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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낙원의 배신자5화

영원한 낙원의 배신자

영원한 낙원의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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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배신자 선언

엘리시움 최상층 중앙 의사당 ‘판테온’으로 향하는 승강기는 소음 없이 상승했다.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눈부신 도시의 전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공원과 수정으로 지어진 고층 빌딩들, 그 사이를 유영하는 빛의 분수들이 아득한 아래에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런 슬픔도 분쟁도 없는 완전무결한 세계.

하지만 이현의 눈에는 더 이상 그 화려한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까마득히 이어진 지상 어딘가에서 수만 개의 검은 관이 붉은 배양액에 잠겨 있을 것이다. 그 차가운 관 속에서 머리와 척추에 케이블을 꽂힌 채 생명력을 갉아먹히는 인간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유리 성벽.

‘띵-’

승강기 문이 열리자 은백색 대리석과 흑단목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집무실이 나타났다. 방 한가운데에는 짙은 남색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백원우.

아담 시스템의 총괄 의원이자 엘리시움의 최고 권력자. 그리고 한때 방황하던 이현을 보안국 관리자로 발탁해 시스템의 방패로 키워낸 스승이었다.

“왔느냐, 이현아.”

백원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돌아섰다. 완벽하게 정돈된 은발과 인자한 눈빛은 가상 낙원의 질서를 수호하는 자애로운 지도자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현은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인간다운 온기가 단 한 점도 깃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호출을 받고 왔습니다, 의원님.”

이현은 굳은 표정으로 서류철을 든 채 멈춰 섰다.

“서류는 내려놓아라. 오늘 자리는 공식 보안 보고가 아니니까.”

백원우가 가볍게 손짓하자 집무실 중앙의 원형 테이블 위에 찻잔 두 개가 홀로그램으로 피어올랐다.

“성역의 이상 기류를 직접 확인했다고 들었다. 성녀의 강림식에 권한 외 신경망을 동기화하면서까지 말이다.”

찻잔을 집어 들던 백원우의 손끝이 테이블 위 허공을 스쳤다.

파지지직.

푸른빛의 홀로그램 창이 이현의 눈앞에 떠올랐다. 성역 제단 아래로 파고들었던 비인가 접속 로그, 그리고 성녀 아리아의 원시 신호와 겹쳐졌던 오래된 식별자 K.I.HYUN-01.

백원우는 이미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억의 가장 깊은 틈새에 숨겨 두었던 조각이 기어이 고개를 든 모양이더군.”

백원우의 목소리는 꾸짖는 스승보다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온화함은 오히려 목덜미를 서늘하게 옥죄어 왔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백원우가 조용히 물었다.

이현은 주먹을 쥐었다. 손등 안쪽의 검은 문양이 심장 박동에 맞춰 뜨겁게 요동쳤다.

“수천 개의 케이블에 묶여 뇌파를 뼛속까지 빨아먹히고 있는 한 소녀를 보았습니다.”

이현의 음성은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낙원의 상징이라 불리던 성녀의 실체가 아담을 돌리는 생체 배터리였다는 사실도요.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이 강이슬이라는 것도.”

집무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원우는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겨 거대한 통창 앞에 섰다. 창밖의 엘리시움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축제를 즐기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고통받고 있지 않다.”

백원우가 잔잔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슬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꿈속에서 온 인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 질병도 배고픔도 상실의 공포도 없는 곳에서 영원히 순결한 성녀로 존재하지.”

“몸에 꽂힌 케이블이 뇌파를 전부 태워버릴 때까지만 누리는 시한부 꿈일 뿐입니다.”

이현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잔여 뇌파 수치가 4.7퍼센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수치가 바닥나면 어떻게 됩니까? 7번 구역의 노인처럼 싸늘한 시체가 되어 폐기물 구덩이에 던져지고 살상 마수의 부품으로 팔려 나가겠지요.”

백원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낙원의 화려한 불빛에 닿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치러야 할 가장 합리적인 비용이다.”

그의 목소리에서 조금 전까지의 부드러움이 거짓말처럼 증발했다.

“이현아. 너는 멸망 이전의 지상을 기억하지 못하겠지. 가난과 전쟁, 끝없는 탐욕으로 서로를 물어뜯던 추악한 야만의 시대를. 인간은 자유의지를 쥐여주면 반드시 파멸을 선택하는 결함투성이 존재다. 아담 시스템은 그 가련한 종족에게 주어진 유일하고도 영원한 구원이야.”

백원우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맹목적인 확신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모두가 완벽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불을 지필 장작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동력원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시스템의 부속이 되어야 하지. 네 동생은 인류를 지탱하는 가장 숭고한 제물로 선택받은 것이다.”

“그걸 구원이라고 부릅니까?”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피와 살을 쥐어짜 만든 가짜 요람에 갇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웃는 게 구원입니까? 선택할 권리마저 빼앗긴 채 사육당하는 가축과 무엇이 다릅니까!”

“적어도 가축은 고통 속에서 절망하며 죽지 않는다.”

백원우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현실의 지상은 독가스와 잿빛 구름만이 떠도는 지옥이다. 그곳으로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길이라 믿느냐? 굶주림에 울부짖으며 차가운 흙바닥에서 얼어 죽게 만드는 것이 네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이냐?”


백원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붉은빛을 띠며 전개되었다.

