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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남편이 예언을 속이려 나를 미워한 줄 몰랐다10화

무정한 남편이 예언을 속이려 나를 미워한 줄 몰랐다

무정한 남편이 예언을 속이려 나를 미워한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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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청혼자의 색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신전 약방 앞 검수가 끝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거리의 소문은 불길보다 빨랐다. 공작저를 나온 버림받은 여인이 신전 약방의 이중 장부를 폭로하고 별궁 하녀장의 신임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동문 상인들 사이에서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경계했고 누군가는 손을 내밀었다.

"대표님, 브란트 남작 가문에서 보낸 서신입니다."

라일라가 조심스럽게 봉투를 내밀었다. 고급 양피지 모서리에는 금박으로 테두리를 두른 남작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브란트 남작이라면 수도 항만 유통을 쥐고 있다는 그 사람인가요?"

"예. 최근 왕실 조달청과도 독점 납품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사교계에서도 손꼽히는 신흥 거물이라고 하더군요."

라일라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정중했다. 로제 상회의 뛰어난 약초 선별 능력과 강단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신전의 부당한 압박에 맞서 상회를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싶다는 뜻이 적혀 있었다.

편지 말미에는 오늘 정오 직접 방문하겠다는 통보가 덧붙여져 있었다.

"사교계 귀족이 이런 허름한 동문 이층집까지 직접 오겠다고요?"

"그만큼 로제 상회의 가치를 높게 본다는 뜻이거나 다른 셈법이 있는 것이겠죠."

나는 봉투를 내려놓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골목 어귀에는 평소보다 지나다니는 마차가 많았다.

정확히 정오가 되었을 때 화려한 은빛 문양이 새겨진 고급 마차가 거처 앞에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린 남자는 짙은 갈색 머리에 단정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청년이었다. 값비싼 벨벳 외투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짚은 그는 주변의 낡은 건물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압적인 우아함을 풍겼다.

율리안 폰 브란트 남작.

"에블린 영애를 뵙습니다."

응접실로 들어선 브란트 남작은 완벽한 귀족의 예법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의 등 뒤로 하인이 들고 온 자개 상자가 탁자 위에 올려졌다.

상자가 열리자 은은한 사향 냄새와 함께 북부 설산에서만 채집된다는 희귀한 백설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만남에 빈손으로 올 수는 없었기에 작은 성의를 준비했습니다."

"귀한 물건을 가져오셨군요, 남작님. 하지만 로제 상회는 아직 이런 고가의 약재를 다룰 만큼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브란트 남작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제가 직접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품에서 푸른 비단으로 묶은 문서 한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약방 앞에서의 일은 잘 들었습니다. 신전의 부패를 폭로한 영애의 용기에는 진심으로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여인의 몸으로 거대한 신전과 사교계의 냉대를 동시에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요?"

"브란트 상단이 로제 상회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막대한 유통망과 자금을 무제한으로 지원하고 신전의 어떤 보복도 브란트 가문의 이름으로 막아낼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설득력이 넘쳤다. 마치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보호하려는 기사의 맹세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업 제휴에 그치지 않는 저의 진심입니다."

남작이 문서 맨 위에 놓인 은색 융단 봉투를 앞으로 밀었다.

그것은 정식 청혼서였다.

"제 아내가 되어 주십시오, 에블린 영애. 발렌티노 대공이 버린 영애의 명예를 제가 사교계의 정점에서 다시 빛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남작의 청혼은 사교계의 어떤 귀족 여인이라도 흔들릴 만큼 완벽해 보였다.

막대한 재산, 젊고 유능한 귀족의 신분 그리고 이혼녀라는 낙인을 지워 주겠다는 관대한 약속.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것은 그의 달콤한 말이나 번지르르한 겉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시야의 초점을 미세하게 비틀었다.

내 눈앞에 남작의 감정색이 뚜렷하게 피어올랐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기운에는 사람을 향한 따스한 애정의 금빛이나 신뢰의 맑은 푸른빛 따위는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썩은 늪지대처럼 끈적거리고 둔탁한 진흙빛 탐욕이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상대의 것을 남김없이 집어삼키려는 저열한 계산의 색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흙빛 탐욕의 가장자리마다 서늘하고 금속성 짙은 은백색 마력의 파편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은빛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색이었다.

