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남편이 예언을 속이려 나를 미워한 줄 몰랐다

12화: 냉전
제국 귀족법원 중앙 심리정의 문은 무겁고 차가웠다. 정오를 알리는 수도 중앙 시계탑의 종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질 때 나는 라일라와 함께 대리석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복도 양옆에 모여선 귀족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쏟아졌다.
"대공비가 정말 출석했군."
"버림받고 쫓겨나자마자 뒷골목에서 상회를 차렸다더니 이제는 법정에서 대공 각하와 맞서겠다는 건가?"
"어리석기도 하지. 대공가의 후견을 거부하고 제 발로 파멸하려는 꼴이라니."
수군거림 속에는 조롱과 천박한 호기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피어오르는 감정색은 대부분 흙탕물 같은 진흙빛과 비릿한 황록색이었다.
나는 턱을 치켜들고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내 손에는 붉은 벨벳으로 감싼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카시안이 직접 서명했던 3년 계약의 이혼 합의서 원본과 어제 서기관이 건넨 이혼 무효 신청서 사본이었다.
심리정 안으로 들어서자 높은 천장 아래로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방청석 높은 자리에 배석한 성소 사제단이었다. 잿빛 사제복 가슴팍에 은색 태양 문양을 단 사제 넷이 차가운 눈으로 법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로 피어오른 감정색은 어제 거처를 찾아왔던 확인인과 똑같았다. 인간적인 온기가 완전히 증발한 서늘하고 날카로운 은백색 마력이었다. 단순한 방청이 아니라 법정 전체를 자신들의 감시 틀 안에 가두려는 의도였다.
라일라가 내 옆에서 가늘게 숨을 삼켰다.
"대표님. 신전 사제들이 왜 저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귀족 간의 이혼 분쟁에는 원래 참관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성소에서 보증 봉인을 핑계로 끼어든 거야. 저들은 이 자리를 신전의 판으로 만들고 싶어 해."
나는 나지막이 속삭이며 원고와 피고석 사이에 놓인 대리석 탁자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판을 흔드는 건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야."
그때 반대편 문이 열리며 묵직한 군화 소리가 울렸다.
순간 심리정 내부의 모든 잡음이 얼어붙듯 멈췄다.
카시안 데 발렌티노였다.
그는 북부 대공의 정복인 흑철색 연회복을 입고 있었다. 어깨에 드리워진 검은 늑대 모피 망토와 은빛 흉장이 그의 서늘한 분위기를 한층 더 위압적으로 만들었다.
왼팔은 망토 안쪽에 곧게 감추어져 있었지만 딛는 걸음걸이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어제 응접실에서 보았던 창백함은 오간 데 없이 그의 얼굴은 단단한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카시안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나를 스쳤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는 어제 문틈 사이로 엿보였던 그 지독한 공포나 절박함 따위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서늘하고 무정한 무채색의 벽만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감정이 배제된 얼음장 같은 침묵. 결혼 생활 3년 내내 나를 질식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벽이었다.
심리관석 높은 단상 위에서 헬무트 주심 판사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탕! 탕!
"제국 귀족법원 임시 심리를 개정한다. 본 심리는 발렌티노 대공 카시안 데 발렌티노 각하께서 청구하신 '이혼 합의 효력 정지 및 무효 확인' 건에 대한 사전 심문이다."
헬무트 판사의 시선이 카시안과 나를 번갈아 응시했다.
"신청인 발렌티노 대공 각하. 본 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하신 취지와 이유를 직접 진술하십시오."
카시안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심리정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방청석의 귀족들은 숨을 죽였고 성소 사제들은 은색 펜을 쥐고 기록지에 손을 얹었다.
카시안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대리석 벽을 타고 울릴 만큼 낮고 명료했다.
"발렌티노 대공가는 본래 로제 가문과의 3년 계약에 따라 혼인 관계를 원만히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합의 서명 직후 로제 영애의 거처 주변에서 조직적인 신변 위협과 외부 세력의 불법적인 접근이 발생했다."
그는 서류를 들어 보이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로제 영애는 대공비라는 신분을 벗어던진 직후 극심한 공포와 판단력 저하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녀가 주장하는 상회 설립과 독자적 독립은 정상적인 자유 의사의 산물이 아니다. 무모한 외부 충동에 휩쓸려 스스로를 위험에 내던진 것에 불과하다."
내 주먹이 가볍게 쥐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마치 한낱 무지하고 철없는 여인을 훈계하는 냉혹한 보호자의 말투였다.
"따라서 본 대공은 배우자에 대한 영구적 후견 의무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혼 합의의 효력을 정지하고 무효를 선언할 것을 청구한다. 아울러 본안 판결 전까지 로제 영애를 발렌티노 대공저의 안전 구역으로 즉시 이송하고 그녀의 모든 대외 계약과 자산 처분 권한을 대공가의 관리하에 둘 것을 요구한다."
