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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13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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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거부된 신청서

작곡동 별관 3층 자율 연구실의 탁자 위로 두꺼운 양피지 서류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서류 중앙에는 '거부'라는 문구가 찍힌 붉은 선명한 인장이 날인되어 있었다.

"이건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루카스가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그가 아침 일찍 행정동에 위치한 귀족 학생회 사무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제국 아카데미 음악제 본선 참가 신청서 양식이었다.

하진은 손을 뻗어 서류 하단에 적힌 사유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마력 적성 검증 미필 및 출처 불분명 유령 악보 사용. 결격 사유로 인한 참가 신청 거부.'

제라드 교수가 자율 연구실 출입 권한을 정식 부여하고 퇴학 처분을 철회했음에도 귀족 학생회는 행정적 절차라는 구실로 음악제 신청서 수령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곧이어 연구실 문이 열리며 지휘봉을 옆구리에 차고 들어온 엘레나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마르쿠스를 만나고 오는 길이다."

엘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자는 자신들의 행정적 권한이 학사위원회 정교수의 권한과 별개라 주장하더군. 체내 마력 수치가 증명되지 않은 낙제생의 악보는 아카데미의 공식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거기다 연습실까지 전부 막아버렸대요!"

루카스가 주먹을 꽉 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카데미 중앙 강당은 물론이고 본관 실습실과 별관 연주실까지 전부 학생회 전용 앙상블 예약으로 잠궈버렸어요. 신청서도 안 받아주고 연습할 방조차 안 주겠다는 건 그냥 무대 위에도 올라오지 말라는 소리잖아요!"

이반과 클로에, 에릭은 불안한 눈빛으로 하진의 눈치를 살폈다. 전날 연구실 안에서 일궈낸 첫 앙상블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들이닥친 무자비한 행정적 압박이었다.

하지만 서류를 집어 든 하진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자신들이 쥔 인장과 열쇠로 소리를 갇아둘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군요."

하진은 손가락으로 붉은 인장 테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진. 방법이 있겠냐?"

엘레나가 하진을 직시하며 물었다. 본선 무대 예선 평가까지 남은 시간은 단 며칠뿐이었다. 장소를 확보하지 못하고 정식 승인을 얻지 못하면 연주 자체가 불가능했다.

"문이 잠겼다면 문을 닫지 않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하진이 덤덤하게 양피지 악보를 챙겨 들었다.

"연구실을 빼앗고 강당을 잠갔다고 해서 소리가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오후 1시 아카데미 중앙 분수 광장.

수업을 마치고 오가는 학생들로 아카데미에서 가장 붐비는 시간이었다. 넓은 석조 바닥 한가운데로 기이한 무리가 걸어 들어왔다.

작곡과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과 지휘과 수석 엘레나 그리고 낡은 악기 가방을 든 이반, 클로에, 에릭이었다. 그들 뒤로는 루카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청동 파이프와 오르간 모듈 그리고 직사각형 청동 공명 반사판들을 수레에 실어 끌고 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어제 자율 연구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는 그 낙제생 무리 아니야?"

"중앙 광장 한복판에 악기를 풀고 있잖아!"

지나가던 수백 명의 학생이 발걸음을 멈추고 광장 주변으로 구경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반은 낡은 바이올린을 꼭 쥐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어깨를 움츠렸다. 클로에 역시 은빛 플루트를 입술 근처에 댄 채 침을 삼켰다.

"하진 선배…… 정말 여기서 연주하는 건가요? 광장은 사방이 뚫려 있어서 에테르 소리가 흩어지기 쉬운데요."

이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마법 음악에서 야외 연주는 금기에 가까웠다. 벽이나 공명판이 없는 탁 트인 공간에서는 연주자의 체내 마력이 허공으로 무의미하게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귀족 연주자들이 방음과 공명이 완벽하게 설계된 실내 강당만을 고집하는 이유였다.

하진은 오르간 모듈 위에 손을 올리며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돌로 만든 벽은 소리를 좁은 방 안에 가두지만 대기는 세계 전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세 연주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체내 마력을 밀어 넣으려 하면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하지만 대기 중의 에테르를 우리 선율의 화성 구조 안으로 끌어당기면 광장 전체가 우리의 거대한 강당이 됩니다."

하진은 옆에 서 있던 루카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루카스는 자신이 밤새 연금술 기법으로 조율한 청동 공명 반사판 세 개를 삼각형 모양으로 바닥에 고정했다.

엘레나가 연구실 중앙에 서서 검은 나무 지휘봉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그 어떤 실내 무대보다도 뜨거운 열정이 감돌고 있었다.

"단원들은 나를 보라."

엘레나의 맑고 단단한 목소리가 광장의 소란을 뚫고 퍼져 나갔다.

"우리의 무대는 강당의 조각된 무대가 아니다. 이 하늘 아래 전체가 우리의 오케스트라다."

스윽-.

지휘봉이 공중에서 강렬한 은빛 궤적을 그리며 내리꽂혔다.


쿵-!

하진의 손가락이 오르간 건반의 C장조 으뜸화음을 누르는 순간 분수대 주변의 공기가 찌릿하게 진동했다.

