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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계 폐선으로 우주 함대를 만듦1화

은하계 폐선으로 우주 함대를 만듦

은하계 폐선으로 우주 함대를 만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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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버려진 배들의 무덤

진공에는 소리가 없다.

하지만 절단기 끝에서 튀는 주황색 불꽃과 선체를 타고 전해지는 둔탁한 진동은 귓속뼈를 집요하게 흔들었다.

치이익.

산소와 플라스마 혼합 가스가 녹슨 티타늄 격벽을 붉게 녹여 내렸다.

우주복 헬멧 안으로 거친 숨소리가 찼다. 바이저에 표시된 잔여 산소량은 38퍼센트.

[알림: 거주구 대출 상환 잔여 시간 47시간 18분]
[미납 원리금: 72,400 C (연체 이자 포함)]
[기한 초과 시 담보물 '모래갈매기호' 자동 압류 등록]

망막 한구석에 붉은색 경고등처럼 박혀 있는 채무 독촉장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며 강도윤은 침을 삼켰다.

"압류는 안 되지."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플라스마 토치의 출력을 한 단계 올렸다.

여기는 안타레스 은하권 변방, 라그랑주 폐선장 외곽의 제7 폐기 구역이었다.

법적으로는 고농도 방사능과 부유 파편 위험으로 민간 진입이 전면 금지된 불법 구역이었다.

하지만 변방의 인양업자에게 법이란 기름값과 산소통을 대주지 않는 종이쪽지에 불과했다. 정식 인양권을 살 돈이 없는 자들에게는 이런 버려진 배들의 무덤만이 유일한 일터였다.

쿵.

마침내 한 변이 2미터에 달하는 화물선 격벽이 뜯겨 나가며 무중력 공간으로 둥둥 떠올랐다.

도윤은 허리에 감긴 자력 로프를 조이고 반파된 화물선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부유 먼지와 얼어붙은 냉각수 결정들이 작업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선체 벽면에 찍힌 낡은 식별 번호로 보아 적어도 반세기 전에 침몰한 구형 중형 수송선이었다.

"제발 값나가는 희토류 코어 하나만 나와라."

폐선의 심장부인 기관실로 들어선 도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 엔진룸은 이미 다른 인양선이 훑고 지나간 뒤였다. 추진 코어와 고가의 초전도 배선은 뜯겨 나가고 텅 빈 프레임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빌어먹을 하이에나 놈들. 싹 긁어갔군."

도윤은 헬멧을 툭 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은 시간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이자 자신의 집인 낡은 예인선 모래갈매기호를 카르테스 금융국에 빼앗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선미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원 거주 구역을 지나 내화 단열벽으로 둘러싸인 구형 통신 격실이 나타났다. 벽면 전체가 심하게 그을려 있었고 폭발의 충격으로 찌그러진 보조 배전반이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도윤은 공구 벨트에서 초음파 진동 나이프를 꺼내 찌그러진 배전반 하부를 뜯어냈다.

덜컹.

두꺼운 차폐 패널 안쪽에서 숯처럼 타버린 단열 상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 겉면에는 연합군이나 민간 운송 조합의 마크가 아니었다. 닳고 닳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기하학적 나선 무늬가 음각되어 있었다.

"이건 뭐지?"

도윤이 상자 잠금쇠를 젖히자 차가운 백색 증기가 미세하게 흩어졌다.

그 안에는 손바닥만 한 청동빛 다면체가 들어 있었다.

열두 개의 면을 가진 정교한 다면체 표면에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미세한 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도윤은 방진 장갑을 낀 손으로 물체를 집어 들었다.

묵직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구리나 청동 합금의 감촉이 아니었다. 진공의 극저온 속에서도 얼어붙지 않고 희미한 미온을 품고 있었다.

"희귀 금속인가? 아니면 골동품 암시장용 유물인가?"

그는 헬멧 단말기의 간이 감정 스캐너를 켰다.

