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던전 마수 요리 백과

2화: 독을 걷어낸 불꽃
지하 회랑의 공기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돌기둥 그늘 아래 쓰러진 리아의 숨소리는 젖은 풀잎처럼 가늘게 떨렸다. 상처 부위에서 피어오르는 비릿하고 시큼한 마비독의 악취가 이끼 숲의 습기를 타고 스멀스멀 번져 나갔다.
도윤은 주저하지 않고 가슴 포켓에서 금속제 조리용 핀셋을 꺼냈다.
파인다이닝 주방에서 어린 허브 잎과 미세한 가니시를 집어 올릴 때 쓰던 은빛 핀셋이었다. 정밀하게 맞물리는 핀셋 끝이 푸르스름한 이끼 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살을 찢으면 독이 혈관을 타고 더 깊이 들어갑니다. 가만히 계세요."
도윤은 무릎을 꿇고 리아의 부어오른 종아리를 단단히 받쳤다.
피부 표면에 박힌 검은 가시침은 살 속에서 낚싯바늘처럼 미세하게 휘어져 있었다. 억지로 잡아당기면 침 끝의 독낭 주머니가 찢어지며 상처 안쪽으로 마비액을 쏟아낼 위험이 컸다.
도윤은 핀셋 끝으로 가시침의 뿌리 부분을 섬세하게 물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저항감을 읽어내며 각도를 반 발자국 틀었다. 마수의 근육 결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단번에 힘을 주었다.
찌익.
검붉은 진물과 함께 검은 침이 뽑혀 나왔다.
"으윽……!"
리아가 고통에 겨워 신음하며 몸을 뒤틀었지만 도윤은 침착하게 그녀의 허벅지를 누르며 상처 주변을 강하게 압박했다.
검푸르게 고여 있던 오염된 피가 핏방울을 이루며 흘러나왔다. 도윤은 조리복 안쪽의 마른 천을 찢어 상처를 닦아낸 뒤 핀셋을 옷깃에 닦았다.
"독침은 뽑았지만 이미 혈액 속으로 퍼진 마비 성분은 남아 있습니다. 체온이 떨어지면 심장까지 독이 돌아요."
도윤의 시선이 리아의 허리춤에 달린 가죽 주머니로 향했다.
"혹시 불을 피울 도구가 있습니까?"
리아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간신히 턱짓을 했다.
"가죽낭…… 안쪽에…… 부싯돌이랑…… 마른 풀……."
도윤은 조심스럽게 가죽낭을 열었다.
안에는 쇠막대와 부싯돌 한 쌍, 기름을 먹여 말린 섬유 뭉치, 거칠게 빻은 회색 소금 결정이 든 작은 가죽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탐사자가 비상시에 사용하는 최소한의 생존 키트였다.
소금 주머니를 확인한 도윤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식재료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독침토끼의 사체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방혈을 서두른 덕분에 근육 속으로 피가 굳어 들어가지 않아 살결이 맑고 탄력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난관은 지금부터였다.
도윤은 셰프 나이프를 쥐고 무릎을 세웠다.
조리대도, 흐르는 물도, 소독용 알코올도 없는 축축한 돌바닥 위였다. 단 한 번의 칼실수로 내장 안쪽의 독낭을 건드리면 고기 전체가 치명적인 독덩어리로 변질되어 폐기해야 했다.
도윤은 숨을 들이마시며 토끼의 사체에 손을 얹었다.
화아악.
코끝을 스치는 냄새와 함께 손끝의 감각을 타고 『미각 감정』이 다시 한번 뇌리에 뚜렷한 지도를 펼쳐 보였다.
―복부 하단 담도 부근: 흑자색 독낭. 두께 0.2밀리미터의 얇은 장막으로 싸여 있음. 마찰이나 강한 압력 시 파열 위험.
―간 및 췌장: 독소 집적 부위. 타액과 결합 시 급성 신경 마비 유발. 조리 불가.
―대퇴부(뒷다리) 근육군: 림프선과 독관이 침투하지 않은 순수 근육 섬유. 지방이 적고 마그네슘과 단백질 농도가 높아 가열 섭취 시 마비 완화 및 체력 회복 효과.
'독낭의 위치는 갈비뼈 바로 아래, 간막 뒤편에 숨어 있다.'
도윤은 칼끝을 세웠다.
셰프 나이프의 예리한 칼날이 토끼의 하복부 표피를 스치듯 갈랐다. 가죽만을 얇게 벗겨내고 복벽 근육을 0.5밀리미터 깊이로 정밀하게 절개했다.
서걱.
