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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차원 통로 관리인입니다7화

홍대 앞 차원 통로 관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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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우산을 든 브로커

비가 오지 않는 저녁이었다.

그런데 로비 유리문 밖에는 검은 우산 하나가 서 있었다.

한결은 새 환풍기 소리보다 먼저 그 우산을 알아봤다. 공사차 뒤로 골목을 돌아 사라졌던 것과 똑같은, 끝이 은색으로 닳은 우산이었다.

손등 문양이 서늘하게 식었다.

[외부 접근 흔적 재감지.]

문이 열렸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우산을 접어 들고 들어왔다. 우산 표면은 이상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남자는 물기 한 방울 없는 바닥에 그것을 세운 뒤 로비를 천천히 둘러봤다.

새 조명과 환풍기, 창가로 옮긴 의자와 화분까지. 마치 견적서를 읽듯 눈길이 멈췄다.

"누수는 잡으셨네요. 차단기도 바꾸고. 생각보다 결정을 빨리 하시는 관리인입니다."

한결은 카운터 아래에서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아는 사이였나요?"

"아뇨. 이 근처 건물 사정을 조금 압니다. 라울이라고 하죠. 길을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말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남자가 미소를 지을 때마다 로비의 공기가 조금 눅눅해지는 것 같았다.

카이안이 계단에서 내려오다 멈췄다. 그는 우산 손잡이를 한참 보더니 낮게 말했다.

"그 손에서 난 냄새는 길이 아니다. 전장 뒤에 버려진 장비에서 나는 냄새다."

라울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지인을 알아본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용사님은 여전히 직설적이군요. 죽은 길도 손보면 쓸모가 생깁니다."

202호 문이 열렸다. 벨제아는 초콜릿 봉지를 든 채 나오다가 라울을 보자 걸음을 멈췄다.

"틈새 장사치."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 뒤로 카이안의 어깨가 굳었다.

창가 화분에서는 정령들이 일제히 잎 뒤로 숨어들었다. 아리엘이 화분을 품에 안고 라울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를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다만 낯선 길에서 길잡이가 느끼는 경계가 눈에 고여 있었다.

라울의 시선이 화분 위에 잠깐 머물렀다.

"성녀님도 계셨군요. 목적지가 아닌 곳에 닿으신 것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좋은 장소를 찾았습니다."

아리엘의 손끝이 화분 테두리를 꽉 쥐었다.

"당신이 길을 흐렸습니까?"

"조금 넓혔을 뿐입니다. 원래 길은 너무 비효율적이거든요."

한결은 카운터 밖으로 나와 지하실 문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하세요. 방은 없습니다."

라울은 검은 우산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방이 아니라 문을 보러 왔습니다."


라울은 앉으라는 말도 없이 소파 끝에 앉았다. 한결은 맞은편에 서 있었다. 카이안은 계단 아래를 지켰고 벨제아는 아리엘과 화분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 건물은 훌륭한 중간 기착지입니다. 지구에는 물건이 많고 이계에는 갈 곳을 잃은 이가 많죠. 짐꾼과 의뢰인, 피난민을 목적지에 맞춰 보내 주면 모두가 이득입니다."

"등록된 손님만 받습니다."

"등록이라. 종이 한 장과 관리인의 허락 아닙니까?"

라울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봉투가 나무 상판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누수 배관과 차단기 교체. 환풍기 설치. 밀린 관리비까지 정리하고도 남을 겁니다."

한결의 시선이 봉투에 붙었다.

라울은 금액을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방금 끝난 공사비와 줄어든 통장 잔고가 한결의 머릿속에서 먼저 숫자를 만들었다. 한 번의 거래로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숫자였다.

"대신 지하실을 하루에 두 번만 쓰게 해 주십시오. 제가 정령계로 가는 길도 다시 깔겠습니다. 성녀님이 돌아갈 때 편해질 겁니다."

아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그 길은 제 성소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선 곳에 내릴 수 있겠죠. 그래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짐처럼 내려놓는 것이 이동입니까?"

라울의 미소가 아주 잠깐 얇아졌다.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은 법입니다."

한결이 봉투를 보며 말했다.

"선택하는 사람이 목적지를 알 때만요."

라울의 눈빛이 바뀌었다. 온화한 방문객의 표정 아래에서 차가운 것이 드러났다.

"임시 관리인이 할 말은 아니군요. 선임 관리인이 사라진 건물에 너무 오래 마음을 주면 곤란합니다."

강도철을 입에 올리는 순간 한결의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남자는 공사 내역만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결은 봉투를 라울 쪽으로 밀었다.

"나가세요."

라울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럼 허락을 받는 쪽이 아니라 길을 먼저 마련하겠습니다."

그가 지하실 문으로 다가갔다. 한결이 앞을 막았지만 라울은 우산 손잡이 끝으로 문틀을 가볍게 쳤다.

딱.

검은 선 하나가 문틀 위로 번졌다.

[미등록 우회 표식 감지.]

[통로 기록 혼선 가능성 증가.]

지하실 아래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아리엘의 품 안에서 정령들이 빛을 잃고 웅크렸다. 화분의 잎도 바람이 없는데 흔들렸다.

아리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표식이 붙으면 돌아오는 길도 바뀝니다. 통로가 손님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어요."

한결은 검은 선을 노려봤다. 한 번 잘못 열렸던 길이 또 누군가를 엉뚱한 곳으로 던져 놓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라울은 조용히 웃었다.

