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서 유튜버로 살아남기

1화: 배터리 17%, 구조를 요청합니다
렌즈 앞을 가로막은 것은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썩어가는 합판 조각들이었다.
“후우…….”
강도윤은 카메라 앵글을 내리고 길게 숨을 토해냈다.
손끝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삼각대에 물린 소형 액션캠의 붉은 녹화 램프가 깜빡일 때마다 부서진 천장 틈으로 회색 먼지가 부옇게 흩날렸다.
폐업 직전의 1인 미디어 채널 ‘도윤의 방랑기’.
한때 구독자 10만을 바라보며 제법 잘나가던 여행 채널은 반년 전 터진 허위 조작 논란 하나로 하루아침에 바닥까지 추락했다.
지역 축제 현장을 취재하다 악의적인 편집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고 뒤이어 쏟아진 비난 여론에 채널 신뢰도는 산산조각 났다. 결백을 증명하려 해명 영상을 올렸지만 돌아온 것은 조롱 섞인 악플과 구독 취소뿐이었다.
함께 일하던 편집자와 촬영 보조는 진작에 떠났다. 남은 것은 장비 렌탈비 미납금과 사무실 계약 위약금으로 불어난 빚더미뿐이었다.
‘이번 촬영마저 망하면 진짜 끝이다.’
도윤은 메마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강원도 깊은 산자락에 방치된 대형 폐리조트. 온갖 괴담과 흉흉한 소문이 무성해 일반인의 발길이 끊긴 지 십 년이 넘은 흉가 단지였다. 마지막 남은 액션캠 하나와 스마트폰을 쥐고 홀로 이곳까지 기어들어 온 것은 오직 자극적인 화제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오디오 테스트, 원, 투. 마이크 수음 정상.”
도윤은 마른침을 삼킨 뒤 카메라 렌즈를 향해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윤입니다. 오늘은 십수 년간 방치되어 수많은 흉가 체험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북부 폐리조트 지하 시설을 단독으로 탐색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제 뒤로 보이는 철문이 바로…….”
말이 채 끝나지 않은 순간이었다.
우우웅―!
발밑 깊은 곳에서 묵직하고 기괴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공간의 공기 자체가 뒤틀리며 유리창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찔렀다.
“뭐, 뭐야?”
도윤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바닥과 콘크리트 벽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벽면 틈새로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한 푸른빛의 실금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로 부풀어 올랐다.
쿠구구구궁!
알 수 없는 강력한 인력이 도윤의 몸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삼각대에 고정되어 있던 액션캠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고 도윤의 몸뚱이 역시 바닥에서 붕 떴다.
“큭…… 으아아악!”
기둥이라도 붙잡으려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단단한 시멘트가 아니라 차갑게 소용돌이치는 미지의 빛 조각들이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공간이 통째로 뒤집히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극심한 구역질과 함께 도윤의 의식은 끝없는 암전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축축했다.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 곰팡내나 시멘트 가루 냄새가 아니었다. 짙고 끈적한 부엽토 냄새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알싸하고 서늘한 수풀의 향기였다.
“쿨럭! 컥, 쿨럭……!”
도윤은 거친 기침을 터뜨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입안 가득 축축한 흙모래가 씹혔다. 온몸의 뼈마디가 통째로 으스러진 것처럼 욱신거렸다. 멍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도윤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폐리조트의 지하 복도 따위는 흔적조차 없었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하게 치솟은 기괴한 고목들이었다. 나무 기둥 하나가 대형 덤프트럭보다 굵었고 나뭇가지마다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낯선 이끼가 덩굴처럼 얽혀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파도 같은 소리를 냈다.
도윤은 비틀거리며 흙바닥에서 일어섰다.
무심코 나뭇가지 틈새로 머리 위를 올려다본 순간 도윤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해 버렸다.
우거진 수관 너머로 펼쳐진 밤하늘은 짙은 보랏빛이었다. 그리고 그 기이한 하늘 한가운데에 크기와 색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달이 나란히 떠 있었다.
하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핏방울처럼 선명한 붉은빛이었다.
“말도 안 돼…….”
도윤은 제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짜아악!
