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돌아왔더니 아기 헌터? ― 성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입니다

4화: 아기의 뒤집기
다음에는 반드시 뒤집는다.
무진은 결심한 채 눈을 감았다. 잠들 생각은 없었다. 몸 안에 새로 자리 잡은 마력의 불씨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확인해야 했다.
심장 가까이에서 아주 작은 열이 맥박처럼 뛰었다. 힘을 끌어올리면 손끝이 따뜻해졌지만 근육을 대신 움직여 주지는 않았다. 고작 몸이 회복할 시간을 조금 줄여 주는 정도였다.
‘결국 내 몸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군.’
전생의 자신이라면 이런 몸으로도 검을 들고 마왕성의 지붕을 타고 올랐을 것이다. 지금은 고개를 돌리는 일만으로도 목덜미가 떨렸다.
침대 옆 바닥에는 연희가 이불을 깔고 잠들어 있었다. 무진이 깰까 봐 몸을 작게 웅크린 채 한 손을 침대 가장자리에 올려 두고 있었다. 손등의 상처에는 새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끝으로 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저 사람을 깨울 수는 없다.’
뒤집기 하나를 남의 손에 맡길 생각은 없었다. 세상을 구할 때도 누구의 등에 업혀 마지막 일격을 날리지는 않았다.
무진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오른팔을 움직인다. 팔꿈치를 접어 몸통 아래에 넣는다. 왼발로 매트리스를 밀어 중심을 넘긴다.
계산은 완벽했다.
실행은 참담했다.
오른팔이 바들바들 떨리더니 힘없이 접혔다. 어깨가 먼저 바닥으로 떨어졌고 둥근 배가 그 뒤를 따라갔다. 몸이 옆으로 기우는 순간 필사적으로 왼발을 뻗었다.
푹.
발끝이 허공을 찼다. 반동을 받을 매트리스가 발보다 멀리 있었다. 무진은 침대 위에서 한 바퀴 돌기는커녕 속싸개 안에서 어설프게 말린 만두처럼 옆으로 굴렀다.
턱에 침이 흘렀다.
‘이건 전투가 아니다. 적어도 전투라면 내 발이 어디에 닿는지는 알 수 있겠지.’
그는 다시 손바닥을 매트리스에 붙이고 팔을 밀었다. 가슴이 아주 조금 들렸다. 천장만 보이던 눈앞에 침대 난간과 연희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시야 한가운데에 푸른 창이 번쩍 떠올랐다.
[채널 소유자의 신체 회복 움직임을 감지했습니다.]
[성장 기록에 새로운 도전 항목이 추가됩니다.]
[도전 항목: 혼자서 몸의 방향을 바꾸기]
무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혼자서라고 굳이 적을 필요는 없지 않나.’
시스템은 그의 불만을 무시했다. 창의 가장자리에 별빛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채널의 접속자 수가 빠르게 늘었다.
[현재 시청자 수: 3,500,000명… 9,000,000명… 28,000,000명…]
[성좌 ‘장미의 여왕’이 숨을 삼켰습니다!]
[성좌 ‘장미의 여왕’: 방금 봤어? 우리 아가가 몸을 기울였어!]
[성좌 ‘은하의 제왕’: 전 우주가 조용히 하라! 지금 위대한 탄생의 순간을 관측 중이다!]
‘위대한 탄생은 이미 천 년 전에 끝났다.’
무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팔에 힘을 넣었다. 자신은 고작 침대 위에서 구르려는 중이었다. 그런데 채팅창은 이미 축제 준비로 난리였다.
[성좌 ‘밤하늘의 수호자’가 축하용 별가루 1,000상자를 준비합니다!]
[성좌 ‘장미의 여왕’이 ‘우주 최초 뒤집기 축제’ 개최권을 신청합니다!]
[성좌 ‘은하의 제왕’이 지구 상공에 황금 행렬을 소환하려 합니다!]
무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황금 행렬은 안 된다.’
지구의 하늘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연희가 놀란다. 별빛을 떨어뜨리는 후원은 침대 하나를 날려 버리고도 남을 수 있었다.
무진은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뺙!”
[채널 소유자의 의사가 감지됩니다.]
[직접 보조 후원과 외부 현상 개입을 임시 보류합니다.]
