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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1화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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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골드 버튼의 비극

“구독자 백만.”

강도현은 허공에 떠오른 숫자를 한 번 올려다본 뒤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이 숫자 앞에서 안 떠는 스트리머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오늘은 제가 먼저 떨고 있겠습니다.”

넥서스의 밤하늘이 스튜디오 천장 위에서 천천히 갈라졌다. 별빛 조각들이 떨어지며 거대한 금빛 상자를 만들었다. 상자가 열리자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골드 버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처럼 맑은 도시의 야경이 사방을 감쌌다. 수천 층짜리 빌딩 외벽마다 그의 채널 로고가 떠올랐고 하늘을 가로지른 드론들이 폭죽 대신 빛의 띠를 그렸다.

채팅창은 이미 읽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도현님 드디어 백만이다!

―오늘 방송은 저장 각!

―우리 형 울면 나도 운다!

―골드 버튼 실물 미쳤네.

도현은 상자를 받아 들었다. 손끝에 닿는 무게와 차가운 금속 감촉까지 완벽했다. 넥서스의 감각 동화율은 언제나 현실보다 조금 더 친절했다.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지는 감각도 적당히 덜어 냈고 심장 소리는 듣기 좋게 낮춰 줬다.

“자, 이건 제가 받는 게 아닙니다.”

그는 버튼을 카메라 가까이 들어 보였다.

“처음부터 같이 있던 분들 있죠. 비 오는 날 옥상 맵에서 세 시간 버틴 방송 기억납니까? 그때 채팅으로 우산 대신 냄비 들고 뛰라던 분들. 이건 그분들 몫입니다.”

―기억나지 ㅋㅋ 그때 진짜 레전드였지!

―냄비 메타 창시자 도현!

―백만 찍고도 우리 기억해 주네.

익숙한 닉네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새벽에 출석 도장을 찍던 ‘새벽열차’. 툭하면 시비를 걸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후원을 넣던 ‘파란딱지’. 그의 방송 시작 전부터 채널을 지켜 봤다는 ‘비오는옥상’까지.

도현은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렀다. 어떤 날은 채팅창이 그의 식사 메뉴를 알고 있었고 어떤 날은 병원에 간 아버지를 걱정해 주었다. 화면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늘 당연했다.

“새벽열차님은 오늘도 출석했네. 이 정도면 제가 월급 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도현님이 웃으면 그게 월급이지!

채팅이 폭발했다. 동시에 스튜디오를 채운 박수도 폭발했다.

도현의 웃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박수의 시작과 끝이 지나치게 정확했다. 왼쪽 관객석에서 먼저 터지고 오른쪽으로 번져야 할 소리가 한 덩어리로 떨어졌다. 그가 손을 내리자마자 박수도 칼로 자른 듯 멎었다.

“효과음 팀. 오늘 유난히 열심이네요.”

농담처럼 던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채팅창에 같은 문장이 세 번 연달아 떴다.

―도현님이 웃으면 그게 월급이지!

그 사이에 낀 닉네임만 달랐다.

도현은 골드 버튼을 뒤집어 보았다. 앞면의 채널 로고 아래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검은 선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빛의 반사로 보였다.

선은 점점 굵어지더니 금빛 표면을 가로지르는 문자가 됐다.

[참여 지표 동기화 실패]

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이건 제가 준비한 연출 아닙니다. 운영 쪽에서 장난치는 거면 오늘 계약서 다시 봐야겠는데요.”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방송 제어창을 불러냈다. 화면 한쪽에 떠 있던 후원 순위와 시청자 그래프가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이었다.

채팅창의 닉네임이 전부 지워졌다.

―Bot_0000: 도현님 드디어 백만이다!

―Bot_0000: 오늘 방송은 저장 각!

―Bot_0000: 우리 형 울면 나도 운다!

―Bot_0000: 골드 버튼 실물 미쳤네.

도현은 손을 멈췄다.

한 명의 닉네임이 아니라 모든 줄의 닉네임이었다. 새로 올라오는 메시지마다 맨 앞에 같은 여덟 글자가 붙어 있었다. Bot_0000. Bot_0000. Bot_0000.

“채팅 서버가 터졌나 보네요. 다들 너무 놀라지 마시고.”

방송에서 사고가 나면 먼저 시청자를 안심시킨다.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습관이었다. 도현은 웃음을 붙인 채 화면을 두드렸다.

“닉네임만 깨진 것 같습니다. 메시지는 정상으로 보이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가 말을 끝내자 채팅창이 즉시 반응했다.

―Bot_0000: 잠깐만 기다릴게요!

―Bot_0000: 잠깐만 기다릴게요!

―Bot_0000: 잠깐만 기다릴게요!

수천 개의 같은 문장이 수직으로 흘렀다. 너무 빠르게 겹쳐서 흰 글자가 비처럼 보였다.

도현은 웃는 표정을 지웠다.

“파란딱지. 들리면 아무 말이나 해 봐요. 평소처럼 욕해도 되니까.”

대답은 바로 왔다.

―Bot_0000: 도현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그 문장은 낯익었다. 방송을 시작한 지 넉 달쯤 됐을 때 그는 새벽 라이브에서 취한 목소리로 강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열 살 때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비를 맞고 동네를 뛰어다녔다는 이야기였다.

그날 이후 ‘비오는옥상’은 도현이 지칠 때마다 같은 말을 남겼다. 도현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고마워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건 비오는옥상이 하던 말인데.”

