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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없이 세계 최강 네크로맨서10화

시체 없이 세계 최강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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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오프셋 마력 코어

카엘은 작업대 위에 놓인 붉은 밀랍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창밖은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막 내려앉고 있었다. 북문 교역로에서 마수를 격퇴하고 돌아온 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말 바로 여실 건가요?"

엘레나가 청휘석 렌즈를 눈에 댄 채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붉은 밀랍은 단순한 통지서가 아니에요. 가문 소명 일정을 직권으로 앞당길 때만 찍히는 인장이라고요."

"열지 않으면 상대의 수를 알 수 없습니다."

카엘은 조각칼 끝에 푸른 정화 룬을 띄웠다. 미세한 마력 불꽃이 붉은 밀랍의 테두리를 부드럽게 훑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밀랍에 섞여 있던 미세한 추적 가루가 허공으로 타올랐다. 봉투 표면에 새겨진 로엔 가문의 사슴 문장이 딸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카엘은 핀셋으로 양피지를 꺼내 펼쳤다.

"오늘 정오. 아카데미 본관 제3 심의실."

양피지에 적힌 글귀를 읽은 엘레나가 눈을 크게 떴다.

"사흘 뒤라고 해 놓고 반나절 만에 부른다고요? 이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에요!"

"가문 측에서는 절차의 신속한 종결을 이유로 들었을 겁니다. 어젯밤 북문 교역로 습격이 실패한 직후니까요."

카엘은 양피지를 접어 서류함에 넣었다.

"상단주의 증언과 마수의 목에서 나온 검은 은실. 그 증거들이 아카데미 공식 기록으로 등록되기 전에 판을 끝내려는 속셈입니다."

레오노르가 장검을 가볍게 고쳐 쥐며 말했다.

"도망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군."

"도망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카엘이 고개를 돌려 작업대 구석의 작은 병 두 개를 바라보았다. 마리안에게서 보상으로 받은 최상급 청휘석이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심의실에서 벌어질 검증은 단순히 말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바르토스가 레오노르 경의 소유권을 가문으로 넘기라고 요구하겠죠."

엘레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게다가 공방의 연구 기록까지 가문 기술 유출로 몰아세울 테고요."

"그들이 노리는 핵심은 단순합니다. 레오노르의 자율 기동이 속임수이며 외부 마나 공급이나 가문의 사환술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칠 겁니다."

카엘은 의자에 앉아 양피지 한 장을 새로 펼쳤다. 펜촉이 빠르게 움직이며 새로운 회로도를 그려 나갔다.

"현재 레오노르의 주 코어는 감각 번역식과 물리 구동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움직임에는 문제가 없지만 고출력 전투가 길어지거나 외부 간섭을 받으면 코어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단일 코어의 한계네요."

엘레나가 도면을 들여다보며 턱을 괴었다.

"그렇다고 코어를 두 개 나란히 박으면 서로 마나 파형이 충돌해서 폭주할 텐데요?"

"그래서 단순 병렬 배치가 아니라 오프셋 구조를 쓰는 겁니다."

카엘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주 코어는 영혼의 의지와 감각 번역에만 집중시키고 관절 구동과 마나 완충은 독립된 보조 코어가 떠받치게 만듭니다. 이른바 오프셋 마력 코어입니다."


작업대의 불빛이 밝아졌다.

카엘은 최상급 청휘석 결정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맑고 투명한 심해를 닮은 푸른빛이 공방 안을 은은하게 채웠다.

"엘레나. 청휘석 가루의 마나 전도율을 3단계로 분급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굵은 입자는 완충 격벽에 쓰고 고운 미립자는 감각로 연결부에 배치하면 되죠?"

"정확합니다."

엘레나는 능숙하게 막자사발을 돌리며 청휘석 결정을 갈아 냈다. 가루가 부서질 때마다 서늘하고 맑은 마나 향이 퍼져 나갔다.

카엘은 손바닥만 한 은합금 캡슐을 고정구에 올렸다.

조각칼이 은빛 표면을 파고들며 정밀한 룬을 새겨 나갔다.

단순한 마나 저장 룬이 아니었다. 주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파동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그 반대 위상의 힘을 내보내 출렁임을 억제하는 '변위 보정 룬'이었다.

영혼이 몸을 움직이려 할 때 발생하는 순간적인 의지의 반동. 그것을 흡수하지 못하면 금속 관절은 삐걱거리고 영혼은 피로를 느낀다.

카엘의 손끝은 흔들림이 없었다.

선 하나가 그어질 때마다 청휘석 미립자가 홈을 따라 채워졌다. 푸른빛이 은판 위에서 살아 숨 쉬듯 맥동했다.

"정말 놀라워요."

엘레나가 감탄을 억누르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기존 네크로맨서들은 영혼을 억누르고 시체를 쥐어짜기 위해 마나를 쏟아붓는데 카엘 씨는 영혼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완충 장치를 만들고 있잖아요."

"강제로 쥐어짜는 구조는 수명이 짧습니다. 시체가 썩는 속도만큼이나 비효율적이죠."

카엘은 캡슐 상단의 밸브를 단단히 조였다.

딸깍.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오프셋 마력 코어가 완성되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청동과 은빛의 구체 안에서 푸른 불꽃이 고요하게 돌았다.

카엘은 레오노르를 바라보았다.

"레오노르 경. 흉갑 보조 소켓을 개방해 주십시오."

레오노르는 말없이 왼쪽 가슴 위의 덮개를 열었다. 정교한 태엽과 은빛 배선들이 얽힌 내부 공간이 드러났다.

카엘은 집게로 오프셋 코어를 들어 올려 소켓에 밀어 넣었다.

지이잉.

