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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 만렙을 숨김2화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 만렙을 숨김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 만렙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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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1%만 올라가도

삼각김밥을 집어 든 손이 계산대 위에서 멈췄다.

비에 젖은 비닐 포장이 손바닥에 차갑게 붙었다. 민우는 겨우 두 시간 전부터 속이 비어 있었지만 배고픔보다 먼저 허공의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경고]

[동종 균열 반응 급상승]

[가장 가까운 위치: 서울 서부 3구역]

[차원 과부하율: 99.01%]

계산대 뒤의 아르바이트생이 민우를 바라봤다.

"결제 도와드릴까요?"

"아뇨. 잠깐만요."

민우는 삼각김밥을 내려놓고 유리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로 건너편의 낡은 전광판 아래에 흰 승합차가 서 있었다. 차 옆면에는 협회 하청 업체의 임시 공략 인력 모집 문구가 붙어 있었다. 새벽 공략. F급 게이트. 위험수당 포함 십만 원.

행선지는 서울 서부 3구역의 폐업한 볼링장이었다.

민우는 입술을 다물었다.

수당은 적었다. 밤새 굴러야 하고 장비도 제값에 챙겨 주지 않는 현장이었다. 평소라면 공고를 본 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볼링장 지하에서 검은 선 하나가 출입구를 향해 기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1%만 올라가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상태창은 말해 주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민우는 삼각김밥을 다시 집었다. 계산대에 돈을 올려놓고 포장을 뜯었다. 한 입을 급히 씹은 뒤 배낭 끈을 조여 맸다.

"봉투는 괜찮습니다."

평범하게 밥 한 끼 먹는 일도 미뤄야 하는 모양이었다.

폐업한 볼링장은 편의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간판의 절반은 떨어져 나갔고 유리문에는 임대 문의 종이가 비에 불어 있었다. 그 아래로 협회 통제선이 둘러져 있었다. 새벽 공략이라고 하기엔 사람 수가 적었다. 장비를 든 헌터 셋과 짐꾼 둘이 전부였다.

"강민우 씨?"

목에 출입증을 건 관리 요원이 명단을 확인했다. 서른이 안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명찰에는 최도윤이라고 적혀 있었다.

"네."

"원래 오기로 한 짐꾼 한 명이 연락을 끊어서요. 이쪽으로 와 주세요. 계약서는 전자 서명이고 위험수당까지 십만 원입니다."

민우는 태블릿에 뜬 조항을 훑었다. 게이트 내부 물품의 소유권은 파티에 귀속. 긴급 탈출 시 구조 우선순위는 현장 판단.

마지막 문장에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그래도 사인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명분이 필요했다. 민우 혼자 통제선을 넘나들면 오히려 눈에 띈다. 계약서 한 장은 생각보다 쓸모가 있었다.

"짐은 저쪽 상자 두 개요."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방패를 든 남자가 턱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낡은 가죽 갑옷 위로 C급 인식표가 흔들렸다. 장세훈이라는 이름이 가슴 보호대에 붙어 있었다.

"안에서 멈추면 두고 갑니다. 공략 시간 늦어지면 수당도 없어요."

"알겠습니다."

상자 안에는 볼링공처럼 생긴 둥근 마나석 운반구가 여섯 개 들어 있었다. 민우가 상자를 들어 올리자 옆에 있던 여자가 힐끗 봤다.

짧은 창을 등에 멘 F급 헌터였다. 손목 보호대 위로 오래된 테이프가 겹겹이 감겨 있었다.

"무겁죠? 하나는 제가 들게요."

"괜찮습니다."

"전 김라온이에요."

그녀는 쑥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민우입니다."

장세훈이 짜증 섞인 숨을 뱉었다.

"인사 끝났으면 내려가. 코어 깨고 나오면 끝이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게이트 안쪽에서부터 푸른 안개에 잠겨 있었다.

민우는 한 발을 들이기 전에 주머니 속 검은 금속 조각을 만졌다. 차갑고 매끈한 표면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볼링장 안은 현실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울어진 레인 열두 줄이 길게 이어졌고 천장에는 깨진 조명판이 매달려 있었다. 다만 레인 끝의 핀 기계들은 모두 입을 벌린 짐승처럼 검은 어둠을 토하고 있었다.

푸른 이끼가 바닥을 얇게 덮고 있었다.

민우는 상자를 내려놓다가 고개를 들었다.