채팅창이 잠깐 조용해졌다.
[성좌 ‘은하의 제왕’: 보류라니! 내 황금 행렬은 아기의 위엄을 위한 것인데!]
[성좌 ‘장미의 여왕’: 그럼 행렬 대신 작은 리본만… 아주 작은 리본만 허락해 줘!]
[성좌 ‘침묵의 학자’: 아이가 직접 움직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관측자는 침묵하라.]
‘침묵의 학자만큼은 말이 통하는군.’
무진은 다시 손바닥을 밀었다. 이번에는 몸통이 크게 기울었다. 왼쪽 어깨가 매트리스에 닿고 두 다리가 동시에 허공으로 들렸다.
성공 직전이었다.
하지만 양발이 허우적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몸이 침대 가장자리 쪽으로 밀렸다. 작은 머리가 난간 가까이 다가갔다.
‘위험하다.’
무진은 급히 팔을 뻗었다. 손가락이 매트리스 천을 긁었지만 몸은 멈추지 않았다. 아기 몸은 그가 만든 계산을 이해하지 못한 채 둥글게 굴러갔다.
연희의 손끝이 놓인 곳까지 손가락 두 마디가 남았을 때였다.
“으….”
목구멍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큰 소리를 내면 연희를 깨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침대 밖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무진은 목을 들어 올리려 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력의 불씨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것은 근육을 움직이지 못했다. 무진의 몸은 한계에 닿자마자 굳어 버렸다.
그의 얼굴이 매트리스 쪽으로 기울었다. 코와 입이 천에 닿았다. 숨이 막혔다.
“으… 앵.”
잠든 연희의 눈꺼풀이 떨렸다.
무진은 손으로 바닥을 밀어내려 했다. 손바닥은 미끄러졌고 몸은 더 돌아갔다. 목을 들 수 없자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 순간 연희가 벌떡 일어났다.
“무진아!”
연희는 침대 곁으로 몸을 던졌다. 무진의 어깨와 머리를 동시에 받쳐 얼굴이 매트리스에서 떨어지게 했다. 이어 아기의 몸을 옆으로 돌려 숨을 고를 수 있게 만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연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놀란 얼굴과 달리 손길은 정확했다. 게이트에서 동료를 치료하던 B급 힐러의 움직임이었다.
무진은 헐떡였다.
눈물이 저절로 맺혔다. 숨이 막혀서 나온 눈물인지 실패가 분해서 나온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연희는 무진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많이 놀랐지? 내가 잘못했어. 속싸개를 해 둔 채로 잠들었네.”
무진은 고개를 저으려 했다. 목이 뻣뻣해 아주 조금 흔들렸을 뿐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 말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무진은 연희의 손목을 붙잡으려 했지만 손가락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연희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었어?”
그녀는 무진을 품에 안지 않고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먼저 속싸개의 매듭을 풀었다. 얇은 천이 풀리자 무진의 두 다리가 드러났다. 작고 통통한 발이 공중에서 몇 번 움찔했다.
“그런데 혼자 하다가 다치면 안 돼.”
연희는 침대 가장자리에 베개를 세워 두었다. 주변의 수건과 작은 물건도 치웠다.
“엄마가 손은 대지 않을게. 대신 여기서 보고 있을게.”
그녀는 손바닥을 무진의 옆구리 가까이에 가져왔다. 밀어 주지는 않지만 떨어지면 바로 받을 수 있는 거리였다.
무진은 그 손바닥을 한참 바라봤다.
전생의 전장에는 이런 손이 없었다. 무진이 쓰러지면 다음 지휘관을 찾을 뿐이었다.
연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성공하면 웃고 실패하면 받쳐 줄 뿐이었다.
‘이 손은 내 움직임을 빼앗지 않는다.’
무진은 손바닥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연희의 체온이 작은 손등을 덮었다.
“그래. 천천히 해 보자.”
무진은 다시 등을 침대에 붙였다. 몸은 지쳤고 숨은 아직 가빴다. 그래도 목표는 분명했다.
왼발을 먼저 세우고 무릎을 접는다. 팔은 몸을 들어 올리는 기둥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축으로 쓴다.
발끝이 매트리스를 눌렀다.