얼얼한 통증이 뼛속까지 생생하게 파고들었다. 환각이 아니었다. 꿈일 리도 없었다.
세트장이나 몰래카메라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이토록 압도적인 규모의 원시림과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실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차원이동? 이세계에 떨어진 건가?’
인터넷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허황된 상상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도윤은 허겁지겁 바닥을 뒤져 흩어진 물건들을 그러모았다.
다행히 크로스로 메고 있던 카메라 가방은 몸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바닥에 나뒹굴던 소형 액션캠을 주워 들었다. 외관에 흙이 조금 묻었을 뿐 다행히 렌즈나 본체는 깨지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액정을 켜자마자 화면 상단의 상태 표시줄이 도윤의 시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서비스 불가]
[GPS 신호 검색 실패]
[배터리 17%]
“하…… 미치겠네.”
통신망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112나 119는 물론이고 비상 긴급 통화조차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배터리 잔량이었다. 분명 출발 전 완충해 두었던 기기였지만 균열의 파동에 휩쓸리는 과정에서 방전되었는지 고작 17퍼센트만 남아 있었다. 가방 안의 보조배터리는 소용돌이의 충격 때문인지 침수 흔적과 함께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낯선 미지의 숲속에 배터리 17퍼센트짜리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조난당했다.
스마트폰 전원이 꺼지는 순간 손전등도, 시간 확인도, 외부와 연결될 실낱같은 희망도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때였다.
스스슥…… 콰드득!
등 뒤 빽빽한 어둠 속에서 굵은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의 목덜미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숨을 멈추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둠이 짙게 깔린 덤불 사이로 불길하게 타오르는 붉은 안광 두 개가 번뜩이고 있었다. 맹수가 낮게 내쉬는 거친 숨결이 밤바람을 타고 스산하게 퍼져나갔다.
지구의 일반적인 늑대나 곰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체구였다. 어둠 속에 어렴풋이 드러난 윤곽만으로도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맹수였다.
크르르르르…….
낮게 깔린 으르렁거림이 땅바닥을 타고 도윤의 발끝까지 전해졌다.
‘움직이면 죽는다.’
본능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원시림에서 불빛도 없이 내달렸다간 맹수의 먹잇감이 되거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뿐이었다.
‘구조를 요청해야 해. 누구에게라도 내 위치를 알려야…….’
하지만 전화망은 완전히 먹통이었다.
그 순간 도윤의 머릿속에 지푸라기 같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라이브 스트리밍.’
전화도 안 터지는 곳에서 생방송이 될 리 만무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지금 상식 따위가 통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서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윤은 액션캠의 C타입 연결선을 스마트폰 충전 단자에 꽂았다. 그리고 화면 구석에 깔려 있던 플랫폼 스트리밍 앱을 터치했다.
[네트워크 연결 상태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로딩을 알리는 원이 위태롭게 빙글빙글 돌았다. 당연히 연결 실패 팝업이 떠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찰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손톱만 한 빛의 알갱이 하나가 나비처럼 날아들었다.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맑고 영롱한 푸른빛을 머금은 작은 구체였다. 그것은 공중을 부드럽게 유영하더니 액션캠 렌즈 주변을 호기심 어린 듯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뭐야?”
빛구체가 액션캠 렌즈 표면에 가볍게 닿는 순간 찌릿한 마찰음과 함께 카메라 내부 회로가 공명하듯 미세한 파동을 일으켰다.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이 번쩍이며 푸른 빛을 토해냈다.
삐빅!
[미확인 고주파 신호 감지.]
[긴급 스트리밍 채널에 연결되었습니다.]
[실시간 라이브 송출을 시작합니다.]
도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되는 현상이었다. 기지국조차 없는 다른 세계의 숲 한가운데에서 지구의 스트리밍 서버가 응답한 것이다.
화면 한가운데에 방송 제목 입력창이 깜빡였다.
도윤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렀다.
[제목: 이세계에서 구조 요청합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송출 시작 버튼을 누르자 화면 좌측 상단에 선명한 붉은색 [LIVE] 마크가 켜졌다.
