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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악녀는 다이아몬드로 복수한다1화

버려진 악녀는 다이아몬드로 복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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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버려진 마차와 붉은 인장

덜컹거리는 바퀴 축에서 삐걱이는 비명이 터져 나올 때마다 마차 벽에 걸린 낡은 램프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희미한 기름 냄새와 축축한 곰팡내.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밤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세레나 벨로아는 무릎 위에 올려둔 두꺼운 양피지 서류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서류의 첫 장에는 왕실의 국새와 함께 왕세자 에드릭의 개인 인장이 선명한 붉은 밀랍 위에 찍혀 있었다.

[혼약 파기 및 신분 보증 해지 통고서]

단 한 장의 문서로 지난 5년간의 약혼 기간이 물거품처럼 지워졌다.

세레나의 시선이 문서 하단에 단정하게 적힌 문장을 지나갔다.

'……벨로아 공작가의 장녀 세레나는 가문의 자산을 무리하게 운용하여 막대한 부채를 발생시켰으며 장래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요구되는 품위와 재정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이에 본 왕세자는 왕실 전범에 의거하여 파혼을 통고한다.'

건조하고 매끄러운 문장이었다.

세레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배신감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파혼서 뒤에 붙은 또 다른 문서를 펼쳤다.

벨로아 공작의 친필 서명이 박힌 가문 제적 통지서와 공증된 채무 승계 계약서였다.

[북부 루메인 제4광구 개발 실패에 따른 손실 채무 승계서]

채무액 십만 골드.

왕도의 대저택 스무 채를 사고도 남을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 막대한 빚의 주채무자 칸에 세레나 벨로아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내가 손도 대지 않은 광산의 빚을 전부 내 이름으로 덮어씌웠더군요."

세레나는 나직하게 읊조리며 숫자의 끝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장부에 기록된 날짜는 불과 반년 전이었다.

당시 세레나는 루시아의 사교계 데뷔를 위한 의전과 왕실 연회 준비를 도맡고 있었을 뿐 북부 광산의 장부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공작가의 재무관이 내민 공증서류에는 세레나의 인장이 완벽하게 날인되어 있었다.

가문의 인장을 관리하는 집무실 열쇠를 쥐고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이복동생, 루시아 벨로아.

세레나는 파혼 통고서 우측 하단을 다시 한번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에드릭의 인장 바로 아래에 일반적인 파혼 문서에서는 쓰이지 않는 기묘한 문양의 압인이 찍혀 있었다.

금빛 테두리가 둘러진 저울과 열쇠 모양.

'재무대신실 보조 인장.'

왕실의 혼사 파기에 어째서 재무대신실의 공증 인장이 필요했을까.

단순한 감정 문제나 품위 훼손 때문이 아니었다.

이 파혼은 철저하게 돈과 장부로 얽힌 거래였다.

가문의 부채를 왕실의 정치적 부담에서 털어내기 위해, 그리고 벨로아의 썩은 광산 부채를 누군가에게 떠넘겨 파산을 면하기 위해 그녀를 제물로 바친 것이다.

세레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왕도의 불빛은 이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낮에 공작 저택의 알현실에서 벌어졌던 광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호화로운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는 세레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루시아가 에드릭 전하의 곁에 서는 것이 가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네가 짊어진 빚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 네 몫으로 정리하도록 해라."

그 곁에서 루시아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가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언니, 미안해요. 하지만 언니가 광산 투자에 욕심을 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공작가마저 무너질 수는 없잖아요."

완벽하게 연출된 눈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귀족 친척들과 원로들은 모두 루시아의 눈물에 고개를 끄덕였고 세레나를 '가문을 파탄으로 몰고 간 탐욕스러운 악녀'로 낙인찍었다.

세레나가 반박하려 입을 열었을 때 아버지는 서류 봉투 하나를 바닥에 던지듯 내밀었다.

"북부 루메인의 폐광 임차권이다. 십 년간의 사용 권리를 줄 테니 거기서 네 빚을 갚든 굶어 죽든 네 알아서 해라."

그리고 옷가지 몇 벌과 낡은 마차 한 대만이 주어졌다.

세레나는 옷섶 안쪽을 더듬어 단단한 금속 덩어리를 쥐었다.

어머니 엘리안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겨주었던 유일한 유품, 낡은 은빛 브로치였다.

중앙에 박힌 푸른 보석은 오랜 세월 탓에 빛을 잃고 탁해져 있었다.

세레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브로치 뒷면의 차가운 금속 테두리를 문질렀다.

장식 뒤편의 이음매를 매만지던 손끝에 미세한 유격이 걸렸다.

단순한 장식용 핀이 아니었다. 내부가 정교하게 비어 있는 듯한 독특한 감촉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광석을 쥐여주며 늘 말씀하셨다.

'세레나,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속지 마라. 돌의 진짜 숨결은 겉면이 아니라 가장 깊은 틈새에 숨어 있는 법이란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춘 뒤 가문은 어머니의 모든 기록을 지워버렸고 세레나에게서 광산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박탈했다.

