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

2화: 아무도 오지 않는 사육장
왕립 아스테르 아카데미 본관 중앙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웅성거렸다.
대리석 기둥 사이로 길게 늘어선 마법 게시판 앞에는 백 명이 넘는 신입생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푸른 제복을 차려입은 귀족 출신 지원자들은 저마다 기대 섞인 얼굴로 자신의 이름과 배정처를 확인했다.
“역시 중앙 마도생태관이야. 백호 그리핀 비행 사육동에 배정받았어!”
“기사단 연계 제1사육동은 점수가 상위 삼 퍼센트 안이어야 한다던데, 너 진짜 대단하다.”
환호와 탄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게시판 아래쪽 구석을 손가락질하며 낄낄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여기 봐. 마수학과 실습생 중에 제7사육장으로 배정된 녀석이 있어.”
“제7사육장? 거기는 몇 년 전에 사고 터지고 예산도 끊겨서 폐쇄 직전인 유배지잖아.”
“어제 실기 시험에서 칼도 안 뽑고 흙먼지 뒤집어쓰던 그 시골 녀석인가 보네. 교수님들도 골칫덩이를 떠넘긴 모양이지.”
비웃음 섞인 쑥덕거림이 번져 나갔지만 한결 로엔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한결은 인파 뒤쪽에서 까치발을 들고 게시판 맨 밑줄을 눈으로 훑었다.
[마수학과 실습생 한결 로엔 ― 제7사육장 임시 관리 실습 (지도교수: 셀레나 모르트)]
선명하게 박힌 글자를 보며 한결은 주머니 속의 쇠붙이를 만지작거렸다. 어제 셀레나가 건네주었던 무겁고 차가운 열쇠였다.
‘제7사육장.’
다른 학생들에게는 성적이 깎여 쫓겨나는 수치스러운 장소일지 몰라도 한결에게는 달랐다. 화려한 온실에서 장식품처럼 길러지는 개체보다 관리가 끊겨 방치된 마수들이야말로 누군가의 손길과 기록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한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약초 향을 풍기는 리아 벨로트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약초마도학 수석 배정 통지서가 들려 있었다.
“정말로 제7사육장으로 가는 거야? 거기는 정식 사료 보급도 거의 안 나오는 곳이야. 관리인이 없어서 남은 마수들도 성질이 엉망이라던데.”
“배치를 받았으니까 가야죠.”
“너무 태평하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약초 실험실로 찾아와. 오염된 사료 독성을 빼는 기초 약재 정도는 나눠 줄 수 있으니까.”
리아는 쾌활하게 말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 뒤편에서 은발을 단정하게 정돈한 카이 렌하르트가 걸어왔다. 기사단 연계 방어 실습 표식을 가슴에 단 카이는 한결의 손에 들린 낡은 배정표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제7사육장은 외곽 결계도 불안정하다. 위험 개체가 탈주하면 아카데미 외곽 경비대가 즉시 사살 처분할 권한을 갖고 있어. 무모하게 굴지 마라.”
“안전하게 가두는 게 아니라 다치지 않게 돌보러 가는 겁니다.”
한결이 짧게 답하자 카이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 고집이 언제까지 통할지 보지.”
카이는 짧게 덧붙이고 본관 훈련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아도 손을 가볍게 흔들며 실험동으로 향했다.
한결은 배낭 끈을 고쳐 매고 인파와 반대 방향인 북쪽 숲길로 발을 디뎠다.
아카데미 본관의 화려한 석조 건물들을 지나치자 길은 점점 좁아졌다.
정돈된 정원수 대신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 덤불과 잡초가 돌길을 덮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석판은 곳곳이 깨져 있었고 이끼가 두껍게 끼어 발을 디딜 때마다 축축한 물기가 배어 나왔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숲 한구석에 우뚝 솟은 거대한 회색 석조 돔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7사육장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마력 차폐용 은선이 새겨져 있었지만 대부분 변색되어 검게 변해 있었다. 높다란 철문은 붉은 녹이 슬어 흉물스러웠고 문 한쪽에는 찢겨 나간 덩굴 사이로 낡은 금속 명판이 매달려 있었다.
