자욱한 먼지 구름이 되어 공중을 채웠다. 그러나 포대는 멈추지 않았다. 포신 내부의 압력 실린더가 팽창하며 비정상적인 열기를 내뿜었고 제어 룬판 전체가 기괴한 빛을 내며 과부하의 마지막 단계로 달려가고 있었다.
"주 마력로 회로를 끊어야 합니다!"
세라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소리쳤다.
"안 됩니다! 지금 주 마력로 회로를 강제로 끊으면 내부 공명이 갇히면서 장치 전체가 유압 폭발을 일으킵니다!"
에른은 바닥에서 일어나며 목소리를 쳤다.
그는 주머니에서 계측용 철제 긁개를 바짝 쥐었다. 마력이 미미한 그가 고급 방어막을 펼치거나 공격 마법으로 포대를 멈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포신 측면에 새겨진 비대칭 룬 회로의 진동 파형이 어디에서 꼬이고 있는지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마력로, 룬 회로, 구동부.
이 세 요소가 열린 관리가 아니라 닫힌 순환을 이루며 진동을 폭주시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순환을 유지하는 회로의 핵심 접점 한 곳만 잘라내면 된다.
에른은 열기와 쇳가루 바람이 사정없이 뿜어져 나오는 포대 측면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조교님! 거기는 위험해요!"
리아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소리쳤지만 에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운 철제 긁개의 끝을 성벽 파쇄기의 제어 룬판, 세 번째 접점 문양에 정확히 밀어 넣었다.
가장 강렬한 잔향 불협화음이 집중되고 있는 비대칭 회로의 교차점.
키이익!
에른은 망설임 없이 철제 긁개를 힘껏 그어 내렸다.
청동 표면에 각인되어 있던 룬 문자 한 줄이 강하게 파여 나가며 파란 불꽃과 함께 찢겨 나갔다.
순간, 실습동 전체를 찢을 듯 울리던 기괴한 쇠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웅-
쿠쿵.
포신을 붉게 감싸고 있던 마력 잔향이 공기 중으로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과부하로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던 유압 관로가 하얀 김을 뿜어내며 조용히 가라앉았다. 실습동 내부에는 오직 학생들의 거친 숨소리와 먼지 날리는 서늘한 정적만이 남았다.
리아는 주저앉은 채 멈춰 선 성벽 파쇄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도대체 뭘 하신 거예요?"
리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에른은 압도적인 마력으로 장치를 누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룬 회로의 작은 문자 한 줄을 그어 내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수 톤에 달하는 군용 병기의 폭주가 순식간에 정지했다.
세라가 떨리는 손으로 서류판을 고쳐 쥐며 에른에게 다가왔다.
"조교님. 이건... 공식 안전 인장을 받은 실습용 기재의 임의 회로 훼손입니다. 명백한 규정 위반입니다. 아무리 비상 상황이었다고 해도 허가받지 않은 방식으로 회로를 끊어버린 것은 안전 인장국 보고 대상입니다."
세라의 공손한 문장 속에는 숨길 수 없는 혼란과 충격이 섞여 있었다. 공식 서류와 규정을 벗어난 조교의 현장 대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규정과 절차를 고집하다가 학생들이 포대에 깔려 다칠 뻔했습니다."
에른은 건조하게 대답하며 긁개를 품속에 넣었다.
그때 파쇄기 하부의 파단면을 유심히 관찰하던 토메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교님. 이 금열 용접 흔적... 아주 이상합니다."
토메가 굳은살 많은 손가락으로 주철 지지대의 파손된 단면을 가리켰다.
"겉면은 7년 전 부식된 합금 부품인데, 내부 파단면은 최근에 강제로 고주파 용접을 덧씌운 자국이 또렷해요. 3주 동안 폐기장에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다는 학과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누군가 최근에 이 장비를 손대고 수리했어요."
토메의 말에 실습동 내부의 서늘한 공기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에른은 아무 말 없이 성벽 파쇄기의 긁힌 룬판을 손끝으로 가만히 문질렀다.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지는 잔류 진동.
그것은 회로가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금속 깊은 곳에 얇고 섬뜩하게 남아 맴도는 서명 같은 파형이었다.
마력이 부족하거나 부속이 낡아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특정 진동 주기가 겹치면 무조건 폭주하도록 짜인 숨겨진 공명 구조. 그리고 그 구조는 12년 전 광산 난방로 사고 현장에서 에른이 온몸으로 느꼈던 진동 파형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에른은 잉크 얼룩진 손으로 품속의 낡은 측정 노트를 꺼냈다.
여섯 번이나 심사위원회에서 반려되어 먼지가 쌓여 가던 그의 졸업 논문 초안. 에른은 노트를 펼치고 방금 긁어낸 회로의 미세 주파수 수치를 하나씩 정확하게 적어 내려갔다.
"조교님?"
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에른은 시선을 노트에서 떼지 않았다.
"논문 주제를 완전히 다시 써야겠습니다."
체념으로 피로하던 회색 눈동자에 끈질기고 서늘한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폐기장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오래된 전쟁의 비밀이 마침내 그 서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