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

7화: 불효가 아니라 보호
칼산 법정으로 돌아왔을 때, 붉은빛은 판석 전체를 날카롭게 벼리고 있었다.
판관 귀마는 거대한 돌의자 위에서 미동도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앙상한 손가락이 판석을 두드리자 둔탁한 쇳소리가 법정의 서늘한 공기를 갈랐다.
“북문 기록고의 문을 열었다 하여 도산지옥의 법리가 뒤바뀌지는 않는다.”
귀마의 가면 틈새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연기가 바닥을 기었다.
“명부관리국의 정식 인장이 찍힌 정정본이 존재하는 한 피고인 박덕순의 죄목은 불효와 유기다. 어린 자식을 길 위에 버려 굶겨 죽이고 가정을 팽개친 죄는 칼날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품 안에서 보전된 세 장의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인장이 찍혀 있다고 하여 없는 죄가 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나는 판석 한가운데로 걸어가 두루마리들을 펼쳐 놓았다.
“서문-칠-삼 이송표, 정정 전의 원기록 그리고 정정본입니다. 판관님께서 말씀하신 명부관리국의 인장 아래 정정 근거란은 먹물 한 점 없이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근거란이 비어 있다는 것은 서기의 사소한 기재 누락일 뿐이다. 그 내용 자체가 허위라는 반증은 되지 못한다.”
“단순한 누락이 아닙니다. 왜 그 자리가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가 기록고 서랍 판 밑바닥에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손목을 높이 들었다. 차가운 쇠 느낌의 신판 팔찌에 숨을 불어넣듯 힘을 주었다.
북문 기록고 제칠십삼 서랍 판에 새겨진 문구를 증거로 채택함.
팔찌에서 뻗어 나온 붉은 광선이 허공을 갈랐다.
명부관리국 제삼정리실.
정정 근거는 돌아오지 않았다.
피처럼 붉은 열두 글자가 허공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귀마의 회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법상 아래에서 기록을 정리하던 저승 서리의 붓 끝이 멈추었고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제삼정리실.”
내 목소리가 고요한 법정을 날카롭게 울렸다.
“저승 서리에게 묻겠습니다. 명부관리국 제삼정리실은 저승에서 어떤 일을 처리하는 부서입니까?”
서리는 당황하여 고개를 떨군 채 귀마의 눈치를 살폈다. 귀마는 가면 뒤에서 침묵을 지켰으나 그가 쥔 판결봉 둘레로 검은 안개가 일렁였다.
“대답하십시오. 서리.”
내가 다그치자 서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곳은… 전란이나 대화재 등으로 인하여 현장 확인이 불가능해진 장기 미결 명부들을 정리하는 부서입니다.”
“정리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합니까? 현장 조사를 나가지 못해 사후 확인 대기 상태로 남은 명부들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서리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사후 확인 대기로 분류된 아동이 일정 기간 보호자와 재회하지 못하고 보호자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
“계속하십시오.”
“관행에 따라… ‘보호자 도주 및 길 위 아사’로 일괄 기재하여 미결 서랍을 닫습니다.”
법정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박덕순이 털신을 품에 꼭 안은 채 숨을 들이켰다.
“관행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조작된 문서였군요.”
나는 귀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서문 임시 진료소의 원기록은 분명 ‘열성 경련, 의식 혼미, 보호 전환’이었습니다. 아이는 길바닥에 버려진 것이 아니라 긴급 구호를 위해 진료소의 보호 아래 인계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삼정리실은 미결 사건의 숫자를 줄이고 서랍을 닫기 위해 아무런 확인도 없이 ‘모친 도주 후 아사’라는 문장을 멋대로 채워 넣은 것입니다.”
“억지다!”
귀마가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설령 진료소에 맡겼다 한들 모친이 끝까지 아이 곁을 지키지 않고 떠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자식을 남의 손에 넘기고 돌아오지 않은 행위 자체가 곧 양육 의무를 팽개친 유기다!”
“유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의 목숨을 건지기 위한 절박한 긴급 보호 조치였습니다.”
나는 박덕순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거친 손은 낡은 털신 한 짝과 불에 탄 푸른 천 조각을 쥐고 있었다.
“박덕순 님, 그날 밤의 일을 법정에 말씀해 주십시오. 왜 아이를 업고 서문 진료소로 달렸습니까?”
박덕순은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떼었다.
“도윤이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습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온몸을 파르르 떨었어요. 집에 불길이 덮쳐오는데 가만히 있으면 둘 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시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기록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웃 청년들이 어머니를 먼저 리어카에 태워 북쪽 피난 행렬로 모셔 갔습니다. 저는 도윤이를 살려야 해서… 서문에 의원이 와 있다는 말을 듣고 아이를 업은 채 반대쪽으로 뛰었습니다.”
“그것이 명부에 적힌 ‘시어머니를 유기하고 도주했다’는 문장의 실체입니다.”
나는 털신을 높이 들어 귀마에게 보였다.
“아이의 털신 밑창은 거칠게 마모되어 있고 그 위에는 마른 진흙과 화재의 그을음이 엉겨 붙어 있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열병 든 아이를 등에 업고 불바다를 뚫고 달린 어미의 발자국입니다. 진료소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박덕순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윤이 숨이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천막 앞에 있던 검은 옷의 사람이 아이를 받아 들더니 손목에 푸른 천을 묶어 주었습니다.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뇌가 녹아 죽는다고… 어머니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저를 천막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그 후에는 왜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했습니까?”
“불길이… 서문 천막까지 번져 왔습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고 지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순검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길을 막았습니다. 며칠 동안 서문 잿더미를 뒤지며 도윤이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박덕순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제가 못나서… 끝까지 품에 안고 있지 못해서 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죄는 평생 가슴에 피멍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버린 적은 없습니다. 맹세코 단 한순간도 도윤이를 버린 적은 없습니다!”
이태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거짓이 없습니다.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도주나 방치가 아닙니다. 오직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비명과 절박함뿐입니다.”
나는 법상을 향해 돌아섰다.
“들으셨습니까, 판관님. 피고인은 자식을 유기한 패륜아가 아닙니다. 화재와 열병이라는 극단적인 재난 속에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전문 구호 인력에게 긴급히 인계한 것입니다.”
귀마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결과적으로 아이의 생사가 묘연해졌고 가정이 흩어졌다. 그것이 불효와 방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결과의 비극을 범죄의 고의로 둔갑시키지 마십시오!”
내 호통이 칼산 법정의 쇠벽을 울렸다.
“저승 형법 어디에 자식을 살리기 위해 의료진에게 맡긴 어미를 살인범으로 처벌하라는 조항이 있습니까? 유기죄가 성립하려면 보호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확정적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아이를 보호했습니다.”
신판 팔찌가 맹렬한 붉은빛을 뿜어냈다.
피고인 박덕순의 행위는 유기가 아닌 긴급 보호 조치에 해당함을 공인함.
거대한 붉은 도장이 도산지옥의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혔다.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날카로운 칼날들이 붉은 광채에 짓눌려 일제히 소리 없이 바닥 속으로 가라앉았다.
귀마의 손에 들린 판결봉이 허공에서 굳어졌다.
“이로써 명부의 유기와 아사 기재는 완전한 허위로 밝혀졌습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귀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 사건은 도산지옥의 칼날로 찢어야 할 죄악이 아니라, 저승 사법이 사죄하고 명부를 바로잡아야 할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