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는 천마였습니다

3화: 사라진 은표
무진은 문을 잠근 뒤에도 한동안 CC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면 속 경찰차와 한경수를 실은 구급차가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배달 기사가 상자를 내밀고 돌아선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02시 07분.
상자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배달 기사는 카운터 앞에 오래 서지 않았다. 문을 열고 상자를 건넨 뒤 곧장 골목으로 나갔다. 그 짧은 사이 점포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받지 못한 빚.’
빈 검집 끝에는 검은 모래가 붙어 있었고 포장지에는 발신인도 주소도 없었다.
그는 카운터 아래 비닐봉지에 검집을 넣었다. 검은 모래는 건드리지 않고 봉투 겉면에 시간과 위치를 적었다.
02시 07분. 발신인 미상. 점포 안에서 개봉.
검을 넣어 본 적이 없는 검집이었다. 손에 쥐자 강호의 북쪽 성벽 아래에서 맡았던 겨울 냄새가 났다.
무진은 봉투를 카운터 안쪽에 두었다. 보관함을 열러 갈 수는 없었다. 근무표에는 아직 그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물건과 화면과 신고 기록을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강무진 씨 되십니까. 조금 전 다친 분을 이송한 경찰입니다.”
“예.”
“한경수 씨가 병원에서 진술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물건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은표라고 부른 물건입니다. 혹시 가져가셨습니까.”
무진은 대답하기 전에 근무복 왼쪽 주머니를 눌렀다. 안쪽은 비어 있었다.
은표는 그 주머니에 넣은 적이 없었다. 카운터 위에서 집어 경수의 셔츠 주머니에 돌려놓았다. 경찰이 들어왔을 때도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경수가 들것에 오르기 전에도 은표는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제가 받은 적은 없습니다.”
“경수 씨는 무진 씨에게 돌려줬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했습니까.”
“정확히는 천마에게 돌려줬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지금도 그 호칭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무진은 가게 안을 둘러봤다. 빈 컵라면 뚜껑과 물에 젖은 캔이 치워진 자리가 보였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었지만 은표만 없었다.
“경수 씨가 의식이 또렷합니까.”
“진통제를 맞았지만 운행 경로와 보관함 이야기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숨길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진술을 받으십시오. 은표는 제게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무진은 CCTV를 돌려 보았다. 경찰이 경수를 데리고 나간 뒤 카운터를 정리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화면 속 손가락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실제 주머니를 뒤집었다. 먼지 한 톨과 작은 종이 조각만 떨어졌다. 안감은 찢어지지 않았다.
현금처럼 손에 잡히던 물건이 가짜 지폐처럼 사라졌다.
무진은 손바닥을 폈다. 왼손의 흉터 아래에서 장부 인장이 낮게 뛰었다.
03시가 가까워질 무렵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한경수의 목소리였다. 숨이 가빴지만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보다 또렷했다.
“천마님.”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그럼 뭐라고 해야 하오.”
“강무진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분이었구려.”
“경수 씨는 무엇을 말했습니까.”
“사람 셋을 철문 앞에 데려다준 일. 돈을 받고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찾지 않은 일. 운행 시간과 차 번호를 숨긴 일까지 전부 말했소.”
“보관함 열쇠도 넘겼소. 겁이 나서 숨겼던 휴대폰도 가져가라고 했지.”
“잘하셨습니다.”
“잘한 게 아니오. 너무 늦었지.”
“늦었다고 해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닙니다.”
“그 말을 당신에게 듣게 될 줄은 몰랐소.”
경수는 기침했다. 무진은 가게 안의 물병을 바라봤다. 전화기 너머에 건넬 수 없는 물이었다.
“은표는 왜 사라졌습니까.”
“나도 모르오. 간호사가 주머니를 확인할 때까지는 있다고 생각했소. 그런데 천 조각만 남아 있었지.”
“은표가 없어진 순간을 기억합니까.”
“경찰에게 말하고 나서였소. 내가 마지막으로 숨긴 말을 꺼낸 뒤였지.”
무진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인장이 손금 안쪽을 뜨겁게 밀었다.
“제가 갚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갚고 싶었소.”
경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예전에 나를 살려 보냈다고 들었소. 어디서였는지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오. 다만 당신이 내게 다시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기억하오. 나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소. 오늘까지도 돈을 받으면 끝난다고 생각했지.”
무진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기억에는 한경수라는 이름이 선명하지 않았다. 전쟁이 지나간 뒤 살아남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중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저는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하지 않아도 약속은 남는 법이오.”
인장이 뜨겁게 타올랐다.
손바닥 안쪽에 보이지 않는 줄 하나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무진은 반사적으로 카운터를 짚었다. 냉장고 모터 소리가 멀어지고 새벽의 점포가 잠시 흔들렸다.
“무진 씨. 괜찮소?”
“괜찮습니다.”
“나는 이제 벌을 받겠소. 대신 그 사람을 찾아 주시오. 내가 문 앞에 데려다준 사람 말이오.”
“제가 직접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소.”
“찾겠다고 말하고 찾지 못하면 또 다른 빚이 됩니다.”
경수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그럼 찾아보는 데 필요한 말을 계속하겠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통화가 끊겼다.
손바닥의 열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인장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처음과 달랐다. 안쪽에서 검게 뭉친 기운 하나가 가늘게 끊어진 느낌이었다.
은표는 돈이 아니었다. 경수가 끝까지 하지 못한 말을 붙잡아 두는 표식이었다. 마지막 사실까지 자발적으로 말한 순간 첫 번째 약속이 닫혔다.
