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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4화

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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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염치없는 친정

헤스티아 백작가의 호화 마차가 눈 쌓인 길목을 대각선으로 가로막았다.

마차 문에 박힌 금빛 방패와 흰 백합 문장이 겨울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전생의 아리아드네에게 저 문장은 숨을 옥죄는 사슬이었다.

펠른 공작가에서 냉대를 당할 때도 친정은 위로 대신 요구서만 보냈다.

'공작부인의 위신을 지켜라.'
'가문의 사업을 위해 공작가의 보증을 받아내라.'

그 끝에서 독약을 삼키고 죽어 가던 순간까지도 부모라는 작자들은 코빼기조차 비추지 않았다.

"아리아드네 님, 마차가 멈췄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에 마리가 창밖을 내다보며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속삭였다.

"아리아드네 님. 백작님과 백작부인께서 직접 내리고 계세요. 표정이…… 너무 무섭습니다."

"겁먹을 것 없어."

아리아드네는 차분하게 장갑을 고쳐 쥐었다.

"이제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명령할 수 없는 타인일 뿐이니까."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아리아드네의 마차 문이 거칠게 열렸다.

"아리아드네! 네년이 기어이 미쳐서 날뛰는구나!"

찬 바람과 함께 들이닥친 목소리는 헤스티아 백작, 발터 헤스티아였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살집이 잡힌 턱을 부들부들 떨며 그가 소리쳤다. 그 뒤편에서는 밍크 숄을 두른 백작부인이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당장 내리지 못해? 지금 신전에서 무슨 소문이 도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아리아드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발판을 밟아 마차 밖으로 내려섰다. 눈 덮인 자갈길에 가죽 구두가 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공작가의 정문 경비병들과 하인들이 담장 너머에서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목소리가 너무 크시네요, 백작님."

아리아드네는 낮고 단정한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백작님? 지금 네 아비에게 백작님이라고 부른 게냐?"

발터 백작이 핏발 선 눈으로 주먹을 쥐었다.

"신전에 이혼 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서한을 받고 내가 얼마나 기함을 했는지 알아? 펠른 공작과의 혼인이 네 장난감인 줄 아느냐!"

"장난감으로 여긴 적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다루어서 제 손으로 끝냈을 뿐이죠."

"뭐라고?"

백작부인이 가증스럽다는 듯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리아드네, 너 정말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펠른 공작위가 어떤 자리인데 감히 네까짓 게 이혼을 입에 올려? 공작님께서 네게 조금 쌀쌀맞게 굴었다고 이딴 철없는 투정을 부리는 거냐?"

백작부인의 목소리에는 딸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한 점도 없었다. 오직 공작가라는 거대한 동아줄을 놓칠까 두려워하는 탐욕만이 가득했다.

"투정이 아닙니다. 신전 서기관의 입회하에 카일론 펠른의 인장까지 찍어 정식으로 해소된 혼인입니다."

"이 빌어먹을 년이!"

발터 백작이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네가 무슨 권리로 도장을 찍어! 네 지참금과 펠른 가문의 후광으로 우리 백작가가 추진하던 북부 무역선 계약이 다 엎어지게 생겼단 말이다! 당장 저 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공작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무릎 꿇어!"

아리아드네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비는 건 제가 아니라 백작님이 하셔야 할 일 같군요."

"이게 끝까지 말대답을……!"

"백작님."

아리아드네가 걸음을 한 걸음 앞으로 옮겼다. 그녀의 붉은 자쏭빛 눈동자가 시퍼런 서릿발처럼 번뜩였다.

"지난 3년 동안 헤스티아 백작가가 펠른 공작가의 이름을 팔아 끌어다 쓴 사채가 얼마인지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발터 백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간 싹 가셨다.

"수도 상업 지구의 대부업체 세 곳에서 '펠른 공작부인의 친정'이라는 명목으로 대출받은 골드가 5천 골드. 그리고 백작부인께서 사교계 귀부인들에게 공작부인의 이름을 걸고 외상으로 긁어모은 보석과 드레스 대금이 2천 골드입니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백작부인이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리아드네는 전생의 기억을 낱낱이 꿰뚫고 있었다.

친정은 아리아드네가 공작부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온갖 빚을 졌고 나중에 아리아드네가 억울하게 몰락했을 때 가장 먼저 발을 빼며 빚더미를 전부 아리아드네의 개인 계좌로 떠넘겼다.

그 비열한 배신을 이번 생에서까지 되풀이하게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는 공작가에 머무는 동안 제 지참금은커녕, 백작가의 썩은 빚을 메우느라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가 당신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 주길 바라셨습니까?"

"닥쳐라! 네년이 누구 덕에 귀족 영애로 자라 공작부인 자리까지 앉았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

발터 백작이 참지 못하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거친 손바닥이 아리아드네의 뺨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손바닥은 아리아드네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

착-!

아리아드네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발터 백작의 손목을 낚아채 허공에 굳게 틀어쥐었다.

"……?!"