가죽이 벌어지자 짙은 핏빛 내장 사이로 탁구공만 한 흑자색 주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얇은 막 너머로 끈적한 검은 액체가 맥동하듯 출렁이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살을 녹이고 마비를 일으키는 맹독 덩어리였다.
도윤은 숨을 멈추고 오른손 나이프를 쥔 채 왼손으로 가슴의 핀셋을 다시 꺼냈다.
핀셋으로 독낭을 지지하는 미세한 결합조직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이프의 칼끝 곡면을 이용해 내장과 독낭을 잇는 관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끊어냈다.
툭.
검은 독낭이 한 방울의 진물도 흘리지 않고 온전하게 분리되었다.
도윤은 독낭과 검붉은 간을 조심스럽게 집어 올려 주변 석벽의 깊은 바위 틈새에 밀어 넣고 큰 돌멩이로 입구를 막았다. 냄새가 새어 나와 다른 마수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었다.
"후……."
짧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위험한 부위를 걷어내자 순수한 붉은 살코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육향이 공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야생 토끼 특유의 짙은 철분 냄새 속에서도 잡내가 거의 섞이지 않은 맑은 향이었다.
도윤은 칼날을 능숙하게 놀려 두툼한 뒷다리살 두 덩이와 등줄기를 따라 붙은 안심을 완벽하게 발라냈다.
뼈와 관절의 결을 따라 칼끝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살점을 한 점의 낭비도 없이 깔끔하게 도려냈다.
발라낸 다리살은 단단하고 탄력이 넘쳤다.
도윤은 칼날을 45도 각도로 눕혀 살코기 표면에 3밀리미터 간격으로 촘촘한 격자무늬 칼집을 넣었다. 질긴 근막을 끊어내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고 열기가 속까지 고르게 침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은 불이다."
도윤은 주변을 살폈다.
이끼로 뒤덮인 바닥은 축축했지만 무너진 석조 기둥 틈새에는 지하의 메마른 바람에 바짝 마른 오래된 나무뿌리들이 얽혀 있었다.
그는 손으로 부러뜨려 굵직한 마른 장작과 가는 불쏘시개를 모았다. 납작한 돌들을 주워 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작은 ㄷ자 형태의 돌 화덕을 쌓았다.
돌 화덕 한가운데에 기름 먹인 섬유 뭉치를 놓고 부싯돌을 강하게 내리쳤다.
챙! 챙!
몇 번의 마찰음 끝에 튀어 오른 붉은 불꽃이 섬유 뭉치에 옮겨붙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도윤은 입으로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어넣으며 가는 나뭇가지를 얹었다. 불길이 점차 자리를 잡으며 붉고 따스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연기가 높게 치솟으면 위험했다. 도윤은 불꽃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숯 형태의 불씨를 유지하며 열기를 돌 화덕 안쪽에 가두었다.
그는 주변에서 곧고 단단한 생나무 가지를 꺾어 칼로 겉껍질을 깨끗이 깎아냈다.
손질해 둔 독침토끼의 다리살과 안심을 한입 크기로 큼직하게 썰어 나뭇가지에 촘촘하게 꿰었다. 고기 사이사이에는 토끼의 뱃살 부위에서 떼어낸 흰 지방 덩어리를 끼워 넣었다.
"지방이 적은 야생 고기는 직화로 구우면 수분이 금방 날아가 퍽퍽해진다."
도윤은 나직하게 혼잣말을 읊조리며 꼬치에 리아의 주머니에서 꺼낸 회색 소금을 고르게 뿌렸다. 소금 알갱이가 붉은 살코기 표면에 닿으며 육즙을 살짝 끌어올렸다.
치이익―!
달궈진 돌 화덕 위로 고기 꼬치를 올리자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꽃이 직접 고기에 닿지 않도록 은근한 숯불의 복사열로 겉면을 익혀 나갔다.
고기가 익어가며 붉은빛이 점차 짙은 황금빛 갈색으로 변해갔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며 퍼져 나오는 고소한 향은 축축한 이끼 숲의 곰팡내를 순식간에 밀어냈다.
도윤은 고기 사이에 끼워 둔 지방이 녹아내릴 때마다 꼬치를 돌려가며 기름을 살코기 표면에 골고루 덧발랐다. 녹아내린 기름이 고기 겉면을 코팅하며 속의 육즙을 가두었고 타지 않는 황금빛 막을 형성했다.
톡, 톡 튀는 기름 소리와 함께 퍼져 나가는 육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으…… 으음……."
고통에 신음하던 리아가 희미하게 눈을 깜빡였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냄새는 그녀가 평생 맡아본 그 어떤 음식보다도 강렬하고 달콤했다. 탐사자들이 먹는 딱딱한 보존 빵이나 소금에 절인 질긴 건포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향기였다.
