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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16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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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숨은 소리의 궤적

작곡동 별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벽면을 따라 길게 이어진 구리 배관에서는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배관 이음매마다 맺힌 이슬이 뚝뚝 떨어지며 바닥의 돌을 적셨다.

"이 아래가 제3공명실이야."

루카스가 등불을 높이 들며 앞장섰다.

"원래는 오래된 관악기나 대형 공명판을 보관하던 창고였는데 지금은 거의 버려진 곳이지. 공명석 찌꺼기 냄새가 아직도 나네."

철제 문을 밀자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퀴퀴한 먼지 냄새가 훅 끼쳐왔다.

방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에는 수십 가닥의 청동 배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벽면을 따라 세워진 진열대에는 금이 간 공명판과 낡은 튜닝 포크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하진은 방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벽면의 배관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조금 전 연구실에서 들렸던 그 기묘한 피리음의 파형이었다.

"배관 전체가 하나의 공명체 역할을 하고 있어."

하진이 중얼거리며 손끝을 움직였다.

"루카스. 반사판이 반출된 자리가 어디지?"

루카스가 안쪽 진열대로 다가가 텅 빈 선반을 가리켰다.

"여기야. 선반 바닥에 청동판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먼지가 닦여 나간 자국을 보면 정확히 사흘 전에 꺼내 간 게 맞아."

엘레나가 다가와 선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학생회 장비 반출 대장에서 누락된 날짜와 일치하는군.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우려 한 거야."

하진은 선반 바로 위에 연결된 굵은 배관을 올려다보았다.

배관 표면에 검은 잉크가 얇게 발라져 있었다. 광장에서 보았던 불협 문양의 찌꺼기 성분과 동일한 재질이었다.

"이 배관 어디로 이어져 있지?"

"별관 지하를 지나서 구관 중앙 환기탑으로 연결돼."

루카스가 턱을 괴며 기억을 더듬었다.

"구관은 십 년 전에 폐쇄된 뒤로 학생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야. 공명 배관망만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 배관을 도청관이자 음향 투사구로 쓴 겁니다."

하진의 말에 단원들이 일제히 배관을 올려다보았다.

이반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꼭 쥐었다.

"그럼 우리가 연습실에서 낸 소리가 저 배관을 타고 구관까지 실시간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뜻인가요?"

"네. 그리고 저쪽에서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정확한 타이밍에 지연형 불협음을 배관 안으로 쏘아 보낸 겁니다."

클로에가 플루트를 가슴에 품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직접 가서 잡으면 안 되나요? 구관 환기탑이라면 지금 뛰어가도..."

"구관은 미로처럼 복잡해서 발소리만 듣고도 달아날 수 있어요."

하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도망치게 두면 배관을 끊거나 증거를 모두 태워 버릴 겁니다. 소리로 숨어든 자는 소리로 끌어내야 합니다."

엘레나가 지휘봉을 가볍게 털어내며 하진을 바라보았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이 배관망은 0.38퍼센트의 역위상 오차를 증폭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오차를 완벽하게 역이용하는 탐침 화음을 쏘아 넣으면 됩니다."

하진은 바닥에 분필로 배관의 분기점을 빠르게 그렸다.

"바흐식 푸가 대위법을 응용합니다. 여덟 성부가 동시에 소리를 내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배관 안으로 파동을 밀어 넣는 겁니다. 첫 번째 성부가 길을 열고 두 번째 성부가 반사파를 묶고 마지막 성부가 배관 끝의 관측 지점을 가격합니다."

오스카가 금이 간 호른을 내려다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좁은 지하 공명실에서 그런 합주를 하면 소리가 벽에 부딪쳐서 우리 쪽 에테르가 먼저 터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자리가 중요합니다."

하진이 나디아와 페르를 돌아보았다.

"나디아의 첼로 저음이 공명실 바닥에 에테르 완충막을 깔아 줄 겁니다. 페르는 소리가 배관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마다 쉼표의 공백을 북으로 받쳐 주세요. 반사파가 우리 쪽으로 튕겨 나오지 않도록요."

나디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첼로의 앤드핀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바닥을 지키겠습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게요."

페르 역시 북채를 양손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빈틈은 제가 다 막겠습니다."

단원들이 배관 입구를 중심으로 반원형 진형을 갖추었다.

좁은 공명실 안으로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루카스는 배관 연결 밸브에 공명 측정기를 걸어 두고 뒤로 물러섰다.

엘레나가 조용히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

"전원 호흡을 정렬하라. 지연 파동이 밀려와도 멈추지 마라. 우리 뒤에는 첼로의 저음과 타악의 쉼표가 있다."

지휘봉의 끝이 허공을 갈랐다.

스윽.

첫 번째로 하진의 휴대용 오르간 모듈이 울렸다.

낮고 규칙적인 C음이 배관 입구를 향해 부드러운 파동을 밀어 넣었다.

대기 에테르가 오르간 소리를 감싸며 배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어 이반의 바이올린이 날카로운 상승 선율을 얹었다. 도미솔의 분산화음이 배관 내벽의 굴곡을 따라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위잉.

배관 안쪽 깊은 곳에서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하진이 쏘아 보낸 선율이 배관을 타고 구관 환기탑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삐이익!

곧바로 반대편에서 거센 저항이 닥쳐왔다.

