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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맹주가 훈수를 너무 잘 둠3화

전대 맹주가 훈수를 너무 잘 둠

전대 맹주가 훈수를 너무 잘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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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새는 물은 길을 기억한다

단우진은 산길로 오르기 전에 품을 열었다.

젖은 밧줄 조각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헤진 끝과 달리 끊긴 단면만은 소름 끼치도록 반듯했다. 그 곁에 놓인 회색 천 조각에는 검은 삼각 무늬가 박혀 있었다.

둘 다 지금 문파로 들고 갈 물건은 아니었다.

"이걸 들이밀면 조형기가 놀라기는 하겠죠."

〔놀라는 놈이 가장 먼저 뺏는다.〕

"그럼 어디에 숨깁니까?"

〔네 발밑 말고. 비가 그 자리를 다 파낸다. 왼쪽 바위 뒤로 두 자. 뿌리 없는 풀 밑은 피하고.〕

우진은 바위 그늘에 쪼그려 앉았다. 삽 대신 납작한 돌을 들고 질척한 흙을 긁어 냈다. 옆구리가 당길 때마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겨우 손가락 두 마디 깊이를 파자 정운휘가 혀를 찼다.

〔그렇게 얕게 묻으면 들짐승도 웃겠다.〕

"들짐승이 웃는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네놈이 묻는 꼴을 보면 듣게 될 거다. 돌 밑을 파라. 흙에만 묻으면 흔적이 남는다.〕

우진은 돌을 밀었다. 팔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단전 아래에서 겨우 붙잡은 기운이 흔들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힘으로 눌러 담으려 했다.

〔그렇게 잡지 마라.〕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기운도 네 손아귀에 쥐는 물건이 아니다. 쥐면 손가락 사이로 빠진다. 네 몸부터 그릇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진은 욕설 대신 길게 숨을 뱉었다. 어깨를 내리고 턱을 느슨하게 풀었다. 발가락까지 움츠려 있던 힘이 조금씩 빠지자 흔들리던 기운도 바닥에 가라앉았다.

그는 밧줄과 천 조각을 낡은 손수건으로 감쌌다. 돌 밑 깊숙한 곳에 밀어 넣고 흙을 덮었다. 마지막으로 물길을 따라 흘러온 잎사귀 몇 장을 위에 뿌렸다.

〔됐다. 그 정도면 네놈보다 눈썰미 좋은 놈이 아니면 못 찾는다.〕

"칭찬입니까?"

〔사실이다. 기뻐하지 마라.〕

우진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문파로 곧장 돌아가면 자신이 죽었다고 여긴 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얼굴들 앞에서 증거까지 내보이면 다시는 입을 열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살아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누가 자신을 버렸고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봐야 했다.

〔이제 조식한다.〕

"지금요?"

〔지금이다. 네가 화청문까지 절뚝이며 올라가려면 숨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기운을 많이 얻을 생각은 버려라. 새지 않게 붙드는 것만 해도 오늘은 벅차다.〕

우진은 눈을 감으려다가 멈췄다.

〔눈 감지 말랬지.〕

"맹주님이 제 눈으로 본다면서요."

〔그래서 네가 감으면 나도 답답하다. 그리고 네놈은 눈을 감으면 곧바로 아픈 척을 한다.〕

"아픈 척이 아니라 진짜 아픕니다."

〔진짜 아픈 놈일수록 더 제대로 숨 쉬어야 한다.〕

정운휘의 목소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진은 젖은 바위에 손을 얹은 채 콧속으로 숨을 들였다. 차가운 산 공기가 가슴에 닿기도 전에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들이마시는 데 욕심내지 마라. 먼저 비워. 명치 밑을 눌러 내보내고 아랫배만 남겨 둬.〕

한 번.

우진은 숨을 뱉다가 기침을 했다. 갈비뼈가 흔들리고 시야 끝이 하얘졌다.

두 번.

이번에는 왼쪽 어깨가 올라갔다. 정운휘가 즉시 지적했다.

〔어깨. 네가 숨 쉬는 게 아니라 목으로 물을 길어 올리느냐? 내려.〕

세 번.

