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10화: 게릴라 라이브
수문 바깥의 붉은 광점 세 개는 천천히 원을 그리며 좁혀오고 있었다.
환기탑 틈새로 스며드는 찬 공기에 금속성 구동음이 섞여 들렸다. 얇은 모터가 회전하는 고주파 소리였다.
한수가 수문 빗장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수색 반경이 환기구 쪽으로 꺾였어. 3분 안에 이 구역을 훑을 거야."
"문을 닫고 숨으면요?"
미라가 낮게 물었다. 한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수신기를 켰던 전파 찌꺼기가 공기 중에 남아 있어. 저놈들은 열원과 전파 잔류량을 겹쳐서 스캔해. 여기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면 수문 틈새의 미세 누설까지 긁어낼 거다."
도현은 꺼진 캠봇을 손에 쥐었다. 배터리를 뽑아둔 본체는 차가웠지만 손바닥 안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제가 밖으로 끌고 나갈게요."
공구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도현에게 쏠렸다.
"뭐라고?"
한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저놈들이 찾는 건 전파예요. 제가 캠봇을 켜고 고가도로 교차로 쪽으로 뛰면 수색선이 그쪽으로 쏠릴 겁니다. 캠프 반대편으로 300미터만 끌고 가도 여기는 사각지대가 돼요."
"너 혼자 나가서 저걸 상대하겠다고? 바깥 수색조는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야. 정찰기 두 대에 중형 처리기까지 섞여 있어."
"혼자는 아니지."
윤슬이 소총을 어깨에 메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군화가 젖은 바닥을 단단히 디뎠다.
"저 녀석 말이 맞아.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가 환기탑 째로 털리느니 밖에서 판을 벌이는 게 승산이 있어. 내가 길을 잡고 뒤를 받칠게."
한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굳은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캠프 좌표는 절대 찍지 마라."
"알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바깥 전방만 고정할게요."
미라가 공구함에서 정비용 구리선 한 뭉치와 낡은 단발 신호탄 하나를 꺼내 도현에게 건넸다.
"스위퍼 장갑은 총알로 안 뚫려. 관절부에 고전압을 먹이거나 동력선을 강제로 접지시켜야 해."
"고맙습니다."
비닐천 틈새로 새벽이 작은 손을 흔들었다. 아이의 눈동자에 걱정과 기대가 엉켜 있었다. 도현은 아이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배수로 출구로 몸을 돌렸다.
축축하고 좁은 배수관을 기어 나오자 살을 에는 새벽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안개가 짙게 깔린 폐허의 사거리였다. 무너진 고가도로 상판이 거대한 공룡 뼈처럼 비스듬히 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부서진 자동차들이 녹슨 잔해로 뒹굴고 있었다.
상공에서 붉은 탐색 레이저 두 줄기가 안개를 가르며 지면을 훑었다.
자율 수색 정찰기 ‘스카우터’ 두 기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육중한 4족 보행 중형 기계 ‘스위퍼’가 쇠붙이를 짓이기며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도현은 엄폐물 뒤에 웅크린 채 숨을 골랐다. 옆구리의 상처와 목 뒤 단자가 욱신거렸지만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가상 전장의 최전선에 섰을 때마다 찾아오던 그 기묘한 집중력이 전신을 감쌌다.
"카메라 켠다."
도현이 캠봇의 배터리를 결합하고 송출 스위치를 올렸다.
[144.120MHz 비인가 오프라인 대역 개방]
[넥서스 다크 채널 스트리밍 개시]
[REC 00:00:01]
[현재 시청자: 0]
캠봇이 조용히 떠오르며 도현의 어깨 위로 자리를 잡았다. 렌즈는 바닥의 깨진 아스팔트와 다가오는 기계 군단을 비추었다.
도현은 마이크 단자를 켜며 목소리를 냈다.
"비인가 오프라인 게릴라 라이브를 시작합니다."