조금 전보다 훨씬 굵고 거친 불협 피리음이 배관을 타고 역류했다.

배관 이음매가 덜컹거리며 검은 에테르 스파크가 튀었다. 지연 파동이 합주의 박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내려왔다.

"밀려옵니다!"

에릭이 외쳤다.

"나디아, 지금!"

하진의 지시와 동시에 나디아의 활이 첼로 현을 강하게 그었다.

묵직한 저음이 바닥을 타고 낮게 깔리며 밀려 내려오는 검은 파동의 충격을 흡수했다. 공명실 바닥에 은빛 파문이 번지며 진동을 부드럽게 분산시켰다.

동시에 클로에의 플루트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클로에는 상대의 피리음이 비틀어 놓은 0.38퍼센트의 오차 틈새를 향해 가느다란 고음을 찔러 넣었다.

배관 속에서 엉켜 있던 불협 파동이 둘로 쪼개졌다.

"페르!"

쿵!

페르의 북채가 쉼표의 정적을 정확히 내리쳤다.

소리가 비어 있던 순간에 터진 타격음이 쪼개진 불협 파동의 꼬리를 낚아채 배관 입구에 묶어 버렸다.

오스카의 호른과 에릭의 트롬본이 그 위로 장엄한 화음을 쏟아부었다.

금관의 에너지가 배관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역류하던 불협 파동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다성부 역탐침 공명장 형성]
[배관 내부 공명 저항치: 12.4% -> 88.7%]
[역위상 지연 파동 궤적 추적 완료]
[목표 지점: 구관 제2환기탑 집음실]

하진의 시야에 시스템 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잡았습니다. 엘레나!"

엘레나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녀의 지휘봉이 가장 높은 궤적을 그리며 단숨에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전원 포르티시모! 해결음을 쏘아라!"

콰아아앙!

여덟 성부의 소리가 완벽한 도미넌트 세븐에서 으뜸화음으로 일제히 전환되며 배관 속으로 폭발하듯 쏟아져 들어갔다.

묶여 있던 불협 파동이 하진의 완벽한 보정 선율에 밀려 역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자신이 쏘아 보낸 파동에 몇 배의 에테르 충격을 더해 되돌려받은 셈이었다.

쿠구구궁!

배관을 타고 저 멀리 구관 방향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크악!"

배관을 통해 짧고 날카로운 인간의 비명이 전해졌다.

이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쇠붙이가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울렸다.

"맞았어!"

루카스가 소리쳤다.

"배관 끝 환기창이 터져 나갔어!"

하진은 즉시 악보를 챙겼다.

"루카스, 엘레나. 따라오세요. 다른 분들은 공명실 입구를 지켜 주세요!"

하진과 엘레나 그리고 루카스는 등불을 쥐고 지하 배관실 안쪽의 비상 통로로 달렸다.

녹슨 철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자 먼지 쌓인 구관 제2환기탑 집음실이 나타났다.

환기탑 안쪽은 참혹했다.

하진 일행이 쏘아 보낸 역공명 파동을 정면으로 맞은 금속 집음관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사방에 검은 그을음이 자욱했다.

바닥에는 누군가 급하게 도망치며 흘린 핏자국이 점점이 이어져 있었다.

"도망쳤군."

엘레나가 촛대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벽면에 숨겨져 있던 비상 탈출구가 열려 있었고 찬 바람이 들이치고 있었다.

하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을음 사이에 떨어진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 두 개 굵기의 검은 피리였다.

일반적인 목재나 금속이 아니라 차가운 흑요석을 깎아 만든 피리였다.

피리의 취구 옆에는 정교하면서도 뒤틀린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특수 공명 매개체 감정]
[명칭: 흑요석 조율 피리]
[특징: 현지 에테르 파형 왜곡 및 0.38% 역위상 지연음 방출]
[식별 각인: 불협화음(Discord) 제3계통 하위 표식]

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순한 학내 파벌의 방해가 아니었다.

세계관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불협화음의 그림자가 아카데미 심장부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다.

"하진, 이것도 봐."

루카스가 집음관 아래 틈새에서 짓밟힌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구관 통행 허가증이었다.

허가증 하단에는 붉은색 밀랍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에테르 클래식 아카데미 학생회 서무계.'

엘레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학생회 서무계라. 마르쿠스가 관리하는 바로 그 부서로군."

"하지만 마르쿠스 혼자의 짓은 아닐 겁니다."

하진은 흑요석 피리를 품에 넣었다.

"이 피리는 학생 수준에서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불협화음 세력이 아카데미 내부의 손을 빌려 우리 악보를 시험하고 있었던 겁니다."

루카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본선 무대에서도 이런 짓을 벌이겠다는 거야?"

"네. 하지만 이번엔 우리가 그들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하진이 일어서며 먼지를 털어냈다.

구관 환기탑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다.

아래층 공명실에서 이반과 클로에, 나디아, 페르, 오스카, 에릭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소리가 거대한 어둠의 파동을 밀어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단원들의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을 터였다.

"제라드 교수님께 이 증거를 넘깁시다."

하진의 목소리에 단단한 힘이 실렸다.

"그리고 2악장과 3악장 연습을 바로 시작합니다. 본선 무대에서는 그 어떤 불협도 끼어들지 못하게 완벽한 대공명으로 눌러 버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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