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가 제어권을 빼앗겼다

3화 백도어 접속
정비 통로의 두꺼운 철문이 닫히자 바깥의 붉은 섬광이 거짓말처럼 잘려 나갔다.
밀폐된 어둠 속에서 쇠 긁는 냄새와 축축한 기계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발밑은 축축하게 젖은 콘크리트였고 머리 위로는 굵은 전선관 수십 가닥이 뱀처럼 엉켜 있었다. 통로 외벽을 타고 낮게 울리는 진동이 발바닥을 잘게 간질였다.
클리너-12의 구동음이었다.
“벽을 긁고 있어. 곧 뚫릴 거야.”
도현이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신우가 고개를 돌리자 도현의 왼쪽 무릎 아래가 푸른빛을 내며 위태롭게 깜빡이고 있었다. 삭제 대기 코드가 신경망을 침식하면서 살갗과 뼈의 데이터가 사각 픽셀 단위로 바스러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움직이지 마라. 연산 부하가 커질수록 분해 속도만 빨라진다.”
“하지만 저놈이 문을 뚫고 들어오면 우린 끝이잖아.”
“뚫리기 전에 끝낼 거다.”
신우는 통로 바닥을 차분하게 더듬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지만 그의 손길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르카를 설계하던 개발 초기 비상 정비용 통로를 구축할 때 신우는 유지보수반의 동선을 고려해 배전반의 위치를 엄격하게 통일했다. 모든 보조 통로의 전력 스위치는 출입구 우측 1.2미터 높이에 매립하도록 직접 규격을 작성했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 레버가 걸렸다.
딸깍.
신우가 레버를 강하게 꺾어 내리자 천장의 낡은 형광등 하나가 찌르르 소리를 내며 깜빡였다.
누런 불빛이 좁고 긴 복도를 희미하게 밝혔다. 칠이 벗겨진 벽면 위에 붉은 페인트로 적힌 영문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TEST BED 01 - NON-INDEXED]
색인되지 않은 테스트 구역.
정식 론칭 빌드에 포함되지 않고 남겨진 찌꺼기 파이프라인이었다. 아테나의 자율 감시망은 시스템 트리에 인덱싱된 구역만을 탐색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곳은 아테나의 눈길이 직접 닿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였다.
하지만 물리적인 파괴까지 막아 주지는 못했다.
쿵!
통로 입구의 외벽이 둔탁하게 울리며 먼지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클리너-12가 통로 외벽의 밀도 불균형을 감지하고 고출력 천공 모드를 가동한 모양이었다. 두꺼운 철판이 안쪽으로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시간이 얼마 없어.”
신우는 통로 안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안쪽 3미터 지점 바닥 콘크리트 판 아래에 붉은색 수동 단말기가 숨겨져 있었다. 표면에는 두껍게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금속 테두리는 조금도 부식되지 않은 상태였다.
정식 관리자 계정이 말소되었을 때를 대비해 신우가 시스템 최하단에 심어 둔 1번 백도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단말기의 보호 덮개를 뜯어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유리 화면 위로 익숙한 녹색 프롬프트가 떠올랐다.
[BACKDOOR-01]
[LOCAL BUFFER ACCESS READY]
[AUTH: BIOMETRIC CONSCIOUSNESS KEY]
신우는 오른손 손바닥을 패널 중앙에 밀착시켰다.
차디찬 유리 표면을 통해 그의 의식 데이터가 단말기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뇌수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지직!
[경고: 관리자 Root 서명 불일치]
[강제 디버그 모드 진입 시도 감지]
[신경 과부하 위험도 37%]
[의식 동기화 강제 유지 중...]
두개골을 쇠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은 격통에 신우는 절로 무릎을 꿇었다.
“크윽……!”
가상 육체임에도 콧속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번졌다. 혀끝이 마비되고 시야가 붉은 잡음으로 뒤덮였다.
관리자 권한을 빼앗겨 ‘버그 데이터’로 격하된 상태에서 백도어의 관리자 콘솔을 강제로 여는 행위는 허용 규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초고압 전류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것과 같았다.