우진은 어깨를 떨군 채 배 아래를 조였다. 몸속 어딘가에 맺혔던 차가운 한 점이 아주 느리게 선을 그었다. 단전에서 허리 뒤쪽으로 이어지는 감각이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기운을 등줄기 위로 끌어올리려 했다.

〔거기까지. 돌아와.〕

"아직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네 기맥은 막힌 길이 아니라 샛길이 많은 장터다. 네가 재촉하면 기운은 가장 넓은 틈으로 도망간다.〕

우진은 이를 악물었다. 억지로 밀어붙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늘 그랬다. 사형들의 눈을 피해 연무장 구석에서 밤늦도록 심법을 돌리다 보면 진기는 조금 생기는 듯하다가도 손목과 어깨로 빠져나갔다.

그때마다 그는 더 세게 몰아붙였다.

그리고 더 빨리 지쳤다.

〔가르려 하지 말고 감아라. 허리 뒤로 보낸 줄을 다시 단전으로 돌려. 천천히. 네 몸이 기운을 기억하게 해.〕

우진은 숨을 한 번 더 비웠다. 허리 뒤로 번진 기운이 찢어진 옆구리 쪽으로 새려 하자 배 아래를 조였다. 발바닥의 힘을 빼자 막혀 있던 감각 하나가 느슨해졌다.

가느다란 기운이 돌아왔다.

반 바퀴에 불과했다. 어린아이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 것보다도 작은 순환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분명히 돌아왔다.

우진의 입술이 벌어졌다.

"안 사라졌습니다."

〔그래.〕

정운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이제야 네 몸이 네 말을 조금 듣는구나.〕

그 한마디가 묘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재앙적 둔재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정운휘는 그 몸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고 방금은 실제로 한 줄기를 되돌려 보였다.

우진은 웃음을 삼켰다. 웃으면 갈비뼈가 아플 게 뻔했다.

"오늘 안에 천하제일은 못 됩니까?"

〔반 바퀴 돌렸다고 천하제일 타령이냐. 네놈은 욕심도 산란형이다.〕

"그래도 길은 생겼네요."

〔길이 아니라 실금이다. 밟고 다니면 다시 무너진다.〕

"그 실금부터 넓히면 되죠."

정운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핀잔을 주지 않았다.

그 순간 산 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이 아래도 다시 봐라! 돌틈까지 뒤져!"

우진의 몸이 굳었다. 저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조형기였다.

〔바위에 바짝 붙어라. 숨은 아까 한 대로. 들이마시지 말고 비워.〕

우진은 몸을 낮췄다. 젖은 이끼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조금 전 같았으면 심장이 뛰는 대로 숨도 거칠어졌을 것이다. 이번에는 아랫배를 조인 채 공기를 가늘게 내보냈다.

발자국이 가까워졌다.

〔넷이다. 앞의 둘은 발을 끌고 있다. 맨 뒤 놈은 무게가 가볍고 보폭이 길다. 검을 찬 놈이다.〕

바위 위로 회색 제자복 자락이 스쳤다. 앞장선 조형기는 절벽 쪽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단 사제! 살아 있으면 대답해라! 내가 왔다!"

우진은 기가 막혀 입술을 깨물었다. 조형기는 계곡 아래로 한 발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시선도 물살이 센 곳만 훑을 뿐 사람이 버틸 만한 바위틈은 아예 보지 않았다.

그 곁에 선 키 큰 사내가 낮게 말했다.

"형기야. 시신도 못 찾았는데 이쯤에서 물러날 셈이냐?"

소매 끝이 바람에 들렸다.

검은 삼각 무늬.

우진은 손가락을 바위틈에 박았다. 품에 숨긴 천 조각과 같은 문양이었다.

조형기가 고개를 숙였다.

"형님. 물살이 저 정도면 뼈도 남지 않습니다. 문주님께는 제가 끝까지 찾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님.

우진은 그 호칭을 속으로 굴렸다. 조형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동문이다. 하지만 얼굴은 낯설었다. 화청문에서 하급 제자가 대제자 쪽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일은 거의 없었다.

키 큰 사내가 계곡 아래를 내려다봤다.

"살아 있다면?"

조형기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게 더 귀찮습니다. 밧줄이 끊어진 걸 물고 늘어질 테니까요."

우진의 호흡이 한순간 흔들렸다.