코어가 맞물리는 순간 푸른빛의 파동이 레오노르의 전신 감각로를 타고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공방 앞 공터는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처마 밑에 앉아 있던 가고일 종지기가 날개를 털며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숨소리가 난다. 맑은 돌의 소리다."

카엘은 마나 압력계를 든 채 거리를 두었다.

"레오노르 경. 가벼운 보법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레오노르가 첫 발을 내딛었다.

바닥을 밟는 순간 금속 관절 특유의 둔탁한 파열음이 사라졌다. 마치 깃털이 내려앉듯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공터 중앙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은빛 장검을 뽑아 들었다.

쉬익!

검날이 허공을 가르는 궤적이 하나의 은빛 호를 그렸다.

검을 휘두르는 반동이 팔꿈치와 어깨를 타고 흐르자마자 흉갑의 오프셋 코어가 푸른빛을 번쩍이며 진동을 완벽히 흡수했다.

"놀랍군."

레오노르의 음성에 깊은 만족감이 묻어났다.

"손목에 걸리던 미세한 저항이 사라졌다. 살아 있을 때의 육체보다 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엘레나가 기록판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마나 소모 효율이 이전보다 4배 이상 상승했어요! 이 정도면 외부 공급 없이도 대여섯 시간은 쉬지 않고 전투가 가능해요!"

"아직 방심하기는 이릅니다."

카엘이 압력계의 수치를 주시하며 말했다.

"한계 기동을 시험하겠습니다. 연속 3단 참격을 최고 속도로 전개해 주십시오."

레오노르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은빛 잔상이 세 갈래로 갈라지며 허공의 안개를 날카롭게 찢어발겼다.

챙! 챙! 챙!

단 0.5초 사이에 세 번의 맹렬한 검격이 공기를 폭발시키듯 터져 나왔다.

그러나 세 번째 검격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레오노르의 왼쪽 어깨가 뚝 멈춰 섰다.

치이익!

흉갑 접합부에서 날카로운 증기음과 함께 붉은빛의 마나 연기가 피어올랐다.

"윽……!"

레오노르의 자세가 흐트러지며 장검 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레오노르 경!"

엘레나가 깜짝 놀라 달려가려 했다.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카엘이 엘레나를 막아서며 빠르게 다가갔다.

레오노르의 왼쪽 어깨와 흉갑 연결 채널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푸른빛이어야 할 청휘석 회로가 마나 역류로 인해 과열되고 있었다.

카엘은 망설이지 않고 레오노르의 흉갑 덮개를 열었다.

뜨거운 열기가 가죽 장갑 위로 훅 끼쳤다. 그는 조각칼을 집어넣어 퇴로 룬의 보조 밸브를 비틀었다.

푸슈슉!

갇혀 있던 과열 마나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가며 붉은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레오노르가 거친 숨을 내쉬듯 어깨를 떨었다.

"몸 안쪽이…… 불타는 듯한 감각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견딜 수 있다. 다만 순간적으로 팔의 감각이 끊겼다."

엘레나가 안경을 벗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어째서죠? 청휘석의 전도율도 완벽했고 변위 룬도 정확하게 맞물렸는데……."

카엘은 조각칼 끝에 묻은 미세한 그을음을 렌즈로 관찰했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마나를 요구할 때 주 코어와 오프셋 코어의 반응 속도에 미세한 시차가 발생합니다. 그 틈으로 역류한 잉여 마나가 접합부에 정체되면서 열화가 일어난 겁니다."

그는 공책을 꺼내 수치를 기록했다.

"오프셋 코어는 지속력과 안정성을 극대화하지만 연속 한계 출력에는 취약합니다. 1초 이내에 최대 출력을 세 번 이상 연속으로 쓰면 과열로 인해 관절이 잠기게 됩니다."

"그럼 이 코어는 실패작인가요?"

엘레나의 물음에 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실패가 아니라 한계의 규명입니다. 원인을 알았으니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됩니다."

카엘은 조각칼로 오프셋 코어 외벽에 얇은 방열 홈을 세 개 더 파냈다. 그리고 과열 직전에 마나를 자동으로 외부로 배출하는 미세 완충 룬을 추가했다.

"레오노르 경. 연속 고출력은 2회까지만 허용됩니다. 3회째를 시도하기 전에는 반드시 1초의 냉각 간격을 두어야 합니다."

레오노르가 다시 일어서며 은빛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기사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 몸의 상태를 이렇게 명확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군."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정오를 알리는 아카데미 대탑의 종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공방 문을 두드리는 무거운 소리가 이어졌다.

똑. 똑. 똑.

종지기가 지붕 위에서 날개를 접으며 낮게 울부짖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왔다. 세 명이다."

카엘은 작업대 위의 물건들을 정돈했다.

새로 완성된 은판 계약 증명서. 북문 교역로에서 확보한 마리안의 친필 증언서. 검은 은실이 담긴 밀폐 유리병. 그리고 오프셋 코어의 안정화 수치가 기록된 연구 일지.

카엘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깔끔한 외투를 걸치고 가죽 장갑을 팽팽하게 당겨 꼈다.

"엘레나. 기록판을 챙기십시오."

"준비 끝났어요."

엘레나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노르는 허리춤에 은빛 장검을 차고 카엘의 오른편에 섰다.

카엘이 공방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로엔 가문의 수습관 복장을 한 중년 남성과 아카데미 심의관 두 명이 서 있었다.

"카엘 로엔 학원생."

수습관이 오만한 눈빛으로 카엘과 레오노르를 훑어보며 말했다.

"가문 소명 위원회가 제3 심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바르토스 후계자께서 직접 입회하셨으니 지체 없이 따르도록."

카엘은 차분하게 문을 닫고 열쇠를 돌렸다.

"가시죠."

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고 명료했다.

"낡은 빚을 정리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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