레인 바닥에 검은 선이 있었다.

머리카락만 한 굵기의 선이 코어가 있을 법한 안쪽에서 출입구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선은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가 됐다.

전날의 균열과 같은 결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검은 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레인을 가로질렀다. 누군가 자를 대고 그어 놓은 것처럼.

"세훈 씨."

민우가 입을 열었다.

장세훈은 레인 끝을 살피던 중이었다.

"뭔데?"

"출입구 쪽 레인은 밟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핀 기계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고요."

장세훈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 또 느낌이야?"

"마력 흐름이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F급 짐꾼이 마력 흐름을 알아?"

그는 빈 웃음을 흘렸다.

"코어는 저기야. 코어 깨면 마력도 꺼져. 단순하게 생각해."

김라온이 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녀도 검은 선을 본 모양이었다.

"저 선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라온 씨는 이번 달 수당 필요하다며. 겁먹고 빠질 거면 지금 빠져."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민우는 더 묻지 않았다. 손목 보호대 안쪽으로 삐져나온 병원 영수증이 잠깐 보였다. 사람마다 게이트에 들어오는 이유는 대개 비슷했다. 당장 필요한 돈이 있다는 것.

안쪽에서 고블린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장세훈의 방패가 먼저 움직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 마리가 레인 옆으로 튕겨 나갔다. 다른 한 마리는 라온의 창끝에 꿰뚫렸다.

전투는 짧았다.

문제는 고블린이 쓰러진 뒤에 시작됐다.

레인 끝의 핀 기계 하나가 덜컹거렸다.

민우의 시선이 즉시 검은 선으로 향했다. 선 끝이 기계의 아래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멈추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핀 기계가 폭발하듯 입을 열었다.

쾅!

안쪽에 쌓여 있던 낡은 핀들이 쏟아져 나왔다. 핀 사이에서 검은 바람이 튀어 올랐다. 볼링공들이 레인을 거슬러 굴러오기 시작했다.

"방패!"

장세훈이 방패를 세웠다. 공 하나가 방패에 부딪혀 옆으로 튕겼다. 두 번째 공은 라온의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민우는 상자를 앞으로 밀었다. 운반구가 담긴 상자가 레인 위를 미끄러져 검은 선을 눌렀다.

검은 바람이 움찔했다.

그 짧은 틈에 민우는 레인 아래를 봤다. 오래된 와이어가 핀 기계와 연결돼 있었다. 균열은 와이어에 스며들어 출입구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코어는 안쪽에 있었다.

그런데 균열은 바깥으로 길을 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가는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뒤로 물러나세요!"

민우가 소리쳤다.

장세훈이 돌아봤다.

"네가 지휘관이야?"

그때 천장에서 철판 하나가 떨어졌다. 장세훈은 방패로 철판을 막았지만 레인 중간이 그대로 막혔다. 안쪽에 있던 사냥꾼 한 명이 넘어졌고 김라온이 그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태우 씨!"

"라온 씨."

민우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들어가면 같이 갇힙니다."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알아요. 그래서 길부터 열어야 합니다."

민우는 레인 옆 벽에 붙은 낡은 제어반을 가리켰다. 먼지에 덮인 붉은 레버 하나가 보였다.

"저 레버를 당기면 핀 기계가 올라갑니다. 제가 신호하면 끝까지 당겨요."

"그걸로 길이 열려요?"

"열어야 합니다."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민우는 레인 위에 굴러다니는 운반구 하나를 집었다. 검은 공처럼 보였지만 가운데에는 오래된 금속 심이 박혀 있었다. 게이트 안에 쌓인 잔류 마력이 심 주변을 가늘게 맴돌았다.

자기 안의 힘을 끌어내면 쉬웠다.

손끝으로 균열을 지우고 핀 기계까지 통째로 날려 버리면 된다.

그러나 그 쉬운 방법 하나가 지구를 망가뜨릴 수 있었다.

민우는 공을 와이어 위에 올렸다.

검은 선이 공을 향해 꿈틀거렸다.

그는 숨을 고르고 레인에 흩어진 푸른 이끼를 보았다. 고블린 사체에서 새어 나온 옅은 마력도 보았다. 핀 기계에 들러붙은 오래된 잔류 마력까지 가는 실처럼 이어졌다.

민우는 그 실을 손대지 않았다.

방향만 바꿨다.

운반구의 금속 심이 낮게 울렸다.

