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22화 가짜 빙화주
봉인 상자 곁의 등불은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았다.
준영은 상자 바닥 둘레에 흰 밀랍 가루를 얇게 뿌렸다. 창문 아래에는 물을 반쯤 채운 사발을 놓았다. 문이 열리면 바람이 먼저 사발의 물결을 흔들 터였다.
상자에는 손대지 않았다.
새 자물쇠를 달고 밀랍을 덧칠하는 것과 병을 옮기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병을 옮기면 누군가가 남긴 마개 냄새도 출입의 흔적도 함께 끊긴다.
설아가 문턱 밖의 어둠을 보며 말했다.
"상자를 옮겨야 합니다. 마개 냄새를 맡았다는 것은 이미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옮기면 그쪽도 길을 바꿉니다."
"병 하나를 미끼로 쓰겠다는 겁니까?"
"사람을 미끼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병도 열지 않습니다. 다만 누가 열 마개를 들고 왔는지는 봐야 합니다."
준영은 밀랍 가루 옆에 가는 실 하나를 걸었다. 실 끝에는 작은 종이 아니라 마른 청련근 조각을 매달았다. 누군가 발을 들이면 향의 높이부터 달라질 것이다.
문칠이 기록판 뭉치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청목 장로의 음식 장부가 왔습니다. 적로 장로도 시음 기록에 손수장을 보냈고요."
"봉인 상자와 다른 방에 두세요. 사본은 호법께 드리고 원본은 장부방에 넣으십시오."
"한곳에 모아 두면 편하지 않습니까?"
"병을 훔친 사람이 기록까지 바꾸면 편한 건 그쪽입니다."
문칠이 기록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준영은 설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석덕에게는 오늘 밤 준비실을 지난 사람들의 출입표만 확인하게 해 주세요. 이름이나 사정까지 들출 필요는 없습니다."
설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회랑에서 발소리가 부딪치듯 가까워졌다.
"전주님! 북문 순찰대가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피 냄새가 먼저 문 안으로 밀려들었다.
순찰대주의 외투는 젖어 있었고 소매 끝에는 토사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뒤따른 장정 둘은 들것을 들고 있었다. 들것 위 사내의 입술은 퍼렇게 식었는데 손끝은 붉게 달아 있었다.
손가락은 갈퀴처럼 굳어 있었다.
"북문 밖 달무리 주막입니다. 천마의 빙화주라며 판 술을 마신 자가 셋입니다. 한 명은 숨이 끊겼고 둘은 이 꼴입니다."
순찰대주가 천으로 감싼 병을 내밀었다.
병목에는 서툰 붉은 글씨가 번져 있었다.
빙화주.
설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누가 그 이름을 썼지?"
"팔던 상인이 검문소에 잡혀 있습니다. 신교 물건인 줄 알았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준영은 병을 받지 않고 천을 한 겹만 걷었다. 유리 바닥에는 기포가 굳은 자국이 많았다. 막 병으로 만든 술이라면 남기 힘든 흉터였다. 봉랍에는 붉은빛을 내려는 주사 가루가 거칠게 섞여 있었다.
진짜 빙화주는 봉랍 색조차 정하지 못한 검증 대상이었다.
"주막에 남은 술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이 병도 마개를 뽑지 말고요."
준영은 들것 곁에 무릎을 꿇었다. 사내의 목덜미는 식어 있었지만 명치 아래는 뜨거웠다. 숨은 얕고 빠르다가 두 번마다 끊겼다.
"의원실로 옮기세요. 물은 한 모금씩만 줍니다. 뜨거운 탕약과 해장술은 금지입니다. 손발도 묶지 마십시오. 기운을 억지로 몰면 더 찢어집니다."
"독주입니까?"
"아직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몸 안에서 차가운 쪽과 뜨거운 쪽이 서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순찰대주가 당황한 얼굴로 병을 보았다.
"그럼 이 병은?"
"북문으로 가져가겠습니다. 팔린 수량과 길부터 멈춰야 합니다."
준영은 설아에게 말했다.
"상자는 여기 둡니다. 문칠은 기록을 옮기고 석덕은 출입표만 확인하세요."
설아는 검집을 쥐었다.
"호위는 내가 한다."
북문 검문소의 새벽 공기는 피와 말똥 냄새로 눅눅했다. 천막 안에는 상인 마석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는 밧줄이 묶여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죽은 짐꾼의 동생이 하얀 천을 붙든 채 앉아 있었다. 천 아래로 삐져나온 발은 이미 식어 있었다.
"내가 만든 술이 아니오!"
마석은 준영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병에 신교 인장이 있었소. 북쪽 술성에서 나온 물건이라 했단 말이오."
죽은 사내의 동생이 천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형이 마지막에 물을 달랬습니다. 입에서는 김이 나는데 몸은 얼음장 같았어요. 그게 당신들 술입니까?"
준영은 대답을 서두르지 못했다.
병에 쓴 이름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남긴 시신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닙니다."
준영이 낮게 말했다.
"빙화주는 아직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만 하고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북문 밖에 풀린 병을 모두 회수하겠습니다. 쓰러진 분들의 치료도 백화전에서 맡겠습니다."
