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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 주방장의 은밀한 무공1화

객잔 주방장의 은밀한 무공

객잔 주방장의 은밀한 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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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국수 한 그릇의 무게

사흘.
진도겸이 청운객잔의 주방에 들어앉은 지 정확히 사흘째 되는 아침이었다.

북서쪽 관문으로 통하는 흙먼지 날리는 길목, 청운객잔의 주방은 이른 아침부터 매캐한 장작 연기로 가득했다. 무쇠솥 아래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길이 도겸의 마르고 단단한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도겸은 오른손 엄지 아래에 선명하게 남은 오래된 칼상처를 살짝 문질렀다. 거칠게 팬 상처는 수십 번도 넘는 사선을 넘나든 흔적이었으나 지금 그의 손에 쥐여 있는 것은 사람을 베는 검이 아니었다.

무거우면서도 날이 바짝 선 널찍한 식칼이었다.

탁. 탁. 탁. 탁.

도겸의 칼질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얇게 썰리는 무와 무순 그리고 굵직하게 단면을 잘라내는 대파가 일정한 간격으로 도마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의 호흡은 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의 흐름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내공을 숨긴 채 들이쉬고 내쉬는 일상의 호흡이었으나 칼끝에 실린 힘의 배분은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수습 주방장치고는 손이 꽤 빠른 편이네."

주방 문턱에 기대선 서연화가 묵직한 장부를 품에 안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정한 남장 차림에 좁혀진 눈매는 객잔 주인으로서 도겸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모양새였다.

"칼질만 빠르다고 손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우리 청운객잔은 자리만 빌려주는 여관이 아니다. 음식 맛이 터무니없으면 오늘이라도 당장 짐을 싸야 할 거야."

연화의 목소리는 칼칼하고 또렷했다.

도겸은 솥뚜껑을 열어 육수의 상태를 확인하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객주님."

"글쎄, 장부의 붉은 줄을 볼 때마다 내 수명이 깎이는 기분인데 말이지. 어쨌든 오늘 아침 첫 손님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신경 써."

연화는 짧게 혀를 차고는 장부를 툭툭 치며 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에서 객잔 심부름꾼 마루가 헐렁한 조끼를 걸친 채 쪼르르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마루는 잔머리가 빠르고 눈치가 귀신같은 아이였다. 마루는 도겸의 칼질을 눈을 반짝이며 살피더니 장작 더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도겸 아저씨, 아까 들어온 북로표국 표사들 봤어요? 얼굴이 아주 핏발이 세서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잡수실 기세라니까요. 옆 상단 상인들은 냄새난다고 대놓고 손가락질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마루야."

"예?"

"장작이나 더 가져와라. 불길이 약해진다."

"치, 싱겁기는. 진짜 나중에 피 보는 거 아닌가 몰라."

마루가 투덜거리며 주방 밖으로 나갔지만 도겸의 귀는 이미 홀 안의 세밀한 소리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식도팔결(食道八結) 제1결, 칼끝듣기.'

도겸이 사부 연적산에게 배운 무공은 살상을 위한 무공이 아니었다. 주방의 칼소리와 기름 튀는 소리 속에서 도무지 잡아낼 수 없는 미세한 기혈의 흐름과 소리를 읽어내는 기술이었다.

홀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특히 북로표국 표사 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은 찌르는 듯한 열기와 경련을 품고 있었다.

"어이, 거칠게 흙먼지나 풍기는 표사 나부랭이들! 밥상 옆에서 칼자루나 만지작거리지 말고 저 구석으로 꺼지지 못해? 밥맛 떨어지게 진짜!"

매몰찬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비단 장삼을 입은 맹 상인이 코를 쥐어짜며 표사들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고 있었다.

북로표국의 장 표사는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산길을 달려온 터였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였으나 장 표사의 속은 이미 장거리 호송의 피로와 풍찬노숙으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뒤틀려 있었다. 위장에 뭉친 내기(內氣)가 위로 역류하며 뇌관이 터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뭐라 했느냐, 이 장사꾼 놈이."

장 표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의 오른쪽 손가락이 허리의 도도 자루를 꽉 쥐었다. 손등의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왜, 치려고? 표사가 손님을 친다고? 어디 쳐 봐라! 너희 표국이 이 북서 관문에서 다시는 짐을 못 날라야 정신을 차리지!"

맹 상인은 자신이 돈을 쥐고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오히려 목을 늘어뜨리며 도발했다.

스릉.

차가운 쇠소리가 홀 안의 공기를 찢었다.

장 표사의 칼날이 반쯤 밖으로 튀어나왔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는 이미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속병에서 올라온 거친 열기가 심장까지 도달해 그를 폭주하게 만든 것이다.

홀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서연화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이봐요! 객잔에서 칼을 뽑으면 어쩌겠다는 거요!"

그러나 이성을 잃은 장 표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칼날이 완전히 뽑혀 맹 상인의 목덜미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르륵.

이상하게도 고소하고 정갈한 육수 향이 홀 안의 험악한 살기를 단숨에 덮쳐왔다.

"국수 나왔습니다."

낮고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도겸이 큼직한 뚝배기 그릇 두 개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섰다.

"이건 또 뭐야! 저리 치워, 멍청한 주방장 놈아!"

맹 상인이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장 표사 역시 뻗어나가던 칼날의 궤적을 수정하지 못한 채 도겸의 가슴팍을 향해 도를 쳐올렸다. 살기를 띤 날카로운 쇠끝이 도겸의 목덜미를 직격할 듯한 위급한 상황이었다.

도겸의 눈동자가 정적으로 깊어졌다.

