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침공 24시간 전으로 무한 루프

1화: 24시간 전의 관제석
숨이 턱 끝까지 막혔다.
망막 전체를 하얗게 태워버리던 백색 섬광. 뼈마디가 녹아내리며 폐포가 터져 나가던 끔찍한 열기. 서울 상공이 단 한 번의 포격으로 찢겨 나가던 순간의 비명.
“허억……!”
한도윤은 책상을 짚으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른 헛구역질에 턱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날뛰었고 차가운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턱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도윤은 떨리는 손가락을 쥐었다 펴 보았다.
살점이 타들어가며 뼈가 드러나던 참혹한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손끝을 스치는 것은 차가운 금속 콘솔의 냉기였다.
환풍기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단조로운 기계음. 공기청정기가 뿜어내는 건조한 바람. 그리고 복도 끝 자판기에서 종이컵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불바다가 된 폐허가 아니었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네 대의 궤도 관제 모니터였다. 중앙 콘솔 우측 상단에서 선명한 붉은색 디지털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2042-10-14 00:00:14]
00시 00분 14초.
서울 전체가 빛의 기둥 아래 증발했던 그 시각으로부터 정확히 24시간 전이었다.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쥐었다. 손바닥에 배어 나온 땀 때문에 플라스틱 표면이 헛돌았다.
달 궤도 감시망 누리-4호의 실시간 텔레메트리 창을 띄웠다. 지구 저궤도를 도는 수백 개의 인공위성 궤적들이 질서정연하게 녹색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우주 공간은 고요했고 지상은 아무런 비극도 모른 채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돌아왔어.”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세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 수천 번의 자정. 수천 번의 섬광. 그리고 수천 번의 재시작.
“한 주임, 안색이 왜 그래? 또 악몽이라도 꿨어?”
출입문이 열리며 캔커피 두 개를 든 정민우 관제관이 들어왔다.
민우는 길게 하품을 내쉬며 도윤의 옆자리인 3번 콘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책상 위에 캔커피 하나를 툭 내려놓는 손길에는 지극히 평범한 야간 근무자의 나태함이 배어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야간 당직 들어오기 전에는 카페인 좀 줄이고 눈을 붙이라고. 얼굴이 완전 시체 껍데기 같다.”
“……커피 고마워.”
도윤은 차가운 캔을 손에 쥐었다. 알루미늄 표면의 서늘한 감촉이 현실의 감각을 강하게 일깨웠다.
민우는 콘솔 화면을 켜며 의자를 빙글 돌렸다.
“오늘 밤은 조용하겠지? 지난주에 통신위성 하나 자세 제어 오류 난 것 빼면 요즘 태양풍도 잠잠하잖아. 새벽 4시에 야식이나 시켜 먹자고.”
민우의 목소리는 지극히 평온했다.
그는 24시간 뒤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서울 중심부가 증발하고 관제동 건물이 무너져 내릴 때 잔해에 깔려 숨이 끊어지던 민우의 마지막 얼굴이 도윤의 기억 위로 선명하게 겹쳐졌다.
‘너는 모른다.’
이 건물 안의 누구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각 늦은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은 시민들도, 국방부 지하 벙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는 당직 장교들도 전혀 모른다.
D-day 자정 00시 00분.
달 뒷면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외계 함대 ‘아르카’가 전 지구 궤도에 동시 포격을 쏟아붓는다는 사실을.
도윤은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손때 묻은 낡은 가죽 수첩을 꺼냈다. 가죽 표지를 넘기자 하얀 속지가 나타났다.
깨끗했다.
지난 루프에서 손가락이 부러져라 눌러썼던 방공 레이더 사각지대 좌표도, 미사일 기지의 비상 주파수도, 전력망 차단 시간표도 단 한 글자 남아 있지 않았다.
‘물질은 초기화된다.’
오직 자신의 뇌 속에 각인된 기억만이 시간을 건너온다.
디지털 드라이브에 저장한 백업 파일도, 벽에 새겨 둔 칼자국도, 피로 물들었던 겉옷도 자정의 경계를 넘는 순간 시작점의 형태로 깨끗이 되돌아간다.
도윤은 볼펜을 쥐었다.
손끝이 잘게 떨렸지만 심호흡을 깊게 삼키며 첫 페이지에 글자를 눌러썼다.