"왜 믿어야 하지?"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제 사람들이 술을 치우는 것은 막지 마십시오. 남은 병이 또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동생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한참 이를 악물다가 천천히 길을 비켰다.
준영은 탁자 위 병을 살폈다. 마개는 벌림 대수나무였다. 모래 속에서 천천히 말린 나무가 남기는 메마른 향이 표면에 배어 있었다.
그 아래로 청련근 물의 맑은 풀 향이 희미하게 났다.
청련근을 달인 물과는 달랐다. 쓴 뿌리 냄새가 거의 없었다. 술성 병입대에서 유리병을 헹굴 때만 쓰는 정제된 물이었다. 탁한 약향이 남지 않도록 천을 세 번 갈아가며 거른 물.
준영은 병을 열지 않은 채 은숟가락을 병목 가까이에 댔다. 손끝으로 유리의 온도를 읽었다. 윗부분은 지나치게 차갑고 밑바닥은 미지근했다.
"적염마근을 갈아 넣었습니다. 흑한초도 직접 담갔고요."
마석의 입이 벌어졌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마개 틈으로 새는 향이 있습니다. 적염마근은 불에 그을린 생강처럼 맵습니다. 흑한초는 차갑지만 뿌리의 쓴 물이 남습니다. 둘을 술 안에서 만나게 하면 서로를 누르지 못합니다. 차가운 기운이 위로 뜨고 뜨거운 기운은 아래에서 몰립니다."
설아가 병을 노려보았다.
"한 모금으로도 기맥이 상할 수 있겠군."
"몸이 약한 사람은 더 빠릅니다. 취기가 먼저 올라오니 계속 마시게 되고 그다음에 기운이 서로를 찢습니다."
준영은 병목 바깥에 차가운 물을 적신 천을 둘렀다. 잠시 뒤 검붉은 액체가 두 층으로 갈렸다. 윗부분에는 얇은 기름막이 떠올랐고 아래에는 검은 가루가 느리게 가라앉았다.
"발효한 술이 아닙니다. 약재를 술에 담가 색과 자극만 낸 겁니다."
마석의 어깨가 주저앉았다.
"그자는 빙화주 비법이라고 했소. 한 병만 넘기면 북문 주막들이 줄을 설 거라 했지. 난 아이들 약값이 필요했을 뿐이오."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얼굴은 못 봤소. 수레 덮개를 쓰고 왔습니다. 삼각 인장이 찍힌 나무 상자만 남겼소."
"몇 병입니까?"
"열두 병을 받았소. 여덟 병은 주막 셋에 넘겼고 넷은 아직 마차에…"
설아가 순찰대주에게 고개를 들었다.
"마차와 주막 셋을 막아라. 병은 깨지 말고 천으로 감싸 가져와라. 술을 판 자도 손대지 못하게 해."
"명을 받듭니다."
죽은 짐꾼의 동생이 병을 향해 몸을 던지려 했다.
"그걸 부숴 버려요!"
설아가 한 손으로 그를 막았다. 준영은 병을 감싼 천을 더 단단히 묶었다.
"부수면 어디서 왔는지 못 찾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팔리지도 않게 하겠습니다."
"형은 돌아오지 않아요."
"압니다. 그래서 다음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남길 수 없습니다."
그는 병 밑동을 조심스레 돌렸다. 흐릿한 삼각 인장 아래에 붉은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흙 사이에는 수레 축에 바르는 검은 기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술성 근처 폐광 길에는 회색 돌가루가 많다. 남쪽 포도밭 길에는 붉은 흙이 있지만 수레 축에는 들기름을 쓴다. 이 기름은 달랐다. 쇠를 오래 갈아낸 듯 차갑고 거친 냄새였다.
준영은 병을 봉인 천으로 다시 감쌌다.
"이 술을 만든 자는 빙화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마개와 물을 어디서 쓰는지도 알아요."
설아의 손이 칼자루를 쥐었다.
"내부 수사로 돌리겠습니다. 장로회에는 아직 알리지 않겠어요."
"피해자들에게는 알려야 합니다. 가짜라는 말만 퍼뜨리자는 뜻이 아닙니다. 회수할 술이 있고 치료할 사람이 있다고 알려야 합니다."
"공개하면 신교의 체면이 상합니다."
"체면은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설아는 천막 밖의 시신을 한 번 보았다.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대답은 망설이지 않았다.
"좋아요. 북문과 주막에는 회수령을 내립니다. 병입대와 청련근 물을 만진 자의 장부는 내가 먼저 확인할 겁니다. 당신은 필요한 물건의 흐름만 보세요."
"사생활은 필요 없습니다. 병이 움직인 길만 보면 됩니다."
순찰대주가 젖은 나무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바닥의 삼각 인장은 번져 있었고 수레 바퀴 자국에는 같은 붉은 흙이 묻어 있었다.
준영은 손을 대지 않고 코를 가까이 댔다.
마른 대수나무, 정제 청련근 물, 검은 축기름.
세 향이 한 줄로 이어졌다.
가짜 빙화주는 술을 흉내 낸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신교 안에서 배운 길을 따라 사람을 죽이는 병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