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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타이탄 로봇의 역전 신화1화

고물 타이탄 로봇의 역전 신화

고물 타이탄 로봇의 역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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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퇴역식의 진동

제3 정비 격납고에는 새벽보다 먼저 폐기 라벨이 붙었다.

노란 라벨은 아틀라스-09의 흉부 장갑에 붙어 있었다. ‘운용 종료. 부품 회수 후 해체.’ 바람도 없는 격납고 안에서 라벨 끝이 작게 떨렸다.

한도윤은 그 떨림을 보고 손을 멈췄다.

“바람은 없는데.”

그는 장갑 표면에 손바닥을 대었다. 차가운 금속 아래에서 약한 맥박이 올라왔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일곱 초 뒤에 다시 한 번.

도윤은 손목 단말을 켜고 진동 기록을 불러왔다. 아틀라스-09, 통칭 철심. 주동력 67퍼센트. 냉각 효율 42퍼센트. 왼쪽 발목 구동 54퍼센트. 탄약 없음.

퇴역 직전의 수치였다. 그래도 진동 간격만큼은 낡은 냉각 펌프의 고장 패턴이 아니었다.

“도윤아. 손 떼.”

뒤에서 최만식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정비반장은 크레인 리모컨을 끼고 폐기 목록을 확인하고 있었다.

“라벨 붙은 기체에 손대면 네가 마지막 작업자가 된다.”

“아직 동력선 안 끊었죠?”

“그래서 더 손 떼라는 거야. 오전 여덟 시에 해체업체가 온다.”

도윤은 대답 대신 철심의 왼쪽 발목 덮개를 열었다. 볼트 세 개를 풀자 먼지가 쏟아졌다. 구형 진동 센서의 납땜 부위에는 녹이 번져 있었지만 신호는 센서 하나에서만 오지 않았다. 발목과 흉부와 왼쪽 어깨가 같은 간격으로 떨렸다.

그는 진동을 주파수 표로 바꿔 최근 카론-7 외곽의 공명 사고 기록과 겹쳤다. 채굴장 붕괴 전후에 남은 미세 진동과 간격이 맞았다.

철심이 바닥을 읽고 있었다.

“반장님. 채굴장 쪽 자료 좀 빌려 주세요.”

“왜?”

“이 기체가 아직 뭔가를 듣고 있습니다.”

“철심은 듣는 기체가 아니야. 낡은 지질 레이더가 오작동하는 거지.”

“오작동이면 간격이 매번 달라야 합니다.”

도윤이 단말을 돌려 보이는 순간 격납고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렀다.

―아틀라스-09 퇴역 절차를 개시합니다. 주동력 차단 후 냉각수 회수에 들어갑니다.

철심의 흉부 안쪽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발밑 철판이 알아챌 정도였다.

도윤은 벽면 통신기를 잡았다.

“통제실, 제3 격납고다. 카론-7 남동 채굴장 방향에서 비정상 진동이—”

“정비반은 퇴역 절차에 집중하십시오.”

통신이 끊겼다.

최만식이 낮게 말했다.

“괜히 건드리지 마라. 오늘은 기체를 살리는 날이 아니라 보내는 날이야.”

도윤은 철심을 올려다봤다. 회색 장갑은 얼룩투성이였고 왼쪽 어깨에는 몇 번이나 갈아 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최신형처럼 날렵하지도 광고 영상처럼 빛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저 안에서 아직 바깥을 듣고 있었다.

도윤은 통제실로 뛰었다.


통제실 화면에는 카론-7 남동 채굴장의 경비표가 떠 있었다. 경비 메카 두 대, 감시 드론 네 대, 민간 셔틀 세 대. 괴수 경보 단계는 0이었다.

서윤서는 화면 앞에서 경비표를 넘겼다. 짧은 흑발 아래 왼팔 의수가 낮게 윙윙거렸다.

“정비반이 통제실까지 올라온 이유가 뭡니까?”

“채굴장에 신호가 있습니다. 철심의 진동과 같은 주기입니다.”