"그러니 계약하는 편이 서로 편합니다."


카이안이 라울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한결은 급히 팔을 뻗어 막았다.

"안 돼요. 밖에 사람 있어요."

유리문 너머로 홍대 골목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며 걸었고 누군가는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라울은 그쪽을 흘끗 보며 웃었다. 민간인이 가까운 것을 처음부터 계산한 얼굴이었다.

"현명하십니다. 여기서는 검을 빼기도 어렵겠지요."

벨제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한결은 고개를 저었다.

"벨제아는 정령들부터 봐요. 능력은 밖에서 안 보이게요."

"명령이 많군."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카운터 안쪽으로 물러났다. 벨제아가 두 손으로 화분을 감싸자 정령들의 불규칙한 빛이 바닥 쪽으로 가라앉았다. 유리문 밖에서는 그저 어린 손님이 화분을 옮기는 모습으로만 보일 터였다.

아리엘은 문에서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제가 원래 길을 붙들겠습니다. 아이들이 잊지 않게요."

그녀의 노래는 작았다. 공사 뒤 남은 먼지 냄새와 환풍기 소리 사이를 지나가는 가느다란 바람 같았다. 화분 속 정령들이 그 음을 따라 하나씩 고개를 내밀었다.

한결은 문틀의 검은 선을 봤다. 선은 지하로 파고들며 잉크처럼 번지고 있었다. 지울 방법은 몰랐다.

하지만 자기 곁에서 통로의 진동이 잦아든 적은 있었다.

그는 문에 손바닥을 댔다.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손등 문양으로 기어올랐다. 숨이 막히고 팔꿈치까지 저렸다. 검은 선은 그의 손가락 가까이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라울의 웃음이 멎었다.

"그 체질이군요."

한결은 이를 악물었다. 왜 이런 일이 되는지는 몰랐다. 다만 지금 손을 떼면 아리엘 같은 손님이 또 길을 잃는다는 것만은 알았다.

"카이안. 출입문을 지켜요."

"알겠다."

카이안은 검을 찾지 않았다. 대신 라울과 골목 사이에 똑바로 섰다. 평범한 방문객이 들어오려 하면 몸을 옆으로 비켜 길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자리였다. 라울만은 지하실 쪽으로 다시 가지 못하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리엘은 노래를 계속해요. 벨제아는 정령들 안 흩어지게 해 주고요."

"말 안 해도 한다."

벨제아가 낮게 답했다.

아리엘의 노래가 한 음 높아졌다. 정령들의 빛이 검은 선 위로 작은 점처럼 내려앉았다. 한결의 손등에서는 뜨거움과 차가움이 번갈아 밀려왔다.

라울이 우산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손을 떼십시오. 임시 관리인 하나가 감당할 일은 아닙니다."

한결은 고개를 저었다.

"손님을 데려가는 길이면 관리인이 감당할 일이에요."

[등록 투숙객 보호 요청 확인.]

[외부 우회 표식의 접속 권한이 없습니다.]

문틀의 검은 선이 탁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라울의 우산 끝에서 검은 가루가 쏟아졌다. 지하실의 진동도 함께 가라앉았다.


라울은 끊어진 표식을 한동안 내려다봤다. 그가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돈도 벌고 손님도 늘릴 수 있는데. 너무 깨끗하게 장사하시네요."

한결은 아직 저린 손을 주먹 쥐었다.

"손님은 내가 받습니다. 당신이 데려가는 게 아니라요."

그는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계속 안 나가면 경찰 부를 거예요."

라울은 짧게 웃었다. 이번 웃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경찰이라. 지구 관리인의 방식은 귀엽군요."

그는 우산을 펼쳤다. 바깥은 여전히 맑았다.

"다음에는 더 큰 손님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이 문이 얼마나 비싼지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뀔 테니까요."

카이안이 한 걸음 내딛자 라울은 골목으로 물러났다. 검은 우산은 지나가는 사람들 틈으로 섞였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 보이지 않게 됐다.

한결은 쫓아가지 않았다. 골목으로 나가면 라울이 무엇을 하든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는 문을 지키는 편이 맞았다.

바닥에는 손바닥만 한 금속 고리가 남아 있었다. 갈라진 원과 화살표가 새겨진 고리였다. 젖지 않은 우산 손잡이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더 기분 나빴다.

[외부 우회 표식 소거 완료.]

[경계 규칙 권고: 등록 투숙객의 이동과 정보는 본인 동의 없이 제삼자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한결은 메시지를 오래 바라봤다.

"권고 말고 적용은요?"

[관리인 선언을 확인합니다.]

그는 화분에서 고개를 내민 정령들과 로비에 선 세 사람을 차례로 봤다. 카이안은 여전히 문 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벨제아는 화분을 놓지 않았고 아리엘은 노래를 멈춘 뒤에도 잎사귀를 쓰다듬고 있었다.

"적용할게요."

손등 문양이 조용히 따뜻해졌다.

[경계 규칙 추가: 등록 투숙객의 이동과 정보는 본인 동의 없이 제삼자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로비 안은 다시 환풍기 소리만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한결은 금속 고리를 휴지 위에 올려 카운터 서랍 깊숙이 넣었다. 돈은 여전히 부족했고 라울은 돌아올지도 몰랐다.

그래도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이 건물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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