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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앞 5성급 호텔의 총지배인1화

마왕성 앞 5성급 호텔의 총지배인

마왕성 앞 5성급 호텔의 총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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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문이 닫힌 온천

독촉장은 난로가 식은 로비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아델리아 로엔은 봉투의 봉인을 다시 확인했다. 검은 밀랍에 찍힌 베르단 상단의 문장은 선명했다. 종이를 펼치자 짧고 정확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로엔 가문에 남은 채무의 최종 상환 기한은 사흘 뒤입니다. 원금과 연체 이자를 지불하지 못할 경우 벨루아 온천 부지의 소유권을 상단 연합에 양도하는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줄에는 마르셀 베르단 회장의 친필이 있었다.

‘새 주인은 이곳을 더 쓸모 있는 시설로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쓸모 있는 시설이라.”

아델리아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해 질 무렵의 회색 협곡은 붉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인간 왕국으로 이어지는 길과 마계로 향하는 관문 사이에 벨루아 온천이 놓여 있었다. 위험한 국경인 동시에 마차와 물자가 모이는 길목이었다.

상단이 이곳을 노리는 이유는 분명했다. 문제는 고치는 데 들어갈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델리아는 주머니에서 동전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쏟았다. 은화 열두 닢과 동화 몇 개가 굴러가다 멈췄다. 세 달 전 이 몸으로 깨어났을 때 남은 재산을 정리하고 빚의 규모를 확인하는 데 대부분을 썼다.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친척들은 빚만 남은 온천 여관을 그녀에게 떠넘겼다.

로비 바깥에서 말발굽 소리가 멈췄다. 짙은 갈색 외투를 입은 남자가 들어와 금 간 바닥과 곰팡이 자국을 훑었다.

“아델리아 로엔 영애이십니까? 베르단 상단에서 왔습니다.”

“편지는 읽었습니다.”

“사흘은 짧습니다. 회장님은 영애께서 직접 운영해 보려는 마음도 이해하십니다. 하지만 수리비만 해도 상당할 겁니다.”

“그래서 상단이 대신 고쳐 주겠다는 뜻인가요?”

“새 주인이 되면 말이지요.”

아델리아는 그가 내민 서류를 받지 않았다.

“부지는 팔지 않습니다.”

남자의 미소가 얇아졌다.

“국경에서는 감정보다 현금이 오래갑니다.”

“사흘 뒤에도 같은 답을 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로비에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

아델리아는 독촉장을 접었다. 현금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팔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공간, 시간, 손님의 기대.’

전생에 호텔리어로 일하며 배운 것은 자원이 많을 때의 운영법만이 아니었다. 부족할수록 손님이 실제로 돈을 내는 이유부터 골라야 했다.

“온천부터 보자.”


온천동으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먼지가 발목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아델리아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객실 목록을 확인했다. 객실은 열두 개였지만 문이 온전한 곳은 다섯 개뿐이었다. 그중 세 개는 창문이 깨졌고 두 개는 천장에 물자국이 번져 있었다.

욕탕 문을 열자 차가운 김이 발끝을 스쳤다. 수조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표면에는 잿빛 막이 떠 있었다. 배수구 쪽에서 가느다란 물소리가 났다.

아델리아는 초를 켜고 바닥을 살폈다. 들뜬 타일 틈으로 물이 새고 있었다. 손등으로 눌러 본 수맥은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그녀는 수첩을 꺼냈다.

‘임시 개장 범위. 객실 세 개. 공동 욕탕 한 곳. 식당은 보류. 난방은 등유 난로 두 대를 우선 수리.’

등유와 비누와 깨끗한 천을 사면 은화의 절반이 사라진다. 목수를 부르면 남은 돈으로는 빵도 사기 어려웠다.

그때 수조 한가운데에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검은 얼룩이 타일 틈으로 번졌다. 먹물이 물속에서 풀리듯 가느다란 선이 뻗어 나오더니 아델리아의 발치에서 멈췄다. 온천의 온기가 뚝 끊겼다.

아델리아는 문 옆의 붉은 천을 찢어 난간에 묶었다.

“접근 금지. 원인 확인 전까지 사용하지 않는다.”

눈앞에 푸른 글자가 떠올랐다.

<환대의 장부>

[위험 구역이 감지되었습니다.]
[온천 시설의 임시 개장 조건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새벽에도 보았던 장부였다. 아델리아가 손을 뻗자 투명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현재 자원]
[- 자금: 은화 12.4닢]
[- 직원: 0명]
[- 객실: 사용 가능 0실]
[- 안전 판정: 보류]

아델리아의 입술이 굳었다. 장부의 숫자는 냉정했지만 틀리지 않았다.

[추천 시설: 임시 객실 3실]
[필요 조건: 청소 도구, 난방 연료, 침구, 수질 검사]
[주의: 자원과 인력 없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잘도 하네.”


물방울 하나가 이마에 떨어졌다.

“당연한 소리라니! 장부님은 정직한 분이시거든!”

수조의 얼룩이 솟구쳤다. 물줄기가 허공에서 돌더니 물빛 머리카락의 소녀로 변했다. 소녀는 김이 피어오르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누구죠?”

“그건 내가 물어야지. 죽은 온천에 와서 숫자만 세는 사람.”

“아델리아 로엔. 이 온천의 소유자입니다.”

“소유자들은 다 그렇게 말해. 그러고는 돈 되는 돌만 떼어 가거나 물길을 막아 버리지.”