카메라 렌즈에 달라붙은 작은 빛구체는 마치 새로운 놀잇감을 찾은 아이처럼 부드러운 온기를 내뿜으며 액션캠 주변을 은은하게 밝혔다.
화면 하단의 시청자 수가 0에서 1로 바뀌었다.
[현재 시청자: 1명]
도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액션캠 렌즈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기요……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들려요?”
도윤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갈라져 나왔다.
잠시 후 스마트폰 화면 아래로 첫 번째 실시간 채팅이 올라왔다.
― [치킨먹는너구리]: 엥? 도윤 채널 알림 떠서 들어왔는데 이 시간에 생방을 켠다고?
― [치킨먹는너구리]: 폐가 간다더니 낚시 방송 켰네 ㅋㅋㅋ 제목 어그로 보소
“낚시 아닙니다!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도윤은 스마트폰과 연결된 액션캠을 번쩍 들어 올려 주변의 거대한 고목들과 보랏빛 밤하늘, 그리고 선명하게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비추었다.
“보이세요? 저 하늘에 달이 두 개 떠 있다고요! 폐리조트 지하에서 갑자기 이상한 빛에 휩쓸려 여기로 떨어졌습니다. 주변에 정체불명의 괴물이 있어요. 제발 경찰이든 소방서든 신고 좀 해주세요!”
시청자 수가 3명, 5명으로 늘어났다.
심야 시간에 잠들지 않고 플랫폼을 배회하던 야행성 누리꾼들이 알림을 타고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 [방구석여포]: ㅋㅋㅋㅋㅋ 야 세트장 퀄리티 미쳤다 어디 영화 촬영장이냐?
― [달려라하니]: CG 오지네 어디서 특수효과 팀 섭외함? 돈 좀 썼네
― [민트초코단]: 저번 주작 논란 덮으려고 이번엔 판타지 컨셉 잡았냐? ㅋㅋㅋ 눈물 난다
― [치킨먹는너구리]: 달 두 개 띄운 거 개웃기네 ㅋㅋ 저거 빔프로젝터 쏜 거냐?
도윤의 가슴속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답답함과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진짜라고요!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거대한 세트장을 짓습니까! 저 빚더미에 앉아서 팀원들도 다 나갔다고요! 제발 장난으로 보지 마시고 위치 추적이라도 부탁드립니다!”
도윤이 절규하듯 소리쳤지만 채팅창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과거에 씌워졌던 조작의 낙인 때문에 시청자들은 도윤의 절박한 외침을 그저 정교하게 연출된 노이즈 마케팅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화면은 조회수를 빨아먹기 위한 한 편의 쇼에 불과했다.
바로 그때였다.
우지지직― 콰앙!
등 뒤에서 아름드리 고목이 통째로 부러져 나가는 굉음이 원시림 전체를 뒤흔들었다.
도윤의 호흡이 턱 멎었다.
카메라 렌즈에 붙어 있던 작은 빛구체가 깜짝 놀란 듯 파르르 떨리며 순간적으로 밝기를 환하게 키웠다.
빛구체가 뿜어낸 푸른빛이 도윤의 등 뒤 어둠을 대낮처럼 비추었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몸길이가 4미터를 훌쩍 넘는 거대한 은빛 늑대였다. 녀석의 등줄기를 따라 뼈처럼 단단한 가시들이 솟아나 있었고 피처럼 붉은 안광이 도윤의 정수리를 꿰뚫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고막이 찢겨 나갈 듯한 야수의 포효가 숲을 뒤흔들었다. 외장 마이크를 타고 들어간 포효가 스마트폰 스피커를 찢을 듯 터져 나왔다.
스마트폰 화면 속 채팅창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 [치킨먹는너구리]: ……어?
― [달려라하니]: 야 저거 뭐냐?
― [방구석여포]: 저거 인형탈 아니지? 대가리가 왜 저렇게 커?
― [민트초코단]: 저 소리 진짜 물리적인 소리 같은데……?
그리고 도윤의 시야 구석에서 스마트폰 화면 상단의 배터리 표시가 깜빡이며 숫자를 떨어뜨렸다.
[배터리 16%]
거대 늑대가 시뻘건 입을 쩍 벌리며 도윤을 향해 묵직한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