검은 선이 와이어를 타고 퍼지려던 순간 푸른 이끼의 빛이 그 반대편에서 모여들었다. 민우는 바깥으로 흐르던 마력에 작은 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손가락 끝이 찢어질 듯 아팠다.

억지로 흐름을 꺾자 검은 바람이 손등을 스쳤다. 얇은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직접 출력 감지 없음]

[주변 잔류 마력 재배열 진행]

[봉합 안정도: 37%]

37%.

숫자가 너무 적었다.

민우는 이를 악물었다. 와이어 끝은 핀 기계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저쪽을 움직이지 않으면 균열의 길은 꺾이지 않는다.

"라온 씨. 지금!"

김라온이 제어반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레버를 양손으로 붙잡고 있는 힘껏 아래로 내렸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다음 핀 기계가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올라갔다.

막힌 통로 아래로 빛이 들어왔다.

"태우 씨! 기어 나와요!"

라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안쪽의 사냥꾼이 철판 밑을 기어 나왔다. 장세훈도 그제야 방패로 굴러오는 공들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민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핀 기계가 올라간 자리에서 검은 금속 가루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가루는 무작위로 흩어지지 않았다. 작은 고리 세 개가 이어진 모양을 만들며 와이어 주변에 박혀 있었다.

전날 주운 조각에 새겨진 문양과 닮아 있었다.

[외부 개입 흔적 탐지]

[균열 반응이 인위적으로 정렬되었습니다]

민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신발 밑창으로 가루 한 줌을 문질러 붙였다. 남은 가루는 핀 기계에서 떨어진 쇳가루처럼 보이게 운반구 상자 아래로 밀어 넣었다.

마지막 와이어가 검게 들썩였다.

민우는 금속 심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안쪽의 마력이 와이어를 따라 역류했다. 푸른 이끼의 빛이 검은 선을 한 겹씩 덮었다.

검은 선이 접혔다.

종이에 난 주름을 손톱으로 눌러 펴는 것처럼.

마지막 흔들림이 멎자 핀 기계의 소음도 멈췄다.

[봉합 안정도: 100%]

[차원 과부하율: 99.01%]

민우는 손을 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직접 힘을 쓴 것도 아닌데 온몸의 뼈가 비어 있는 듯 무거웠다.

장세훈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방패에는 볼링공이 남긴 흠집이 여러 개 패여 있었다.

"너. 방금 뭘 한 거야?"

민우는 운반구를 상자에 넣었다.

"레버를 당겼습니다."

"그 전에."

"공이 와이어에 걸렸고 기계가 움직였죠."

"그게 말이 돼?"

민우는 피가 묻은 손등을 주머니에 넣었다.

"안 믿으셔도 됩니다."

장세훈의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최도윤 관리 요원이 통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먼지투성이가 된 레인과 멈춘 핀 기계를 번갈아 봤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장세훈이 대답하기 전에 민우가 먼저 말했다.

"핀 기계가 노후돼서 오작동했습니다. 레버를 당겨서 사람들부터 뺐습니다."

"코어는요?"

"안쪽에 있습니다. 지금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최도윤은 잠시 민우를 바라봤다. 손등의 상처와 레인 위의 상자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철수하죠. 정식 조사팀을 부르겠습니다."

장세훈은 반박하지 않았다. 공략을 강행하자고 했다가 사고 기록에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나은 판단일 것이다.

통제선을 나왔을 때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민우는 볼링장 유리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봤다. 젖은 머리카락과 피 묻은 손. 배낭 옆주머니에는 편의점 삼각김밥 포장이 구겨진 채 들어 있었다.

그는 한숨을 삼켰다.

십만 원을 받으러 왔다가 또 하루를 내다 버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과부하율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가 이상하게 안심됐다.

민우가 골목 쪽으로 발을 돌리는 순간 상태창이 떠올랐다.

[경고]

[미확인 접속이 사용자 생체 신호를 탐색 중입니다]

[탐색 범위: 서울 서부]

[현재 접속 성공 여부: 확인 불가]

민우는 걸음을 멈췄다.

새벽길에는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볼링장 앞 승합차의 창문은 어둡고 골목 끝 가로등만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민우는 주머니 속 금속 조각과 신발 밑창에 붙은 검은 가루를 차례로 만졌다.

평범하게 밥을 먹으려면 먼저 누가 균열을 흔드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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