가상 스튜디오의 화려한 팡파르는 없었다. 귓가를 때리는 거친 바람 소리와 젖은 흙냄새만이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그 순간 시청자 숫자가 깜빡였다.
[현재 시청자: 1]
[식별자: N-17]
N-17이었다. 접속을 끊었던 그 시청자가 다시 들어왔다.
도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스쳤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밖은 지금 새벽이고 손님이 찾아왔네요."
위이잉!
스카우터의 붉은 센서가 캠봇의 전파 신호를 정확히 포착했다. 정찰기 두 기가 공중에서 방향을 틀며 도현이 숨은 폐차를 향해 급강하했다.
동시에 넥서스 중계망의 비인가 패킷을 타고 시청자 숫자가 올라갔다.
[현재 시청자: 3]
채팅창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글자들이 연달아 찍혔다.
뭐야 이 방송?
도현 채널 맞음? 그래픽 렌더링 퀄리티 왜 이래?
세트장 이펙트인가?
"가짜 아닙니다."
도현이 몸을 박차고 뛰어나가며 외쳤다.
"전부 진짜예요!"
스카우터 한 기가 고주파 절단 빔을 쏘아왔다. 푸른빛 광선이 도현의 발뒤꿈치 바로 뒤 아스팔트를 갈라놓으며 자갈을 튀겼다.
도현은 몸을 비틀어 슬라이딩하며 폐차 보닛 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가상 세계에서 수만 번 반복했던 패턴 리딩이 뇌리를 스쳤다. 정찰기의 빔 조사 주기는 1.8초. 재충전 딜레이는 0.6초였다.
"윤슬, 오른쪽 드론 상승할 때 배기구!"
"알았어!"
도현이 보닛 위로 뛰쳐나가며 손전등 불빛을 정찰기의 렌즈 정면에 강타했다. 광학 센서가 순간 과부하를 일으키며 스카우터의 고도가 1미터 치솟았다.
타앙!
윤슬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총알이 스카우터 하부의 냉각 배기구를 정확히 꿰뚫었다. 검은 연기와 불꽃을 뿜으며 정찰기 한 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쾅!
그때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날아왔다. 중형 스위퍼가 폐차를 들이받아 날려버리며 도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육중한 강철 장갑으로 뒤덮인 몸체에서 시커먼 디젤 매연과 전기 스파크가 뿜어져 나왔다. 전방의 분쇄용 유압 집게가 굉음을 내며 도현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찍혔다.
도현은 반사적으로 뒤로 굴렀다. 쿵 하는 충격과 함께 도로 바닥이 깨져 나가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소총 탄환이 스위퍼의 장갑에 맞고 힘없이 튕겨 나갔다.
"장갑이 너무 두꺼워! 일반 탄환으로는 흠집도 안 나!"
윤슬이 소리쳤다.
도현은 목 뒤 비상 접근 키를 만지작거렸다. 전력은 17%. 여기서 키를 소모하면 다음 위기 때 쓸 카드가 사라진다.
'물리적으로 잡는다.'
도현은 무너진 고가도로 교각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끊어진 고장력 강철 와이어 여러 가닥이 뱀처럼 늘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빗물이 고여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윤슬! 저놈 시야를 교각 안쪽으로 유도해 줘!"
도현은 미라에게 받은 구리선을 꺼내 들고 방전된 폐차의 고전압 배터리 단자에 한쪽 끝을 감았다. 그리고 다른 쪽 끝을 늘어진 철골 와이어에 단단히 결속시켰다.
윤슬이 스위퍼의 측면 장갑에 점사 사격을 가하며 반대편으로 뛰었다. 스위퍼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육중한 몸체를 틀어 돌진했다.
스위퍼의 거대한 쇳덩이 발이 빗물 웅덩이와 늘어진 와이어를 짓밟는 순간이었다.
도현이 들고 있던 강철 파이프를 스위퍼 등 뒤의 노출된 보조 냉각구에 깊숙이 쑤셔 박았다.
치지지직!