심리정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대공 각하이시군. 버림받은 여자가 제멋대로 날뛰는 걸 가문의 권위로 통제하시려는 거야."
"혼인 후견권을 유지해서 신변을 거두겠다니 발렌티노가 베풀 수 있는 가장 자비로운 처벌이 아닌가."
방청석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귓전을 때렸다.
그 순간 나는 카시안을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고 정면의 판사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한 무표정. 그의 몸을 감싼 무채색 결계는 한 치의 틈도 없이 견고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베이는 통증이 밀려왔다.
어제 그가 내 거처에서 내뱉었던 말들. 나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그 처절한 눈빛. 그 모든 것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소유물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해 안달이 난 귀족적인 오만이었을까?
진심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는 그의 모진 선언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3년 동안 쌓여 온 냉대의 기억이 다시금 온몸의 피를 차갑게 식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파서 주저앉는 것은 대공저에서 이미 끝냈다. 지금 내 손에는 내가 피땀 흘려 준비한 상회의 미래와 자유가 쥐어져 있었다.
헬무트 판사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피신청인 에블린 폰 로제 영애. 대공 각하의 청구에 대해 진술할 내용이 있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의자를 뒤로 밀어내는 소리가 심리정에 선명하게 울렸다. 라일라가 내 손에 붉은 서류철을 넘겨주었다.
나는 서류철을 펼쳐 카시안의 서명이 또렷하게 박힌 양피지를 높이 들어 올렸다.
"주심 판사님. 발렌티노 대공 각하의 주장은 제국 혼인법과 계약법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차분하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여기 제출된 문서는 3년 전 로제 가문과 발렌티노 가문이 맺은 정식 혼인 계약서이자 엿새 전 양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체결한 이혼 합의서 원본입니다. 제7조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카시안을 똑바로 응시하며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3년의 기한이 만료되는 즉시 혼인 관계는 소멸하며 양 당사자는 서로에 대한 일체의 법적 후견권과 재산 통제권을 영구히 포기한다. 본 합의는 어떠한 외부 압력이나 심신 미약 없이 완벽한 자유 의사로 체결되었음을 확인한다.]"
방청석이 조용해졌다.
나는 시선을 들어 판사를 바라보았다.
"대공 각하께서는 제가 공포에 질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거처에서 겪은 위협은 대공비라는 신분을 잃어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서류철에서 또 다른 사본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신전 약방의 불법 향초 유통으로 인해 동문 빈민 의원에서 발생한 환자 피해 기록 사본입니다. 그리고 저를 습격했던 괴한들이 소지하고 있던 신전 하급 사제의 변조된 이동 허가패 기록입니다."
성소 사제단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그들의 은백색 마력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일렁였다.
"저는 상회의 대표로서 시장의 불법적인 독점과 독향 유통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외부 범죄의 표적이 되었을 뿐입니다. 이는 수도 경비대와 사법 당국이 수사해야 할 치안의 문제이지 전남편이 혼인 후견권을 부활시켜 사적인 감옥에 저를 가둘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로제 영애!"
헬무트 판사가 당황한 듯 의사봉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금 신전 약방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입니까?"
"저는 법정에 제출된 정식 물증의 출처를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대공 각하의 청구는 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명예를 핑계로 독립된 상회의 경제 활동을 가로막고 제가 확보한 공적 증거를 대공가의 창고 속에 은폐하려는 불법적인 권한 남용입니다."
심리정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귀족들이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카시안의 턱 근육이 단단하게 경련했다.
나는 판사를 향해 준비해 온 맞소송 청구서를 정식으로 제출했다.
"이에 피신청인은 발렌티노 대공의 이혼 무효 청구에 대한 전면 기각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이혼 효력의 완전한 확정 및 로제 상회의 독립적 자산 처분권 보장'을 구하는 본안 확인 청구의 소를 정식으로 제기합니다."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헬무트 판사는 땀을 닦으며 옆자리의 배석 판사들과 긴급하게 귓속말을 나누었다.
성소 사제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늘한 목소리로 개입했다.
"판사님. 성소는 본 혼인의 유지가 제국의 영적 안정과 불길한 예언적 재앙을 막는 중대한 사안임을 거듭 밝힙니다. 영애의 자의적인 행동은 신전의 권위와 제국의 안녕을 해치는 위험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예언적 재앙.
사제의 입에서 또다시 그 기괴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카시안의 눈빛이 순식간에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는 사제를 향해 몸을 반쯤 돌리며 서늘하게 읊조렸다.
"성소의 참관인은 발언권을 얻지 않았다. 제국 귀족법원의 절차에 신전이 월권하는 것은 황제 폐하의 사법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카시안의 살기 어린 일갈에 사제가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헬무트 판사는 양측의 날카로운 기세에 압도된 듯 서둘러 의사봉을 세 번 내리쳤다.
