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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14화

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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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겹쳐진 영수증의 그림자

아침 햇살이 만물상 유리창을 두드릴 때 하은이는 현의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

"삼촌, 오늘은 국어책이랑 알림장 챙겼어. 그리고 이건 어제 받은 사탕이야."

하은이가 주머니에서 작은 딸기맛 사탕 두 개를 꺼내 현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사탕은 왜 주는 것이냐?"

"삼촌이 아침마다 종이 보면서 인상 쓰고 있잖아. 단 거 먹으면 덜 무서워진대. 강 선생님이 그랬어."

현은 손바닥에 놓인 분홍빛 사탕을 내려다보았다. 무림에서 천하의 맹주들이 바치던 온갖 영약과 보물보다 이 작은 사탕 두 알이 훨씬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다.

"고맙구나, 하은아. 학당에서는 남의 말에 마음을 베이지 말고 당당히 공부하거라. 네 뒤에는 이 삼촌의 장부가 서 있다."

"응! 삼촌도 깡패 아저씨들한테 너무 눈싸움하지 마!"

하은이가 가방을 흔들며 조태식과 최두식이 청소해 둔 골목길을 씩씩하게 걸어갔다. 멀리서 아이의 작은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자 현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천천히 걷혔다.

그는 사탕 하나를 코트 주머니 깊숙이 넣고 만물상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탁자 위에는 종이 뭉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복자가 가져온 고춧가루 납품 영수증, 오한석이 건넨 건어물 거래명세서, 그리고 과일가게 주인이 받아 든 플라스틱 포장 상자 청구서까지. 모두 지난밤과 오늘 새벽 사이에 배달이 끊긴 상점들의 서류였다.

"대표님, 무는 들어왔는데 다른 게 또 막혔습니다."

이복자가 붉은 보자기에 싸 온 영수증들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찬을 만들려면 마늘도 있어야 하고 젓갈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동부식자재 말고 해담유통이랑 새롬패키지라는 곳에서도 똑같이 납품 거부 문자가 왔어요. 이 동네 도매상이 전부 한통속으로 돌아선 것 같아요."

현은 돋보기안경을 낀 채 서류들을 한 장씩 손가락으로 짚어 나갔다.

"이름이 다르면 주인이 다른 것 같지만 장부의 먹선은 거짓말을 못 하는 법이다. 철수야."

"예, 대표님."

김철수가 모니터 세 대를 켜고 키보드를 바쁘게 두드렸다.

"동부식자재, 해담유통, 새롬패키지. 국세청 홈택스 사업자 등록이랑 지자체 통신판매업 신고 내역 다 긁어모았습니다. 대표자 이름은 김영삼, 박철호, 이만수로 다 다르고 사업장 주소지도 낙도구랑 인근 금천구 골목으로 쪼개져 있어요."

"주소지를 쪼갠 곳의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았느냐?"

"네. 그게 진짜 기가 막힙니다. 세 곳 다 등록된 주소가 폐업한 카센터거나 보증금 백만 원짜리 지하 다세대주택이에요. 실제로 물건을 쌓아 둘 공간 자체가 없습니다."

철수가 화면에 위성 지도와 로드뷰 사진을 띄웠다. 간판조차 없는 낡은 셔터문 사진이 떠올랐다.

"페이퍼 컴퍼니입니다. 서류상으로만 유통 법인을 여러 개 만들어 두고 실제 물류는 한곳에서 주무르는 전형적인 위장 도매망이에요."

현은 찻잔을 들며 차분하게 말했다.

"무림에서도 거대 상단이 세금을 피하고 텃세를 부릴 때 꼭꼭 숨은 객잔 수십 개를 명의로 내세웠지. 표면상으로는 독립된 점포들이 서로 경쟁하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한 놈의 금고로 돈이 흘러 들어갔다. 그자들은 이를 '포망유통(布網流通)'이라 불렀느니라."

현의 긴 손가락이 어제 박순태 농가에서 주워 온 통보서와 세 도매상의 거래명세서 하단을 동시에 가리켰다.

"보아라. 상호도 다르고 도장도 다른데 오른쪽 귀퉁이에 찍힌 배차 번호가 무엇이냐."

철수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문서를 확대했다.

[GC-LD-71]

"전부 같아요. 지시 번호랑 배차 관리 코드가 완전히 일치합니다."

"골드 크레센트 낙도지부(GC-LD). 그리고 71번은 그들이 낙도구 일대의 생필품과 던전 하역을 한꺼번에 쥐고 흔드는 단일 전산망의 식별 표식이겠지."

현의 목소리는 잔잔했으나 서릿발 같은 냉기가 묻어 있었다.

"상대를 잡으려면 겉으로 드러난 칼날이 아니라 칼자루를 쥔 손목의 힘줄을 끊어야 한다. 두식아."

"예, 대표님!"