삐빅.

[분석 오류: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합금 및 규격 코드가 없습니다.]
[내부 밀도 측정 불가: 초음파 반사 신호 흡수됨]

"측정 불가라고?"

도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손목의 산소 게이지가 25퍼센트를 가리키며 붉게 점멸했다. 더 지체할 여유는 없었다.

도윤은 청동 다면체를 방진 파우치에 넣고 가슴팍 고정 벨트에 단단히 결속했다.

폐선 틈새를 빠져나와 허리 로프를 당기자 저 멀리 소행성 잔해 뒤편에 숨겨둔 낡은 예인선 모래갈매기호가 보였다. 선체 곳곳에 덧댄 장갑판과 녹슨 주황색 도색이 벗겨진 전장 40미터급 소형 예인선.

에어로크에 진입해 감압 절차를 마친 도윤은 헬멧을 벗어 던졌다.

오른쪽 눈가의 오래된 용접 흉터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좁은 선내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대 위에 청동 다면체를 내려놓고 정밀 분석 단말과 케이블을 연결했다.

"확인하고 말하죠. 겉만 번지르르한 고철인지 진짜 돈이 되는 물건인지."

도윤이 저전압 진단 펄스를 입력하자 단말기 화면에 잡음이 일었다.

치지직.

그 순간 청동 다면체 표면의 미세한 홈들이 푸른빛으로 타올랐다.

단순한 발광이 아니었다.

푸른 선들이 다면체 표면을 따라 유기적으로 회전하더니 작업대에 연결된 구리 케이블을 타고 모래갈매기호의 내부 배선망으로 번져나갔다.

위이이잉!

선내 조명이 일제히 깜빡이며 주 엔진 룸에서 묵직한 공명음이 울렸다.

"뭐야? 전력 역류?"

도윤은 반사적으로 비상 차단 레버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콘솔에 뜬 그래프는 전력 과부하가 아니었다. 다면체에서 뻗어 나온 신호가 선체 외벽의 티타늄 프레임과 배관을 따라 흐르며 배 전체의 손상도를 측정하듯 훑고 있었다.

선체 17번 격벽 압력 저하.
보조 추진기 냉각 배관 누출.
우현 예인 와이어 윈치 유압 밸브 마모율 82퍼센트.

평소 도윤이 수리하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던 모래갈매기호의 온갖 결함들이 단말기 화면에 실시간으로 나열되었다.

"이게 선체 진단을 하고 있다고?"

도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 조종석 콘솔에서 날카로운 비상 경보가 터져 나왔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경고: 원거리 능동 레이더 포착]
[접근 물체 식별: 카르테스 계약령 소속 무인 회수 감시정 2기]
[예상 도달 시간: 90초]

도윤의 등줄기에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

"단속 드론이 벌써?"

불법 폐기 구역에서 현장 적발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배는 몰수되고 조종사는 계약 노동소로 끌려간다.

도윤은 청동 다면체의 케이블을 거칠게 뽑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조종석으로 뛰어들었다.

조종간을 잡자 낡은 계기판이 요동쳤다.

"엔진 시동, 출력 80퍼센트!"

쿠구구궁!

모래갈매기호의 주 추진기가 불을 뿜었지만 배는 둔중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보조 추진기가 고장 난 탓에 방향 전환 속도가 턱없이 느렸다.

전방 스크린에 날렵한 삼각 날개를 지닌 검은색 감시 드론 두 기가 소행성 파편을 가르며 날아오는 모습이 확대되었다.

드론 상단에 장착된 20밀리미터 펄스 레이저 포탑이 모래갈매기호를 조준하고 있었다.

[통신 수신: 미등록 선박에 경고한다. 즉시 추진기를 정지하고 카르테스 회수팀의 정밀 수색에 응하라. 저항 시 격추한다.]

"정밀 수색에 응하면 그대로 끝장이지."

도윤의 손가락이 콘솔 위의 스위치들을 번개처럼 두드렸다.