탕! 탕! 탕!
"정숙하라! 양측의 진술과 제출된 서류를 종합하여 본 법원은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판사가 결정을 낭독했다.
"신청인 발렌티노 대공의 '로제 영애 대공저 강제 이송 및 신변 구금' 신청은 계약서 원본의 명시 조항에 반하므로 임시 기각한다. 로제 영애의 거처와 상회 활동의 독자성을 잠정 인정한다."
나는 안도의 숨을 속으로 삼켰다.
그러나 판사의 다음 말은 여전히 족쇄를 남겨두고 있었다.
"단 성소의 이의제기와 외부 신변 위협의 실체가 확인된 바 본 이혼의 최종 효력 확인 및 무효 여부는 2주 뒤 정식 본안 재판에서 다투도록 한다. 그때까지 로제 상회의 대규모 자산 매각 및 외부 후견인 지정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시안의 손아귀로 강제로 끌려들어 가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냈다.
"심리를 정회한다!"
판사가 서둘러 퇴정하자 법정 안의 귀족들이 웅성거리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성소 사제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기록지를 챙겨 사라졌다.
나는 서류를 정리해 라일라에게 건넸다.
"먼저 마차로 가 있어. 곧 따라갈게."
"대표님. 혼자 계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잠깐 확인할 게 있어."
라일라를 먼저 보낸 뒤 나는 심리정 밖 인적이 드문 북쪽 회랑으로 걸어 나갔다. 묵직한 대리석 기둥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카시안은 기둥에 몸을 기댄 채 굳은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법정에서 신전 약방의 증거를 꺼내 들다니. 제정신인가?"
그의 목소리는 법정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날카롭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있나? 너는 지금 신전의 모든 칼날을 네 목에 겨누게 만들었다."
나는 차갑게 웃었다.
"그럼 당신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대공저로 끌려가 감옥 같은 방에 갇혔어야 했나요?"
"그건 감옥이 아니다. 널 살리기 위한 유일한 벽이었다."
"살리기 위한 벽?"
나는 카시안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법정에서 당신이 나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해요? 판단력을 잃고 날뛰는 철없는 여자라고 했죠. 당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짐짝 취급을 하면서요."
카시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건…… 신전의 눈을 돌리기 위해서……."
"연기였나요?"
내가 묻자 카시안은 말을 멈췄다.
"대답해 봐요. 그게 날 지키기 위한 연기였습니까? 아니면 지난 3년 동안 당신이 나를 바라보았던 그 진짜 마음이었습니까?"
정적이 흘렀다.
회랑의 서늘한 바람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카시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의 주먹이 부서질 듯 쥐어졌고 왼팔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듯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금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연기든 진심이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가 시선을 내리깔며 잔인하게 읊조렸다.
"네가 내 곁에 있지 않겠다면 너는 그저 파멸할 뿐이다. 나는 네 고집 때문에 발렌티노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
숨이 턱 막혔다.
결국 이거였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도 그에게 나는 지켜야 할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통제해야 할 골칫거리였을 뿐이다.
"좋아요."
나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그를 쏘아보았다.
"당신의 차가운 저택으로 돌아가 숨죽여 사느니 차라리 표적이 되어 내 발로 싸우다 쓰러지겠어요. 그러니 두 번 다시 내 삶에 끼어들지 마세요. 발렌티노 각하."
내가 매몰차게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내 시야 구석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카시안을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무채색의 장막. 그 얼음 같은 회색 결계의 한가운데가 마치 심장이 찢어지듯 쩍 갈라졌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숨이 막힐 만큼 짙고 처절한 핏빛 고통과 멍처럼 깊은 보랏빛 파문이 터져 나왔다.
'……이건?'
내 발걸음이 멈칫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색이었다. 무채색 뒤에 숨겨져 있던 그 지독하고 처절한 감정의 파편.
내가 놀라 뒤를 돌아보려 한 바로 그 찰나였다.
쩌저적.
카시안이 스스로 마력을 억누르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보랏빛 틈새는 순식간에 다시 차가운 무채색의 얼음벽 뒤로 닫혀 버렸다.
카시안은 이미 등을 돌려 회랑의 어둠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모진 독설 뒤에 숨어 있던 그 찢어질 듯한 고통의 색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혼란과 상처가 뒤엉켜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고 있을 때였다.
회랑 맞은편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 뒤편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서늘한 기척이 피어올랐다.
순백에 가까운 사제복 위에 황금빛 태양 문양을 수놓은 여인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입가에 온화하지만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발렌티노 대공이 그녀를 버린 것이 진실이라면……."
여인은 손에 든 은색 성물 방울을 가볍게 매만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제 신의 뜻을 전하러 갈 차례로군요. 가련한 에블린 영애."
태양 신전의 성녀 세라피나의 서늘한 시선이 내 등 뒤를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