그는 쟁반을 든 왼손의 중심을 아주 살짝 기울였다. 쟁반 위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이 곡선을 그리며 장 표사의 얼굴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도겸의 오른손 젓가락이 바람을 가르며 움직였다.

딱!

작지만 정교한 마찰음이 홀에 울렸다.

도겸이 쥔 대나무 젓가락의 끝이 장 표사의 오른쪽 손목 아래 '열결혈'을 아주 가볍게 스치듯 찔렀다. 내공을 실어 타격한 것이 아니었다. 뚝배기의 무게중심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 궤적을 튕겨내는 보법과 혈도의 미세한 떨림을 건드린 것에 불과했다.

"윽!"

장 표사는 순간 손목에 찌릿한 마비감이 달아오르며 손가락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스르륵.

칼날이 칼집 안으로 다시 스르르 슬라이드하듯 들어갔다.

도겸은 표사의 칼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뚝배기 한 그릇을 장 표사의 탁자 위에, 다른 한 그릇을 맹 상인의 탁자 위에 착지시키듯 내려놓았다. 뚝배기 밑바닥이 나무 탁자에 부딪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기가 막힌 수평 유지였다.

"이건..."

맹 상인은 얼떨결에 자신의 앞에 놓인 국수를 바라보았다.

맑고 투명한 돼지사골 육수 위에 얇게 썬 무와 푹 삶은 대파 그리고 알맞게 익은 소면이 담겨 있었다. 화려한 양념은 없었으나 가슴속까지 뻥 뚫리게 만드는 진하고 정갈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장 표사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머리를 부수어 버릴 것 같던 극심한 위장의 경련과 가슴의 답답함이 국수에서 풍겨 나오는 무와 생강 향을 맡는 순간 거짓말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를 푹 고아낸 맑은 장국수입니다."

도겸이 평온한 눈빛으로 장 표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흘 동안 찬 바람을 맞으며 굳은 음식을 드신 탓에 위장에 열기가 뭉치셨습니다. 이 국수의 무와 은은한 생강 즙이 뭉친 열을 내려줄 겁니다. 씹지 말고 먼저 국물부터 천천히 드십시오."

장 표사는 자신도 모르게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국물을 한 거푸 들이켰다.

따뜻하고 알싸한 육수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뒤틀렸던 위장이 스르르 풀리며 굳어 있던 전신의 경락이 시원하게 뚫려나갔다.

"크으으..."

장 표사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붉게 충혈되었던 그의 눈가에서 긴장이 풀리며 온기가 돌아왔다. 칼자루를 잡고 있던 손이 스르르 내려갔다.

맹 상인 역시 홀린 듯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탱글탱글한 면발과 정갈한 무의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방금 전까지 부리던 신경질이 싹 사라졌다.

"이, 이거 맛이... 제법이잖아?"

맹 상인이 얼버무리며 허겁지겁 국수를 삼키기 시작했다.

홀 안을 가득 채웠던 칼부림의 살기는 간데없고 오직 국수를 후루룩 소리 내며 먹는 평화로운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홀 구석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서연화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렸다.

그녀는 상단 출신으로 수많은 무인과 인간 군상을 봐왔다. 방금 도겸이 보여준 행동은 단순한 주방장의 재치가 아니었다. 일절의 무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살기와 동작의 기세를 완벽하게 꺾어놓은 전설적인 고수의 경지였다.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

연화는 입술을 깨물며 도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소란이 정리되고 손님들이 조용히 식사를 마치자 도겸은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화로 옆에서 칼을 닦던 도겸은 훔쳐보듯 자신을 바라보는 마루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루는 입을 벌린 채 그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아저씨! 방금 진짜 엄청 멋있었어요! 그 무서운 표사가 국수 한 그릇 먹고 순한 양이 되다니!"

"잡담할 시간에 그릇이나 씻어라."

"에이, 칭찬해 줘도 난리야."

마루가 툴툴대며 그릇을 씻으러 갔고 도겸은 조용히 식칼을 행주로 닦아내었다.

그때 주방 문이 열리며 서연화가 걸어 들어왔다. 연화의 표정은 아침보다 한층 더 진지해져 있었다.

"진도겸 씨."

"예, 객주님."

"방금 그 표사의 혈도를 건드린 건가요? 아니면 그냥 젓가락이 우연히 부딪힌 건가요?"

연화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도겸은 식칼을 칼꽂이에 조심스럽게 넣으며 덤덤하게 응대했다.

"손님이 칼을 뽑다 실수로 손목을 쟁반에 부딪힌 것뿐입니다. 저는 그저 국수가 엎질러지지 않게 받쳤을 뿐입니다."

"거짓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시는군요."

연화는 서늘하게 웃었으나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품에서 정식 고용 계약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어쨌든 오늘 객잔에서 피를 보지 않게 해 준 공은 인정하죠. 수습 기간은 오늘로 끝입니다. 앞으로 청운객잔의 정식 주방장으로 일하세요."

도겸은 계약서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연화가 주방을 나가고 다시 혼자 남은 도겸은 화로 앞으로 다가갔다.

무쇠솥 아래 타오르는 불길을 정리하던 도겸의 눈에 화로 구석 낡은 벽돌 사이에 새겨진 미세한 흠집이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한 세월의 흔적이 아니었다. 십 년 전 사부 연적산이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던 식도팔결 특유의 각인 문양이었다.

도겸의 눈빛이 무겁게 침식되었다.

'사부님... 이곳에 계셨던 겁니까.'

주방의 그늘진 바닥 구석에서 사부의 숨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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