리아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서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붉은 모닥불을 등진 채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 꼬치를 돌리고 있었다.
"너…… 지금 뭘 하는 거야……?"
리아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도윤은 고기 꼬치를 불 위에서 거두어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일어났습니까. 딱 알맞게 익었네요."
"그 고기…… 설마…… 방금 그 독침토끼야?"
리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미쳤어? 독침토끼는 먹는 게 아니야! 탐사자 길드에서도 마수는 독성이 강해서 절대 입에 대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그걸 먹으면 몸 전체가 마비돼서 죽어!"
"독낭과 간을 완벽하게 분리했습니다. 마비독은 신경과 내장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다리살에는 독이 침투하지 않았어요."
도윤은 꼬치 끝을 입으로 가볍게 불어 식힌 뒤 리아의 입가로 내밀었다.
"칼집을 넣어 속까지 균일하게 익혔고 소금으로 간을 맞췄습니다. 당신 지금 체온이 떨어져서 손끝까지 굳어가고 있어요. 영양을 공급하지 않으면 몸이 독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 하지만……."
리아는 고기를 노려보았다.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구워진 겉면 위로 투명한 육즙이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은은한 숯불 향과 짭조름한 소금 냄새가 공복에 지친 위장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꼬르륵―
리아의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극도의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본능이 이성을 앞질렀다.
"……독 있으면, 당신 가만 안 둘 거야."
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꼬치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바삭.
얇게 크러스트를 형성한 겉면이 경쾌하게 부서지며 그 안에 갇혀 있던 뜨거운 육즙이 입안 가득 터져 나왔다.
"……?!"
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비린내나 잡내는 흔적조차 없었다. 씹을수록 치밀하고 쫄깃한 다리살 근육 섬유 사이에서 담백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배어 나왔다. 적절하게 밴 소금기가 고기 본연의 단맛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이, 이게 마수 고기라고……?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고 고소해……?"
한 번 터진 식욕은 멈출 줄 몰랐다.
리아는 체면도 잊은 채 두 손으로 꼬치를 쥐고 정신없이 뜯어먹기 시작했다. 쫄깃한 안심과 기름진 껍질 부위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차갑게 식어 있던 식도와 위장을 뜨겁게 덥혔다.
꿀꺽.
마지막 한 점까지 깨끗하게 삼켜버린 리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리아의 아랫배 안쪽에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음식의 온기가 아니었다. 고기 속에 응축되어 있던 순수한 생명력과 마력의 잔재가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갔다.
"어……? 몸이……."
리아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차갑게 굳어 파랗게 질려 있던 손가락 끝에 붉은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종아리를 짓누르던 납 덩어리 같은 마비감과 오한이 거짓말처럼 씻겨 나가며 가벼운 전율이 전신을 감쌌다.
『식성 공명』의 첫 번째 발현이었다.
마수의 순수한 영양과 생명력을 독성 없이 흡수한 신체가 던전 환경에 적응하며 생체 활력을 급격히 끌어올린 것이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 숨 쉬는 것도 편해졌어……."
리아가 멍하니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도윤은 남은 꼬치 하나를 천천히 씹어 맛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육질의 탄력이 뛰어나고 산미가 적다. 가열 온도를 조금만 더 낮췄다면 육즙 손실을 5퍼센트는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이 열악한 환경에서는 최선의 결과다.'
도윤은 주머니에서 백지 수첩을 꺼내 펜으로 기록을 추가했다.
[독침토끼 조리법 및 효능]
- 다리살은 직화보다 간접 복사열로 천천히 구울 것.
- 표면 지방을 덧발라 수분 증발을 차단하면 극상의 식감 확보.
- 섭취 시: 체온 급상승, 경미한 신경 마비 완화 효과 확인.
리아는 수첩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고 있는 도윤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요리사? 아니면 고위 치유사야?"
도윤이 수첩을 덮으며 담담하게 답했다.
"그냥 요리사입니다."
그때였다.
바스락.
바스락바스락.
어둠이 짙게 깔린 무너진 회랑 바깥쪽의 양치식물 덤불이 일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도윤과 리아의 시선이 동시에 덤불 너머의 어둠 속으로 향했다.
고소하게 타오른 고기 기름과 육향은 이끼 숲의 축축한 바람을 타고 수백 미터 밖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스스슥.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다섯 개, 열 개, 스무 개.
등에 흑요석 같은 가시침을 곤두세운 거대한 그림자들이 회랑의 유일한 출구를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이런."
도윤이 손에 쥔 나이프를 다잡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첫 번째 만찬의 냄새가 던전의 포식자 무리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