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용병단, 장부 하나로 전장을 지배함

4화: 장부에 없는 출발
은괴 꾸러미는 가르크의 어깨에서 작은 갑옷처럼 흔들렸다.
무게만 보면 든든했다. 하지만 한스에게 은괴는 아직 급여가 아니었다. 내일 아침까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무거운 금속일 뿐이었다.
"북쪽 관문으로 바로 가면 안 되나?"
가르크가 물었다.
"로웬을 잡는 것보다 먼저 값을 바꿔야 합니다. 적재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 수레를 보는 순간 움직일 겁니다."
이사벨라는 말없이 은괴 꾸러미를 바라봤다. 검집 끝에는 마구간의 짚이 붙어 있었다.
"어디로 가지?"
"도린 대장간입니다. 회색 여우와 거래를 끊은 곳이니까요."
밤의 대장간은 문을 닫은 뒤였다. 한스가 철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망치가 멎었다. 잠시 뒤 문틈으로 불신 가득한 눈 하나가 나타났다.
"새벽에 와. 지금은 쇠도 사람도 안 받는다."
"미사용 군마 편자와 은괴입니다. 합쳐서 백육십일 골드 팔십 실버어치죠."
문틈의 눈이 멈췄다.
도린은 문을 연 뒤에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는 편자 하나를 집어 불빛에 돌려 보았다. 새 금속의 푸른 빛이 화로 앞에서 번뜩였다.
"출처가 더럽군. 편자는 반값이고 은괴는 녹여 본 뒤에나 쳐 주지."
가르크의 손이 검자루에 올라갔다.
한스가 먼저 장부를 폈다.
"편자는 북부 규격입니다. 못 간격이 도린 씨 창고의 겨울용 못과 맞습니다. 사흘 뒤 군수 수리 물량에도 바로 쓸 수 있고요."
"네가 내 창고를 알아?"
"알 필요 없습니다. 이 근방에서 그 못을 만드는 곳은 여기뿐이니까요."
도린의 눈썹이 움찔했다.
한스는 편자 상자와 은괴 꾸러미를 나란히 놓았다.
"편자는 장부가 적은 전매가인 육십오 골드 팔십 실버로 넘깁니다. 은괴는 아흔여섯 골드로 바꾸십시오. 대신 금화와 은화를 세 자루로 나눠 주셔야 합니다. 한 자루로 움직이면 회색 여우가 냄새를 맡습니다."
"그 값이면 내가 남는 게 없어."
"남습니다. 회색 여우가 밤중에 같은 규격의 편자를 쓸어 가기 전에 확보하는 값입니다. 그들이 이틀 전부터 이 물건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도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작업장 안쪽에 쌓인 편자 못 상자를 한 번 돌아봤다.
가르크가 낮게 말했다.
"한스. 너무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아는 게 아니라 물건이 말하는 겁니다. 같은 편자를 밤중에 찾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닙니다."
잠시 뒤 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내 장부에는 정상 매입으로 적는다. 네 물건이 도둑질한 물건이 아니라는 단장 인장이 필요해."
이사벨라가 한스가 내민 종이에 인장을 찍었다.
"블랙로즈 소유물의 회수와 처분이다. 로웬의 개인 인장은 내 용병단 재산을 넘길 권한이 없다."
도린은 그제야 돈 자루를 꺼냈다. 붉은 끈 하나에는 오십 골드, 파란 끈 하나에는 오십 골드, 흰 끈 하나에는 예순한 골드 팔십 실버가 들어갔다.
한스는 각 자루의 무게와 동전 수를 확인한 뒤 장부에 적었다. 주방에서 남은 급여 부족분은 백사십팔 골드 삼십 실버였다. 지금 받은 돈으로 전액을 메우고도 열세 골드 오십 실버가 남았다.
가르크는 세 자루를 허리춤과 품 안에 나눠 넣었다.
"동전도 나눠 들면 안 무겁냐?"
"무게는 같습니다. 빼앗기는 위험이 줄어듭니다."
그때 대장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회색 여우 문양을 단 회색 망토의 남자가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손가락에는 막 굳은 밀랍이 묻어 있었다.
"늦은 거래가 있었군요. 블랙로즈 단장님."
남자는 이사벨라에게 허리를 숙였다.
"회색 여우 북부 지점장 베르트입니다. 로웬 부단장께서 맡긴 물건을 함부로 처분하시면 곤란합니다."
이사벨라의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로웬은 내 부단장이다. 네 상단의 창고지기가 아니야."
베르트는 얇게 웃었다.
"개인 계약이 있습니다. 인장이 찍힌 반출표도 있고요. 그 물건은 이미 상단 소유입니다."
한스가 마구간 출납부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 반출표에는 죽은 말 여섯 필의 사료와 쓰지 않은 편자가 섞여 있습니다. 로웬이 가진 권한으로 용병단 물건을 개인 계약에 넣었다면 그 계약은 소유권이 아니라 횡령품을 옮긴 증거입니다."
"증명할 수 있습니까?"
"실제 말 수를 적은 브람의 자필 진술이 있습니다. 편자 상자의 납품 표식과 창고 바닥의 반출 흔적도 남아 있고요. 필요하면 지금 여기서 편자 못 자국까지 대조하죠."