가게 문간에서 대기하던 최두식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조태식과 부하들을 데리고 낙도구 일대의 던전 하역장과 도매 집하장 쓰레기통을 뒤져라. 어제와 오늘 버려진 운송장, 화물 영수증, 그리고 현장 배차원들이 버린 파쇄지 조각까지 낱낱이 쓸어 담아 오너라."

"예! 쥐새끼 한 마리 밟은 종이쪽지까지 다 긁어 오겠습니다!"

최두식이 조태식을 끌고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현은 다시 철수를 보았다.

"철수야. 우리는 이제 공공의 장부를 겹쳐 볼 것이다. 저들이 감추려 했던 진짜 이익과 털어낸 세금의 빈틈을 찾아라."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만물상 탁자 위에는 기름때 묻은 송장과 구겨진 영수증 수백 장이 쏟아졌다.

조태식은 숨을 헐떡이며 장갑을 벗었다.

"대표님, F급 던전 부산물 집하장 뒤편 분리수거장에서 쓸어 왔습니다. 골드 크레센트 마크가 찍힌 물류 박스 영수증들입니다."

"수고했다. 바닥에 가지런히 펴 놓거라."

현은 장부 수첩을 펼치고 붓펜을 들었다.

무림 천천마교의 총관들이 수만 개 분타의 군량과 군자금을 검산할 때 쓰던 비전의 회계술. 이른바 '삼분대조법(三分對照法)'이었다.

입고 장부, 실운송장, 그리고 최종 대금 청구서. 이 셋 중 단 한 글자라도 숫자가 어긋나면 그 틈새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탐욕과 횡령이 숨어 있는 법이었다.

철수가 공공 데이터망에서 추출한 세금계산서 발행 내역을 모니터에 나열했다.

현은 구겨진 실물 송장들과 화면의 숫자를 대조해 나갔다.

"이상합니다, 대표님."

철수가 자판을 두드리며 눈을 크게 떴다.

"해담유통이랑 동부식자재가 발행한 매출 세금계산서를 보면요. 영세 상인들에게 넘긴 금액은 부가세 포함해서 정상적으로 찍혀 있어요. 그런데 이 업체들이 골드 크레센트 본사 물류창고에서 떼어 온 매입 세금계산서는 절반 이하로 축소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던전 부산물 운송비 명목으로 수천만 원씩 비용 처리를 해 놨어요."

"던전 부산물은 본래 면세 품목이거나 영세율이 적용되는 항목이 많지 않으냐?"

"맞아요! F급 마수 가죽이나 기본 뼈 같은 1차 부산물은 농축산물처럼 부가세가 감면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골드 크레센트는 일반 식자재와 잡화 운송비를 이 던전 부산물 운송비에 끼워 넣어 허위 매입 세금계산서를 끊은 겁니다. 그렇게 세금을 몽땅 털어내고 탈루한 돈을 뒤로 빼돌린 거예요."

철수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완전 무자료 거래에 허위 세금계산서 교부예요. 조세범 처벌법에 걸리면 가산세는 물론이고 형사 처벌감입니다!"

현의 입꼬리가 가늘게 호를 그렸다.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빼돌린 자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추적해 보아라."

철수는 지자체 교육지원청의 학교 기부금 공개 대장과 골드 크레센트 낙도지부의 후원 내역을 교차 검색했다.

그리고 몇 분 뒤 철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찾았습니다……! 낙도초등학교에 들어간 '골드 키즈 던전 안전 체험권' 후원 명의가 골드 크레센트 본사가 아니에요. 바로 이 페이퍼 컴퍼니인 '동부식자재'와 '해담유통' 명의로 기부금 영수증이 처리되어 있어요!"

"위장 도매상에서 탈세로 쥐어짠 검은돈으로 학교에 후원 생색을 내고 그 대가로 아이들을 가르고 있었군."

현의 눈매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어른들의 더러운 돈장난이 조카 하은이의 교실 책상까지 뻗어 있었다.

그 순간 만물상 밖에서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트럭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차 빼요! 누구 맘대로 골목에 화물차를 대고 물건을 내려!"

노란 완장을 찬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만물상 앞 골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옷깃에는 골드 크레센트 물류 관리 마크가 선명했다.

골드 크레센트 낙도지부의 현장 물류 단속 주임 강달호였다.

그는 만물상 앞에 세워진 박순태 농가의 1톤 트럭과 무 상자를 나르던 이복자를 험악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당신들 이거 뭐야? 자가용 화물차로 불법 유상 운송하는 거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이야! 도로 점용 허가도 없이 골목길 막고 장사질이야?"

이복자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니, 우리는 우리 가게에서 쓸 채소를 직접 받아서 내리는 중인데요……."

"직접은 무슨! 천마 플랫폼 앱으로 돈 걷어서 공동 배송한 거 다 알아! 이거 허가 안 받은 불법 배송 차량이야. 당장 물건 압류하고 구청이랑 경찰에 고발할 테니까 상자 손대지 마!"