새 거처 문 앞에 떨어져 있던 은색 태양 조각, 자객의 칼집에 묻어 있던 은가루 그리고 어제 확보한 교체 장부 마지막 장에 찍혀 있던 성소의 봉인.

태양 신전의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차갑고 오만한 은빛이었다.

이 사람은 신전의 사람이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남작은 단순한 구혼자가 아니었다. 무력으로 증거를 빼앗는 데 실패한 신전이 귀족 사회의 합법적인 제도를 이용해 나를 삼키려 보낸 또 다른 자객이었다.

"영애, 제 제안이 너무 갑작스러우셨습니까?"

남작은 내 침묵을 감동이나 당황으로 해석했는지 한층 더 다정한 어조로 속삭였다.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제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영애께서 겪으신 고초와 신전 약방과의 위험한 갈등은 제가 모두 대신 짊어질 것을 약속드립니다."

"남작님의 관대함에 감복할 지경이군요."

나는 감정색을 갈무리하며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럼 계약 조건을 먼저 검토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법률 자문관을 통해 영애께 가장 유리하도록 작성한 초안입니다."

남작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천천히 계약서의 장을 넘겼다. 화려하고 유려한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상단의 운영과 법률 조항을 3년 동안 공부해 온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몇 장을 넘기지 않아 내가 찾던 올가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7조: [혼인 성립 즉시, 피후견인(에블린 폰 로제)이 보유한 상단 자산, 지적 재산권, 외부 분쟁 관련 모든 원본 서류 및 청구권은 법적 후견인이자 배우자인 율리안 폰 브란트 남작에게 배타적으로 위임된다.]

제12조: [로제 상회의 모든 원료 및 가공품은 브란트 상단이 지정하는 성소 공인 유통망을 통해서만 공급되며 독자적 외부 검수 및 고발 권한은 후견인의 사전 서면 승인을 필요로 한다.]

글자 하나하나가 덫이었다.

제국의 혼인법상 귀족 여성이 혼인하면 법적 권리는 남편에게 귀속된다.

내가 이 청혼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목숨 걸고 지켜낸 신전 약방의 이중 장부, 세르비안의 인장, 성소의 지시문 원본은 모두 합법적으로 남작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남작은 후견인의 권한으로 모든 소송과 고발을 취하하고 증거를 태워버릴 것이다.

신전은 칼로 나를 죽이는 대신 결혼이라는 합법적인 족쇄로 내 입을 영원히 틀어막으려 한 것이었다.


"참으로 세심한 계약서로군요, 남작님."

나는 서류를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마음에 드셨다니 기쁩니다. 서명만 하신다면 당장 오늘부터 브란트 가문의 대저택으로 거처를 옮기실 수 있습니다."

남작이 펜을 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펜을 받는 대신 서류의 특정 조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7조와 제12조가 유독 눈에 띄는군요."

남작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외부 분쟁 서류의 위임과 성소 유통망 독점 조항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경험이 부족한 영애를 복잡한 소송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통상적인 보호 조항일 뿐입니다."

"보호라."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가 가진 신전 약방의 교체 장부와 성소 봉인이 찍힌 지시문을 합법적으로 넘겨받아 파기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고요?"

남작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영애, 무슨 터무니없는 오해를..."

"오해는 남작님이 하셨죠."

나는 의자 등받이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며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브란트 상단이 지난달 동부 항만 물류 실패로 막대한 부채를 졌다는 사실을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그 부채를 메우기 위해 신전 성소 금고로부터 긴급 채무 보증을 받았더군요."

남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성소의 돈으로 숨통을 틔운 대가로 신전의 골칫거리인 제 장부를 회수해 오는 사냥개 노릇을 자처하신 거겠죠. 청혼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씌워서요."

남작의 감정색에서 끈적하던 진흙빛이 거친 살의와 수치심의 탁한 붉은빛으로 폭발하듯 번져 나갔다.

