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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없이 세계 최강 네크로맨서8화

시체 없이 세계 최강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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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가문의 경고

카엘은 봉투를 집지 않았다.

세척실 문턱에 떨어진 봉투는 검은 밀랍 인장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했다. 그는 장갑 낀 손가락을 허공에서 멈춘 뒤 바닥에 손바닥만 한 정화 룬을 그렸다.

푸른 빛이 봉투 아래로 스며들었다.

검은 밀랍 가장자리에서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이 피어올랐다. 선은 봉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바닥을 훑고 레오노르의 발목 쪽으로 느리게 기어갔다.

"검은 은실입니다."

엘레나가 청휘석 렌즈를 내렸다.

"은실을 태운 재를 밀랍에 섞었어요. 봉투를 열면 안쪽의 잔류파가 근처 표식에 반응하게 만든 거예요. 레오노르 경을 직접 묶는 건 아니에요.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거칠게 튀었을 거예요."

레오노르의 손이 장검 손잡이에 닿았다.

"서신에 사슬을 넣는 가문인가."

"예의는 포장지에만 쓰는 모양입니다."

카엘은 봉투와 사람들 사이에 두 번째 격리선을 더 그었다. 종지기는 문 앞에서 날개를 반쯤 펴고 봉투를 내려다봤다.

"문을 지킨다. 사람은 다치게 하지 않는다."

"좋습니다. 누가 들어오려 하면 종만 울리십시오."

카엘은 긴 집게로 밀랍을 떼어 유리 접시 위에 올렸다. 엘레나가 마나 램프의 밝기를 낮추자 검은 선이 접시 안에서 몸부림쳤다. 카엘은 정화수 한 방울을 떨어뜨린 뒤 푸른 불꽃을 붙였다.

타는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검은 재만 접시 바닥에 얇게 남았다.

그제야 카엘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두 장의 종이와 낡은 황동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열쇠에는 로엔 가문의 사슴 문장이 박혀 있었다. 카엘의 개인 공방 문에는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첫 장의 문장은 단정했다.

로엔 가문은 카엘 로엔에게 가문의 명예를 훼손한 무단 사환 행위를 중지할 것을 명한다. 북부 전쟁 영혼으로 추정되는 개체와 관련 프레임 및 연구 기록은 가문 수습관에게 인도한다. 사흘 뒤 정오까지 본가에 출석해 소명하라.

두 번째 장에는 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동봉한 열쇠를 집사 에드윈에게 넘겨받고 공방의 문과 기록 보관함을 개방하라.

레오노르가 종이를 내려다봤다.

"개체라 부르는군."

그 목소리는 낮았지만 장검 칼등의 푸른 선이 얇게 떨렸다.

카엘은 황동 열쇠를 손수건 위에 올렸다.

"남의 공방 열쇠를 보내 놓고 넘기라는 문장은 꽤 난해합니다."

"나는 저들이 수습할 물건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모르는 척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엘레나는 서신의 빈 가장자리를 살폈다.

"여기 긁힌 룬 자국이 있어요. 봉인은 신호를 보낼 뿐이고 받는 쪽이 따로 있어요. 공방에 이미 표식이 있다면 서신을 여는 순간 위치와 방호 상태를 확인하려 했을 거예요."

카엘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서신을 접어 밀폐 상자에 넣었다. 밀랍 재와 황동 열쇠도 각각 다른 칸에 분리했다.

"공방부터 확인합니다. 아카데미 신고는 증거를 더 모은 뒤에 하지요."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데요."

"충분히 위험하다는 것과 충분히 입증됐다는 것은 다릅니다."

카엘은 종지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계약 시간 안에 문을 지켜 주실 수 있습니까."

종지기는 날개를 한 번 접었다 폈다.

"문 앞에서 멈춘다. 종을 울린다."

카엘의 공방 문고리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그 사실이 카엘을 멈춰 세웠다. 그는 매일 밤 문고리 아래 황동판에 얇은 석회 가루를 뿌려 둔다. 지문이나 마나가 닿으면 흐트러지는 단순한 습관이었다.

오늘은 가루가 지나치게 깨끗했다.

카엘은 문을 열지 않고 몸을 낮췄다. 황동 손잡이 아래쪽에는 물로 닦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환기구 구리망 틈에는 검은 가루가 끼어 있었다.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엘레나가 렌즈를 비췄다.

"대신 외부에서 마나 흐름을 들으려 했어요. 가루가 진동을 받아요. 문을 여는 횟수와 코어를 가동한 시간 정도는 알 수 있었겠네요."

"방호 룬을 건드리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겠군요. 흔적을 남기기 싫었을 테니까요."

카엘은 조각칼로 가루를 긁어 유리병에 담았다. 청동 방어 인형 셋이 그의 손짓에 맞춰 환기구 덮개와 문고리를 분리했다. 인형들은 기름 묻은 부품을 잡듯 조심스럽게 물건을 유리 상자에 넣었다.

레오노르는 문턱을 넘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곳을 넘기라 한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카엘은 새 문고리를 꺼내며 대답했다.

"공방은 제 연구실이기도 하지만 계약을 시작한 곳입니다. 당신의 퇴로 룬도 여기서 완성했지요."

레오노르는 벽을 따라 정렬된 은합금 자동인형과 청동 방어 인형을 바라봤다. 그녀는 가장 앞의 방어 인형 앞에 섰다.

"이들은 나를 막지 않나."

카엘은 잠시 손을 멈췄다.

"방호 기준에는 계약 당사자의 자발적 이탈을 막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가고 싶다면 문을 열 것입니다. 다만 검은 은실을 든 사람이 당신을 끌고 나가려 하면 막겠지요."

