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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불법 이탈 방송
공구실의 불은 손바닥만 했다.
미라가 빈 통조림 뚜껑을 램프 앞에 세우자 빛이 벽 쪽으로만 꺾였다. 비닐천 너머에서 들리던 기침도 잠잠해졌다. 사람들은 잠든 것이 아니라 소리를 아끼는 중이었다.
도현은 접이식 의자에 앉지 못하고 그 옆에 쪼그려 있었다. 수문 바깥 기록함 속 캠봇은 여전히 바닥을 찍고 있었다. 화면 한쪽의 숫자는 0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수가 그의 앞에 낡은 수신기를 내려놓았다. 철제 상자에 달린 다이얼은 닳아서 눈금도 절반쯤 지워져 있었다.
"그걸 끌 생각은 없나."
"지금은 안쪽을 못 찍어요."
"그게 내 질문에 답이 돼?"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한수의 손등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수문을 열 때 보인 손과 같은 손이었다.
"송출은 위험해요." 도현이 말했다. "그래서 오래 안 할 겁니다."
"그 위험을 네가 정해?"
말끝이 공구실의 차가운 금속에 부딪혔다. 윤슬은 벽에 등을 붙인 채 수문 쪽을 보고 있었다. 소총은 무릎 위에 놓였지만 손은 가까웠다.
미라가 물받이 통을 옮기며 말했다.
"여긴 발신기 하나 때문에 옮긴 적이 있어."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는 열아홉 명이었지." 한수가 말했다. "사흘 뒤에는 열셋이었고. 기계가 다 죽인 건 아니야. 도망칠 때 헤어진 사람도 있었어."
그 숫자는 말해지자마자 방 안의 온도를 낮췄다. 도현은 백만이라는 숫자를 얼마나 가볍게 불러 왔는지 떠올렸다. 그 안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었다. 한수의 열아홉 명에는 잃어버린 자리가 있었다.
비닐천 뒤에서 작은 얼굴 하나가 빼꼼 나왔다. 수문 바깥의 렌즈를 보던 아이였다.
"밖에 있는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미라가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새벽아."
아이는 물러나지 않았다. 도현만 바라봤다.
"저 눈은 밖으로 나간다며."
도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밖으로 나간다는 말은 멋있었다. 그러나 그 눈이 돌아와 누군가를 데려올 수도 있었다.
"나가는 건 맞아." 그가 말했다.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데려가면 안 돼."
한수가 수신기 전원을 툭 눌렀다. 작은 표시등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그걸 알면 방송 얘긴 접어."
미라는 공구대 아래에서 납작한 배터리와 구리선 뭉치를 꺼냈다.
"아예 접을 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듣는 쪽만 열어 두는 건 매일 해. 보내는 쪽은 짧게 하면 방향이 안 잡힐 수도 있어."
한수가 미라를 노려봤다.
"또 옮길 생각이야?"
"아니. 그래서 조건을 거는 거지."
미라는 도현 앞에 배터리를 놓았다.
"스물두 초. 그 이상은 내가 끊어. 송출이 끝나면 발신 회로만 죽이고 수신은 계속 둔다. 수문 위는 윤슬이 본다. 이상한 신호가 잡히면 네 방송이고 뭐고 끝이야."
도현은 배터리를 만지지 않았다.
"제가 결정해도 돼요?"
"네가 시작하겠다고 했잖아."
"아니요. 여기 사람들한테 묻는 거예요."
그 말 뒤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윤슬이 천천히 그를 보았다. 한수는 못마땅한 얼굴로 다이얼을 닦았다.
"내 이름은 빼." 한수가 말했다.
"내 얼굴도." 미라가 덧붙였다.
윤슬은 짧게 말했다.
"장소 말하지 마."
새벽은 비닐천 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내 말도 안 돼?"
도현은 아이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아이가 더 뒤로 물러날 수 있게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굽혔다.
"네 말은 네가 정해야 해. 지금은 위험이 뭔지 다 설명하기 어렵고. 그래서 내가 대신 보내지 않을래."
새벽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도현은 그 표정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안전하다는 말은 아이에게 늘 기다리라는 말로 들릴 수 있었다.
"대신 내가 한 마디 할게. 밖에 누가 있다면 답하지 말아도 된다고. 듣기만 해도 된다고."
새벽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는 작업 장갑을 끼고 배터리에 선을 물렸다. 도현은 자기 캠봇의 송출 모듈을 수신기에 붙이는 대신 영상선을 뽑았다. 렌즈가 켜져 있어도 화면은 바닥뿐이었다.
더 확실하게 하려고 그는 렌즈 앞에 자기 재킷 안주머니의 검은 천을 덮었다. 기록함 안의 카메라는 이제 빗물 자국조차 보여 주지 못했다.
[영상 출력: 차단]
[음성 송출: 수동]
[송출 제한: 00:22]
미라는 선 하나를 손톱으로 긁어 벗겼다. 구리빛 심이 램프 아래에서 잠깐 드러났다. 그녀는 그것을 수신기 뒤편의 나사에 감고 천천히 조였다.