강달호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 거만한 손목 위로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의 장터에 발을 들였으면 먼저 객주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예의이니라."

현이 문턱을 넘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강달호는 현의 날카로운 기세에 흠칫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으나 이내 턱을 치켜들었다.

"당신이 이 만물상 주인 독고현이야? 당신 지금 불법 유통망 돌리면서 골목 상권 어지럽히고 있어. 관할 구청이랑 길드 물류 규정에 따라 단속하는 거니까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 및 업무방해로 엮어 넣을 줄 알아!"

현은 코웃음조차 치지 않았다. 대신 품 안에서 방금 철수가 출력한 A4 용지 세 장을 꺼내 들었다.

"골드 크레센트 물류 단속 주임 강달호."

"뭐, 뭐야?"

"네놈이 타고 온 저 단속 승합차의 등록증을 보아라. 차량 소유주가 '동부식자재'로 되어 있더군."

강달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게 어때서? 우리 협력업체 차다!"

"협력업체라. 그렇다면 묻겠다. 동부식자재는 지난 석 달간 낙도구 관내에 사업장도 창고도 없이 유령 다세대주택에 주소만 둔 채 세금계산서 4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그중 1억 2천만 원은 F급 던전 부산물 허위 운송비로 둔갑시켜 부가가치세를 전액 탈루했더군."

현이 첫 번째 종이를 강달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국세청 세금계산서 대조표와 허위 사업장 현장 사진이 적나라하게 박혀 있었다.

"이, 이걸 네놈이 어떻게……."

"더 들어라. 해담유통과 새롬패키지 역시 같은 배차 코드인 GC-LD-71을 사용하며 매입가를 축소해 비자금을 조성했다. 그리고 그 비자금의 일부가 낙도초등학교 기부금 계좌로 흘러 들어갔지."

현이 두 번째 종이를 펼쳤다.

학교 행정실 수령대장과 페이퍼 컴퍼니의 비정상 송금 내역이 한눈에 이어져 있었다.

"너희는 영세 상인들의 목을 조르기 위해 위장 도매망을 만들어 납품을 끊었고 세금을 도둑질한 돈으로 학교에 체험권을 뿌려 아이들 사이에 금을 그었다. 그런데 감히 네놈이 법과 단속을 입에 올리느냐?"

강달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이, 이건 본사 기획실에서 처리한 거라 난 모르는 일……."

"모른다면 네놈의 이름으로 발행된 이 현장 단속 일지부터 바로잡아야겠지. 너는 사설 길드의 피고용인에 불과하면서 관청의 공무원을 사칭해 영세 상인의 정당한 물품 하역을 방해했다.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와 공무원자격사칭죄다."

현의 목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낮고 묵직하게 파고들었다.

"이 서류철을 들고 국세청 탈세 제보 창구와 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로 갈까 하는데 네놈이 앞장서서 안내하겠느냐?"

강달호는 숨이 턱 막혔다.

눈앞의 남자는 주먹을 휘두르지도 마력을 뿜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손에 쥔 서류와 읊조리는 문장 하나하나가 거대한 길드의 목을 옭아매는 단두대의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내딛다가는 자신이 먼저 세무조사와 경찰 수사의 제물이 될 판이었다.

"미, 미친놈……! 두고 봐라. 본사 법무팀이 가만있을 줄 알아?!"

강달호는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하고 승합차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갔다. 요란한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차가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갔다.

골목에 정적이 감돌았다.

이복자가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상에…… 저 독한 것들이 꼼짝도 못 하고 도망치네."

오한석과 주변 가게 주인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만물상 앞은 삽시간에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대표님, 저 종이에 적힌 게 진짜예요? 저놈들이 세금 떼먹고 우리한테 텃세 부린 겁니까?"

"그렇다."

현은 종이철을 단정하게 정리해 가슴 안쪽에 넣었다.

"저들은 크고 단단한 성벽처럼 보이지만 기초를 썩은 나무로 쌓은 누각에 불과하다. 영수증 한 장, 송장 한 장의 진실만 들이밀어도 무너질 모래성이다."

현이 모여든 상인들을 둘러보며 선언했다.

"저들이 도매망을 쪼개어 우리를 고립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플랫폼의 물길을 합쳐 저들을 고사시킬 것이다. 오늘부로 천마 플랫폼에 '상생 무료 배송' 직통망을 연다. 경기 북부의 채소, 서해안의 건어물, 공장의 포장재까지 산지와 공장에서 낙도구로 직접 잇겠다."

상인들의 눈빛에 벅찬 열기가 차올랐다.

만물상 안에서 김철수가 화면을 띄우며 환하게 웃었다.

천마 플랫폼 메인 화면에 새로운 배너가 깜빡이고 있었다.

[낙도구 자영업 상인 상생 무료 배송 - 산지 직송 연결망 가동]

그것은 거대 유통 카르텔의 목을 향해 겨눈 천마의 첫 번째 반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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