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싶어서 범인 잡았더니 수사 국장이 되어버렸다

5화: 임시직인데 특별 수사관으로 강제 승격
리안은 국장실 문 앞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지정된 증거물 분류 및 보고서 초안 작성.’ ‘할당량 완료 시 퇴근 가능.’ 어디에도 국장실 출석이나 연쇄 사건 기록 보존은 없었다.
돌리면 일이 늘어난다. 돌리지 않으면 무단결근이 된다.
그는 노크했다.
"들어오게."
에드윈 발테르의 목소리는 문 너머에서 바로 들렸다. 마치 리안이 도망칠 시간을 계산해 두고 기다린 것처럼 침착했다.
문을 열자 국장실 탁자 위에 붉은 납 봉인이 찍힌 사건철 열두 권이 보였다.
한스는 탁자 옆에 서 있었다. 밤을 새웠는지 셔츠 소매가 구겨져 있었고 눈은 평소보다 붉었다. 미라 베른은 창가에 기대어 골목 쪽만 보고 있었다.
"늦었군요." 한스가 말했다.
"정시입니다. 국장실 출석은 제 근무표에 없으니까요."
리안은 계약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 보시면 제 업무가 적혀 있습니다. 종이와 상자와 먼지. 사람은 없습니다."
발테르는 계약서를 읽지도 않았다.
"기록 보존 보조는 어제 내린 명령이다."
"동의는 안 했는데요."
"그래서 자네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설명하려는 거다."
"저는 설명을 들으면 일이 늘어난다는 경험칙이 있습니다."
"그 경험칙은 맞네."
발테르는 맨 위 사건철을 열었다. 첫 장에는 3개월 전 날짜와 함께 작은 항구 창고의 약도가 붙어 있었다. 사라진 물품은 청색 마석 조각이었다. 증거물 이송을 맡았던 마부 한 명은 마차만 남긴 채 사라졌다.
두 번째에는 낙인 증폭용 금속 가루가 있었고 봉투를 옮기던 수용소 경비가 실종됐다. 이후에도 물품 이름과 직업은 달랐지만 기록마다 ‘회수 여부’는 비어 있었다.
"전부 물건이 사라지고 운반책이 없어졌군요."
"그렇다." 발테르가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운반책으로 지목된 사람들이다. 일부는 단순 심부름꾼이고 일부는 협박당한 내부자였지."
한스가 낮게 덧붙였다.
"어제 하수구에서 나온 호각도 그중 한 명의 것이겠죠."
리안의 손끝이 멈췄다. 삐뚤빼뚤하게 새겨진 글자가 떠올랐다. 아빠 빨리 와.
그는 그 기억을 지우듯 계약서 모서리를 눌렀다.
"그 사람들 가족에게는 실종으로 처리했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네. 시체도 없고 확실한 납치 흔적도 없었으니까."
"그럼 검은 눈에 넘기면 되지 않습니까. 저는 어제 마석 하나 찾았을 뿐인데요."
미라가 창가에서 돌아섰다.
"검은 눈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마다 현장 기록이 미세하게 달라요. 누군가는 흔적을 지우고 누군가는 남깁니다."
"그게 제 사정은 아니죠."
발테르는 사건철 하나를 리안 앞으로 밀었다.
"어제 자네가 지목한 운반책은 열두 번째와 같은 역할을 했다. 종탑 아래로 가라는 지시도 같고 종이꽃 표식도 같은 노선이다. 우연이라면 지금 여기서 접어도 되겠지."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하지만 자네 부친은 그 우연을 조사하다 사라졌다."
아버지의 이름이 나오면 대화는 늘 길어졌다. 가문의 영광과 돌아오지 않은 사람. 누구도 아버지가 왜 집에 잘 오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분 일은 제 계약 범위가 아닙니다."
"그렇겠지." 발테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건철은 네가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낫다. 남의 입으로 들으면 틀린 부분을 찾기 어려우니까."
리안은 잠시 탁자 위의 남색 표지를 보았다.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아버지가 남긴 기록까지 건드렸다면 그냥 종이 더미로 치부하기도 어려웠다.
"한 시간입니다." 리안이 말했다. "한 시간 안에 제가 볼 만한 게 없으면 증거물실로 돌아갑니다."
"좋아."