덜컹!

마차가 거칠게 튀어 오르더니 바퀴가 무언가에 걸린 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빌어먹을, 돌부리에 또 걸렸잖아!"

밖에서 마부의 거친 욕설과 함께 채찍이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세레나는 서류를 갈무리해 코트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마차 문이 거칠게 열리며 험상궂은 인상의 마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이, 아가씨. 작위 떼인 몸이면 분수 맞게 얌전히 앉아 계쇼. 길도 험한데 안에서 부스럭거리면 말이 놀라니까."

마부의 눈빛에는 귀족 영애에 대한 존중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세레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부의 눈을 응시했다.

그녀의 회청색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마부장."

세레나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떨림조차 섞이지 않은 단정한 어조였다.

"공작가가 내게서 작위를 거두었을지는 몰라도 당신에게 나를 함부로 하대해도 된다는 허가를 내리지는 않았을 텐데요."

"뭐, 뭐라고?"

"내 손에 들린 서류에는 북부 루메인 영지의 통행 허가증과 광구 임차권이 적혀 있습니다. 루메인에 도착하는 순간 당신의 운송 확인서에 서명할 권한은 내게 있지요. 확인서에 불성실 이행이라는 문구가 적히면 당신이 받을 운송 보수는 반액으로 깎일 텐데, 괜찮겠습니까?"

마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쫓겨난 영애가 겁에 질려 울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레나의 눈빛에는 위축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차 문을 닫으려다 말고 구시렁거렸다.

"……바퀴 축에 흙이 잔뜩 엉겨 붙어서 점검 좀 하려던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똑바로 점검하세요. 비탈길에서 마차가 뒤집히면 당신 목숨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요."

쿵, 하고 문이 닫혔다.

세레나는 창살의 가죽 덮개를 살짝 걷어내고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마부 두 명이 횃불을 비추며 마차 바퀴 축에 들러붙은 이물질을 쇠갈퀴로 긁어내고 있었다.

횃불의 붉은 불빛 아래 짓이겨진 검은 흙덩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세레나의 시선이 바퀴 축 모서리에 달라붙은 검은 광석 파편에 닿았다.

단순한 진흙이나 철광석 가루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는 순간 검은 파편의 표면에서 기묘한 빛줄기가 튕겨 나왔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엉킨 듯한 아주 미세하고 차가운 결.

세레나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오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눈 안쪽이 가볍게 욱신거리며 머릿속에 선명한 색의 잔상이 남았다.

'저건…… 단순한 돌이 아니야.'

북부 루메인으로 향하는 길목의 흙바닥에 어째서 이런 광석 가루가 흩어져 있는 것일까.

루메인은 북부 변경공 카시안 루베른의 관할 영지였다.

사교계에서 카시안 루베른은 피도 눈물도 없는 '북부의 흑랑'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황실조차 함부로 간섭하지 못하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지만 척박한 광산과 혹독한 추위 탓에 언제나 재정적 압박을 받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벨로아 공작이 세레나에게 넘겨준 폐광 역시 카시안 루베른의 영지 경계선에 걸쳐 있었다.

'그들은 내가 빚더미에 깔려 북부의 눈밭에서 얼어 죽기를 바랐겠지.'

하지만 세레나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십만 골드의 빚?

그들이 거짓으로 조작한 숫자라면 그 장부의 허점을 찾아내 밑바닥부터 찢어발기면 그만이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공작 영애라는 허울은 빼앗겼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축적된 회계 지식과 가문의 비밀 장부를 분석하던 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르릉.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먹구름이 달빛을 집어삼키며 거센 빗방울이 마차 지붕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출발한다! 꽉 잡으쇼!"

마부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마차가 다시 비탈길을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순식간에 굵어져 폭우로 변했다.

진흙탕으로 변한 산길은 얼어붙은 듯 미끄러웠다.

덜컹! 콰직!

비탈길의 급격한 커브를 돌던 마차가 크게 휘청였다.

바퀴 축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불길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말들이 미쳤어! 고삐가 안 잡혀!"

마부의 비명이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렸다.

마차 안의 램프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유리가 박살 났다.

어둠 속에서 마차가 통제력을 잃고 낭떠러지 쪽으로 기우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세레나는 흔들리는 좌석 손잡이를 뼈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코트 속 어머니의 브로치와 채무 계약서를 가슴에 단단히 밀착시켰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억울하게 뒤집어쓴 악녀라는 오명도, 파혼의 굴욕도, 가문이 던져준 십만 골드의 멍에조차 아직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했다.

살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서 벨로아의 모든 것을 대가로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콰아앙!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마차가 거대한 암벽을 들이받았다.

세레나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차가운 빗물과 유리 파편, 부서진 목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를 강타당하는 충격과 함께 붉은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의식이 아득해지는 암흑 속에서 세레나의 깨진 시야 앞으로 바위 틈새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칠흑 같은 바위의 심장부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서늘하고 푸른빛의 결이 번쩍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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