무진은 메모지에 적었다.
한경수. 진술 시작. 운행 자료 제출. 은표 소멸.
마지막 단어 아래에 선을 그으려는 순간 출입문이 열렸다.
남자는 검은 우비를 입고 있었다.
비는 그칠 듯 말 듯 내리고 있었다. 남자의 어깨에는 빗물이 거의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점포 안으로 두 걸음 들어온 뒤 냉장고 쪽을 보았다.
“생수 하나.”
무진은 가장 가까운 진열대에서 물을 꺼내 바코드를 읽혔다.
“천이백 원입니다.”
남자는 지갑에서 오만 원권을 꺼냈다. 지폐는 젖지 않았고 모서리도 지나치게 반듯했다.
무진은 지폐를 받지 않았다.
“카드로 결제하시겠습니까.”
“현금이 편한데.”
“거스름돈이 부족합니다.”
남자가 웃었다. 입술만 움직이는 웃음이었다.
“아까 다친 노인에게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무진의 손가락이 계산대 아래에서 멈췄다.
“손님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피 묻은 셔츠를 입은 사람. 은색 물건을 들고 있었지요.”
“가게 안에서 본 손님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경찰이 데려갔습니까.”
“결제부터 하시죠.”
남자는 오만 원권을 접어 계산대 위에 올렸다. 지폐 아래쪽에 검은 모래 한 알이 붙어 있었다. 무진은 그것을 보자 검집 속 모래가 떠올랐다.
“그 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한 모양이군요.”
“저는 물을 사러 왔습니다.”
“그러면 물만 사십시오.”
남자의 시선이 카운터 안쪽으로 향했다. 빈 검집을 넣어 둔 봉투는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남자는 그 위치를 짐작하는 듯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이곳에 맡겨 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된 검집이지요.”
무진은 계산대 옆 호출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분실물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받지 못한 빚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남자의 손이 카운터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무진은 그 손목을 잡아 멈췄다. 이번에는 힘을 쓰지 않았다. 손님이 들어온 영상과 지폐가 남아 있었다.
“안쪽은 직원 구역입니다.”
“손이 미끄러졌습니다.”
“그럼 손을 빼십시오.”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목을 빼려는 힘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무진은 손가락 하나만 세워 상대의 맥을 눌렀다. 남자는 얼굴을 굳히며 손을 거뒀다.
“신고하시겠습니까.”
“필요하면 합니다.”
“그 노인도 그렇게 말했습니까.”
“경수 씨는 자기 입으로 말했습니다.”
무진이 처음으로 이름을 꺼내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군요.”
남자는 물병을 가져가지도 않고 문 쪽으로 돌아섰다. 오만 원권을 다시 집어 들었다. 검은 모래 한 알이 계산대 위에 남았다.
“말을 끝냈다고 빚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판단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
남자가 문고리를 잡았다.
“이름을 바꿔도 빚은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자동문이 열리고 남자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무진은 곧장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는 문이 닫히는 장면과 남자의 옷차림을 CCTV에 남긴 뒤 검은 모래를 작은 종이에 옮겼다.
종이 위의 모래는 빛을 받자 아주 잠깐 붉게 반짝였다.
연주가 점포에 도착한 것은 06시 43분이었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바닥을 먼저 봤다. 무진이 닦아 둔 자리와 정리된 진열대를 훑은 뒤 계산대 아래의 봉투를 발견했다.
“이건 뭐야.”
“배송품입니다.”
“발신인은.”
“없습니다.”
연주는 봉투를 집지 않고 무진을 바라봤다.
“또 무슨 일이 있었어.”
무진은 경찰이 다친 손님을 데려간 일과 검은 우비 남자가 들어온 일을 차례로 말했다. 경수의 은표가 사라진 일은 설명하지 않았다. 말로 꺼내는 순간 연주가 이 가게를 감당할 수 없는 장소로 여길 것 같았다.
연주는 CCTV 화면을 확인했다. 02시 07분의 배달 장면과 03시 18분의 검은 우비 남자를 차례로 돌려 봤다.
“이 사람은 물도 안 사고 나갔네.”
“현금이 부족해서 결제하지 않았습니다.”
“카운터 안쪽으로 손을 넣은 건 뭐고.”
“손이 미끄러졌다고 했습니다.”
연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을 믿어?”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냥 보냈어.”
“가게 안에서 먼저 싸우면 손님과 물건이 다칩니다.”
연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주취 손님 처리 기록을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친 사람은 없지.”
“없습니다.”
“그럼 됐어. 대신 다음부터는 수상한 사람이 오면 바로 연락해. 네가 혼자 판단해서 버티는 건 책임감이 아니야.”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호에서는 혼자 버티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혼자 버틴 사람이 다른 사람의 판단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었다.
“연락하겠습니다.”
연주가 봉투를 들어 올렸다.
“이 검집은 내가 금고에 넣을까.”
“아직은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경찰에 전달할 기록도 남기겠습니다.”
“네가 경찰보다 먼저 판단하지는 마.”
“알겠습니다.”
연주가 봉투를 내려놓는 순간 냉장고 쪽에서 작은 금속음이 났다. 무진은 고개를 돌렸다.
유리문 너머 냉장고 앞 바닥에 검은 모래가 한 줄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자리였다.
출입문 밖에서 오토바이 엔진이 멈췄다.
무진은 손바닥의 흉터를 가렸다. 장부 인장은 다시 조용했지만 검은 모래는 냉장고 앞에서 새벽 배송을 기다리는 흔적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