이어 이반의 바이올린 활이 현을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얇고 약하다고 비난받던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하진이 설계한 야외 음향 보정식과 얽혀 들며 공중으로 맑게 피어올랐다.

이어 클로에의 플루트가 상행 아르페지오를 얹었고 에릭의 트롬본이 묵직한 으뜸음 팡파르를 광장 전체에 쏘아 올렸다.

피-리리릿-! 콰아아앙-!

네 개의 서로 다른 악기가 만들어낸 다성부 화음이 공중에서 얽히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산란될 것이라 생각했던 소리가 흩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광장 전체를 감싸고 있던 대기 중의 에테르가 하진의 대위법 구조에 끌려들어 오며 눈부신 은빛 광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

분수대 물줄기가 은빛 파동과 동조하여 춤을 추듯 솟구쳐 올랐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4성부의 소리는 더 웅장하게 확장되었고 마침내 광장 한복판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거대한 반구형 에테르 돔 결계가 완성되었다.

"말도 안 돼……!"

"야외에서 에테르 결계가 형성되고 있어!"

"저게 마력 없는 낙제생이 쓴 악보라고?!"

구경하던 수백 명의 학생이 뿜어져 나오는 은빛 광휘와 감동적인 웅장함에 숨을 죽였다. 단순한 공격용 마법이 아니었다. 소리의 미학이 대기 전체를 가득 채우며 듣는 이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완벽한 대공명이었다.

바로 그때 광장 외곽에서 노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장 연주를 중단하라!"

학생회 붉은 뱃지를 단 마르쿠스 로엔이 경비대원 네 명을 끌고 광장 안으로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마르쿠스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로 허얗게 질려 있었다. 자신이 완벽하게 고립시켰다고 믿었던 낙제생 무리가 중앙 광장 한복판에서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상 미유의 야외 대공명 결계를 터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가받지 않은 광장 무단 점유 및 소음 유발 규정 위반이다!"

마르쿠스가 손짓하자 경비대원들이 무기를 잡고 연주대 쪽으로 접근하려 했다.

"경비대! 당장 저 몰상식한 장치들을 부수고 저자들을 체포하라!"

위기의 순간 광장 북쪽 계단 위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 멈춰라!"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일제히 길을 비켜섰다. 짙은 보라색 학사위원회 상임위원 정교수 로브를 휘날리며 걸어 내려오는 인물은 바로 제라드 벨라시온 교수였다.

제라드 교수는 광장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은빛 에테르 돔과 하진의 악보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엄숙한 눈빛에 깊은 감탄과 함께 마르쿠스를 향한 서늘한 분노가 서렸다.

"마르쿠스 로엔."

제라드 교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보았다.

"자네가 말한 '마력 적성 미필의 유령 악보'가 바로 이것인가?"

"교수님! 이자들은 학생회의 정식 승인도 없이 야외에서 무단으로 공명 장치를 조작하여 불법 시연을……!"

"입 다물라!"

제라드 교수의 준엄한 호통이 광장을 가 갈랐다.

"체내 마력을 한 방울도 쓰지 않고 대기 에테르를 완벽하게 유도하여 야외 공간 전체에 이토록 정교한 대공명 결계를 세웠다. 아카데미 역사상 그 어떤 귀족 수석 앙상블도 해내지 못한 위업이다. 그런데 학사간부라는 자가 자신의 졸렬한 체면 때문에 이 위대한 음악을 억누르려 했단 말이냐!"

마르쿠스는 얼굴이 빨개진 채 입을 벙끗거렸지만 단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의 치사한 행정 공작이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라드 교수는 품에서 학사위원회 상임위원 전용 붉은 인장을 꺼냈다. 그리고 하진이 들고 있던 음악제 참가 신청서 서류를 받아 들어 탁자에 놓았다.

쾅-!

마르쿠스가 찍어두었던 거부 인장 바로 위에 제라드 교수의 정식 상임위원 승인 인장이 묵직하게 찍혔다.

"작곡과 정교수이자 학사위원회 상임위원 제라드 벨라시온의 직권으로 <제1번 심포니>의 제국 음악제 본선 정식 출전을 승인한다!"

제라드 교수의 선언이 떨어지는 순간 광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학생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하진! 엘레나!"

마르쿠스는 학생들의 야유와 비웃음 속에서 입술을 짓씹으며 경비대를 끌고 쫓겨나듯 퇴장했다.

하진의 눈앞에 투명하고 환한 골드빛 시스템 알림창이 솟아올랐다.

[제국 음악제 본선 정식 참가 승인 완료]
[퀘스트 완료: 행정적 봉인 돌파 및 야외 광장 대공명 입증]
[대기 에테르 자율 유도율: 17.5% -> 20.0% 달성]
[보상: 고위 다성부 오케스트라 2단계 해석 권한 해금]

하진은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오르간 건반에 얹었던 손을 떼었다.

은빛 에테르 돔은 온화한 여운을 남기며 하늘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단원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남의 뒤에서 숨죽여 악보를 쓰던 작곡가는 마침내 닫힌 강당의 문을 부수고 탁 트인 세상 한복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카데미 전체에 아로새겼다.

본선 무대를 향한 진짜 행진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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