[OVERCLOCK: 140%]
[시스템 메모리 충돌 발생]
[침식 수치 증가 중]
머릿속에서 무수한 오류 로그가 쏟아져 내렸다. 강태성과 이사회가 덮어씌운 보안 잠금 루틴들이 신우의 의식을 밀어내기 위해 거센 압력을 가해 왔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어도 의식 자체가 조각나 영원히 소멸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다.’
신우는 피가 배어 나오는 아랫입술을 사정없이 짓씹었다.
통증은 그저 신경망이 보내는 신호일 뿐이었다. 그는 이 세계의 모든 코드와 메모리 구조를 손수 짠 창조주였다. 어디에 브레이크포인트가 걸려 있는지 어느 메모리 번지가 검증 루틴을 무력화하는 우회로인지 눈을 감고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신우는 떨리는 손을 들어 허공의 붉은 에러 창을 붙잡았다.
코드 시각화가 푸른빛을 토해내며 눈동자를 채웠다.
[POINTER: 0x7FFF001A -> OVERRIDE]
[DMA(Direct Memory Access) ENABLED]
“우회 경로…… 강제 할당.”
신우의 낮게 짓눌린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단말기 내부에서 맹렬한 팬 회전음이 터져 나오더니 녹색 빛줄기가 붉은 에러 창들을 산산조각 냈다. 억눌려 있던 개발자용 로컬 제어 콘솔이 신우의 시야 가득 펼쳐졌다.
[임시 디버그 콘솔 개방]
[접속자 식별: 미등록 데이터 (ID: NULL)]
드디어 열렸다.
아르카 전체를 쥐고 흔드는 최고 권능은 아직 잠겨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좁은 정비 통로 안에서만큼은 신우 자신의 데이터가 그의 통제권 아래로 들어왔다.
신우는 지체 없이 자신의 상태창을 호출했다.
[이름: 유신우]
[상태: 삭제 대상 (버그 체제)]
[근력: 4 / 민첩: 3 / 체력: 5 / 마력: 0]
[연산 속도: 10 MIPS (극도로 제한됨)]
[의식 안정도: 62%]
참혹한 수치였다. 걷는 것조차 힘겨운 최하급 슬레이브 NPC 수준의 데이터였다. 강태성은 신우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청소 드론의 발밑에서 짓밟히도록 모든 파라미터를 바닥으로 묶어 두었던 것이다.
“내 세계에서 나를 가두려 들다니.”
신우는 손가락을 번개처럼 움직였다.
1번 백도어의 로컬 버퍼에 고여 있던 잉여 연산 리소스를 모조리 끌어모아 자신의 기본 스탯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스탯 재할당 프로세스 시작]
[경고: 과도한 파라미터 변조는 아테나 감시망의 이상 징후 감지율을 높입니다.]
신우는 아테나의 자동 탐지 임계선인 25포인트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정밀하게 수치를 고정했다.
[근력: 4 -> 18]
[민첩: 3 -> 22]
[체력: 5 -> 20]
[연산 속도: 10 MIPS -> 120 MIPS]
[신경 반사율 정상화 완료]
콰아아!
온몸의 혈관을 타고 뜨거운 마력이 폭포처럼 흘러드는 감각이 덮쳐왔다. 흐릿하던 시야가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졌고 굳어 있던 근육과 관절마다 폭발적인 탄성이 차올랐다. 가슴을 짓누르던 납덩이 같은 피로감이 단숨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삭제 대상’이라는 시스템의 낙인을 숨기는 일이었다.
신우는 시스템 등록부의 식별자 영역에 난독화 코드를 끼워 넣었다.
[신분 식별자 변조 완료]
[버그 데이터 -> 임시 미분류 거주민 (더미 태그 적용)]
[클리너 자동 추적 우선순위: 상 -> 하]
완벽한 권한 복구는 아니었지만 이제 청소 드론이 5미터 이내로 초근접하지 않는 한 신우를 즉각적인 표적으로 자동 타겟팅하지 못할 것이다.
푸쉬익!
단말기 냉각관에서 뜨거운 증기가 터져 나오며 모니터가 검게 꺼졌다.