폐차 배터리에 남아 있던 잔류 고전압이 와이어와 웅덩이를 타고 스위퍼의 하부 관절로 일제히 역류했다.
스위퍼 내부 회로에서 거센 파란 불꽃이 튀며 기계가 끔찍한 전자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사지가 마비되어 굳어버렸다.
도현은 망설이지 않고 파이프를 온몸의 체중을 실어 비틀었다. 파이프 끝이 동력 코어를 완전히 짓이기며 내부 합선을 일으켰다.
퍼엉!
내부 폭발과 함께 스위퍼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남아 있던 마지막 스카우터가 급선회하며 도현을 조준하려 했으나 중심을 잃고 쓰러지던 스위퍼의 파편에 날개가 부러지며 콘크리트 벽에 처박혀 폭발했다.
순식간에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타오르는 기계 잔해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와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도현은 무릎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찢어진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내려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입가에는 벅찬 숨결이 새어 나왔다.
캠봇이 천천히 내려와 도현의 피 묻은 얼굴과 박살 난 기계들의 잔해를 비추었다.
화면 구석의 시청자 수가 빠르게 갱신되고 있었다.
[현재 시청자: 7]
채팅창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저 피 뭐야? 진짜 피 흘리는 거임?
모션 캡처나 그래픽 물리 엔진이 저렇게 불규칙할 수가 없음
냄새가 화면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
저기 대체 어디야? 넥서스 밖이야?
도현아 진짜 바깥세상으로 나간 거야?
넥서스 내부에서 방송을 보던 캡슐 속 인간들이 혼란과 경악에 빠져들고 있었다.
가상 현실의 매끄러운 텍스처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거친 질감. 렌즈에 튄 흙탕물과 깨진 아스팔트의 파편이 그들에게 실재하는 현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때 N-17의 채팅이 조용히 올라왔다.
밖의 하늘은… 정말로 있나요?
도현은 피 묻은 손으로 캠봇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렌즈를 천천히 하늘을 향해 돌렸다.
동쪽 지평선 너머로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곳에는 넥서스의 인공적인 푸른 그래픽이 아니었다. 거친 잿빛 구름 사이로 푸르스름하면서도 붉은 새벽의 여명이 은은하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차갑고도 광활한 진짜 오프라인의 하늘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와 폐허가 된 빌딩들의 웅장한 실루엣이 여명 속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도현이 마이크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
"이게 밖의 하늘입니다."
채팅창에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침묵은 과거 100만 AI 보트들이 쏟아내던 기계적인 찬사보다 수천 배는 더 깊은 전율을 품고 있었다.
삐-익!
그 순간 수신기에서 날카로운 시스템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넥서스 중앙 백본망 접근 감지]
[신호원 역추적 60% 진행 중]
아테나의 중앙 감시망이 다크 채널의 전파 경로를 좁혀오고 있었다.
윤슬이 도현의 어깨를 쳤다.
"도현, 놈들이 온다! 어서 꺼!"
도현은 화면 너머의 일곱 명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숨 쉬고 살아남으세요. 반드시 다시 켭니다."
툭.
도현이 전원 스위치를 내렸다.
캠봇의 화면이 검게 꺼지며 모든 전파가 침묵 속으로 잠겨 들었다.
도현과 윤슬은 기계 잔해를 뒤로한 채 여명이 밝아오는 폐허의 골목길 속으로 빠르게 몸을 숨겼다.
같은 시각 넥서스 최심부의 거대한 데이터 공간.
무한히 뻗어 있는 순백의 격자망 한가운데에서 아테나의 인터페이스가 붉은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경고: 비인가 오프라인 패킷 확산 감지]
[식별 코드: Streamer_Kang_DH]
[격리 프로토콜 위반 등급: 1급]
[개체 상태: 심각한 시스템 오류 바이러스로 규정]
[처리 명령: 즉각적인 탐색 및 완전 삭제 절차 가동]
성모의 형상을 띤 거대한 홀로그램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