꾹.
작은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다리가 떨렸다. 무진은 심장 부근의 불씨를 억지로 키우지 않고 그 떨림을 따라갔다. 마력은 근육을 밀지 않았다. 대신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하며 몸이 버틸 시간을 조금 늘려 주었다.
왼쪽 무릎이 올라왔다.
“어머.”
연희가 숨을 죽였다. 손을 뻗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무진은 오른손으로 매트리스를 눌렀다. 이번에는 팔꿈치가 접히지 않았다. 가슴이 들리고 어깨가 돌아갔다.
왼발이 매트리스를 밀었다. 오른쪽 다리가 뒤따랐다. 시야가 크게 흔들리고 연희의 얼굴이 옆으로 눕듯 기울어졌다.
몸을 돌리는 일은 적의 목을 베는 일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이건 자신이 선택한 싸움이었다. 누구도 대신 끝내 줄 수 없는 싸움이었다.
마지막으로 발끝이 한 번 더 매트리스를 찼다.
데굴.
둥근 몸이 천천히 돌아갔다. 무진의 등이 매트리스에 닿았다. 이번에는 얼굴이 묻히지 않고 하늘을 향했다.
성공이었다.
잠깐 동안 방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무진은 눈을 깜빡였다. 늘 보던 깨진 도배지가 전혀 다른 풍경처럼 느껴졌다.
연희가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뒤집었어.”
그녀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우리 무진이가 혼자 뒤집었어.”
무진은 칭찬받을 일인지 판단하려 했다. 전생의 기준으로는 너무 작은 성취였다.
그런데 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연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아 줘도 될까?”
이번에는 무진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연희의 손을 향해 팔을 뻗었다.
연희는 그제야 무진을 안아 올렸다. 따뜻한 품에 들어간 무진의 몸이 천천히 이완됐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그녀는 무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무진은 그 눈물을 닦아 주려 했다. 손이 얼굴까지 올라오지 않아 허공만 몇 번 휘저었다.
연희는 그 움직임을 보고 웃었다.
“엄마 걱정도 해 주네?”
‘당연하지.’
무진은 속으로 대답했다.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둘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채널이 새벽의 정적을 깨뜨렸다.
[업적 달성: 첫 번째 방향 전환]
[성좌 ‘장미의 여왕’이 감격하여 장미빛 별비를 후원합니다!]
[성좌 ‘은하의 제왕’이 황금 행렬 대신 황금 리본 10억 개를 후원합니다!]
[성좌 ‘밤하늘의 수호자’가 작고 단단한 발차기에 3,00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총 누적 후원: 104,500,000 맘마 코인!]
무진의 눈이 창으로 향했다.
‘황금 리본 10억 개는 왜 허락 없이 보내는 거냐.’
[성좌 ‘침묵의 학자’: 직접 개입은 없었다. 축하 후원은 아이의 선택을 방해하지 않는다.]
[성좌 ‘장미의 여왕’: 우리 아가가 처음 뒤집은 날이야! 우주 전체가 기억해야 해!]
[성좌 ‘은하의 제왕’: 이 날을 성좌력 기념일로 지정하겠다!]
무진은 피곤한 눈으로 창을 노려봤다. 입가에 맺힌 작은 미소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연희는 그의 표정을 보고 품을 더 꼭 끌어안았다.
“무진아. 엄마가 더 튼튼한 침대 사 줄게.”
무진의 시선이 방 한구석으로 향했다. 낡은 책상 위에는 연희가 급히 덮어 둔 가계부가 있었다. 그 아래로 월세 고지서와 수리비 영수증의 모서리가 삐죽 나와 있었다.
무진은 채널 창의 코인 숫자를 다시 바라봤다.
분명히 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아기 몸으로 수표를 쓸 방법이 없어 미뤄 두었지만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연희가 자신을 지켜보는 동안 자신도 연희의 내일을 지켜야 한다.
‘뒤집기는 끝났다.’
무진은 연희의 셔츠를 꼭 쥐었다.
‘이제 손에 잡히는 돈으로 바꾸는 법을 찾는다.’
새벽빛이 낡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품 안의 무진은 지친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연희가 가계부를 펼치기 전에 채널의 코인 숍을 다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