"이건 안테나가 아니야. 배수관을 조금 빌리는 거지." 미라가 말했다. "멀리 가는 만큼 돌아오는 길도 생겨."
도현은 천장으로 뻗은 녹슨 관을 올려다봤다. 관은 빗물 탱크 뒤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땅 위의 하늘도 보이지 않는 곳인데 자기 목소리만 얇은 선을 타고 밖으로 나갈 터였다.
"전파가 돌아오면 여기까지 따라올 수도 있나요?"
"그래서 네가 길게 떠들면 안 되는 거야." 한수가 대답했다. "한 번은 운이야. 두 번부터는 습관이고. 습관은 기계가 제일 잘 찾지."
도현은 마이크에서 손을 뗐다. 전에라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방송 시간을 늘렸을 것이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더 크게 웃고 더 많은 말을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침묵은 비어 있지 않았다. 펌프를 고치는 손과 열을 재는 손과 잠든 아이의 이마를 만지는 손이 그것을 지키고 있었다.
새벽이 비닐천 뒤에서 작은 깡통 하나를 내밀었다. 가장자리가 찌그러진 물컵이었다.
"이 소리 보내면 안 돼?"
아이의 손가락이 깡통을 가볍게 두드렸다. 맑지 않은 금속음이 공구실을 울렸다.
미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여기 소리야."
새벽은 깡통을 끌어안았다. 도현은 그 소리를 방송에 싣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으로 아이의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대신 그는 자기 손바닥의 붕대를 다시 조였다. 그 마찰음도 마이크에서 멀리 두었다. 지금 보낼 것은 이곳을 증명하는 소리가 아니라 어딘가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기다리는 자기 목소리 하나면 충분했다.
"목소리도 바꿀 수 있어?" 한수가 물었다.
"그건 안 할래요."
도현이 수신기 옆 마이크를 보며 말했다.
"합성한 목소리로 시작하면 또 누군지 믿을 수 없잖아요."
한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에 반박할 수도 없다는 듯 차단 스위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윤슬은 소총의 끈을 어깨에 걸고 수문 위 통로로 향했다. 떠나기 전 그녀는 도현의 어깨를 짧게 눌렀다.
"스물두 초면 말 줄여. 네 방송 버릇 나오면 내가 끊어."
도현은 어쩐지 웃을 뻔했다.
"알겠어."
그녀가 사다리를 오르자 금속 발판이 아주 낮게 울렸다. 잠시 뒤 통로 위에서 손전등 빛이 한 번, 두 번 움직였다. 수문 바깥과 배수관 쪽을 훑는 신호였다.
램프가 더 낮아졌다. 미라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한수는 차단 스위치 위에 손을 올렸다.
도현은 마이크를 잡았다. 가상 스튜디오에서는 불빛이 얼굴을 감싸고 반응이 문장마다 밀려왔다. 지금 그의 앞에는 닳은 다이얼과 비어 있는 의자뿐이었다.
그래서 더 제대로 말해야 했다.
미라의 손가락이 하나씩 접혔다.
둘.
하나.
수신기에서 얇은 잡음이 흘렀다.
"144.120을 듣는 사람에게."
도현의 목소리가 스스로에게도 낯설게 들렸다.
"나는 강도현이야. 여기는 말할 수 없어. 누군가의 얼굴이나 목소리도 보내지 않아."
한수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밖에 사람이 있다면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돼. 살아 있다면 듣기만 해. 나도 듣고 있을게."
수신기 옆의 초침이 열여덟을 넘었다. 도현은 더 말하고 싶었다. 이름을 묻고 싶었다.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질문 하나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끝."
그가 손을 뗐다.
미라가 발신 회로의 스위치를 내렸다. 배터리 선이 떨리다 멎었다. 수신기 표시등만 희미하게 남아 잡음을 받아들였다.
"끝난 거지?" 한수가 물었다.
"끝났어요."
도현은 수문 쪽을 바라봤다. 윤슬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공구실에는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새벽도 아무 말 없이 비닐천 뒤로 돌아갔다.
이상하게도 그는 허전하지 않았다. 반응을 얻지 못한 방송이 아니라 약속을 지킨 방송이었다.
그때 수신기 스피커에서 잡음이 튀었다.
한수가 곧바로 소총 쪽으로 손을 뻗었다. 미라는 꺼진 발신 회로를 확인하고 수신기 다이얼만 붙잡았다.
"송출은 껐어." 미라가 숨죽여 말했다.
잡음은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일정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너무 짧았지만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 같았다.
윤슬이 통로에서 뛰어 내려왔다.
"위는 조용해."
수신기에서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강..."
그 한 음절 뒤로 거친 정전기가 쏟아졌다.
도현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대답하지 않겠다고 자신이 먼저 말했으니까.
한수가 그를 노려봤다.
"건드리지 마."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은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수신기 속 목소리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도현은 다이얼 곁에서 떠나지 못했다. 숫자도 얼굴도 없는 누군가가 잡음 너머에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공구실의 어둠은 조금 전과 다른 모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