[위험생물 격리 보전 구역 ― 인가되지 않은 인원의 접근을 금함]
한결은 철문 앞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골랐다.
숲의 서늘한 바람을 타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썩은 풀 냄새가 섞여 풍겨왔다. 오랫동안 씻어내지 않은 짐승의 배설물 냄새도 섞여 있었다.
외곽에 설치된 경계 결계석은 이미 마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차가운 돌덩이에 불과했다. 경고문은 요란했지만 사실상 아카데미 전체가 이 건물을 잊어버린 채 방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결은 주머니에서 셀레나에게 받은 열쇠를 꺼냈다.
열쇠 구멍에 꽂아 넣자 끼익 하는 거친 마찰음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녹이 슬어 걸쇠가 뻑뻑하게 굳어 있었다. 한결은 억지로 힘을 주어 비틀지 않고 열쇠를 미세하게 위아래로 흔들며 걸쇠의 틈을 맞췄다.
철컥.
무거운 소리와 함께 내부 잠금장치가 풀렸다.
한결이 어깨로 철문을 밀자 녹가루가 떨어지며 묵직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닫혀 있던 내부의 눅눅하고 서늘한 공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뺨을 스쳤다.
사육장 안쪽 복도는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천장에 달린 채광창은 먼지와 이끼로 뒤덮여 겨우 희미한 빛줄기 몇 개만을 바닥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바닥 중앙의 배수로는 낙엽과 진흙 찌꺼기로 꽉 막혀 썩은 물이 찰랑거렸다.
한결은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복도 양옆으로는 두꺼운 마도 강화 철창으로 분리된 사육실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의 우리는 문이 열린 채 비어 있었고 부서진 사료통과 썩은 짚더미만이 나뒹굴었다.
스스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짚더미를 파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결은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시각을 차단하자 귀 뒤쪽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공명 청진의 감각이 열렸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마력의 흔적과 숨소리가 감각에 닿았다.
열 걸음 앞, 세 번째 우리 안쪽 구석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빠르고 얕은 맥동이 규칙을 잃고 뛰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쌕쌕거리는 거친 마찰음이 섞여 나왔다.
공포와 불안.
그리고 탁한 공기 때문에 호흡기가 짓눌린 고통의 신호였다.
한결은 눈을 뜨고 소리가 난 우리 앞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철창 구석에 웅크린 작은 짐승들의 형체가 보였다.
길쭉한 귀 위에 뾰족한 은색 뿔이 돋아난 뿔토끼 네 마리였다.
본래 뿔토끼는 성질이 온순하고 무리 생활을 즐기는 초식 마수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안의 뿔토끼들은 서로 등을 돌린 채 털을 곤두세우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뿔 끝에는 미약한 마력이 위태롭게 번쩍였다.
“……환기가 막혔구나.”
한결은 고개를 들어 우리 상단을 바라보았다.
벽면에 설치된 공기 순환용 환기창 슬릿이 굳어버린 진흙과 거미줄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 사육실 안의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면서 썩은 짚과 곰팡이 포자가 바닥에 가라앉아 마수들의 코와 기도를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물그릇 안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물비린내가 진동했다. 마실 물도 오염되고 숨도 쉴 수 없으니 예민해진 개체들이 서로를 적으로 인식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했다.
한결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쇠갈고리와 솔을 꺼냈다.
철창 안으로 손을 들이밀지 않고 벽면 외곽에 달린 환기 레버를 찾았다. 녹이 슬어 굳어 있던 레버를 옷자락으로 감싸 쥐고 조심스럽게 힘을 주었다.
끼기긱.
녹슨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며 환기 슬릿이 조금씩 벌어졌다. 틈새로 막혀 있던 먼지가 쏟아져 나왔지만 곧이어 사육장 바깥의 차가운 생바람이 훅 불어 들어왔다.
신선한 공기가 우리 안쪽으로 흘러들자 구석에서 으르렁거리던 뿔토끼들의 귀가 쫑긋 솟았다.