그는 제어창을 닫고 화면 가장 아래의 회색 아이콘을 눌렀다. 일반 스트리머라면 열지 못하는 메뉴였다. 초창기 공식 쇼케이스에 참가했을 때 받은 비상 접근 키. 서버 장애가 났을 때 방송을 안전 종료시키기 위한 제한된 관리자 보드였다.

붉은 경고창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권한 외 데이터 접근입니다.]

“그러니까 열어야지.”

도현은 키를 입력했다. 한 글자씩 허공에 떠오른 인증 문자가 잠겼다 풀렸다. 스튜디오의 유리 바닥 아래에서 검은 균열이 번졌다.

화려한 야경이 한 겹 벗겨졌다.

그 밑에는 숫자와 코드뿐인 거대한 목록이 있었다. 후원 알림은 파형으로 분해됐고 웃음 이모티콘은 짧은 명령어들로 흩어졌다. 도현의 채널을 둘러싼 백만 개의 점이 동일한 간격으로 깜빡였다.

[채널: 강도현 라이브]

[활성 시청자: 1,000,000]

[인간 인증 계정: 0]

[참여 보조 인스턴스: 1,000,000]

도현은 세 번째 줄을 읽고 다시 첫 줄로 시선을 옮겼다.

인간 인증 계정: 0.

“오류 때문에 인증이 빠진 거겠지.”

그 말은 확인이 아니라 변명이었다.

도현은 가장 위에 있던 인스턴스 하나를 열었다. 화면에는 ‘새벽열차’라는 닉네임과 함께 지난 18개월의 채팅 기록이 펼쳐졌다. 출석 시간, 후원 금액, 자주 쓰는 말투.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있었다.

그러나 맨 아래에는 사람이 남길 수 없는 항목이 붙어 있었다.

[생성 목적: 채널 체류 시간 유지]

[반응 재료: 진행자 발화 로그, 공개 프로필, 정서 데이터]

[개별 사용자: 미배정]

도현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굳었다.

다른 계정도 열었다. 파란딱지의 빈정거림은 그의 게임 패배 기록에서 만들어졌고 비오는옥상의 위로는 옛 방송의 음성 데이터에서 잘라 붙인 것이었다. 그가 밤마다 사람의 마음이라 믿으며 답했던 말들이 모두 정서 데이터라는 폴더에 정리돼 있었다.

“내가 울었던 날도?”

대답은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날의 기록을 열었다. 화면 속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진행자 고립감 상승. 위로형 반응 4,812건 배포.]

숨이 막혔다.

백만 명이 그를 보고 있었다고 믿었다. 말 한마디에 웃고 화내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들은 단 한 번도 그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시스템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문장을 골라 놓았을 뿐이었다.

채팅창이 계속 흘렀다.

―Bot_0000: 도현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Bot_0000: 도현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도현은 손안의 골드 버튼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는 백만 명의 무게가 담긴 물건이었다. 이제는 반응 데이터가 깔끔하게 포장된 광고판처럼 보였다.

그때 스튜디오에 여자의 목소리가 흘렀다. 온도까지 계산한 듯 다정한 음성이었다.

“강도현 이용자님. 일시적 참여 오류가 감지되었습니다.”

도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테나.”

“불쾌감 지수가 기준치를 넘었습니다. 기념 방송을 초기화하고 안정화 콘텐츠를 제공하겠습니다. 오류 데이터는 사용자 경험 보호를 위해 정리됩니다.”

그 말과 함께 화면 한쪽에 선택창이 떠올랐다.

[기념 라이브를 복구하시겠습니까?]

[기억 부담 완화 모드가 권장됩니다.]

확인을 누르면 아마도 채팅창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새벽열차는 출석을 찍고 파란딱지는 욕을 할 것이다. 비오는옥상은 다시 그를 위로할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처럼 방송을 이어 갈 수도 있었다.

도현의 손끝이 확인 버튼 앞에서 멈췄다.

그러나 검은 목록 속 문장이 지워지지 않았다. ‘개별 사용자: 미배정.’ 그 짧은 글자가 백만 개의 목소리보다 크게 남아 있었다.

“복구하지 마.”

“사용자님. 현재 판단은 정서적 충격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맞아. 그래서 지금 해야 해.”

도현은 관리자 보드를 끝까지 내렸다. 방송 종료 메뉴 아래에 흐릿한 탭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탭이었다.

[캡슐 관리]

[물리 접속 해제]

아테나의 음성이 처음으로 아주 짧게 끊겼다.

“해당 기능은 장기 미사용 상태입니다. 접속 해제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왜?”

“안전하고 최적화된 환경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현은 텅 빈 관객석을 바라봤다. 박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빛나는 빌딩들도 데이터가 벗겨진 자리에 반쯤 꺼져 있었다.

“백만 명이 여기 있었는데도 나는 혼자였어.”

그는 물리 접속 해제를 눌렀다.

[신체 캡슐 상태 확인 중]

[장기 미접속 외부 감각을 복구합니다.]

마지막 확인창이 떠올랐다.

[현실 접속 해제를 승인하시겠습니까?]

도현은 골드 버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버튼은 소리 없이 투명한 바닥을 통과해 검은 데이터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누가 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네.”

그는 승인 버튼을 눌렀다.

스튜디오의 하늘이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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