[D-day 00:00:00 - 1차 타격: 수도권 핵심 전력망 및 방공지휘소 동시 소멸]
[D-18:30:00 - 서해안 조기경보레이더 2번 사이트, 미확인 전파 간섭으로 3분간 먹통]
[D-12:15:00 - 영등포 변전소 지하 케이블 과부하 폭발, 정찰 드론 1차 침투]
[D-04:00:00 - 달 궤도 관측위성 3기 원인 불명 통신 두절]
검은 잉크가 종이 결을 파고들며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수천 번의 죽음을 겪으며 온몸으로 외운 파멸의 시간표였다.
처음 몇 번의 루프에서 도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상관의 멱살을 잡고 외계인이 쳐들어온다고 외쳤고 112와 군부대에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 미사일이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는 극심한 정신착란자로 몰려 강제 정직 처분을 받거나 폐쇄병동에 격리되었다. 그리고 구속복에 묶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정의 폭염 속에서 타 죽었다.
혼자만의 절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국가와 군대라는 거대한 체계는 일개 야간 궤도감시관의 비명 한마디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박할 수 없는 물리적 데이터와 조직 내부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과 명분이 필요했다.
“한 주임, 뭘 그렇게 빽빽하게 적어?”
민우가 캔커피 뚜껑을 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윤은 손바닥으로 수첩을 덮으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점검해야 할 L2 라그랑주 포인트 관측 스케줄이야. 지난번부터 데이터 노이즈가 자꾸 튀어서.”
“에이, 그 노이즈? 본청 분석관들도 태양풍 반사광이라고 결론 내렸잖아. 센서 노후화라니까. 괜히 피곤하게 사서 고생하지 마.”
“확인만 해보려고 그래.”
도윤은 수첩을 안주머니에 넣고 키보드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기계처럼 정확하게 단축키를 눌렀다. 관제 시스템 화면이 네 개의 분할 창으로 쪼개지며 원시 데이터 로그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일반적인 자동 분석 모드에서는 우주 잡음으로 걸러지는 30헤르츠 미만의 극저주파 대역.
도윤은 수동 필터를 걸어 달 뒤편 L2 포인트 외곽의 중력 렌즈 왜곡값을 중첩시켰다.
화면 구석 암흑 공간의 픽셀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빛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고 있었다.
자연 발생한 우주 쓰레기나 소행성이 아니었다.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들이 집단으로 공간을 왜곡하며 광학 은폐장을 두르고 있을 때만 나타나는 특유의 위상 굴절이었다.
그들은 이미 달 뒤에 도착해 있었다.
지구가 평화로운 새벽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수천 척의 강습함이 조준경을 지구로 정렬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24시간.
이 짧은 하루 동안 침공의 증거를 입증하고 방어망을 정렬하고 각국의 불신을 뚫어 단 한 번이라도 자정 이후의 새벽을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도윤에게는 군대를 움직일 장군의 계급장도 없고 언론을 통제할 권력도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누구보다 정확한 미래의 관측 데이터뿐이었다.
‘이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부터 찾아야 한다.’
도윤은 모니터 한구석에 띄워 둔 연구기관 디렉터리를 검색했다.
[국방과학연구원 제3전자전연구센터 - 책임연구원 서진아]
과거의 루프에서 그녀는 도윤이 건넨 조각난 데이터를 보고 가장 먼저 외계 신호의 인공성을 알아차렸던 유일한 연구자였다. 비록 당시에는 신호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정찰 드론의 폭격이 연구소를 덮쳐 함께 재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도윤은 주머니 속 수첩을 단단히 쥐었다.
귓가에 희미한 잔향처럼 누나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포기하지 마, 윤아.
그것이 뇌리에 남은 환청인지 아니면 수천 번의 루프 너머에서 들려오는 진짜 신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번 루프는 단순한 생존의 재시도가 아니다.
외계 함대의 첫 번째 포격을 막아내고 인류가 스스로 내일을 선택하게 만들 작전의 시작이었다.
도윤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민우 씨, 나 잠시 3층 분석실 좀 다녀올게.”
“어? 지금? 교대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10분이면 돼.”
도윤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관제실 문을 열고 나서는 그의 등 뒤로 붉은 전자시계가 1초를 깎아내렸다.
[D-23:42:19]
인류의 파멸까지 남은 시간은 23시간 42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