윤서는 도윤의 단말을 받아 기록을 세 번 확대했다.

“이건 괴수 판정 신호가 아닙니다.”

“판정기가 못 읽는 겁니다.”

“그럼 출격 근거가 될 수 없어요.”

“신호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채굴장 아래에서 올라옵니다.”

윤서는 시간표를 열었다. 오르빗 다이내믹스 소속 신형기 두 대는 북쪽 훈련 구역에 묶여 있었다. 남동 채굴장에는 민간 인력 백여 명이 있었지만 방위대의 전투 기체는 두 대뿐이었다.

“경비를 왜 이렇게 잡았습니까?”

“채굴량을 맞추라는 계약이 내려왔습니다.”

화면 구석에 신형기 훈련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푸른 추력 불꽃이 화면을 가로질렀다.

“저 기체들이 남동쪽으로 갈 수 있습니까?”

“훈련 종료까지 열세 분.”

도윤은 철심의 냉각 수치를 떠올렸다. 최고 출력 열한 분. 탄약 없음. 그 열한 분조차 버틴다는 보장은 없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윤서의 시선이 도윤에게 꽂혔다.

“당신은 정식 파일럿이 아닙니다.”

“정비 인증은 유효합니다. 철심은 제 생체 접속과 인증을 출격 승인으로 인식합니다.”

“그건 허가가 아니라 기체가 낡았다는 뜻입니다.”

“허가를 기다리면 채굴장 사람들이 열세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윤서는 화면의 셔틀 배정표를 열었다.

“민간 셔틀을 남동 외곽 대피선으로 돌립니다. 전투 지원은 못 해요. 당신은 채굴장 안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셔틀이 빠져나올 때까지 외곽을 유지하세요.”

“출격을 허가하는 겁니까?”

“아니요. 당신이 훔쳐 갈 시간을 계산하는 겁니다.”

윤서는 도윤을 똑바로 보았다.

“열한 분을 넘기면 기체를 버리세요. 명령입니다.”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허가보다 무거웠다.


철심의 조종석은 오래된 냉장고처럼 냄새가 났다. 도윤이 좌석에 몸을 밀어 넣자 신경 접속 단자가 목덜미에 닿았다.

―생체 신호 확인. 정비 인증 확인. 출격 권한, 조건부 승인.

“냉각수부터.”

바깥에서는 최만식과 정비사 둘이 폐기 예정 냉각수 탱크를 호스로 연결하고 있었다. 호스 외피는 갈라져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이거 터지면 네가 닦아라!” 최만식이 외쳤다.

“터지기 전에 돌아옵니다.”

“그 말 하는 놈치고 제시간에 돌아오는 놈을 못 봤어!”

냉각수 잔량이 18퍼센트에서 31퍼센트로 올라갔다. 시험용 중기관포 탄 여섯 발도 들어왔다.

도윤은 조준계보다 먼저 발목 구동을 확인했다. 왼쪽 발목의 반응 지연은 0.8초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오른쪽으로 무게를 싣지 않으면 넘어질 수치였다.

“오른발 기준으로 회전한다. 왼쪽 발목은 지지용으로만 써.”

―입력 기록.

도윤은 공명 레이더 스위치 앞에서 손을 멈췄다. 아버지의 마지막 정비 로그에 남아 있던 문장이 떠올랐다. 진동은 고장이 아니라 누군가 두드리는 방식일 수 있다.

그는 단말의 숨겨진 파일을 열었다. 파형 하나가 철심의 화면에 겹쳐졌다. 파일명 상단에 한태석의 이름이 떠 있었다. 도윤은 곧바로 화면을 닫았다.

“지금은 아니야.”

―공명 레이더, 수동 진단 상태.

“한 번만 켠다. 과부하 오면 바로 끈다.”

―시각·청각 감각 과부하 가능성 63퍼센트.

격납고의 주동력 차단등이 붉게 바뀌었다. 최만식이 수동 해제 레버를 당겼다. 철심의 흉부 안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발전기가 낮게 울었다.

