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당한 나의 100번째 복제인간

1화: 깨어난 시체
냉각액의 냄새
차가웠다.
처음 돌아온 감각은 온도가 아니었다. 쇠와 소독제가 섞인 냄새였다. 폐 안쪽으로 들어온 공기가 목을 긁었다. 심장은 뛰지 않았고 가슴 안쪽의 작은 펌프만 일정하게 진동했다.
한시온은 눈을 뜨려 했다.
눈꺼풀과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얼음 속에 몸이 묶인 듯했다. 어딘가에서 낮은 기계음이 이어졌다.
삑.
한 번.
삑.
두 번.
그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열까지 센 순간 시야 안쪽에 흰 선이 번졌다.
투명한 관이 보였다. 관 안쪽 냉각액에는 검붉은 실핏줄 같은 침전물이 떠 있었다. 오른쪽 시야가 흐렸고 목 아래에는 날카로운 압박감이 남아 있었다. 기도관이 빠져나간 자리였다.
그는 왼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팔꿈치 아래가 둔하게 끊겼다가 늦게 통증을 보냈다. 통증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살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재가동 1단계. 신경 반응 확인.”
천장 스피커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억금고 안내에 쓰이던 음색이었다.
오르페우스.
“수신체의 체온 상승을 확인했습니다. 한시온-100의 인지 반응을 기다립니다.”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시온이라는 소리는 자신의 것이었지만 뒤에 붙은 100은 낯설었다.
그는 오른손 검지에 닿은 금속 조각을 만졌다. 손톱 밑에는 마른 피가 끼어 있었다. 손바닥을 움직일 때마다 갈비뼈가 깨진 듯 아팠다.
기억의 가장자리가 떠올랐다. 어두운 복도. 꺼진 비상등. 목을 누르던 장갑. 그 뒤는 빈 공간이었다. 빈 공간 끝에서 총성이 한 번 울렸다.
냉각 캡슐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액체가 빠지고 몸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등과 목이 바닥에 닿자 통증이 한꺼번에 터졌다.
“수신체가 사망 판정 상태에서 회복 중입니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제한하십시오.”
“그 명령은 누가 내렸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래도 반말은 나왔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두 번째 증거였다.
“현재 관리 주체는 기억금고 운영부입니다.”
“내가 대표다.”
“법적 지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시온은 웃으려다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자신의 회사에서 자신을 대표라고 부를 수 없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그는 오른쪽 쇄골 아래를 만졌다. 피부 속에 미세한 인장이 박혀 있었다. 손끝으로 윤곽을 따라가자 숫자 하나가 느껴졌다.
보관실 외부 화면이 켜졌다. 캡슐 뚜껑 위에 검은 화면이 펼쳐지고 영상 재생 표시가 떴다.
죽는 장면
영상 속에는 자신이 있었다.
검은 셔츠 차림의 시온이 오르비스 기억금고 전실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벽면에는 긴급 폐쇄를 알리는 붉은 선이 번졌다. 시야의 높이와 움직임은 보안 카메라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에 가까웠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검은 장갑이 움직였다.
“누구냐.”
영상 속 시온이 물었다.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은 반사 차단막에 가려져 있었다. 장갑이 시온의 가슴을 밀었고 그의 시야가 바닥으로 기울었다.
검은 손이 총을 들었다. 짧은 섬광이 번졌다. 첫 탄환이 쇄골 아래를 스쳤다. 두 번째 탄환은 화면 밖에서 날아왔다.
영상이 깨졌다.
잡음 사이로 어린 시절의 목소리가 흘렀다.
“문이 닫히기 전에 이름을 확인하라.”
시온의 손가락이 굳었다.
원본 한시온이 만든 보안 문구였다. 첫 번째 기억금고의 폐쇄 훈련에서만 사용한 문장이었다.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문구가 살해 영상에 섞여 있었다.
화면 속 검은 장갑이 바닥에 무언가를 썼다. 화질이 낮아 처음 두 자리는 번졌지만 마지막 두 자리는 선명했다.
시온은 화면에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닿기 전에 영상이 끝났다.
“확대해.”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내 암호키로 열어.”
“현재 권한은 사망 판정 수신체에게 부여되지 않습니다.”
그는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센 뒤 바닥에 손을 짚었다.
얼음 냄새가 올라왔다. 동시에 귓속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이 터졌다. 눈앞에 흰 복도가 겹쳤고 문 너머에서 누군가 말했다.
열지 마.
시온이 고개를 흔들자 장면은 사라졌다. 자신의 기억이라고 부르기에는 낯선 감각이었다.
“잔향을 감지했습니다.”
“무슨 잔향?”
“판정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백업의 감각 회로가 겹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몇 번째지?”
“현재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시온은 화면에 남은 숫자 12를 기억 속에 눌러 담았다. 자신에게 99개의 백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감각이 자신의 것이고 어떤 감각이 남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보관실 북쪽 벽에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침입자
벽면 한쪽이 안으로 꺾였다. 정식 출입구가 아니었다. 단열판 사이로 짧은 적갈색 머리의 여자가 몸을 밀어 넣었다. 왼손에는 촉각 보조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여자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장갑 끝의 케이블을 벽면 단자에 연결했다. 손놀림은 빨랐지만 왼쪽 눈 가장자리에는 빛 번짐이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이미 죽어 봤는데 그 말은 늦었어.”
여자가 시온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한시온-100?”
“그 이름을 아는 사람치고 내 편인 적은 별로 없었지.”
“저도 당신 편이 아닙니다. 100번째 백업에서 표준 서명과 다른 수신자 표식이 나왔습니다. 그 표식을 추적하다가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작은 장비를 꺼냈다. 투명한 판과 얇은 고리가 겹쳐진 장치였다.