〔내보내. 지금은 듣는 게 먼저다.〕

그는 혀를 깨물었다. 피 맛이 입안에 번졌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키 큰 사내가 짧게 웃었다.

"그 애가 무슨 수로 살아 돌아오겠어. 살아도 이 길로 오면 끝이지."

조형기는 산길 아래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연무장 뒤편 길에 둘을 세워 뒀습니다. 혹시 기어 나오면 데려오라 했습니다. 문파가 시끄러워지는 건 싫으니까요."

‘데려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진은 묻지 않아도 알았다.

계곡에 던져 죽이려 했던 자들이 자신이 살아 있으면 조용히 끝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장 뛰쳐나가 조형기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목소리라도 듣게 한 뒤 밧줄 자국을 들이밀고 싶었다. 하지만 바위 위에는 넷이 있었고 그의 다리는 한 번 힘을 주면 발목부터 찌그러졌다.

무엇보다 저들은 아직 자신이 살아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참는 것과 물러나는 것은 다르다.〕

정운휘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네가 지금 나가면 저놈들은 말을 바꾼다. 네가 숨어 있으면 더 많은 말을 한다.〕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파 안으로 들어가서 보겠습니다. 누가 제 죽음을 아쉬워하는지 말고 누가 서두르는지."

〔그게 낫다. 다만 네 꼴로 정문을 넘을 생각은 하지 마라.〕

수색대는 더 아래를 살피는 척하다가 갈라졌다. 조형기와 키 큰 사내는 절벽 쪽으로 올라갔다. 두 제자는 연무장 뒤편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향했다.

우진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바위에서 일어나자 왼쪽 발목이 찌릿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는 반사적으로 발을 끌려다가 멈췄다.

〔오른발 바깥쪽부터. 체중을 한 번에 싣지 마라.〕

"죽은 사람도 걸음걸이는 고쳐야 합니까?"

〔죽은 척할 놈일수록 멀쩡하게 걸어야 한다.〕

우진은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웃음이 나와도 숨이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제자복의 겉옷을 벗어 돌 틈에 숨겼다. 안쪽의 검은 속옷 위로 진흙을 문질러 색을 죽였다. 얼굴에는 젖은 흙을 얇게 바르고 머리카락을 이마 앞으로 늘어뜨렸다.

문파 가까이까지는 짐승길을 타고 갈 생각이었다. 연무장 뒤편에서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듣고 나면 담장을 넘을 틈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가 풀숲을 향해 한 발 내딛으려는 순간 정운휘가 숨을 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멈춰. 앞쪽 풀 두 군데가 눌렸다. 방금 생긴 자리다.〕

우진은 즉시 몸을 낮췄다. 비에 젖은 풀 사이로 발자국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한 줄은 큰 길로 향했고 다른 한 줄은 길에서 비껴나 숲속으로 들어갔다.

매복이었다.

바람을 타고 목소리가 들렸다.

"형기 사형도 쓸데없이 사람을 세워 둔다니까. 죽은 놈을 뭘 또 기다려."

"입 다물어. 살아 있으면 조용히 데려오랬잖아."

"정말 살아 있으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더 조용히 해야지."

우진의 손이 허리춤의 짧은 칼로 갔다. 잡역을 하며 나무뿌리를 자르던 무딘 칼이었다. 손잡이는 젖어 있었고 손바닥의 상처는 다시 벌어질 듯했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계곡 반대편으로 돌아가 며칠을 더 숨으면 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저들은 증거를 찾고 거짓말을 맞출 것이다. 문파 안에서 자신을 죽은 자로 만들 시간도 벌게 된다.

우진은 천천히 숨을 내보냈다. 단전 아래의 가느다란 기운이 흔들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둘이네요."

〔둘이다. 하지만 네가 다친 걸 안다. 방심도 한다.〕

"제가 이기면 맹주님이 칭찬해 주십니까?"

〔네가 살아남으면 고려해 보마. 오른쪽 놈이 먼저 찌른다. 반 걸음만 옮겨라. 검은 아직 뽑지 마라.〕

풀숲 너머에서 검집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우진은 발바닥 바깥쪽으로 땅을 눌렀다.

반 걸음.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듯 정운휘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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