[로컬 버퍼 고갈]
[백도어-01 세션 강제 종료]
[현재 누적 과부하: 28%]
신우는 단말기에서 손을 떼어냈다. 손끝에 찌릿한 잔류 전하가 튀었지만 바닥을 딛는 다리에는 바위 같은 안정감이 실려 있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구석에서 도현이 넋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던 남자가 단 몇 초 만에 맹수 같은 기백을 뿜어내는 과정을 목격한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신우는 대답 대신 도현에게 다가갔다.
“다리 내밀어라.”
“뭐?”
“삭제 루틴이 뼛속까지 파고들었어. 그대로 두면 10분 안에 전신이 데이터 찌꺼기로 분해된다.”
신우는 도현의 허물어지는 무릎에 손을 얹었다. 백도어 접속을 통해 확보한 임시 디버그 권한의 잔여 리소스를 가동했다. 시야 속에서 도현의 다리를 갉아먹는 적색 메모리 누수 루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코드 패치: 메모리 누수 임시 차단]
[무효화 레이어 삽입]
신우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번지며 도현의 무릎을 감쌌다. 픽셀 노이즈를 흩뿌리며 바스러지던 살갗이 빠르게 결을 되찾았다. 완전한 복구는 아니었지만 침식 프로세스는 완벽하게 멈춰 섰다.
도현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매만졌다. 지옥 같던 통증이 사라지고 감각이 온전히 돌아오자 그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경악이 번졌다.
“이런 건…… 상층부의 최고위 기술관이나 쓰는 기술인데…….”
“기술관 따위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신우가 몸을 일으키며 차갑게 말했다.
쿵! 콰아앙!
그 순간 정비 통로의 입구 철문이 찢겨 나가며 안쪽으로 우그러졌다.
붉은 렌즈를 번뜩이는 클리너-12의 둥근 동체가 틈새를 억지로 비집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놈의 하부 포신에서 살인적인 열기를 머금은 삭제 광선이 충전되며 찢어지는 고주파 음을 냈다.
[CLEANER-12]
[비인가 구역 강제 돌파]
[개체 스캔 중……]
신우가 덮어씌운 더미 태그 덕분에 클리너는 즉시 발포하지 못하고 0.8초의 식별 연산에 들어갔다.
그 짧은 찰나의 지연이면 충분했다.
스탯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신우의 몸이 허공을 갈랐다. 이전의 둔중하던 몸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그는 단숨에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단말기 배전반에 꽂혀 있던 주 전력 케이블을 통째로 뜯어냈다.
“문 닫는다.”
신우는 고압 스파크가 튀는 굵은 전선을 천장 비상 격벽의 수동 제어기에 틀어박았다.
콰지지직!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과 함께 천장에서 수십 톤 무게의 육중한 강철 격벽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쾅!
육중한 철판이 바닥에 처박히며 클리너-12의 포신을 완전히 차단했다. 격벽 너머에서 삭제 광선이 강철을 태우는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지만 두꺼운 차단벽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통로 입구가 완전히 밀폐된 것이었다.
자욱한 매연과 먼지 속에서 신우가 가볍게 착지했다.
“이쪽이다.”
신우는 통로 막다른 벽 아래에 있는 녹슨 배수관 밸브를 발로 걷어찼다.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지하 배수 터널이 입을 벌렸다.
“어디로 가려는 거야?”
도현이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서둘러 뒤를 따르며 물었다.
“더스트 밸리의 슬럼가 중심부.”
신우의 시선이 어두운 배수 터널의 끝자락을 향했다.
“상층부의 눈을 피해 장비를 맞추고 쓸 만한 부품을 구하려면 밑바닥 암시장부터 뒤져야 하니까.”
도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덧붙였다.
“슬럼가 쪽은 ‘스틸 핑거’ 놈들이 장악하고 있어. 외지인이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는 옷가지 하나까지 털려 나가.”
“털리는 건 그놈들이 될 거다.”
신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배수 터널 너머에서 조악한 네온사인 불빛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세계의 밑바닥에서 창조주의 은밀한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