더 이상 신사적인 가면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그는 이를 바득 갈며 서류를 거칠게 낚아챘다.

"건방진 계집이... 공작에게 버림받고 시궁창 같은 골목에 굴러떨어졌으면 은혜를 알고 기어올 것이지!"

남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깟 년이 장부 몇 장 쥐고 설친다고 신전이 무너질 것 같으냐? 귀족 사회에서 이혼녀 따위의 목숨 하나 지우는 건 일도 아니다. 내 청혼을 거절하면 네년의 그 보잘것없는 상회는 내일부터 뼈도 못 추리게 될 거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나는 흔들림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제 상회가 부서지든 살아남든 그것은 제가 감당할 몫입니다. 성소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는 자의 가짜 후견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나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라일라, 손님을 배웅해 드려라. 다신 이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해."

"이... 이 교만한 년이!"

남작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계단을 쾅쾅거리며 내려가는 발소리가 멀어지자 응접실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라일라가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표님... 정말 괜찮으실까요? 저 자가 사교계에 해코지라도 하면..."

"괜찮아. 저자가 조급하게 움직였다는 건 신전이 그만큼 우리가 쥔 증거에 쫓기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젖혔다.

골목 아래에서 브란트 남작이 씩씩거리며 마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런데 마차가 떠나간 골목 모퉁이의 짙은 그늘 속에 낯익은 검은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카시안이었다.

그는 검은 외투 깃을 높이 세운 채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서늘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층 창가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거처의 문이 열리고 카시안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어깨에는 쌀쌀한 바깥바람이 묻어 있었다.

"브란트 남작을 만났더군."

카시안의 첫마디는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자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고 만난 건가."

"방금 그자의 입으로 직접 듣고 쫓아냈습니다."

나는 탁자 위에 남아 있던 백설초 상자를 닫으며 대답했다.

카시안의 시선이 백설초 상자와 바닥에 남은 지팡이 자국을 훑었다. 그의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성소 사제단이 브란트의 채무를 미끼로 너를 옭아매려 했다. 혼인 후견권을 이용해 장부와 너를 동시에 손에 넣으려는 수작이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했고요."

"거절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카시안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짙은 눈동자에 억누를 수 없는 초조함과 분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신전은 한 번 목표로 삼은 사냥감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브란트가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더 교묘하고 합법적인 권력자를 보낼 거다. 네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명령조에 가까웠다. 나를 위험에서 떼어놓기 위해 사방을 차단하던 대공저 시절의 그 오만한 태도였다.

가슴속에서 날카로운 반발심이 치솟았다.

"그래서요? 또 저를 어디 안전한 곳에 가두기라도 하시겠습니까?"

"에블린."

"남작을 꿰뚫어 보고 쫓아낸 것은 접니다. 신전의 함정을 부순 것도 제 판단이었고요. 그런데 왜 당신은 늘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인 것처럼 말씀하시죠?"

카시안의 숨이 턱 막힌 듯 멈췄다.

"나는 너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다치는 것을... 죽는 것을 볼 수 없을 뿐이다."

"그건 당신의 두려움이죠."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

"당신이 저를 지키고 싶다면 정보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우리는 이제 계약으로 묶인 부부가 아니니까요."

카시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계약으로 묶인 부부가 아니다.

그 말이 그의 가슴을 비수처럼 찌른 것 같았다. 그의 왼팔이 외투 안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북문의 결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 고통을 참아내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차가운 얼음이 아니었다. 깊은 심연 속에서 타오르는 어둡고 절박한 불꽃이었다.

"네 말이 맞다. 너는 이제 내 아내가 아니지."

카시안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하지만 신전이 너를 노리는 한 나는 너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

"카시안 각하."

"네가 내 손을 벗어나 다른 자의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을 나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거다."

그의 눈빛 속에 담긴 억눌린 광기와 집착에 가까운 결의는 내가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전남편의 참견이 아니었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을 내리기 직전의 남자가 뿜어내는 위태로운 기운이었다.

카시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방 안에서 나는 차갑게 식어가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눌렀다.

신전의 위협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나를 둘러싼 카시안의 그림자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짙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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