장부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벨루아 온천 정령 ‘루루’가 확인되었습니다.]
[시설 관리 협력 가능성: 대화 필요]

“루루라고 부르면 되나요?”

“그건 내가 허락한 이름이야.”

“좋아요. 루루. 이곳을 다시 열고 싶습니다.”

루루가 코웃음을 쳤다.

“돈도 없고 직원도 없는데?”

“그래서 세 객실만 먼저 엽니다. 욕탕도 확인된 구역만 사용하고요.”

“음식은?”

“예약이 생기기 전에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마을 식당과 외부 식사를 연결할 겁니다.”

소녀의 망토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경계가 아주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네가 말하는 손님은 누구든 받아?”

“정식 절차를 지키는 손님이라면요. 종족이나 신분을 먼저 묻지는 않을 겁니다.”

“싸우는 손님이 오면?”

“호텔 안에서는 규칙을 지키게 합니다. 밖에서 일어난 일까지 해결한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요.”

루루가 눈을 크게 떴다.

“환대의 서약을 아네.”

“장부에서 읽었습니다.”

“서약은 체크인한 손님과 일하는 사람을 지켜 줘. 객실과 욕탕 안에서 손을 휘두르거나 강제로 마법을 쓰는 건 어렵게 만들지. 하지만 청소도 빵도 만들어 주지 않아. 네가 거짓말을 한다고 평판을 만들어 주지도 않고.”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충분하다고?”

“호텔은 손님 대신 살아 주는 곳이 아니니까요.”

아델리아는 수조 가장자리에 앉았다. 검은 얼룩은 붉은 천 바깥으로 번지지 않았다.

“수질과 이곳의 마력 이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어. 하지만 온천 밖으로 멀리 나가지는 못해.”

“그럼 업무를 제안할게요. 수질 점검과 위험 구역 관리. 대가는 온천이 다시 손님을 맞게 된 뒤 협의하죠.”

루루는 한참 동안 아델리아를 바라보았다.

“대가를 지금 안 받겠다는 말이야?”

“지금은 지불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대신 업무 범위와 약속은 기록하겠습니다.”

아델리아가 수첩을 펼치자 루루의 표정이 흔들렸다.

“가격표를 쓰는 거야?”

“협업 계약서입니다.”

“가격표가 더 좋아.”

루루가 웃었다. 그 소리가 벽에 닿자 오래된 관이 낮게 울렸다.


로비로 돌아온 아델리아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임시 개장 준비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선택 시 현재 자금과 노동 계획이 기록됩니다.]

아델리아는 동전 열두 닢을 바라보았다. 사흘 뒤면 부지 전체를 빼앗길 수 있었다. 동전으로 빵을 사 두고 떠나는 편이 더 안전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온천동에는 아직 따뜻한 물이 남아 있었다. 검은 얼룩은 위험했지만 온천 전체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장소였다.

아델리아는 전생의 마지막 밤을 떠올렸다. 끝나지 않던 민원과 객실 복도에서 울리던 전화. 누구도 쉬게 하지 못한 채 무너졌던 몸.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이 이 폐온천이었다.

이번에는 문을 닫은 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시작.”

장부의 글자가 한 줄씩 바뀌었다.

[운영 목표가 설정되었습니다.]
[임시 개장 시설: 객실 3실, 공동 욕탕 1곳]
[우선 구매 항목: 등유, 비누, 천]
[보류 항목: 식당, 장식, 정식 등급 심사]

아델리아는 벽에 붙은 열쇠 중 세 개만 떼었다. 욕탕은 루루가 수질을 확인한 뒤 열기로 했다. 객실 청소는 내일 마을에서 일손을 구해 진행한다.

“네가 혼자 청소할 거야?”

난로 뒤에서 루루가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을 구하러 갈 겁니다.”

“사람들은 돈을 받아. 재료도 돈을 받아. 실패하면 온천을 팔아야 할 수도 있어.”

아델리아는 독촉장을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종이 끝이 열기에 말려 올라갔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도록 범위를 줄인 겁니다. 방 세 개를 깨끗하게 만들고 따뜻한 욕탕 하나를 안전하게 열어요. 그 정도도 못 해내면 다섯 성급 호텔은 꿈도 꾸지 못하니까.”

“이 폐허로?”

아델리아는 현관의 빗장을 뽑았다. 녹슨 쇠가 끼익 소리를 냈다. 문이 조금 열리자 차가운 협곡의 바람이 로비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녀는 문 옆의 낡은 판자를 뒤집었다. 앞면에는 희미하게 ‘벨루아 온천 여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델리아는 먹물을 꺼내 오래된 글자 위에 새 이름을 덧썼다.

‘벨루아 온천 리조트.’

“리조트가 뭐야?”

“사람이 쉬러 오는 곳입니다.”

“전쟁이 코앞인데도?”

“그래서 더 필요합니다.”

아델리아는 잠긴 객실 세 개의 열쇠를 손에 쥐었다.

“벨루아 온천 리조트는 내일부터 준비를 시작합니다. 신분 때문에 문을 닫지 않고 규칙을 지키는 손님에게는 같은 온도의 물을 내놓을 겁니다.”

루루의 눈이 반짝였다. 온천 아래에서 따뜻한 물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럼 가격표부터 만들자!”

“내일 청소부터입니다.”

“가격표를 만들면서 청소하면 되지.”

“둘 다 하죠.”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협곡의 길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돌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새 문패를 알아볼 만큼 가깝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이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아델리아는 판자를 단단히 고정했다.

문이 닫힌 온천은 더 이상 죽은 여관이 아니었다.

첫 손님이 오기 전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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