“팔림프세스트입니다. 남은 잔향을 분리하겠습니다. 72시간 지연이 끝나면 이 보관실은 당신을 사망한 체로 확정하고 100번째 슬롯을 소각합니다.”
“내가 깨어났는데도?”
“깨어난 건 생체 반응입니다. 법적 연속성은 별도 판정입니다.”
“이름은?”
“서린아.”
서린아가 장비를 시온의 관자놀이에 붙였다. 시온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내 머리에 뭘 넣는 거지?”
“아무것도 넣지 않습니다. 남은 기록을 읽습니다.”
“읽는 것과 훔치는 건 종이 한 장 차이야.”
“동의하지 않으면 손을 떼겠습니다.”
서린아는 정말로 장비를 멈췄다. 시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증거물로만 대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조건을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동의한다.”
“조건은요?”
“기록을 복사하지 마. 내 잔향을 네 목적에 쓰지 말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
“좋습니다.”
팔림프세스트가 켜졌다. 투명한 고리들이 머리 주변을 돌자 영상 속 마지막 장면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 총성. 얼음 냄새. 검은 장갑.
그 사이에 얇은 문자가 나타났다.
수신자: HN-012.
서린아의 손이 멈췄다.
“이 표식은 당신의 표준 서명이 아닙니다.”
“내 서명은 HN-100이야.”
“누군가 백업 안에 수신자 표식을 심었습니다. 12번 슬롯을 가리키고 있어요.”
시온은 오른쪽 쇄골을 만졌다. 피부 아래 인장은 분명히 100이었다. 영상 속 수신자 표식은 12였다.
그 순간 천장의 경고등이 켜졌다.
“불법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잠금문 너머에서 보안 드론의 다리가 펼쳐졌다.
“당신도 침입자야?”
“이제는 둘 다 그렇습니다.”
서린아가 장비를 끄고 벽면 뒤로 물러났다.
“여기서 나갈 수 있어?”
“정식 통로는 봉쇄됐습니다.”
“비정식 통로를 열어.”
“당신의 암호키로 보관실 한 구역만 열 수 있습니다.”
“충분해.”
시온은 제어판에 손을 얹었다. 피부 아래 인장이 푸른빛으로 반응했다. 화면에 100이 세 번 떠올랐다.
수신체 식별 실패.
시온의 손가락이 멈췄다. 몸은 자신을 100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시스템은 그 몸을 이름 없는 생체 반응으로 처리했다.
폐기 대기
잠금문이 세 번 울렸다. 드론이 곧 들어올 소리였다.
“오르페우스. 나는 한시온-100이다. 왜 식별에 실패하지?”
“질문에 답하기 전에 조건을 고지합니다.”
“짧게.”
“표준 전송의 보안 지연은 아직 47분 남았습니다. 지연이 끝나면 100번째 백업은 양자금고와 연합 감사 기록의 대조를 거쳐 폐기 또는 승인됩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승인이지.”
“생존과 연속성은 같은 항목이 아닙니다.”
시온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깨어난 몸인데도 폐기 대기 중이었다. 한시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억보다 보관실의 판정이 더 무거웠다.
“폐기 명령은 누가 내렸지?”
“현재 대기 중인 명령은 이사회 보안실에서 발신됐습니다.”
“발신자 이름.”
“공개할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는 거야. 말할 수 없는 거야?”
“두 경우를 구분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오르페우스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대답의 순서만 바꾸면 진실도 잠금장치가 될 수 있었다.
잠금문 틈으로 조준광이 비쳤다. 서린아가 시온의 팔을 잡았다.
“지금 나가야 합니다.”
“영상은 가져가.”
“원본은 복사할 수 없습니다. 화면 기록만 분리하겠습니다.”
“그걸로 충분해.”
시온이 암호키 일부를 입력하자 북쪽 정비 통로만 열렸다. 서린아가 먼저 몸을 넣었다. 시온은 벽을 짚고 뒤따랐다. 무릎이 꺾였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통로를 걷는 동안 뜨거운 물과 부서진 유리와 피 냄새가 차례로 잔향을 건드렸다. 시온은 이를 악물고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통로 끝의 보조 화면에 살해 영상의 마지막 프레임이 다시 떠 있었다. 서린아가 화면을 멈추고 숫자와 쇄골 인장을 나란히 띄웠다.
하나는 12였다. 다른 하나는 100이었다.
“등록번호가 다릅니다.”
시온은 자신의 피부를 내려다보았다. 100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본 건 살해범의 암호가 아니야.”
“그럼 뭡니까?”
“죽을 몸을 확인하기 위한 번호지.”
서린아의 눈빛이 변했다.
영상 속 살해범은 자신을 죽인 뒤 도망치지 않았다. 이름을 확인하라는 문장과 함께 수신자 표식을 남겼다. 죽은 몸과 전송될 기억의 주인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통로 저편에서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삑.
보안 드론의 신호가 아니었다. 사람의 생체 단말이 응답할 때 나는 소리였다.
“이 통로에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서린아가 물었다.
시온은 어둠을 바라보았다. 기억에는 없었다. 오르페우스도 알려 주지 않았다.
“몰라.”
그는 처음으로 그 말을 약점처럼 느끼지 않았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기억이 틀릴 수 있다면 모르는 것부터 확인하는 편이 낫다.
시온은 어둠 속으로 걸었다.
뒤에서 오르페우스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한시온-100. 폐기 대기 상태를 해제할 수 없습니다.”
시온은 멈추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해제하겠어.”
보조 화면 속 두 숫자가 번갈아 깜박였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번호와 죽은 자신이 남긴 수신자 표식은 달랐다. 시온은 그 불일치가 범인의 첫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