레오노르는 청동 인형의 둥근 방패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렸다. 맑은 금속음이 공방 안에 퍼졌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킬 만하다."

카엘은 새 문고리를 끼웠다. 손잡이가 매끄럽게 돌아가자 그제야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더러운 것을 치우는 데는 순서가 있습니다. 격리하고 기록하고 교체합니다. 가문도 다르지 않겠지요."

엘레나는 그의 옆에서 유리병 뚜껑에 번호를 적었다.

"바로 학장에게 가요. 가문이 공방을 넘보는 건 아카데미 일이기도 하잖아요."

"학장께서는 가문 이름을 듣고 시간을 벌 겁니다. 모르가트 교수에게 먼저 갑시다. 평가장의 외부 명령 개입을 기록한 분이니까요."

레오노르가 장검을 집어 들었다.

"가문 사람들이 오면."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검을 쓰지 않아도 되는가."

카엘은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가능하면요. 다만 당신이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게 두지는 않겠습니다."

모르가트 교수는 서신을 세 번 읽었다.

교수실 창밖에는 오전 수업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지나갔다. 안쪽은 유난히 조용했다. 카엘은 밀랍 재가 든 접시와 환기구에서 떼어 낸 구리망을 책상 위에 나란히 놓았다.

"평가장 원 밖에서 감지된 파형과 같은 성질입니다. 가문 서신은 통지가 아니라 표식 확인 장치였고 공방에는 사전 표식이 남아 있습니다."

모르가트의 얼굴이 굳었다.

"가문이 아카데미 안에서 이런 짓을 했다는 말이냐."

"누가 남겼는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단정하지 않고 기록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가문의 수습권은 사환술 가문끼리 오래 다퉈 온 문제다. 내가 그 권한을 무효로 할 수는 없다."

"무효로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평가 중 외부 명령 개입 의혹이 기록된 직후 그 당사자의 가문이 계약 당사자와 공방에 접촉했다는 사실을 보전해 주십시오."

모르가트는 명부를 덮었다.

"그 기록을 남기면 로엔 가문은 내가 편을 들었다고 하겠지."

"교수님은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평가 기록을 이어 쓰는 겁니다. 바르토스 로엔의 파형도 이미 교수님 수정판에 남아 있습니다."

잠시 뒤 모르가트는 레오노르를 보았다.

"그리고 너는 가문 소유의 영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가."

레오노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흉갑 중앙의 작은 룬을 눌렀다.

푸른 선이 바닥 위에 열렸다. 벽이나 사슬로 이어지지 않은 길이었다. 룬의 끝은 교수실 창가 아래에서 잔잔히 흔들렸다.

"이 길은 내가 나가고 싶을 때 열린다. 카엘은 열쇠를 갖지 않는다."

그녀는 손을 떼었다. 푸른 길이 사라졌다.

"나는 내 검과 몸을 고른다. 로엔의 보관고로 돌아가지 않겠다."

모르가트의 시선이 룬이 있던 자리에 오래 남았다.

"강제 명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지."

"거절한다. 못 거절할 힘이라면 퇴로를 연다."

카엘이 덧붙였다.

"그 선택의 기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교수님과 엘레나가 입회한 상태에서 퇴로 룬의 반응을 다시 검증하겠습니다."

모르가트는 마침내 새 명부를 꺼냈다.

"평가 규정 제십이항에는 외부 명령 개입 의혹이 있는 대상에 대한 추가 접촉을 보전하는 조항이 있다. 소유권을 판정하는 조항은 아니다."

"그것이면 됩니다."

"대신 네가 제시하는 검증은 내 앞에서 해야 한다. 룬이 진짜 선택을 남기는지 나도 확인하겠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조건입니다."

모르가트가 기록을 시작한 순간 문 밖에서 지팡이가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검은 제복의 노인이 들어왔다. 흰 장갑을 낀 손에는 가죽 문서함이 들려 있었다. 그는 카엘에게 먼저 고개를 숙인 뒤 레오노르를 향했다.

"카엘 도련님. 로엔 가문의 집사 에드윈입니다."

"들었습니다. 가문은 서신에 사슬을 넣는다고요."

에드윈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가문은 안전을 우선합니다. 수습관과 마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영혼을 적절한 보관고로 모시겠습니다."

레오노르의 손이 검자루에 닿았다. 카엘은 교수의 서명 아래 막 찍힌 기록 사본을 집사에게 내밀었다.

"아카데미는 강제 명령 의혹과 무단 추적 흔적을 보전했습니다. 레오노르 경은 제 계약 당사자입니다. 물건처럼 옮길 수 없습니다."

에드윈은 사본을 읽었다. 노인의 정중한 표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가문의 소명은 피할 수 없습니다. 바르토스 도련님께서도 증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레오노르가 말했다.

그녀는 장검에서 손을 떼고 똑바로 섰다.

"사흘 뒤 나는 내 발로 그곳에 간다. 내 대답도 내가 한다."

에드윈은 이번에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숙였다.

"그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집사가 떠난 뒤 모르가트는 문서를 봉인했다. 엘레나는 창가에서 사라지는 검은 마차를 노려봤다.

"증인까지 준비한다니. 대체 뭘 가져오려는 걸까요."

"아직 모릅니다."

카엘은 대답하고 공방 열쇠가 든 상자를 단단히 잠갔다.

사흘. 공방을 지키고 계약을 증명하기에는 짧았다.

그러나 퇴로 룬은 이미 답을 보여 줬다. 영혼이 스스로 열 수 있는 길을 누구의 인장도 소유할 수는 없었다.

카엘은 작업대 위에 새 은판을 올렸다.

"공개 검증용 계약 증명을 만듭니다. 가문이 원하는 절차로 오라 했으니 절차로 돌려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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