발테르가 바로 일어섰다.
리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무 쉽게 받으시면 불안한데요."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그 말이 더 불안했다.
기록 보존실은 청사 지하 가장 안쪽에 있었다. 벽을 따라 놓인 상자마다 붉은 납 인장이 박혀 있었다.
"열람 대장은 여기입니다."
기록관 도로테아는 회색 장갑을 낀 손으로 두꺼운 장부를 펼쳤다. 그녀는 리안을 보자마자 가방의 낡은 금속 장식을 확인했다.
"앨런 선임 수사관의 가방과 같은 모델이군요."
"그분 물건은 대체로 튼튼해서요. 사람보다 오래 갑니다."
"선임 수사관 실종 사건철입니다. 정식 열람자는 발테르 국장님과 당시 담당관 둘뿐입니다. 최근에는 국장님이 사흘 전에 한 번 열람했습니다."
"그 전에는요?"
"실종 전날 앨런 선임 수사관 본인입니다."
리안은 봉인 철사 한쪽의 새 긁힘을 확인하고 열람 대장을 살폈다.
세 줄의 이름 아래에 빈칸 하나가 있었다. 이름은 없고 시간만 적혀 있었다. 새벽 두 시 십삼 분.
"이 빈칸은 뭡니까?"
도로테아가 몸을 숙였다.
"대장은 오래돼서요."
"이름만 지워졌고 종이 결도 다릅니다."
도로테아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보존실 열쇠는 저와 국장님, 검은 눈 수사관에게만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열쇠 없이 들어올 방법을 찾았겠죠."
리안은 철사를 집게로 풀었다. 사건철 뒷부분에는 아버지가 손으로 써 넣은 메모가 있었다.
아버지의 필체였다. 글씨는 빠르고 눌려 있었다.
[종이꽃 표식. 폐쇄 우편 마차 노선.]
[종탑 아래에서 물품 인계. 보존 목록과 실제 반출량 불일치.]
[반출 허가서의 인장이 진짜보다 한 겹 얕다.]
리안은 마지막 문장에서 손을 멈췄다.
아버지는 늘 결론만 적었다. 지금은 그 버릇이 아주 성가셨다.
"종탑 아래와 종이꽃 표식은 맞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그럼 선임 수사관님은 오래전부터 같은 길을 추적하신 겁니까?"
"같은 길이라고 단정하지 마세요. 표식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리안은 다음 장을 넘겼다.
쪽수는 47 다음에 49였다.
48쪽이 없었다.
종이가 찢긴 흔적은 없었다. 대신 철사 구멍 주변에 작은 종이 가루가 눌어붙어 있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한 장만 뽑아 낸 뒤 새 종이와 함께 다시 묶은 흔적이었다.
"누락된 쪽에 결재 인장이 있었겠군요."
리안은 47쪽과 49쪽을 나란히 놓았다. 앞 장에는 ‘다음 반출자 확인 필요’라는 메모가 있었다. 뒷장에는 ‘추적 중단. 상부 지시’라는 문장만 남아 있었다.
상부 지시를 승인한 이름은 검게 긁혀 있었다.
한스의 얼굴이 굳었다.
"누군가 수사국 기록을 손댔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보입니다."
리안은 손목의 회중시계를 쥐었다. 잔상을 조금만 더 읽으면 누가 종이를 뽑았는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시계를 열었다.
방 안의 선들이 잠깐 뒤집혔다. 납 인장을 덮은 장갑과 손목의 금속 고리가 보였다.
선은 금방 끊겼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더 보면 공백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그는 시계를 닫았다.
"누군가 왔습니다. 장갑을 꼈고 한 장을 빼냈어요. 그 이상은 아직 모릅니다."
한스가 물었다.
"아직이요?"
"더 알아내는 건 퇴근 후에 생각해 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리안은 아버지의 마지막 메모를 다시 보았다. 글자 끝이 유난히 깊게 눌려 있었다.
[안쪽 문을 믿지 마라.]
리안은 사건철을 덮었다.
"한 시간이 거의 끝났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발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보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미라가 먼지 묻은 외투 차림으로 들어왔다. 검은 눈 수사관의 제복 끝에는 회색 재가 묻어 있었다. 어제 골목에서 본 것과 비슷한 색이었다.