[보안 관리자 권한 갱신 프로토콜]
[대상: 강이현]
[조치 1: 잔류 신경 오염 및 손상된 기억 데이터 완전 포맷]
[조치 2: 최고위 보안 총괄 코어 승인]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다, 이현아.”

백원우가 손을 내밀었다. 눈앞에 떠오른 창에는 관리자 승인을 갱신할 수 있는 인증 코드가 반짝이고 있었다.

“네 재능은 탁월하다. 시스템의 근원 코드를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너의 신경망은 아담에게도 귀중한 자산이지. 손을 얹어라. 불필요한 감상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깨끗이 지워내면 너는 영원히 낙원의 최고위 수호자로 군림할 수 있다.”

백원우의 입가에 다시 자애로운 미소가 걸렸다.

“네 동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장 화려한 꿈을 꾸도록 내가 직접 시스템 코드를 보정해 주마. 너 역시 그 곁에서 아무런 고통 없이 동생의 미소를 지켜볼 수 있어. 이것이 내가 너에게 베푸는 마지막 자비다.”

달콤하고도 끈적한 유혹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거짓이라 할지라도 동생의 웃는 얼굴을 보며 평온한 일상 속에서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관리자라는 절대적인 권력과 안락을 누리면서.

하지만 그 안락함의 대가가 무엇인지 이현은 이미 똑똑히 보았다.

유리 정원에서 잠에서 깨고 싶다며 눈물 흘리던 노인의 절규. 가족과 재회하는 꿈을 꾼 대가로 뇌파를 강탈당하던 청년. 그리고 차가운 기계 통 속에서 가냘픈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리던 이슬의 모습.

그 모든 희생을 딛고 누리는 행복은 영혼을 팔아넘긴 시체의 숨결에 불과했다.

이현의 입가에 차가운 실소가 번졌다.

“거절하겠습니다.”

백원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어라?”

“당신이 만든 낙원은 낙원이 아닙니다.”

이현은 코트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마주할 용기조차 빼앗긴 채 영혼을 빨아먹히는 거대한 가축 사육장일 뿐이지.”


“어리석은 놈.”

백원우의 표정에서 자애로움이 완전히 지워졌다. 그 자리에는 기계처럼 메마른 살기만이 감돌았다.

“낙원을 거부하는 버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삭제뿐이다.”

백원우가 손을 들어 올리자 집무실 전체에 붉은 경고등이 요란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경고: 관리자 반역 징후 포착]
[아담 방어 격벽 가동]
[보안 집행자 긴급 호출]

집무실의 문과 창문 위로 두꺼운 합금 셔터가 굉음을 내며 내려앉았다. 방 안의 중력이 비정상적으로 무거워지며 이현의 전신을 짓눌렀다. 아담의 보안망이 이현의 신경 접속을 강제로 차단하고 육체를 구속하려 들고 있었다.

“관리자 권한을 강제 박탈하고 기억을 영구 소거하겠다.”

백원우가 냉혹하게 선언했다.

하지만 이현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오히려 짓눌려오는 중력 속에서 허리를 곧게 폈다.

“박탈할 필요 없습니다.”

이현의 손등에 새겨진 검은 문양이 핏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원형 접속자 오버라이드 코드 전개]
[보안 관리자 계정 K.I.HYUN-01 강제 폐기]
[시스템 접근 권한 자진 철회 완료]

“……무엇을 한 것이냐?”

백원우의 눈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스스로 관리자 코드를 지워버리는 것은 시스템 내부에서 영원한 사형수가 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안전망도 지위도 권한도 전부 내던진 채 낙원의 절대적인 적으로 돌아서는 행위였다.

이현은 코트 품속에서 묵직한 흑철색의 마도 권총을 뽑아 들었다. 총열을 따라 푸른 마력 회로가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

철컥.

총구가 백원우의 미간을 정확히 겨누었다.

“나는 오늘부로 낙원의 수호자를 그만둔다.”

이현의 목소리가 붉게 물든 집무실을 서늘하게 울렸다.

“이 더러운 요람을 부수고 사람들을 지옥 같은 현실로 끌고 나갈 거다. 피를 흘리고 굶주리더라도 스스로 살아가고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진짜 세상으로.”

“감히……!”

“내 여동생은 당신들의 장작이 아니다.”

탕-!

굉음과 함께 마도 탄환이 허공을 갈랐다.

푸른 마력탄이 백원우의 가슴을 관통하는 순간 그의 신체가 픽셀 단위로 흩어지며 깨져나갔다. 집무실에 서 있던 백원우는 실체가 아닌 완벽한 고밀도 홀로그램 투영체였다.

치지지직!

탄환은 백원우의 환영을 꿰뚫고 그 뒤편의 중앙 관제 단말기 메인 서버에 작렬했다. 폭음과 함께 파편이 튀고 불꽃이 치솟았다.

콰아앙!

의사당 판테온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요동쳤다.

[비상사태 발령]
[최고 등급 반역자 강이현]
[위험도: S급 버그]
[전 구역 집행자 부대 투입. 대상을 즉시 영구 삭제하라]

도시 전체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며 아담의 처형 방송이 엘리시움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현은 부서진 단말기 너머로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돌아갈 평온한 일상도 안락한 관제실도 사라졌다. 이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수만 명의 집행관과 기계 군단의 칼날뿐이었다.

하지만 이현의 눈빛에는 일말의 후회조차 없었다.

그는 총을 단단히 고쳐 쥐고 깨어진 유리 벽 너머의 붉은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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