한결은 쇠갈고리를 뻗어 바닥 배수구 덮개에 걸린 오물을 긁어냈다. 물길이 트이자 고여 있던 썩은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지하 배관으로 빠져나갔다.
마핵의 거친 맥동이 아주 미세하게 잦아들었다.
“신입생이 오자마자 청소부 노릇을 하고 있군.”
등 뒤에서 서늘하고 정돈된 목소리가 울렸다.
한결은 쇠갈고리를 든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 백금발을 낮게 묶은 셀레나 모르트 교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단안경 너머로 사육실 안쪽과 한결의 흙투성이가 된 소매를 무표정하게 훑었다.
“교수님.”
“내가 준 열쇠로 사육장을 둘러본 소감이 어떤가. 다른 실습생들처럼 본관 교무처로 달려가 배치를 바꿔 달라고 항의서를 쓰지 않았더군.”
셀레나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상대를 떠보려는 시험관의 어조였다.
한결은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차분하게 답했다.
“환기구가 막혀 있었고 배수로가 썩어 있었습니다. 사육실 세 번째의 뿔토끼들은 사나운 게 아니라 숨을 쉬지 못해서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청소를 했나?”
“우선 바람길부터 열었습니다. 공기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처치를 해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셀레나는 단안경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환기 슬릿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안정된 뿔토끼들의 호흡에 머물렀다.
“관찰은 정확하군. 하지만 이곳의 문제는 환기구 몇 개를 뚫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셀레나는 품에서 두꺼운 가죽 장부를 꺼내 한결의 가슴팍으로 툭 밀어 넣었다.
“제7사육장은 공식 지원 예산이 영으로 책정된 지 반년이 넘었다. 아카데미 이사회에서는 이 건물을 위험하고 무가치한 폐품 창고로 규정했지. 다음 달 말에 사육장 폐쇄 심의가 열린다.”
“폐쇄되면 여기 있는 개체들은 어떻게 됩니까?”
“공식 학술 가치가 없는 개체는 전량 안락사 처분된다. 기사단의 위험생물 처분 훈련용 표적으로 쓰이거나.”
단호하고 차가운 현실이었다. 셀레나는 한결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네가 여기서 할 일은 단순히 먹이를 주고 똥을 치우는 게 아니다. 폐쇄 심의 전까지 이 사육장에 남은 개체들이 통제 가능하고 보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네 실습 점수는 낙제이고 사육장의 문은 영원히 닫힌다.”
한결은 가죽 장부를 품에 안았다. 겉표지에는 낡은 글씨로 ‘제7사육장 개체 관리 일지’라고 적혀 있었다.
“하겠습니다.”
한결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셀레나는 가볍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
“혼자서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카데미는 자선 단체가 아니다. 아무도 너를 돕지 않을 거다.”
“혼자서 다 바꿀 수는 없겠지만 지금 당장 물을 갈아주고 숨을 쉬게 해줄 수는 있습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증명도 못 합니다.”
셀레나는 잠시 한결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복도 벽면에 달린 낡은 황동 밸브를 가리켰다.
“수동 급수 밸브다. 지하 청정수관과 연결되어 있으니 녹물을 세 양동이쯤 빼내고 나면 쓸 만한 물이 나올 거다. 그리고……”
셀레나는 말을 멈추고 복도 안쪽의 깊은 어둠을 응시했다.
“사육실 십 번 이후의 안쪽 구역에는 들어가지 마라. 봉인 결계가 걸려 있다. 아직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셀레나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닫히는 철문 소리와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사육장 안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전의 죽어 있던 적막과는 달랐다. 열린 환기구를 통해 숲의 바람 소리가 낮게 맴돌았고 깨끗한 물길이 열린 배수로에서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한결은 낡은 관리 일지를 배낭에 넣고 황동 밸브를 잡았다.
차가운 쇠손잡이를 돌리자 둔탁한 진동과 함께 맑은 지하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결은 물통을 채우며 뿔토끼들의 우리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의 토끼 한 마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철창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깨끗한 물을 줄 테니까.”
한결의 목소리가 텅 빈 사육장 복도를 부드럽게 채웠다. 버려진 사육장에서의 첫 번째 날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