직선 주로로 도망쳐봤자 고속 드론의 속도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조종석 창밖으로 향했다.

불과 3킬로미터 거리에 거대한 화물선의 척추 프레임과 수십 톤짜리 장갑판들이 뒤엉켜 떠도는 파편 지대가 보였다.

"모래갈매기, 한 번만 버텨라."

도윤은 주 추진기 레버를 한계까지 밀어 올렸다.

동시에 우현의 예인 케이블 발사 버튼을 눌렀다.

쾅!

화약 추진식 작살이 허공을 갈라 부유하던 대형 티타늄 잔해에 깊숙이 박혔다.

우측으로 급격한 회전 토크가 걸리며 모래갈매기호의 선체가 비명을 질렀다.

선체가 옆으로 꺾이며 감시 드론의 펄스 레이저 두 줄기가 간발의 차로 조종석 창틀 옆을 스쳐 지나갔다.

치지지직!

진공 속에서 레이저가 스친 장갑판이 새빨갛게 녹아내렸다.

도윤은 조종간을 꽉 쥐며 예인 윈치의 권취 모터를 역회전시켰다.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가 거대한 폐선 파편을 모래갈매기호의 꼬리 쪽으로 끌어당겼다.

드론들의 센서 바로 앞에서 수십 톤의 금속 덩어리가 회전하며 시야와 레이더 조준선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퍼엉!

뒤따라오던 드론 한 기가 갑작스럽게 날아든 잔해와 충돌해 불꽃을 뿜으며 튕겨 나갔다.

"지금이다."

도윤은 와이어 절단 버튼을 누르고 소행성 잔해 사이의 좁은 암석 협곡으로 배를 밀어 넣었다.

추진기 출력을 최소로 낮추고 열원 방출을 억제하는 스텔스 활주 모드로 전환했다.

슈우우우.

모래갈매기호는 차가운 암석 틈새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남은 드론 한 기가 협곡 입구 상공을 선회하며 수색 핑을 쏘아댔지만 차폐성이 높은 소행성의 철광석 성분에 가로막혀 모래갈매기호의 미약한 열 신호를 놓치고 말았다.

수 분간의 숨 막히는 침묵 끝에 드론의 신호음이 레이더 화면에서 멀어졌다.

"하아……."

도윤은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카르테스 감시 드론의 움직임은 평소의 단순 밀렵 단속치고는 지나치게 집요하고 정밀했다. 마치 이 구역에 떨어진 무언가를 특정해서 찾고 있던 것처럼.

도윤은 가슴팍 주머니에서 청동 다면체를 꺼냈다.

표면의 푸른 선들은 이미 꺼져 있었지만 손바닥에 닿는 감촉은 여전히 서늘하지 않았다.

"대체 넌 정체가 뭐냐?"

그가 혼잣말을 내뱉으며 조종석 메인 전원을 다시 올린 순간이었다.

삐-익.

꺼져 있던 중앙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푸른빛을 토해냈다.

평소 보던 조잡하고 깜빡거리던 연합 표준 운영체제의 인터페이스가 아니었다.

우아하고 정교한 푸른색 격자망이 허공에 펼쳐지더니 모래갈매기호의 입체 선체 단면도가 완벽한 비율로 허공에 떠올랐다.

선체 내부의 부서진 배관과 고장 난 보조 추진기의 밸브 하나하나가 붉은색 결함 표식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그 결함들을 관통하듯 유기적인 푸른색 재구성 궤적이 한 줄기 설계도로 이어졌다.

[선체 식별: 변방형 소형 예인정]
[구조 상태: 심각한 피로 누적 및 출력 계통 결함]
[복원 프로토콜 대기 중……]

자아도 감정도 없는 기계적인 단어들이 도윤의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빛나는 도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단순한 고철 덩어리가 아니었다.

죽어버린 배들의 뼈대를 읽고 다시 살려내는 고대의 조선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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