그 소리에 맞춰 채굴장 방향에서 같은 진동이 돌아왔다.

도윤은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어디서 오는지 표시해.”

―정확한 위치 산출 불가. 지질층 반사 다수.

도윤은 가장 늦게 돌아오는 울림을 찾았다. 센서는 정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반사 속에서 방향만 좁혀 줄 뿐이었다.

“그럼 내가 찾는다.”

철심의 오른발이 격납고 바닥을 눌렀다. 금속판이 휘고 낡은 관절에서 경고음이 났다.

“한 걸음씩.”

도윤은 힘으로 걷는 대신 지지축을 바꾸고 발목이 늦게 따라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철심은 최신형처럼 튀어나가지 못했다. 대신 넘어지지 않았다.

윤서의 목소리가 통신기에 들어왔다.

“한도윤. 지금 멈추면 사고 보고서로 끝낼 수 있습니다.”

“채굴장 셔틀은요?”

“첫 번째 셔틀이 대피선에 진입했습니다. 두 번째는 삼 분 뒤.”

“그럼 삼 분만 벌겠습니다.”

“열 한계를 넘으면?”

“넘기 전에 돌아옵니다.”

도윤은 기록 버튼을 눌렀다.

“아틀라스-09 임시 운용 기록. 냉각수 31퍼센트. 시험탄 여섯 발. 왼쪽 발목 지연 0.8초. 목적지는 남동 채굴장 외곽. 민간 셔틀 통과 확보.”

―기록 저장.

격납고 문이 반쯤 열렸다. 외부의 붉은 새벽이 철심의 회색 장갑 위로 흘렀다.


철심은 기지 외벽을 지나자마자 멈췄다.

공기가 진동했다. 공명 레이더를 켜자 도윤의 귀 안쪽에서 금속성 울음이 터졌다.

―감각 과부하 경고.

“세 초.”

―수치 불안정.

화면에 지형선이 겹쳐졌다. 채굴장, 폐쇄된 운송 갱도, 지하 냉각수 관로. 그 아래에서 여러 개의 작은 열원이 움직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도윤은 가장 늦게 돌아오는 진동을 따라 철심의 몸을 틀었다. 왼쪽 발목이 늦게 반응했고 무릎 관절이 삐걱거렸다.

“오른쪽으로 한 걸음. 멈춰.”

철심이 멈추자 지하에서 울림이 끊겼다. 잠시 뒤 채굴장 안쪽의 지반이 솟았다.

첫 번째 셔틀이 방위기지 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먼지 사이로 보였다. 두 번째 셔틀은 아직 출입구에 있었다.

윤서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도윤, 신호가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후퇴하세요.”

“두 번째 셔틀이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건 경비 메카가 맡습니다.”

“경비 메카는 신호를 못 듣습니다.”

철심의 흉부에서 두 번째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바로 아래였다.

도윤은 중기관포의 여섯 발을 확인했다. 무엇이 올라오는지, 왜 철심의 낡은 센서에만 반응하는지 몰랐다.

그가 아는 건 하나뿐이었다. 신호가 두 번째 셔틀의 위치와 겹친다는 것.

“윤서. 셔틀 통과 시간을 삼십 초만 더 줘.”

“명령 위반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철심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왼쪽 발목의 경고음이 격납고에서보다 크게 울렸다. 지하 암반이 갈라지고 검은 틈 사이로 젖은 금속 같은 것이 솟았다.

아직 머리도 몸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틈 안쪽에서 철심과 같은 박자의 울음이 올라왔다.

도윤은 조종간을 더 세게 잡았다.

“이번엔 네가 기록한 걸 내가 확인한다.”

두 번째 셔틀의 추진등이 켜졌다. 동시에 채굴장 아래의 무언가가 지면을 찢고 올라왔다.

―표적 미확인. 열원 다수. 거리 312미터.

첫 발사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지하에서 소형 공명종의 울음이 밤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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