발터 백작이 눈을 부릅떴다. 여자의 손아귀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서늘한 악력이었다.

아리아드네는 회귀 전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생존을 위해 온몸으로 익힌 기백을 숨기지 않았다.

"은혜라니요."

아리아드네는 백작의 손목을 차갑게 내동댕이쳤다.

발터 백작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열여섯 살 때부터 가문의 낡은 장부를 도맡아 흑자로 돌려놓은 건 저였습니다. 펠른 공작가와 정략결혼을 맺어 가문의 부채를 탕감해 준 것도 저였죠. 제가 헤스티아에 진 빚은 단 1골드도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이 내게 피와 살을 빨아먹었을 뿐이지."

"너, 너……!"

백작부인이 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패륜이다! 이런 천하의 패륜아가 어디 있어! 여보, 당장 가문에서 파문해 버려요! 헤스티아의 성을 빼앗고 쫓아내 버리란 말이에요!"

백작부인의 악다구니에 발터 백작도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래! 오늘부로 넌 헤스티아의 피붙이가 아니다! 네년의 이름은 가문 족보에서 영구히 제적될 것이다! 성도 없이 쫓겨난 이혼녀가 제국 바닥에서 어디 구걸이라도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들은 그것이 아리아드네에게 가장 큰 위협이자 형벌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귀족 여식에게 가문에서의 파문은 곧 사회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리아드네의 입꼬리는 서늘하게 올라갔다.

"바라던 바입니다."

아리아드네는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혼 서류와 함께 신전 서기관 이벨라에게 미리 작성해 공증 도장을 받아 둔 친족 관계 단절 및 가문 재산 포기 청원서였다.

"제가 먼저 요구하려던 참이었는데 수고를 덜어 주셔서 감사하군요."

"뭐, 뭐라고?"

"이 서류는 신전의 최고 공증인이 입회하여 발급한 가문 절연 신청서입니다. 이제 저 아리아드네는 헤스티아 백작가와 법적, 종교적으로 아무런 혈연적 권리도 의무도 공유하지 않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서류를 발터 백작의 발밑 눈밭에 툭 떨어뜨렸다.

"저는 더 이상 헤스티아의 더러운 이름을 쓰지 않을 겁니다."

"이…… 미친 년이……!"

발터 백작이 핏발 선 눈으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신전의 성스러운 금빛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단순한 협박이나 허세가 아니었다. 아리아드네는 철저하게 계산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작님."

아리아드네가 마차 문 손잡이를 잡으며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해 드리죠."

발터 백작과 백작부인이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 정오를 기점으로 신전에서 제 이혼 사실을 공식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작부인 지위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백작가가 공작부인의 신용을 담보로 빌렸던 5천 골드의 채무는 전액 기한이익을 상실했습니다."

"……뭐?"

"내일 아침부터 수도의 모든 대부업자와 상인들이 헤스티아 저택으로 몰려갈 겁니다. 원금과 연체 이자를 당장 갚아 내라고 말입니다."

순간 발터 백작의 다리가 풀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공작가가 보증을 선 게 아니었단 말이냐?!"

"공작가는 보증을 선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제 이름을 팔았을 뿐이죠. 그리고 저는 이제 공작부인이 아니니 그 빚은 온전히 당신들이 갚아야 합니다."

"아, 안 돼! 5천 골드를 당장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아리아드네, 얘야! 다시 생각해 보거라!"

백작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눈밭으로 엎어져 아리아드네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아리아드네는 가차 없이 발을 뒤로 물려 그 추악한 손길을 피했다.

"돌아가셔서 집문서와 가재도구나 정리하시죠. 백작가의 저택이 경매로 넘어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요."

아리아드네는 마차 발판에 올라타 마차 문을 닫았다.

쾅-!

묵직한 문이 닫히며 백작 부부의 절규와 비명이 차단되었다.

"마부. 출발하세요."

"예, 마님!"

채찍 소리와 함께 마차가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백작가의 호화 마차는 길 한편으로 허둥지둥 비켜섰고 길바닥에는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백작 부부의 처참한 모습만이 남았다.

마차 안에서 마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아드네 님……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친정과도 완전히 끝이 나 버렸는데……."

아리아드네는 창밖으로 멀어지는 펠른의 저택과 눈밭의 백작 부부를 담담히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쇠사슬이 부서져 내린 듯한 상쾌한 바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두려움은 없었다.

"끝난 게 아니야, 마리."

아리아드네는 품 속에서 검은 장부와 환어음 세 장을 꺼내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항구 소형 지분 증서. 현금화 가능한 환어음. 그리고 회귀 전 3년간의 모든 경제적 흐름을 꿰뚫고 있는 완벽한 지식.

펠른의 그늘도 헤스티아의 족쇄도 모두 벗어던졌다.

오직 자신의 힘과 지혜로 일어설 완벽한 자유의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거지."

아리아드네의 시선이 수도 중앙 상업 지구를 향했다.

그곳에 앞으로 제국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상단, '아스테리아'의 첫 번째 주춧돌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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