베르트의 입가가 굳었다.
이사벨라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블랙로즈의 단장으로서 로웬 명의의 모든 반출을 보류한다. 내 단의 재산을 움직이면 절도 공범으로 기록하겠다."
베르트가 뒤쪽 인부에게 눈짓했다. 인부는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려다 한스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멈췄다.
종이 모서리에 검은 숫자가 보였다.
제3 병참청. 계약 제칠구이호.
한스의 시선이 종이에 박혔다.
"그 계약은 무엇입니까?"
"상단의 영업 비밀입니다."
"영업 비밀이면 왜 로웬의 반출표와 함께 들고 다니죠?"
베르트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새벽에 관문 적재장으로 가십시오. 거기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들으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한스는 도린에게 거래 장부 사본을 받아 들었다.
"가르크 조장님. 붉은 끈과 파란 끈은 막사로 보내십시오. 흰 끈은 저와 단장님이 들고 갑니다."
"적재장에 돈까지 들고 가겠다고?"
"상단이 급여를 늦추려는 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 저들이 전령을 보내기 전에 가야 하고요."
북쪽 관문 바깥의 임시 적재장은 어둠 속에서도 환했다. 등불 아래에는 회색 여우 표식 상자가 줄지어 있었고 수레 바퀴 자국이 진흙을 갈랐다.
인부 하나가 길을 막았다.
"여긴 상단 구역입니다. 허가증 없이는 못 들어갑니다."
이사벨라가 검을 뽑지 않은 채 인장을 내보였다.
"내 용병단의 물자가 있다. 확인한다."
"로웬 부단장께서 이미 넘기셨습니다."
"그래서 확인한다."
가르크가 인부의 뒤를 돌아 출구 쪽 수레를 막았다. 조원들은 검을 빼지 않았지만 손을 창대에 얹었다.
한스는 상자를 헤집지 않았다. 먼저 상자 옆면의 봉인 번호를 읽었다. 마구간에서 나온 운송 지시서의 번호와 하나씩 대조했다.
일곱 개 중 셋이 일치했다.
그는 바닥을 가리켰다.
"이 상자들은 수레에 실렸다가 다시 내려졌습니다. 바퀴 자국은 두 겹인데 밧줄 자국은 한 겹입니다. 먼저 로웬의 수레에 올렸다가 다른 수레가 오기 전에 급히 내린 겁니다."
인부의 얼굴이 굳었다.
"로웬의 수레는 어디 있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한스가 상자 하나의 봉인을 뜯었다. 안에는 식량이 아니라 새 편자와 마른 콩 포대가 들어 있었다. 포대 안쪽에는 블랙로즈 창고에서 쓰던 푸른 납품 끈이 남아 있었다.
가르크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우리 물건이 맞아."
상자 밑에서는 운송 명세 한 장이 나왔다. 수신처는 검은 종탑 여관. 경유처는 제3 병참청 납품 대기고였다.
인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로웬 나리는 새벽 종이 울리기 전에 동쪽 여객 마차로 갈아탔습니다. 여관에서 사람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물건만 맡았습니다."
이사벨라의 손이 명세서를 구겼다. 하지만 그녀는 찢지 않았다.
"이 상자들은 모두 봉인한다. 인부들의 이름도 적어라."
"단장님."
한스가 조용히 불렀다.
"지금은 급여를 지급해야 합니다. 이 상자는 증거로 남겨야 로웬이 어디까지 팔아넘겼는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사벨라는 한스를 바라봤다. 배신을 부정할 때의 흔들림은 더 없었다.
"그래. 내가 단장이면서도 사람들을 굶겼다. 그러니 오늘은 변명 대신 돈을 준다."
그녀는 명세서를 한스에게 건넸다.
"오늘 밤부터 블랙로즈의 물자는 내 이름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네 장부를 거쳐라."
막사 앞의 횃불은 새벽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단원들은 잠을 자지 못한 얼굴로 줄을 서 있었다. 누군가는 빈 손을 쥐고 있었고 누군가는 갑옷 끈을 풀지도 못했다.
"또 기다리라는 말이면 됐습니다."
줄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사벨라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지급대 앞에 서서 첫 번째 돈주머니를 직접 들어 보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이제 받는다."
한스가 장부를 펼쳤다.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은화 열두 장과 식량 표 한 장입니다. 누락되면 그 자리에서 말하십시오."
첫 번째 주머니가 손바닥에 떨어졌다.
동전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다음 사람의 숨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가르크는 이름을 불렀고 이사벨라는 지급을 확인했다. 한스는 받은 사람의 엄지에 먹물을 찍어 장부 옆에 남겼다. 아무도 두 번 받지 못했고 아무도 빠지지 못했다.
마지막 은화를 건넨 뒤 한스는 남은 돈을 세었다. 열세 골드 오십 실버. 장부의 완충분과 한 푼도 다르지 않았다.
브람은 감금되기 전 써 둔 진술서를 들고 있었다. 한스가 마지막 장을 넘기자 짧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로웬 부단장께서는 매일 저녁, 단 안의 누군가에게서 보급 현황을 들었다.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문장 끝에는 낯선 작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한스는 지급 장부의 먹물 자국을 내려다봤다.
방금 엄지를 찍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의 도장이 그 인장과 같은 모양으로 번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