"폐쇄 우편 노선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발테르가 뒤따라 들어왔다.
"어디까지 갔나?"
"동쪽 골목에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수사국 창고로는 가지 않았어요."
미라는 작은 지도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마차 바퀴 자국은 청사 뒤편을 지나 제국 광장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광장 외곽에서 끊겼습니다. 밤사이 비가 조금 와서 그 뒤는 판별하기 어렵습니다."
리안은 지도와 아버지 메모를 번갈아 봤다. 종탑은 제국 광장 서쪽 끝에 있었다. 종이꽃 표식은 거기까지 이어졌다.
발테르는 외투 안쪽에서 작은 금속 패를 꺼냈다. 은색 바탕 위에 검은 눈동자와 저울 문양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리안 앨런. 오늘부로 국장 직속 특별 수사관으로 임명한다."
리안은 패를 받지 않았다.
"아니요."
"아직 조건을 말하지 않았다."
"조건과 무관합니다. 저는 임시 보조 요원입니다. 이 임무는 검은 눈과 정식 수사관이 하시면 됩니다."
"정식 수사관 중 누가 기록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발테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지금은 현장을 빨리 읽고 기록을 함부로 믿지 않을 사람이 필요해."
"국장님은요?"
"내가 의심받는 쪽이라네."
누락된 대장의 빈칸과 사건철의 새 철사는 국장도 완전히 깨끗하다고 보장하지 않았다.
"특별 수사관이면 뭐가 달라집니까?"
"현장 접근 권한, 수사 인력 요청 권한, 검은 눈과의 공동 조사 권한. 자네가 끝났다고 판단한 사건을 불필요하게 끄는 사람도 줄어들겠지."
"퇴근 승인 권한도요?"
발테르는 잠시 생각했다.
"사건을 해결한 뒤에는 내가 막지 않겠다."
"그 말은 지금도 계약서에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국장 명의로 적어 주지."
한스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운반책들이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제 가방을 버린 사람도 누군가에게 끌려갔을 뿐이지 시체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빨리 끝내고 싶으시잖습니까." 한스가 말했다.
리안은 금속 패를 받아 들었다. 생각보다 차가웠다.
‘권한이 많으면 빨리 끝낼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이었지만 최소한 쓸모 있는 변명이었다.
"특별 수사관은 임시직보다 월급이 오릅니까?"
"위험 수당이 붙네."
"그럼 두 달치 월세는 먼저 확보하겠군요."
발테르는 임명장에 서명했다.
붉은 밀랍이 종이 위에 떨어졌다. 인장이 눌리는 순간 리안은 봉인 가장자리에서 흐릿한 다섯 갈래 자국을 보았다. 검은 손 문양과 닮았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러나 아예 닮지 않았다고 넘기기에는 너무 선명했다.
전령이 보존실 문을 두드린 것은 임명장을 접어 넣은 직후였다.
"국장님! 제국 광장에서 급보입니다!"
"분수대 아래 배수로에서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손에 수사국 보존실 납 인장을 쥐고 있습니다."
도로테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보존실 인장은 상자 봉인용입니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
"발자국은?" 미라가 물었다.
"있습니다. 물가에서 광장 중앙까지 이어집니다. 푸른빛이 나는 발자국입니다. 비가 왔는데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한스가 곧장 가방을 들었다.
발테르는 리안을 바라봤다.
"첫 임무다."
"임명장을 반납하면 아직 늦지 않습니까?"
"늦었네."
"부당한 계약 변경인데요."
"광장까지 가는 마차 안에서 이의 제기를 적게."
리안은 잠깐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메모가 떠올랐다.
안쪽 문을 믿지 마라.
누군가 보존실의 문을 열었고 누군가 사람을 광장에 버렸다. 끝나지 않는 일은 최악이었다.
리안은 가방 끈을 어깨에 걸쳤다.
"광장까지만입니다. 시체 확인하고 범인 잡고 돌아옵니다. 해가 지기 전에는요."
"노력해 보게." 발테르가 말했다.
"그 말이 제일 싫습니다."
그는 먼저 철문을 향해 걸었다.
리안은 계단을 올라가며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1시 42분.
점심 전 퇴근 계획은 이미 죽었다.
문제는 광장에 누운 사람이 그 계획보다 먼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